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나 명예기자
최근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코로나19가 문화예술분야에 미친 영향과 향 후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상반기 코로나 19로 인한 공연분야와 전시를 포함한 시각예술분야 피해액은 1,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런 추세는 하반기에도 이어져 가을 정취를 즐기는 각종 축제도 취소되고 있다. 학교 현장도 예외일 수는 없어 중·고등학교의 축제들이 전면 취소 되거나 대폭 축소되었다.
더불어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감염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및 외부 활동 의 제약으로 인한 답답함과 무기력증이 겹 치면서 ‘코로나 블루’라는 용어가 나올 정 도로 정서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온·오프라인 연계 방식 을 활용하여 수업뿐 아니라 창의체험활동 및 다양한 학교 행사를 운영함으로써 ‘코로나 블루’를 극복해 가고 있는 학교가 있어 『서울교육』에서 찾아가 보았다.
코로나 이전, 한 발 앞서 뛰어든 온·오프라인 연계교육
정문에서 철저한 방역 점검을 통과해 본 관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이미 나와 계셨던 교감 선생님의 환영과 함께 눈에 들어온 것은 곳곳에 붙어 있는 학교축제 포스터였 다. ‘방구석 인헌제’라는 제목도 신선했지 만, ‘이 시국’에 축제를 했다는 사실 자체가 더 이목을 끌었다. 인헌고등학교(나승표 교장, 이하 인헌고)는 올해 교과 영역뿐 아니라 창의적 체험활동 영역에서 ‘블렌디드’ 채널을 이용하여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2020년, 인헌고의 이와 같은 행보가 가 능했던 것은 2019년부터 한 발 앞서 시작한 온·오프라인 연계 교육에 대한 실천 때문이 었다. 나승표 교장은 4차 산업혁명시대 미 래인재의 핵심역량인 4C(Critical Thinking, Creativity, Communication Skill, Collaboration)와 디지털 역량 등을 키우기 위해서는 학생 참여 중심이면서 온 라인과 오프라인이 결합된 형태의 온·오 프라인 연계 교육이 필수임을 강조해 왔 다. 역량 개발을 위해서는 강의식 형태의 단방향적 수업보다는 학생 중심 참여를 유 도할 수 있는 토론 및 프로젝트 수업이 절 실했다.
양질의 토론과 프로젝트 수업 수행이 가 능하려면 교사뿐 아니라 학생들이 원활하 게 자료 검색을 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 다. 이를 위해 인헌고는 코로나19로 인한 원격수업이 시작되기 전인 2019년부터 원 격수업 활용 도구인 크롬북을 100여 대 넘 게 구비하였다. 토론 수업을 진행하고 있 거나 원격수업에 관심을 가진 17명의 선생 님들이 크롬북 활용 수업에 자원했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기에 원격수업에 대 한 플랫폼에서부터 다양한 수업 형태에 이 르기까지 자발적으로 아이디어를 나누며 연구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17명의 선생님들에게는 우선적으로 크롬북을 주 었고, 나머지는 수업 시간에 4인 1조로 활 용할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배부하였다.
올해 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학이 이루 어지고 다른 학교에서는 원격수업 플랫폼 결정에 중의를 모으고 있을 때, 한 발 먼저 뛰어든 인헌고는 이미 구글 클래스룸으로 플랫폼을 통일하였고 원격수업에 대한 요구와 성찰이 공동체 속 에 자리잡고 있었다.
사람의 손이 아닌 쌀알끼리 부딪혀 씻어져야 한다
“쌀알끼리 부딪쳐 자연스럽게 씻어지는 양이 밥 짓는 사람의 손 으로 문질러 씻어지는 양보다 많다.”는 말로 첫인사를 시작한 나 승표 교장은 원격수업에 있어서도 ‘교사가 앞장서서 하는 것보다 는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움직여야 함’을 역설했다. 그래서 올해 관 심을 가지게 된 것이 창의적 체험활동 영역이었다. 온라인 플랫폼 내에서 교과에 비해 평가가 자유로운 창의적 체험활동 영역에 자 율적이고 창의적인 학생 참여 방안을 고민한 것이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온라인 기반 소통 과정을 체험하고, 자신의 생각을 담아 투표에 참여함으로써 민주시민으로의 역량을 자연스럽 게 익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을 학교 축제로 연결시켰던 것도 학생들이 먼저 내놓은 생각이었다. 다른 학교들처럼 코로나 방역으로 인해 축제를 무조건 취소하기보다는 어떤 형태로든 축 제를 개최해 보자는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다.
학교 공통 원격수업 플랫폼인 구글 클래스룸에 온라인 축제를 위한 공간을 만들고 ‘무대 앞에서 즐기는 축제가 아닌, 집에서 컴퓨 터로 즐기는 축제’라는 의미로 ‘방구석 인헌제’라는 이름도 지었다. 댄스, 뮤지컬 동아리들은 공연 모습을, 산출물을 만들어 내는 동아리에서는 작품들을 전시해 놓고 이를 촬영했다. 방구석 인헌 제에 출품하는 동영상 콘텐츠는 기획, 진행, 촬영, 편집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학생들이 스스로 진행했다.
이렇게 올려진 동영상 콘텐츠는 인헌제 기간 동안 오픈되었고, 학생들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기간 내 원하는 대로 접속해서 축제를 즐길 수 있었다. 축제를 담당했던 창의체험부 황윤준 교사는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학생들이 동아리별로 만든 동영 상을 가지고 오면 제가 구글 클래스룸 인헌제 방에 탑재하고 학생 들은 접속해서 보면 되는 것이니까요,”라고 말하며 “물론 오프라 인에서 무대를 직접 보며 즐기는 축제에 어떻게 비할 수 있겠습니 까. 아이들이 이렇게 해서라도 축제를 경험하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들을 표현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봅니 다.”라는 말로 첫 온라인 축제 개최에 대한 소감을 대신했다.
방구석 인헌제가 끝난 뒤 축제에 대한 학생들의 감상평을 모아 우수작을 선정, 시상도 했다. “내년에도 온라인으로 축제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올 해에는 온라인 축제를 열 수 있었고 사후로 감상평을 받은 것으로 만족합니다.”라며 송영란 창의체험부장은 2학기에는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 등을 고려해 공연 요소가 훨씬 많은 예술제를 오프라인 으로 운영하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쳤다.
1학기는 동아리 활동으로 학생 개인이 속한 동아리 부서별로 활동한 후 축제에 참여하고, 2학기는 학교특색프로그램으로 연극이나 뮤지컬을 선택하여 예술제에 공연을 올린다. 전교생이 연극이나 뮤지컬을 한 학기 동안 배우고 직접 참여하는 것이다. 대학입시라는 전제를 둔 채로 고등학교에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연극과 뮤지컬 을 접하게 하고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경 쟁과 성과라는 관점에서 보면 의아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모든 학생이 연극과 뮤지 컬을 한 학기 동안 접하면서 학교 오는 즐 거움이 늘고 정서적으로도 안정되는 효과 를 보았다.”며 나병학 교감은 이렇게 덧붙였다. “주변 친구들과 말을 거의 하지 않고 섞이지 못하는 학생이 있었는데, 올해 코 로나로 인해 원격수업으로 전환되고 등교를 거의 하지 않으면서 동급생들과 분리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학생도 특색 프로 그램으로 연극을 선택하여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역할을 하며 성취감도 느끼고, 다른 친 구들과 협업하고 한 두 마디라도 소통하는 것을 보고 아이들 스스로 온 몸과 마음으로 부딪히며 익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배움이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술제에 올리는 연극이나 뮤지컬의 수 준이 점점 높아져서 이제는 외부 연극경 연대회 출전 권유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 였을까. 취재일 당시 중간고사 기간이었 는데도 코로나19로 인해 움츠러든 대부분 의 학교 안팎 모습과는 대비되게 인헌고 학생들의 표정은 생기가 넘쳐 보였다.
‘봉사는 원격으로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깨다
학교에서 창의적 체험활동의 영역 중 자 율활동과 동아리활동은 행사적인 성격이 강해 원격 활용이 그나마 가능하지만, 학생들이 직접 실천해야 하는 봉사활동은 실시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인헌고에서는 이런 고정관념에 대해 고민하면 서 그 해결책을 찾아 외부로 시선을 돌렸다. 국내외 다양한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고 인프라가 잘 구축된 기관과 연계하는 방법을 모색했던 것이다. 그 결과 ‘굿네이버스’와의 협업이 성사되었다.
굿네이버스가 이미 가지고 있는 글로벌 시민교육프로그램은 원래 오프라인에서 강사와 만나 진행되는 교육인데 이를 영 상으로 편집하여 학생들에게 제공했다. 그러면 학생들은 학교에서 탑재된 영상 콘텐츠를 본 후 자신들이 배우고 느낀 것 들을 포스터나 홍보자료로 제작하기도 하 고 캠페인을 벌이는 활동 등을 하게 된다.
글로벌 시민교육 프로그램 청취와 이를 통해 연계된 활동들을 포 함하여 봉사 시간이 부여되는 방식이다.
이런 일종의 산학연계를 통해 인헌고의 학생들은 올해 봉사활동 을 거의 하지 못하는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찾아가는’ 체험에서 ‘찾아오는’ 체험으로
코로나19 이전 직업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직업인 강의를 들은 후 체험하는 방식으로 운영했던 ‘진로체험의 날’을 올해는 운영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대안을 고민하던 중에 관악진로직업체험센터와 연계하는 방안을 찾게 되었고, 해당 센터를 통해 직업인들의 직업 소개 영상을 제공받았다. 학생들은 전일제 진로체험의 날 오전에 전문 직업인 10명의 온라인 강의 중 2개 강좌를 골라 수강하고, 오후 에는 자신이 선택한 직업에 대한 전문인 인터뷰 및 워크넷, 커리어 넷, 어디가 사이트 등을 통한 관련 자료 조사를 통해 보고서를 작성 하였다. 진로체험프로그램은 학생들이 발로 ‘찾아갔던 방식’에서 학생들에게 ‘찾아오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만족도는 높았다. 다만 직접 체험해 보지 못한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장명순 진로진학 부장은 “다음에는 온·오프라인을 병행하는 진로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면 더 효율적이면서 만족도 높은 진로체험이 될 것 같습니다.”라는 말로써 온·오프라인 연계 방식의 상호보완적인 장점을 강조했다.
산이 거기 있어 오르다
함성과 열기를 느끼며 현장에서 직접 보는 축제, 내가 몸으로 부딪히며 해 보는 체험과 온라인 영상 콘텐츠를 비교할 수 있을까? 당연히 오프라인에서 경험하는 생생한 체험만큼 효과적인 교육의 수단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대면으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작은 시도라도 해보는 것’을 택한 것이 올해 원격수업의 시작이었다고 본다. ‘(오르기 위해) 굳이 산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산이 거기 있어 오른다.’는 어느 산악인의 말처럼 어 느 날 우리 일상에 닥친 비대면 물결 속에 학교는 원격수업이라는 ‘큰 산’을 마주하게 되었고 오르는 길 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 는 원격수업 플랫폼이나 기자재 등의 기본적 인프라뿐 아니라, 가상 현실 VR과 같은 각종 기술 발전으로 인해 온라인 상의 체험이 오프 라인 체험과 크게 구별되지 않는 지점이 올 것이다. 그 때에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교사든 학습자든 누구나 전면적인 원격수업을 해야 만 할 수도 있다.
인헌고의 온라인을 통한 창의적 체험활동 운영을 돌아보면서 결 국 교사의 주관심 영역인 교과수업에서의 원격수업 활용’이라는 문제의식을 마주하게 되었다. 취재의 마무리 부분에서 기자가 이런 고민을 털어놓자 나병학 교감은 2019 학년도에 인헌고에서 원격수업에 대해 한 발 앞서 연구하고 수업에 적용했던 17명 의 ‘원격수업 별똥부대’ 중 김경태 교사를 적극 추천했다. 김교사는 기본적인 플랫폼 으로 구글 클래스룸을 사용하고 실시간 화 상수업에서는 줌을 사용했다. 기본적인 개 념학습은 LOOM이라는 구글 확장 프로그 램을 쓰고, PDF 필기를 위해서는 kami와 MS 원노트를 썼다. 또한 많은 교사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영상 촬영에서는 최대한 ‘힘을 뺐고’, 이를 준비하고 편집 하면서 ‘(작은 실수는 그대로 올리는 식으로) 이왕이면 편 하게’ 작업했다. 학생들은 만족했고, 영상 촬영과 편집으로 받았을 부담을 줄여 얻은 에너지를 기본 개념학습에 이어지는 응용 과제를 위한 실시간 화상 수업에 쏟았다. 특히 응용과제를 부여할 때, 학생들이 교 실에서 서로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조금 이나마 상호작용을 높일 수 있도록 모둠별 로 과제를 부여했다. 그리고 과제의 내용적 측면에서는 단답형이나 객관식보다는 서로 의견을 나누며 해결 과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서답형과 서술형의 과제를 제시 했다. 즉, 학생들에게 구글 클래스룸의 기본 개념 영상을 먼저 보게 한 후, 줌에서 실시간으로 만나 오늘의 과제를 간단히 설명하고 학생들은 자신이 속한 모둠별로 만들어진 온라인 상의 ‘소회의실’에 입장하여 조별로 소통하며 과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다. 줌의 호스트인 선생님은 소회의실을 순회지도 하면서 모둠별로 도움을 주고, 아이들 스스로의 토론과 발견을 위한 ‘윤활 유 역할’을 했다. 이렇게 기본 개념학습과 응용과제가 끝나면, 삶의 지식으로 연결시키기 위한 일종의 프로젝트 수업으로 개념 과 연관이 있는 주제를 뽑아 포스터 만들기나 프리젠테이션 등의 활동을 했다.
원격수업을 하면서 얻게 된 긍정적인 효 과나 장점에 대해 김경태교사는 “원격수업에서도 활동과 토론이 가능하다는 것을 아 이들이 경험한 점, 등교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아이들끼리 친숙해질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 수업 속에서 ‘교사와 각 학생’이 아닌 ‘교사-학생’, ‘학생-학생’이라 는 다양한 관계망을 구축할 수 있었다는 점 등을 꼽고 싶습니다. 오히려 등교수업을 하고 나서는 거리두기 때문에 모둠수업 활동이 (원격보다) 더 제약을 받는 것 같아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의 꾸밈 없는 대답 속에는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했 던 원격수업의 단면들이 녹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울림 속에서 꿈을 키워가는 행복공동체
끝으로 나승표 교장은 “원격수업이 도입되고 나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중하위권 학생들의 학력 저하와 학력 양극화 문제입니다. 소위 ‘나이키 곡선’이라고 말하듯 소수의 상위권과 다수의 하위권이 존재하고 중위권은 거의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이런 불평등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우리 학교에서는 교과뿐 아니라 다양한 창 의적 체험활동과 행사를 원격과 접목함으로써 다양한 콘텐츠를 활 용한 학생 위주의 참여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교과 원격수업에서도 단순한 교사 일방향 강의식 수업을 영상으로만 찍어서 올리는 차원 이 아니라 토론, 프로젝트, 하브루타 등의 학생 참여 유도형 수업 형 태를 활용하는 방법, 단편적 지식을 이용한 문제풀이식이 아닌 자기 주도적 학습이 가능한 응용 과제를 부여하는 방법, 교사들의 끊임없 는 자기 개발과 연수를 통해 더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적절한 플랫폼을 사용하며 다양한 형태의 수업을 제공하는 방법 등을 시도 하고 있습니다.”라며 내년도에도 올해의 경험들을 발판으로 ‘온라인 과 오프라인’, ‘교사와 학생’의 어울림 속에서 꿈을 키워가는 행복한 혁신학교를 가꾸어 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원격수업은 분명 ‘가지 않은 길’이었다.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도 더 걸어야 하는 길일 수도 있다. 헤쳐야 할 풀이 더 무성한 길일 수도 있다. 또 길이란 이어져 있어 계속 가야만 한다는 것과 다시 오기 전의 길로 돌아갈 수는 없음도 우리는 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내딛은 그 ‘가지 않은 길’이 언젠가 우리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을 수 있을 것임을 우리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