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교육2024 가을호(256호)

[유치원 놀이중심평가]
‘놀이! 보고 듣고 즐기기’
-유아와 함께하는 놀이 평가 중심으로-

유지연 (서울금호초등학교병설유치원, 교사)

“오늘 뭐 하고 놀까?”

2019 개정 누리과정이 도입된 이후, 다양한 연수와 책을 통하여 ‘놀이의 중요성’을 자주 접했다. 그러다가 문득 교사로서 나는 정말 놀이가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 반에서 놀이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기로 하였다. 등원부터 하원까지의일과를 들여다보면서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은 없는지 사소한 부분에 더 주목하며 관찰하였다. 우리 반 일과를 되돌아보고 정리한 글 중에서 가장 많이 나온 유아의 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오늘 뭐 하고 놀까?” 였다. 개정 누리과정과 관련된 연수나 서적에서 놀이의 중요성에 관해 설명해 준 그 어떠한 말보다도 그말이 나에게 더 크게 다가왔다. 유아들은 유치원에 와서 오늘 뭐 하고 놀지가 최대 관심사이자 가장 중요한 것이었고, 놀이는 유치원 생활의 핵심이며 유치원에 오게 하는 이유였다. 그 순간, 교사로서 유아들이또래 친구들과 즐겁게 놀면서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교사는 무엇을 해야 할까?”

2019 개정 누리과정에서 나온 교사의 역할은 다양하다. 교사는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놀이를 통한 유아의 배움을 지원하고, 그것을 기록하고 평가하며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 과정에서 교사의 전문성과 자율성이 필요하며, 유아와 놀이를 민감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교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면서 놀이를 어떻게 지원할지, 유아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그 배움을 어떻게 발현시킬지와 관련된 고민도 커졌다. 교사는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먼저 유아들이 교실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놀이를 즐기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필요했다.

“유아와 함께 해보면 어떨까?”

먼저 우리 반 유아들을 관찰하고 평가한 놀이 기록을 살펴보았다. 그동안의 놀이 기록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관찰 대상의 놀이 내용, 놀이 속 의미, 사후 놀이 계획 등 교사가 유아의 놀이를 지원하는 데 필요한 자료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기록의 대부분은 교사의 생각이나 해석으로부터 나온 내용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기록 방식이 과연 유아들의 놀이를 진정으로 즐겁고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2019 개정 누리과정은 유아가 주체가 되어 이끌어가는 놀이를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왜 관찰 및 평가의 주체는 항상 교사여야만 할까? 놀이의 주인이 유아이듯이, 관찰 및 평가 과정에도 유아가 참여한다면 진정한 유아 중심 놀이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유아와 함께 놀이를 관찰하고 평가하는 과정을 통해 유아들이 생각하는 진짜 놀이가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하였다.

1.  보고  유아의 시선에서 놀이 바라보기

1) 유아들이 생각하는 놀이

유아들과 함께 놀이를 관찰하고 평가하기 전에 유아들이 놀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필요했다. 교사는 유아들에게 ‘놀이’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물어보았다. 유아들은 자신이 했던 놀이의 이름이나 놀이할 때의 기분을 이야기하였다. 여기서 유아들은 놀이를 개념적으로 정의하기보다는 놀이할 때 느끼는 감정이나 놀이의 형태를 떠올렸고, 대다수의 유아가 ‘놀이는 즐거운 것, 같이 하는 것’이라는 말에 가장 많은 공감을 하였다. 이를 통해 유아는 놀이하며 즐거움을 느끼고 있고, 더 나아가 함께 하는 경험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 일과 속에서 발견한 놀이

유아들이 생각하는 놀이에 대한 이해를 더욱 넓히기 위해 하원 전 일과를 회상하며 그 속에서 놀이를 찾아보았다. 과연 어떤 것들을 놀이로 생각했을까? 유아들은 일과 중 ‘놀이실(실내 놀이터)’, ‘자유 놀이’, ‘인사’를 놀이라고 뽑았다. ‘이야기 나누기’는 유아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즐거웠다고 이야기했지만, 교사가 제안한 활동이기 때문에 놀이가 아닌 것 같다고 하였다. ‘인사’는 우리들이 정한 방법으로 인사하는 것이 재밌었다는 이유로 놀이라고 생각했다고 하였다. 유아들은 즐겁고 재밌는 것이나 유아 스스로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을 놀이라고 생각하였고, 인사와 같은 일상적인 활동에서도 유아 나름의 즐거움을 찾는다면 그것도 유아에게 놀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또한 유아에게 진정한 놀이는 즐거움이나 흥미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3) 카메라 속에 담긴 우리 반 놀이

이번에는 그 시선을 교실 속으로 돌려보았다. 유아들에게 카메라를 주며 ‘놀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찍어보도록 하였다. 처음에 유아들은 카메라에 매우 흥미를 보이며 그것을 조작하고 찍어보는 것만으로 즐거워하였다. 그 후 유아들이 찍은 사진들을 살펴보니, ‘놀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찍기 위해 어떤 기준을 가지기보다는 자신이 만든 블록 작품, 친구들의 얼굴처럼 찍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찍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모인 교실 속 놀이 사진만으로는 어떤 놀이가 이루어지고 있고, 놀이 속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지 읽어내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놀이 사진을 매체로 활용하여 놀이 속 유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유아들과 ‘놀이’에 대해 작은 것에서부터 다시 생각해 보는 과정을 통해 새롭게 배우는 것들이 많았다. ‘왜 이제까지 놀이의 주체인 유아의 생각을 들어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교사보다도 놀이를 더 진심으로 생각하고 즐기며 끊임없이 더 재밌게 놀고 싶어 하는 유아를 보면서 용기를 얻게 되었다. 관찰과 평가도 유아와 함께 해낼 수 있다는 용기를!

2.  듣고  유아들의 이야기 듣기

1) 놀이 속 유아들의 이야기

유아와 함께 놀이를 관찰하고 평가하기 위해서 놀이 속 유아들의 생각을 들어보고자 하였다. 그래서 아침 모임 시간을 활용하여 유아들과 함께 어제의 놀이 사진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 이야기를 나눌 때 유아는 사진 속에 있는 나와 친구들의 모습만을 찾기 바빴다. 하지만 매일 아침 어제의 놀이를 회상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점차 사진 속에 담긴 놀이 장면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사진을 보며 교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숨겨진 놀이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친구의 놀이를 보며 궁금한 점을 자연스럽게 질문하기도 하였다. 어제의 놀이 사진들을 한 장, 두 장 모아 우리 반만의 놀이책을 만들었고, 언제든지 놀이책을 보며 우리들의 놀이를 회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놀이에 대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점점 익숙해졌고, 나의 놀이뿐만 아니라 친구의 놀이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2) 유아의 이야기로 형성된 놀이 나눔 문화

오늘도 어김없이 어제의 놀이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물감과 물로 만든 다양한 색의 ‘감정 물약’을 활용하여 놀이하는 유아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무슨 놀이를 했나요?”라는 교사의 질문에 사진 에 등장하는 유아는 “약국 놀이 했어요.”라고 답하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다른 유아는 “저걸로 병원 놀이하면 재밌겠다.”라며 놀이 아이디어를 제안하였다. 교사는 병원 놀이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유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아들은 청진기, 의사 가운, 약 봉투, 돈, 주사기를 놀이 자료로 요청하였고, 간판과 위치를 표시하는 곳은 다 함께 만들기로 하였다. 그렇게 두 유아의 ‘약국 놀이’는 다 함께 준비하고 참여하는 ‘병원 놀이’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놀이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유아들의 다양한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유아들은 놀이에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하고, 문제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찾으며, 친구의 놀이에 호기심을 갖고 질문했다. 이를 통해 유아들은 나와 친구의 놀이를 관찰하면서 놀이를 어떻게 더 재미있게 만들지 고민했다. 또한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서로의 놀이를 평가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유아 간 협력과 소통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 반만의 놀이 나눔 문화가 형성되었다.

3.  즐기기!  유아들과 함께 즐기기

1) 우리 모두 놀이 지원자!

6월쯤 우리 반 유아들은 재활용품을 활용한 만들기에 푹 빠져 있었다. 특히 매일 생기는 우유 팩을 활용해 다양한 작품을 완성한 유아들은 서로 각자의 놀이 방법을 나누기도 하였다. 나는 이 모습을 발견한 후 교사로서 유아들이 놀이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서로에게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놀이 지원 방법은 놀이 기록지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교실 한편에 놀이 기록지를 게시하여 유아들의 놀이 생각을 모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우유 팩 놀이 사진 아래에 놀이에 대한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남길 수 있도록 포스트잇과 색깔 펜을 함께 제공하였다. 며칠 뒤 포스트잇을 살펴보니, 친구의 놀이를 보고 느낀 점을 적기도 하였고, ‘우유 팩 딱지 만들기’, ‘우유 팩 배’와 같은 새로운 놀이 아이디어도 담겨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유아들은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새로운 놀이를 시작함으로써 지원자이자 평가자의 역할을 경험하게 되었다.

2) 생각이 더해진 우리들의 놀이 꼬리 물기

먼저 유아들은 ‘우유 팩 배 만들기’ 아이디어에 관심을 보였다. ‘우유 팩 배’라는 아이디어를 낸 우리 반 유아는 자신이 집에서 만들어 본 경험을 공유하였고, 우리는 만드는 방법에 대한 영상자료를 다 함께 감상하였다. 그다음 재료들을 준비하고 놀이시간에 자유롭게 배 만들기를 시작하였다. 친구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배 만들기는 유아들의 높은 관심과 흥미를 이끌었고, 많은 유아가 놀이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후 내가 만든 배를 직접 물에 띄워보고 싶다는 다른 유아의 생각까지 더해져 배를 활용한 물놀이로 확장되었다. 이렇게 유아들과 함께 놀이를 평가하며 새로운 놀이로 발전시키는 과정은 놀이를 더욱 활기차고 흥미롭게 하였다.

우유 팩 배에서 멈추지 않고 새로운 놀이가 계속 이어졌다. 그중 하나는 바로 ‘우유 팩 딱지 만들기’였다. 우유 팩 딱지는 방과후과정 시간에 형님반 유아와 함께 놀이하다가 알게 된 새로운 놀이 방법이었다. 자신이 알게 된 새로운 놀이를 친구와 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우유 팩 딱지 만드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하는유아는 형님에게 직접 도움을 요청하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놀이 지원자의 역할이 친구를 넘어 형님으로까지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딱지 선생님으로 온 형님들의 도움을 받아 함께 딱지도 만들고 시합도 하며 즐겁게 놀이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재활용 우유 팩 놀이는 유아들이 직접 쓴 놀이 아이디어로 더욱 다양하게 활성화되었다. 이후에도 우유 팩을 활용하여 악기를 만들기도 하고 나만의 보석함을 만들기도 하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함께 놀이하며 즐겼다. 더 나아가 친구, 형님뿐만 아니라 우유 팩 배로 놀이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동생들과도 배를 함께 만들고 놀이하며 교실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오늘 뭐하고 놀까?’, 이 한 마디면 충분했다

처음에는 유아들과 함께 놀이를 관찰하고 평가하며 지원하는 과정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그러나 걱정과는 달리 유아들은 교사보다 훨씬 더 놀이에 진심이었다. 유아들의 시각에서 놀이를 바라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놀이를 지원함으로써, 유아들은 자연스럽게 놀이를 변형·확장하며 더 재미있게 놀이에 참여하고 즐겼다. 자신과 친구들의 놀이를 관찰하고 평가하는 동시에 놀이 지원의 역할도 제법 잘 수행하고 있던 것이다. 이것은 유아들의 주체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한 결과로, 그들의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더욱 즐겁게 배우고 놀 수 있었다.

유아와 함께하는 놀이 평가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유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이 놀이를 통해 무엇을 배우고 경험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유아들이 직접 놀이를 평가하고 의견을 나누는 경험은 그들에게 더욱 큰 의미를 주었고, 놀이의 주체로서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였다.

유아와 함께 놀이 평가를 진행하면서 교사로서 느낀 점은, 유아의 시선에서 놀이를 바라보고 유아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기만 해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유아들의 놀이를 관찰하고, 그들의 경험, 느낌, 생각을 직접 듣고 기록하며, 놀이가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과정은 교사와 유아가 함께 성장하는 시간이었다. 이를 통해 놀이가 단순한 활동이 아닌, 유아의 성장과 배움을 위한 중요한 매개체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