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경 (성심여자중학교, 교사)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내가 처음 교사가 되었을 때 교사의 역할은 가르치는 것, 학생의 역할은 배우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강했다. 물론 이것이 틀린 생각은 아니다. 다만, 학생이 제대로 배우고 성장하도록 가르치려면, 교사 역시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당시 매년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과 수업하던 나는, 교사로서 잘 가르치기 위해서 입시 교재를 열심히 연구하고 학생들에게 쉽게 잘 풀어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익히는 것에 전념했다. 그렇게 10년 이상을 보내면서 나는 교사로서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게 되었고, 그 당시 나의 마음은 마치 거의 비어있는 물독에서 물을 퍼내려고 바닥을 긁는 것과 같은 심정이었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직무연수를 받고, 다양한 책을 읽으며 방법을 찾아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런 나의 교직 생활에 터닝포인트가 된 것은 바로 동일 재단 내 중학교 전보였다. 그 당시 중학교는 서울형 혁신학교 운영을 막 시작할 때였고, 서울형 혁신학교의 중점 과제 중 하나인 수업 혁신을 위해 교사의 학습을 강조하고 있었다. 또한 학습의 과정에서 동료와의 상호작용을 강조하여 교사들이 함께 학습에 참여하도록 권장하였다. 그렇기에 중학교에서 근무하게 된 나에게도 자연스레 ‘교원학습공동체’ 참여에 대한 제안이 들어왔다. 사실 주입식·암기식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인 나는 내가 배운 대로 지식을 암기하고 잘 재생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데 몰두했을 뿐, 지식이 구성되는 원리나 지식을 배우는 방법에 대해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따라서 학생을 잘 가르치기 위해서 교사가 먼저 배움의 원리를 이해하고 스스로 배우고자 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이 너무나 새롭게 다가왔다. 이와 동시에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꼭 누군가와 함께해야 하는 걸까?’ 라는 의문도 생겼다. 하지만 수업을 잘하고 싶은 마음, 잘 가르치고 싶은마음에 이런저런 궁금증과 관심을 가지고 교원학습공동체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 후 현재까지도 십여년 동안 다양한 교원학습공동체에 참여하고 있다.
처음에는 희망하는 교사를 대상으로 ‘배우는 방법을 배우는 것’에 초점을 맞춰 학습 이론을 배우는 교원학습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또한, 이와 연계하여 전 교사를 대상으로 월 1회 학습 이론에 대해 서로 토론하며 배우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동학년, 동교과 중심으로 교원학습공동체를 구성하고 연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2023년에는 교과 융합 수업에 중점을 두고, 동학년의 다양한 교과 교사들과 함께 수업을 설계하고 진행하고자 노력하였다. 이 글에서는 2023년의 교원학습공동체 활동 중 하나의 사례를 통해 어떻게 교사와 학생이 함께 성장하였는지 좀 더 자세히 말해보고자 한다.
2023년 우리 학교는 「생각을 쓰는 교실」 실천 학교 사업을 통해 교과 융합으로 탐구 기반 쓰기 수업·평가 모델을 적용하여 수업·평가를 설계하고 적용·운영하였다. 이를 위해 1학년 교과교사로 구성된 교원학습공동체의 일원인 국어과학도덕 교사가 함께 모여 ‘지진과 화산 활동은 왜 일어나는가’와 ‘재난 상황에서 세계시민으로서 가져야할 태도는?’에 대해 교과 융합 수업을 실시하였다. 사실 그동안은 여러 교과가공동으로 수업 주제를 정하고, 수업 시기를 조정해야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교과 융합 수업을 시도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따라서 그 필요성을 알면서도 좀처럼 시도하지 못했었는데, 마침 「생각을 쓰는 교실」 실천 학교에 공모하면서 용기를 내본 것이다. 4월 말에서 5월 초까지 과학 교과 시간에는 ‘지진과 화산 활동이 왜 일어나는가?’라는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모둠별, 학급별 탐구활동을 진행하고, 도덕 교과 시간에는지진, 화산과 같은 재난 상황이 일어날 때, 세계 시민으로서 협력한 사례를 바탕으로 개인적국가적 차원의 대처에 대해 토론하였다. 그리고 국어 교과 시간에는 과학, 도덕 교과 시간의 학습을 바탕으로 글쓰기와 카드 뉴스 만들기를 진행하였다. 이러한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동학년의 교과 교사들이 교원학습공동체 활동을 통해 연대감을 가지고 서로의 수업에 대한 피드백과 제안, 조율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준 덕분이었다.
사실 2023학년도 1학년 학생들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하여 초등학교 고학년 시기에 등교를 제대로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문해력 저하, 학습 결손이 발견되는 학생들이 많았다. 짧은 문단의 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 자체를 어려워했다. 그뿐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해 모둠활동 등이 제한되면서 의사소통의 어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생각을 쓰는 교실」 교과 융합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의 배움과 성장은 각 수업에서 눈에 띄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것은 단지 수업 시간 속에서 보이는 학생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작성한 글, 카드 뉴스 등 결과물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각 교과 시간마다 모둠을 구성하여 모둠활동을 진행하면서 서로 협력하여 하나의 결과물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을 경험하고 의사소통 역량이 강화되었다는 점, 또한 우리나라가 아닌 타국의 재난 상황에도 공감하며 세계 시민으로서 서로 협력하고 공존해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는 점, 논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능력이 향상된 점 등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학생들의 배움과 성장이 있기까지 이끌어 갈 수 있었던 동력은 그 무엇보다도 교사의 배움과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각 교과 교사들은 융합 수업을 위해 각 교과의 성취 수준을 분석하여 융합 수업의 주제를 추출하였다. 또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질문-탐구-쓰기>의 3단계를 적용하여 수업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수업 흐름도를 함께 설정하고 실천하면서 지속적으로 수정하였다. 또한 수업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질문은 어떻게 이끌어내는 것이 효과적인지, 모둠활동을 설계할 때 어떤 질문으로 어떻게 생각을 이끌어낼 것인지, 교과 개념은 어떻게 펼칠 것인지에 대한 공동연구를 진행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교사에게 배움이 일어난 만큼 수업에서 학생들을 배움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또한 동료 교사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스스로는 발견할 수 없는 내 생각의 오류와 수업에서 보완해야 하는 점을 발견하고 함께 고민하여 해결 방안을 찾아갈 수 있었다. 나 역시 동료 교사들에게 이러한 역할을 해줄 수 있도록 힘쓰면서 학습 공동체로서의 연대가 형성되었고,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교사와 학생의 배움과 성장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이루어진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교사는 수업을 설계하고 준비하면서부터 실제로 학생과 수업을 진행하고 이후 수업 성찰을 하면서까지 지속적으로 배움과 성장을 경험한다. 또한 이러한 교사의 배움과 성장은 학생의 수업에 그대로 반영되어 학생의 배움과 성장이 견인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24년도 새 학기를 앞두고 나는 교원학습공동체를 통해 어떻게 수업 연구를 실천하고 어떤 배움을 얻을지가 무척 기대된다. 올해도 나는 여러 교과의 교사들과 교과 융합 수업을 설계운영하고, 나의 수업에 대해 피드백 받으면서 더욱 성장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단지 직무연수로서의 교원학습공동체가 아닌, 진정한 배움과 성장을 위한 교원학습공동체가 더 많은 학교에서 운영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