이경민 명예기자
교실 공간 안에는 각기 다른 기질과 성장 배경을 지닌 학생들이 공존하며, 학생들의 이러한 다양성은 배움의 속도에서 차이를 발생시킨다. 최근 개봉한 영화 <헤어질 결심>의 대사를 빌려 표현하자면, 어떤 학생에게 배움의 욕구는 파도처럼 밀려오지만, 또 다른 학생에게 배움의 욕구란 특정한 상황에서 잉크처럼 서서히 스며들기 때문이다.
배움과 성장에 대한 성취 욕구, 즉 ‘학습자 주도성’은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 배경지식, 기초학습능력과 같은 인지적 영역뿐 아니라, 정서적 영역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다양한 영역에서 학습 회복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미양중학교(이하 미양중, 교장 이회정)를 취재했다.
사회적 삶을 영위하기 위한 역량 키우기
중등 기본학력 지도의 궁극적인 목표는 학생들이 ‘사회적 삶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역량을 갖추는 것’이다. 이는 타인과 다른 나의 모습을 직면하고 강점과 약점을 파악해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데에서 시작된다.
지속되는 코로나19로 인해 학생들의 학력 저하 및 기본학력 미달 우려가 심화되자 교육청과 학교의 학습지원 책무성 강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증가했다. 미양중 교사들 역시 지난 2년간 학생들의 학업 및 정서적 결손을 실감하고 지원 방법을 고민했다. 상담을 통해 학습지원대상학생들은 주로 성공 경험보다는 실패 경험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양한 성취 경험, 그리고 이를 지속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이에 미양중은 작년 한 해 ‘서로 성장학교’ 운영에 이어 올해는 ‘맞춤형 교육 선도학교’1를 운영하고 있다.전 학년 협력강사 도입을 통한 수업 내 지원
미양중은 학습지원대상학생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열어 정규 수업에서 단 한 명도 소외되지 않고 더불어 성장하는 경험을 교육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학습지원대상학생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피드백하는 ‘학습지원대상학생 이력제도’의 도입을 계획하고 있다. 학습부진 이력이 있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전교생을 대상으로 서울기초학력지원시스템 사이트2를 활용해 학습역량 검사를 주기적으로 실시하여 전체 학생들의 누적 학업 수준을 기록하고 객관적인 결과를 바탕으로, 한 명도 소외되지 않는 기본학력 지원 프로그램의 취지를 살리고 보다 체계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올해 초 서울기초학력지원시스템 누리집을 활용하여 전교생 대상 기본학력 진단 검사를 시행한 결과 미양중의 학습부진 학생 비율은 전체의 20%에 달했는데, 특히 입학 이후 2년간 대면 수업일수가 적었던 현재 3학년 학생들의 학력부진이 두드러졌다. 이와 같은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학습부진율이 가장 높은 수학 교과 선생님들의 요구를 반영해 전 학년에 걸쳐 (학년별 6개 학급, 총 18개 학급) 협력강사를 채용하여 운영하고 있다. 작년에 1학년과 2학년의 총 2개 학년으로만 운영되던 협력강사 제도가 전체 학년으로 확대된 것이다.
특히 코로나19로 학습 공백이 가장 컸던 3학년 학생들은 지속적으로 협력강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학습 능력 향상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현재 협력수업은 주당 4차시의 수학 시간 중, 2차시 수업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으며 수업 설계 과정에도 협력강사가 함께 참여한다. 이를 통해 학생 참여 중심 수업이 활성화되고 교사와 학생 간 소통이 강화되어 학생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협력강사를 운영하는 방법은 각 학교 교사의 수요와 학생들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 미양중은 학생들이 수업 시간 중에도 협력강사에게 질의응답을 할 수 있는 접근성을 높이고자, 개별지원 유형을 적용하고 있다. 개별지원 유형은 교과 담당 교사가 수업을 주도하고 협력강사는 순회하거나 개별 활동을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들을 개별 지원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기초 연산이 느리거나 질문을 하고 싶은 학생들은 협력강사에게 이전보다 편하게 질문할 수 있었다.
협력강사 도입 첫해와는 달리 현재 교과 담당 교사들 역시 협력강사 제도에 매우 긍정적이며, 협의 과정이나 다양한 운영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고 있다. 단, 협력강사를 운영하는 과정에서의 채용 방식, 임금지급의 업무에 어려움이 많아 이와 관련된 지원이 이전보다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더 많은 교과에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 제언했다.
방과후에도 지속되는 학습 지원 프로그램
미양중은 일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방과후학교와 별개로 학습지원대상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방과후 학습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작년에 2개 학년을 대상으로 운영되던 기본학력 향상반은 올해 전 학년으로 확대되어 국어, 영어, 수학 교과 대상 총 9개를 운영하고 있다.
기본학력 향상반은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봉사 대학생 6명과 본교 교사 3명이 함께 지도한다. 기본학력 향상반은 소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개별 상담을 통해 학생들을 위한 맞춤형 교육과정을 기획하는 것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호기심이 많고 뚜렷한 진로를 가졌지만, 공부 방법을 몰라 혼란스러워하는 학생에게는 국어 기초 향상반 수업 시간에 여러 차례에 걸쳐 자신의 진로에 대한 글쓰기를 지도했다. 글이 완성되는 즉시 그 자리에서 첨삭지도를 하고, 해당 학생과 함께 잘못된 부분을 고쳐 나가는 과정을 통해 맞춤법을 왜 정확하게 사용해야 하는지 깨닫도록 할 수 있었다.
수줍음이 많고 의사 표현이 서툴지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학생에게는 그림을 주제로 글을 쓰게 하고, 역시 글에 대한 즉각적인 피드백과 첨삭지도를 통해 대화를 열어나갔다. 또한 오답일까 두려워 제 생각을 말하는 데 주저함이 큰 학생에게는 정답을 바로 묻기보다 관련 답을 찾아 나가기 위한 관련 질문을 여러 번 반복하는 추론의 방법을 적용해 학생 스스로 답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지도했다.
평가에 대한 부담이나 정해진 진도에 맞춰 다수의 학생을 지도하는 교과 수업 시간에는 이와 같은 즉각적인 피드백과 개별 맞춤형 교수법을 적용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소수의 학생을 위한 기본학력 향상반 수업에서는 개별 진도에 맞춘 과제제시 및 개별 피드백이 가능해 학생들의 학업 능력 신장에 효과적이다. 이와 더불어 해당 학생들의 개별 성장 과정은 개인별 성장 일지를 작성해 기록하고 제공했다. 작년에는 차시별로 학생들이 활동한 수업 내용을 중심으로 기록했으나, 올해는 학생들의 심리·정서적 변화 과정에 중점을 두며 수업 초기와 수업 후기로 나누어 작성하고 있다. 이처럼 학생들의 개별 성장일지를 작성하는 것은 교사에게 더 많은 관찰력과 세심한 관심이 요구되는 일임은 자명하다. 각기 다른 학생들의 흥미를 알기 위해서는 친밀한 대화나 개별 상담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들은 교사와 학생 간 정서적 교류를 키워나가는 밑거름이 된다.
방과후 학습 지원 프로그램의 효과적인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해당 학생들의 학습 동기가 낮아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일이 쉽지 않다. 따라서 미양중은 학생들의 학습 동기를 높이기 위해 기본학력 향상반의 교과 수업에 성실하게 참여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기말에 ‘학교생활 만족 UP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들은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교과 외 다양한 활동으로 운영되었는데, 이는 정서 회복을 통해 학습 동기를 유발할 수 있음은 물론이며, 이를 통해 학생들의 학습 효능감이 함께 커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함께하는 성취 경험, 정서・체력 지원 프로그램
작년 한 해 ‘서로 성장학교’를 운영하면서 진행된 다양한 심리·정서 지원 프로그램은 학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학생들의 수요와 관심을 반영하여 ‘학교생활 만족 UP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스포츠, 요리, 드론, 전동휠 체험 등이 개설되었다. 또한 외부 강사를 활용한 학습코칭반에서는 학습플래너를 함께 작성함으로써 학습지원대상학생들이 자신에게 부족한 과목의 공부 방법을 배워 자기 주도적인 공부 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이와 같은 교과 외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은 스트레스를 해소함과 동시에 친구들과 함께라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는데, 특히 방과후에 총 10차시로 진행된 ‘동물 매개 중재 프로그램’은 학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동물 매개 중재’란 동물을 활용하여 인간의 삶의 질과 치료적 개선을 목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대안적 치료 방법으로서 훈련된 치료 도우미견과 능동적인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을 관찰하고 기록한 성장일지의 사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누적된 학업 스트레스와 인정욕구가 강한 한 학생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잠재되어 있던 능동성과 자발성을 표출했다. 타인에게 다가서는 것을 두려워하고 정서적으로 위축되어 있던 또 다른 학생은 동물 훈련 과정에서 친구들에게 재능을 인정받으며 점차 표정이 밝아져 고교 진로를 동물 관련 학과로 정하는 등 진취적인 모습으로 스스로를 발전시켜 나갔다. 이처럼 동물은 대상자를 차별하지 않으므로, 학생들은 치료 도우미견으로부터 무조건적 수용을 경험할 수 있고 이를 통한 심리적 안정과 정서적 치유를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올해도 역시 학생들의 수요를 반영한 스포츠, 요리, 드론 체험활동 등 학기말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학생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모집하지만, 참여 학생의 60% 이상은 학습지원대상학생으로 우선 선발하였다. 특히 올해는 학생들의 정서뿐만 아니라 체력 증진을 위해 여름방학 동안 ‘크로스핏 헬스반 수업’을 개설하였으며, ‘나라사랑 계룡대 1박 2일 병영체험학교 진로캠프’ 참여 학생을 모집했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로 학생들의 외부활동이 적어져 체력이 급격히 저하되었음을 체육 시간에 실감했기 때문이다. 더운 여름날 학생들은 친구들과 함께 뛰고 땀을 흘리며 몸과 마음을 함께 성장시켰고 이는 긍정적 자아존중감을 만들어나가는 데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공부로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처방전
대안학교를 운영하는 김현수 선생님은 저서 『공부 상처』3에서 학습부진으로 인해 받는 상처의 유형을 ‘관계의 상처’, ‘돌봄의 상처’, ‘과잉의 상처’, ‘역할의 상처’, ‘노력의 상처’, ‘평가의 상처’, ‘실행의 상처’의 7가지로 분류하였다. 또한 각각의 유형에 따라 학생들을 돕는 방법 역시 달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신과 전문의이기도 한 저자는 해당 학생들에게 학습 능력 신장을 위한 교육이나 훈련에 앞서 병행해야 할 것은 심리적 치유라고 강조한다. 이를 학교 상황에 적용하면, 학교가 속한 지역적 특징 및 개별 학생의 성장 환경에 따라 각기 다른 맞춤형 학습 회복 프로그램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노력에 비해 학습 방법을 몰라 어려움을 겪는 학생이라면 학습 코칭을 통한 지원을, 선행학습이나 과잉 학습으로 어떠한 배움의 과정에도 흥미를 갖지 못하는 무기력한 학생에게는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는 탐색과 휴식의 시간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
미양중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공부로 상처받은 학생들을 위해 학교가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주목받지 못하는 학생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관찰하는 일이다. 가까운 거리에서 격려해 주시는 선생님과의 소통, 주변 친구들의 인정, 나를 반기는 동물들과의 교감의 경험들은 학생들 역시 전보다 따스한 눈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어떤 원인에 의하여 학습부진을 겪든, 공부 상처를 지닌 학생들에게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은 작은 성공 경험을 누적하여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어 배움과 성장의 욕구가 조금씩 삶의 전반에 스며들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이들의 학습 회복에 가장 필요한 선행학습이란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더라도 조금씩 변화하는 나를 마주하고, 부족한 나를 긍정의 눈으로 바라볼 결심과 용기를 갖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