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희(영서중학교, 교사)
2015년 오랜만에 담임을 다시 맡으면서 학급 학생들과 만날 때 가장 중심에 두는 원칙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를 생각해보았다. 그때부터 인성교육에 대해 좀 더 깊은 고민과 실천을 시작한 것 같다. 그리고 인성을 중심에 둔 학생 지도 원칙은 학생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교과 수업 시간에도 반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수업의 주제를 좀 더 구체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5년에는 짝 활동을 강조하는 ‘또래 멘토링(mentoring)’을 실천하면서 수업 시간에 다양한 시도를 했었다. 그해에는 1학년 자유학기제를 시범적으로 운영하면서 좀 더 자유롭게 다양한 수업 방법을 시도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서로를 위한 격려의 차원에서 ‘You First 영어 수업’을 내세우고 실천하였고, 올해는 ‘정.말.좋.아. 영어 수업 미션(mission) 수행’을 내걸고 수업을 해왔다. ‘정.말.좋.아.’는 ‘정을 나누고, 말은 따뜻하게, 좋은 생각을 키우며, 아름다운 실천도 함께 하는’의 앞 글자를 딴 말이다. 긍정적인 생각을 키우는 측면에서도 미션의 이름을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 해의 수업을 안내하는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학생들에게도 올해 수업의 기본 방향을 이야기하면서 ‘정.말.좋.아. 영어 수업 미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인성을 중심에 둔 영어 수업’이 왜 중요한지, 그래서 어떤 식으로 수업을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 안내하였다. 학기 중간중간에 ‘인성교육’을 강조해야 할 시점에는 ‘정.말.좋.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한 번 더 이야기하였고, 이 활동과 미션은 어떤 취지에서 진행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자주 설명하였다. 학생들이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수업의 방향에 이름을 붙이고, 학기 초부터 이를 반복적으로 설명하는 것도 인성교육의 실천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올해 실천했던 인성 중심 수업의 장면들을 ‘수업 나눔’의 차원에서 선생님들께 몇 가지 소개해보고자 한다.
봄, 셀피 야외 수업으로 자신을 표현해 보기
교과서 단원에서 Be Active, Be Safe! 라는 제목의 단원이 있었고 셀피(selfie)를 소재로 한 본문이 있어서, 셀피를 찍는 수업을 운동장에서 진행하였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첫 시간에는 야외수업을 한다고 학생들에게 안내했다. 날씨에 관계 없이 비가 와도 야외수업으로 진행한다고 했고, 데크 길 끝의 벤치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우리 학교 운동장 옆의 데크 길 끝에는 벤치가 있고, 그곳으로 가는 길에는 나무도 많고 예뻐서 참 좋다.
단원의 소재 중에는 ‘안전’도 포함되어 있었으므로, 체육 수업에 방해가 안 되고 교사의 시선이 머무는 범위 내의 안전한 공간에서 활동하도록 학생들에게 안내했다. 단순히 놀러 나온 것이 아니고 교과 단원의 배경지식 활성화를 돕는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교과서 단원의 도입 페이지 그림을 크게 포스터로 출력하고 단원의 주제와 학습 목표 표현을 들려주기 위해서 노트북도 들고 나갔다.
요즘 학생들은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므로 셀피의 범위는 얼굴만이 아니고 자신의 일부가 들어가면 된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셀피를 찍을 때는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내용으로 찍을 것과 셀피를 찍어 교사의 SNS나 이메일로 보낼 것을 안내하였다. 또한, 셀피를 찍은 이유와 셀피를 찍은 소감은 포스트 잇에 적어서 게시해 둔 단원 도입 포스터 아래에 붙이도록 하였다. 이 두 가지 미션을 완성하면, 나머지 수업 시간은 친구들과 편안히 주변을 산책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수업 시간을 고려하여 앞의 활동을 적절히 진행하니 5분에서 10분 정도의 자유시간을 줄 수 있었다.
학생들은 밖에 나오니까 참 좋아했다. 쉬는 시간이나 체육 시간에 운동장에 나오는 것과는 다른 느낌인 것 같았다. 자신을 돌아보며 나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셀피는 무엇일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중간고사를 치르며 조금은 답답했던 마음을 편안히 위로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넓은 운동장에서 ‘자기존중’ 인성 덕목을 키우며 마음 속에 ‘인성 나무’를 심어보는 수업이 되었던 것 같다.
여름, 모두 함께 뚝딱뚝딱 인형극 제작발표회
대부분의 영어 교과서를 보면 1학기가 끝나고 special lesson으로 연극 대본 형식의 단원이 제시되어 있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교과서에도 ‘Red Writing Hood’라는 연극 대본 형식의 단원이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빨간 모자(Red Riding Hood)』를 각색한 글이다. 글 속에는 ‘아기 돼지 삼형제’도 나오고, ‘왕자님’과 ‘안데르센’도 등장한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한 주간은 이 대본을 배우면서 인형극을 한다고 안내했다. 학생들은 왜 인형극을 해야 하느냐고, 영어 대본 외우기가 힘들다고, 어떻게 우리가 인형극을 제작할 수 있겠느냐고 어리광을 부리며 투정하기도 했지만, “교과서 단원에 나와 있다”, “선생님이 안내하는 대로 하면 할 수 있다”, “인형극이니까 가능하다”, “일주일 안에 해낼 것이다”라며 부드럽게, 하지만 단호하게 설득했다.
인형극 제작을 위해 먼저 대본 읽기를 하였다. 해석을 빨리 진행하고 나서, 인형극 제작에 필요한 스태프들과 배우들을 선정하는 등 역할을 나누었다. 감독은 최종적으로 촬영이 끝난 뒤에 영상을 편집해야 하므로, 영상 편집에 흥미와 재능이 있는 학생들이 하면 좋겠다는 조언도 해 주었다. 스태프는 무대 배경 그림을 담당할 미술감독, 음악을 담당할 음악감독들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배우들은 각자 역할을 맡은 배역의 인형을 그리거나 인터넷에서 찾아서 오려오라고 하였다. 또한, 인형극 제작에 있어서 촬영 순서는 먼저 준비된 장면부터 하면 된다는 점도 알려주었다. 사실, 어떤 반에서는 인형 준비가 되지 않아서 촬영이 어려울 수도 있었는데 다른 반에서 준비한 인형을 빌려주고 촬영하게 하기도 하였다. 몇몇 학생들이 자신의 인형이나 그림을 준비하지 못할 상황을 대비하여 교사가 미리 예시로 몇 가지 준비해두는 센스를 발휘하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다. 이번 인형극 제작은 ‘협력종합예술’의 축소형 활동으로 학생들의 다양한 특기를 뽐내볼 기회도 된 것 같다. 그리고 쉽지만은 않은 모둠별 노작 활동을 하고 난 후 그만큼 성취감도 커진 것 같다.
2학년은 인원 감축형 분반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서 인형극을 한 팀으로 제작하였다. 하지만 3학년은 학생수가 24명이라서 한 팀으로 역할을 나누어 제작하기에는 학생수가 좀 많았다. 그래서 홀수 팀과 짝수 팀의 두 팀으로 나누어서 인형극을 제작하게 하였다. 그런데 다양한 형태로 제작해도 된다고 안내하였더니 3학년 학생들은 두 팀이 각기 다른 종류의 인형극을 선택하여 제작했다. 홀수 팀은 일반 인형극이었는데, 짝수 팀은 ‘그림자 인형극’으로 제작하였다. 마침 비가 오는 날도 있어서 교실의 불을 끄고 그림자 인형극을 제작할 수 있었다. 학생들도 할 일이 많고 바쁘니까 가능하면 인형극 제작도 수업 시간에 모두 끝낼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좋다. 하나의 작품을 함께 완성하는 협력종합예술활동은 서로 소통·배려, 책임감을 키울 수 있는 활동이다.영어 인형극 제작을 통해 미니 협력종합예술활동을 체험하며 ‘인성 나무’의 꽃을 피우는 수업이었다.
가을, 국어와 융합 수업 도전 K-Culture Project
2학기 중간고사를 마치고 학생들이 실제로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자 국어, 영어 교과를 융합 수업으로 진행하여 K-Culture Project를 하기로 했다. 융합 수업이 학생들로 하여금 통합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차원도 있으므로 유용할 것 같았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학기 초에 몇 분의 선생님과 ‘학교 내 교원학습공동체’ 모임을 만들고 같이 공부해보자고 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학생들에게 마련해주고 싶었던 것은 단원의 주제와 관련하여 학생들이 한국 문화에 대해 흥미있는 분야를 조사하여 자신의 생각을 영어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수업이었다. 현재 가르치는 교과서의 7단원 제목은 ‘A Step Inside the Culture’로 문화를 소재로 하는 단원이다. 교원학습공동체의 같은 학년을 담당하는 국어 선생님보다 내가 더 교직 선배이기 때문에 2학년 국어책을 미리 훑어본 뒤 나의 경험치를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먼저 제안했다.
영어 시간에 학생들은 한국문화체험센터에서 봉사하는 도우미가 되었다고 가정하고 체험 부스를 운영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하였다. 그와 동시에 국어 시간에는 ‘미디어’ 단원이 있으므로 ‘문화신문’을 만들어 2학기에 배우고 있는 ‘한글 창제의 원리’, ‘전 세계의 다양한 발효식품’ 등의 내용을 가지고 신문을 제작하고, 신문의 한 꼭지에 ‘한국 문화 체험 센터 홍보’ 코너를 영어로 작성하게 하는 것이 융합 수업의 연결고리가 되도록 하였다. 말하자면, 국어 수업은 교과 내 단원 간의 융합 수업이면서, 동시에 영어 수업과는 교과 간 융합 수업을 하게 된 셈이다. 그리고 다문화 학생들이 많은 학교의 특성을 고려하여 ‘문화신문’의 한 코너에 ‘이웃 문화 소개’ 코너도 넣기로 했고 영어 시간은 최종 수행목표를 위해 단원을 약간 재구성하여 진행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프로젝트가 과정중심 말하기 수행평가와 연결될 수 있도록 동학년 영어선생님께도 취지를 설명드리고 활동지를 공유하였다. 동학년 영어선생님들이 K-Culture Project를 나와 똑같이 운영하지는 않더라도 말하기 수행평가는 동일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활동지를 간단하게 만들고 의견을 조율하였다.
영어 7단원의 말하기 핵심 표현은 Are you interested in ~?과 Good job! 이었으므로 체험 부스를 운영하면서 방문객에게 Are you interested in ~?이라고 묻고, 체험활동을 하도록 도움을 준 뒤에 방문객이 체험을 잘 마친 뒤에는 Good job!이라고 말하면서 배운 표현을 활용할 수 있도록 미션 카드를 완료하는 것을 필수 미션으로 제시하였다.
내가 속한 사회의 문화를 탐구해보고 다른 문화에 대해서도 탐험하는 작업은 다양성을 키우며 공동체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행동하는 시민의식의 기초가 된다. 이 교과 융합 프로젝트를 통해 학생들은 인성 나무의 가지를 더 튼튼하게 키울 수 있었다.
그 외 영어 수업 인성 미션들
하나, 마니또 미션
3월 초에는 인성 중심 영어 수업과 연계하여 ‘마니또 미션’을 첫 미션으로 내주었다. 학생들에게는 정을 나누는 미션이라고 안내하였다. 먼저 종이에 자기 이름을 적고, 영어 공부를 하면서 요즘 가장 어려운 부분이 무엇인지 한 가지를 적게 하였다. 이를 돌아가며 제비뽑기로 하나씩 뽑고, 그 종이에 적힌 학생에게 일주일간 선행을 베푸는 미션을 내주었다. 선행을 베풀고 나서는 그 종이에 선행내용을 영어 문장으로 적도록 하였고, 선행 한 가지를 실천하면 10포인트를 준다고 했다. 선행은 선물과 같은 것이니, 선물 상자 모양이 그려진 종이를 나눠주고 그 위에 적게 하였다. 참고로, 포인트는 수업 시간마다 교사가 주는 칭찬점수이다. 포인트를 모을 수 있는 활동지를 매달 나눠주고 정리하게 하였다.
학생들이 마니또 미션으로 실천할 수 있는 예시로는, ‘웃는 얼굴로 인사하기’, ‘칭찬하기’, ‘문 열어주기’와 같이 가벼운 것도 모두 포함되니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실천하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마니또 친구가 누구인지 모르게 일주일간 실천을 하고 마니또 미션에 성공하면 추가로 50포인트를 준다고 했다. 누구인지 모르게 실천하는 방법으로 나의 마니또 친구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에게도 선행을 실천하면 누가 나의 마니또인지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라고 조언도 해 주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두가 모두에게 선행을 실천하는 일주일이 되도록 하였다. 일주일 뒤에는 마니또 친구가 누구였는지 발표를 하고, 어떤 활동을 했는지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어 시간이므로 영어 문장으로 말해보게 하였다.
둘, 실천일기 쓰기 미션
학년 초 수업 오리엔테이션을 할 때 ‘인성 중심의 영어 수업’을 한다고 안내했다. 그래서 수업 속에서도 ‘서로 도우며, 협력하는’ 방식의 수업 활동을 할 것이고, 생활 속에서도 ‘아름다운 실천’을 할 수 있도록 활동을 안내하고 수행평가도 진행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 차원에서 2학기 쓰기 수행평가는 ‘환경을 위한 나의 실천’이라는 주제로 쓰기를 한다고 안내했다. 물론, 교과서 단원의 주제와도 연결을 시켰다. 2학년 6단원 제목은 ‘Love the Earth’였고, 단원 마지막의 Link to the World 코너에서는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을 발표하는 활동이 있었다. 약 열흘간 환경문제에 대해 생각하며 환경보호를 위한 자신의 실천을 영어로 적어보고, 조금 더 범위를 좁혀서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지난 한 주간 자신이 실천한 방법과 느낌’에 대해 5문장 이상의 글로 적도록 한 것이 2학기 쓰기 수행평가였다. 일기를 쓸 때는,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서 써도 된다고 안내했다.
쓰기 평가를 준비해가는 과정 속에서 일기 쓰기를 넣고 이를 점수에 반영하였다. 학생들이 영어로 일기 쓰기를 어려워하므로, 가볍게 3문장 일기 쓰기로 양식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수업 시간마다 ‘환경’ 관련 실천한 내용을 적어 발표해 보게 하였고, 같이 문장을 만들어 보기도 하였다. 이렇게 2주간 실천을 하게 하고 실천한 내용 중에 두 가지를 쓰기 수행평가 내용 속에 적도록 연계하였다. 아래는 영어 일기를 쉽게 쓸 수 있도록 정리한 양식이다.
쓰기 수행평가를 준비하는 과정 중에 깜짝 이벤트로 ‘환경보호 실천 인증샷’ 이벤트를 실시하여 맛있는 보상도 해 주었다. ‘지행합일(知行合一)’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평소에 실천하기 어려운 말이긴 하지만,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 같다’는 뜻의 말이다. 이 말을 조금 바꿔서 ‘실천하고 있는 것을 아는 것(영어 공부)으로 연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다시 말해서, ‘배우고 있는 내용을 실천으로 연결하고, 실생활에서 실천한 내용을 영어 공부와 연결하는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사실, 자신의 실생활과 연결된 공부가 실제로 학습효과도 높다고 한다.
글을 마무리하며
K-Culture Project의 마지막 차시로 ‘체험 부스 운영’하는 시간에 여러 선생님들을 모시고 공개수업을 진행하였다. 공개수업을 참관하셨던 한 선생님께서 수업 시간 45분 동안에 모둠별로 체험 부스 운영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이 점점 성장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하셨다. 세 개의 모둠에서 발표를 진행했는데, 첫 번째 모둠의 체험 부스 발표보다 마지막 부스의 발표가 더 정교해지는 과정을 보셨다는 말인 것 같다. ‘Learning by Doing(체험하면서 배우기)’의 모습인 것이다. 교사인 나도 여러모로 도전과 실천을 하면서 올해 한 뼘 더 성장했다는 생각이 든다. 옆에 계시는 선생님들과 손잡고 학생들과 함께 늘 ‘배우며 가르치는’ 교사가 되기를, ‘가르치면서 좀더 영글어가는’ 교사가 되기를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