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현장2024 가을호(256호)

[초등학교 학급 운영]
먼저 마음을 얻어라
그다음에 가르쳐라

허승환 (서울강일초등학교, 교사)

미국 오하이오 마이애미 대학의 더글러스 브룩스 교수는 교사들의 첫날을 비디오로 녹화해 모니터링하는 연구 과정을 통해 노련한 교사와 서툰 교사의 차이를 발견했다. 초임 교사들은 첫날부터 해당 과목의 중요한 문제를 흥미 위주 활동으로서 시작했고, 일 년 내내 진도를 쫓아가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시간을 보냈다. 이에 비해 노련한 교사들은 앞으로 친구들과 어떻게 보내야 하며, 아이들과 어떤 약속들이 선행되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어떤 공부를 하게 되는지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뛰어난 나무꾼은 무작정 도끼로 나무를 자르지 않는다. 도끼날을 갈아 더 많은 나무를 자를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이치와 같다.

새내기 교사는 종종 ‘빨리 아이들과 친해지고 싶다’라는 생각에 아이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려고 한다. 친구 대하듯 장난치는 아이들의 장난을 받아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데, 이런 대화가 반복되면 교사와 학생 간의 거리감(어려움) 상실이 오며, 여러 가지 면에서 학급경영의 차질을 가져온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안타깝게도 ‘지시가 통하지 않는 교실’과 ‘시끄러운 교실’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3월을 마치게 되면, 3월의 혼란스러운 모습 그대로 한 학기가 흘러가고,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까지 학급경영이 지속되어 버린다. 더욱 계획적으로 첫 만남 프로젝트에 이어 9월, 두 번째 만남 프로젝트가 준비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름방학을 지내고 아이들과 다시 시작하는 2학기 관계 맺기, 어떻게 하면 좋을까? ‘63 평화반’1, 우리 반에서 관계 맺기를 위해 하는 세 가지 노력을 소개하고자 한다.

꾸아드네프로(Quoi de neuf) 주말 이야기 나누기

월요일 아침, 서로의 바쁜 삶을 살고 다시 돌아온 교실에는 피곤함과 피로함에 가득하다. ‘학생이라는 죄로 학교라는 교도소에서 교실이라는 감옥에 갇혀 공부란 벌을 받고 졸업이란 석방을 기다린다.’ 아이들 프로필 속 이미지로 자주 보이는 이 문구는 어쩌면 아이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 마음에도 더 와닿을 때가 있다. 학생들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 학교라는 감옥에 갇혀 억지로 아이들을 만나야 하니까! 서로가 억지로 교실에 모여야 했지만, 그런 마음마저 인정하며 그래도 마음 따뜻한 한 주의 시작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오늘 하루 동안 학생들에게 지시한 일을 제외하고 ‘개인적으로 대화’한 내용이 있었는지 돌아보자. 수업 상황에서 발문하는 것이나 의무적인 확인을 위해 주고받아야 하는 말들을 제외하고 학생들과 ‘대화’한 내용이 떠오르는가? 혹시 오늘도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는가? 교사는 이러한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변의 의미 있는 타자들을 대하듯 눈을 맞추고 정성스럽게 응대하며 진실로 듣고 함께 고민하는 ‘대화’가 필요하다. 아이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귀 기울일 때 교실에서 마음이 열려 진정한 배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주말 동안 피곤한 몸과 마음을 이끌고 돌아온 교실, 아침 1교시는 어떻게 시작하는가?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자습, 선생님은 어떻게 하루를 열고 있는가? 억지로 와야 하는 교실, 선생님도 아이들도 즐거운 발걸음으로 오기는 어렵다. 그러다 보니 집에 있다가 교실로 올 때면 교실에서 공부할 준비를 할 수 있게 예열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차분하게 공부할 준비를 할 수 있게 도울 수 있을까?

월요일 아침 1교시, 2024년도 63 평화 반에서는 ‘꾸아드네프’로 한 주의 시작, 하루의 시작을 열고 있다. ‘꾸아드네프’는 프레네 교육의 핵심인 학생들의 삶을 교실로 불러오는 기술이다. 프랑스어로 “Quoi de neuf?”(별일 없니?)는 영어로 “What’s new?”에 해당하는 뜻을 가진 인사말이다. ‘꾸아드네프’는 주로 주말의 피로가 남아있는 월요일 아침, 주말에 서로 어떻게 보냈는지 돌아가며 모두 이야기하면서 서로에게 관심을 주는 시간이다. 학생들은 ‘꾸아드네프’ 시간을 통해 서로 존중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수업을 경험하게 되고, 피곤한 아침부터 기분 좋은 교실의 흐름이 생겨난다.

63 평화반에서는 발표통에서 이름이 뽑힌 아이가 가장 먼저 발표를 시작한다. 그 아이부터 교실에서 ㄹ (리을)자로 돌아가며 이야기하게 된다. 아이들이 주말의 이야기를 준비하는 동안, 언제나 선생님부터 주말 이야기를 시작한다.

“선생님은 지난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캠핑을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양평으로 가서 자연 속에서 불멍에 바비큐 파티까지 해서 정말 스트레스가 다 날아간 기분입니다.”

이제 이름이 뽑힌 아이부터 차례대로 주말에 겪은 일, 그리고 겪은 일에 관한 생각과 느낌을 이야기하며 아이들은 친구들에 관한 관심이 더욱 깊어질 것이다.

꾸아드네프 발표를 한 단계 레벨 업하려면 다음 세 가지를 신경 써서 지도해야 한다.

첫째, 겪은 일, 겪은 일에 관한 생각과 느낌을 나누어 말한다.

“지난 주말에 가족과 영화를 봤어요.”

종종 아이들은 이렇게 간단히 주말 이야기를 한다. 아이들의 생각을 자라게 도우려면 여기에 ‘생각이나 느낌’을 더하도록 안내한다.

“지난 주말에 가족들과 영화를 봤어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둘째, 궁금한 것이 없도록 쓴다.
“지난 주말에 가족들과 영화를 봤어요. 정말 재미있었어요.”라는 발표는 따로 지도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발표 유형이다. 이런 발표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지? 발표한 아이에게 다시 돌려 질문한다.

“무슨 영화를 봤나요?”, “영화의 어떤 부분이 재미있다는 거죠?”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담아 다시 구체적으로 발표하도록 안내하면 발표의 수준이 달라진다.

“저는 어제 가족들과 어벤져스 영화를 봤습니다.
하늘을 나는 초능력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보니 더욱 재미있었습니다.”

이런 사소한 지도만 반복해도 아이들의 발표는 짧더라도 점점 완전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셋째, 한 것(나쁜 녀석)만 말하지 않도록 한다.
하이타니 겐지로의 책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에는 아다치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글을 잘 쓰게 하려고 지도하는 장면이 이렇게 나온다.

아이들의 발표를 따로 지도하지 않으면, 대부분 “저는 어제 학원에 갔습니다. 그리고 태권도장에 가서 피구를 했습니다. 저녁에는 가족들과 소고기를 먹었습니다. 참 재미있었습니다.” 이렇게 당연하고 식상한 발표를 하게 된다. 이렇게 당연한 글, 즉 ‘한 것’만 담으면, 말도 글도 ‘나쁜 녀석’으로 뒤덮이게 된다. “친구들을 따돌리는 친구는 좋은 친구일까요? 나쁜 친구일까요?” “나쁜 친구요.”

“맞습니다. 나쁜 친구죠? 말과 글도 마찬가지여서 ‘한 것’과 ‘본 것’, ‘들은 것’, ‘말한 것’, ‘느낀 것’이 사이좋게 함께 해야 재미있고 살아있는 좋은 말과 글이 될 수 있습니다.”

처음 ‘꾸아드네프’ 발표를 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어떻게 발표하지?’만 신경 쓰느라 친구들의 발표를 듣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반에서는 ‘주말 이야기’를 하고 난 후에 자연스럽게 꾸아드네프 발표에 대한 ‘경청 게임’을 시작한다.

‘경청 게임’은 발표통에서 이름을 한 명 뽑고, 그 아이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하는 아이들만 자리에서 일어서게 한다. 아이들이 일어나면, 선생님의 하나 둘 셋 소리에 자신이 기억하는 친구의 발표 내용을 이야기한다. 이때 이름이 뽑힌 아이가 정답을 발표하고, 맞은 아이들은 손가락 하나를 꼽는다. 이렇게 5명의 이름을 발표통에서 뽑고, 그때마다 그 아이가 한 발표를 기억하는 아이들은 일어서게 해서 경청 게임을 진행한다. 마지막으로 5명 모두 기억한 아이들이 누구인지 일어서게 하고 칭찬한다. 3월 첫 경청 게임에서는 5명 모두 기억한 아이가 2명뿐이었지만, 경청 게임이 계속 진행되며 친구들의 발표를 귀 기울여 듣는 습관이 정착되어 지금은 22명 중에서 평균 14~15명 정도가 5명의 발표를 모두 맞힐 정도가 되었다.

한 학기를 꾸준히 꾸아드네프를 하다 보니, 아이들의 주말이, 아이들의 삶이 눈에 보인다. 어떤 아이는 주말마다 친구들과 마라탕을 먹고 인생 네 컷을 찍는다. 어떤 아이는 에너지가 적어 집에서 푹 쉬기만 한다. 어떤 아이는 브롤스타즈 등의 슈팅 게임으로 주말을 보낸다. 발표하는 동안 서로의 삶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이해하게 된다. 짜증 날 수 있는 시작이 꾸아드네프로 정말 행복해진다. 많은 교실에서 꼭 꾸아드네프란 이름을 쓰지 않아도, 주말 이야기를 나누며 한 주를 시작하면 좋겠다.

매일 칠판 편지와 학급 알림장 편지쓰기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을 변화시키는 것은 두 가지뿐이라고 했다. 무엇일까? 정답은 ‘매일’, ‘스스로’ 하는 것이다. 다른 반은 하지 않는데, 우리 반은 누군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하고 있는 것이 있는가?

아이들을 위해 스스로 하는 것 중 내 몸에 습관이 되어 매일 하고 있는 ‘아침 칠판 손편지 쓰기’이다. 8시 40분부터 아침 자습을 시작하지만, 평균적으로 8시 전에는 교실에 미리 가는 편이다. 교실에 들어서서 앞문과 뒷문을 열고, 창문을 열어 환기하고 형광등을 켠다. 그다음 칠판에 매일 편지를 쓴다.

교실에 들어서는 아이들이 선생님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으면 보게 되는 것이 칠판에 선생님이 써놓은 편지글이다. 선생님으로선 아침마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고민하게 하고, 아이들에겐 선생님의 솔직한 진심을 느끼게 해주는 좋은 장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편지에는 아이들에게 고마웠던 점, 서운했던 점, 부탁하고 싶은 점 등을 담아 선생님의 감정이 느껴지도록 쓰고 있다. 그리고 아침 첫 이야기를 대개 아침편지를 읽어주며 시작하게 된다.

굳이 손편지를 쓰는 이유는 선생님의 솔직한 진심을 아이들에게 온전히 전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말은 발화하는 즉시 공중으로 흩어져 사라지지만 손으로 쓴 편지는 칠판 위에, 그리고 매일 학급 SNS에 고스란히 남는다. 나처럼 내향형 인간은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글로 마음을 전하는 게 덜 부끄럽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업일기로 하루 성찰하기

EBS 다큐멘터리 ‘아이의 사생활’ 4부 다중지능 편에서는 성공한 사람들은 강점 지능 3가지 중에 꼭 ‘자기 이해 지능’이 있다고 소개한다. ‘자기 이해 지능’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인지적 능력을 말한다. ‘자기 이해 지능’을 키우려면 일기를 쓰며 자신의 생활을 돌이켜보는 시간을 갖고 부모와 함께 미래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 보는 것이 좋다. 혼자 있는 시간을 갖고 취미 활동을 해 보는 것도 자기 이해 지능을 키울 수 있다.

아이들의 자기 이해 지능을 키우고, 서로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하기 위해 63 평화반 아이들은 수업을 마치면 매일 하루를 성찰하는 수업일기를 학급 SNS의 알림장에 댓글로 올리고 있다.

공책에 쓰지 않고 그날 집에 돌아가서 학급 SNS에서 알림장을 확인하고 수업일기를 쓰게 하면,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

첫째, 쓰기 공책을 나누어주고 걷을 필요가 없다.
둘째, 따로 읽어주지 않아도 친구들의 글을 서로 읽어볼 수 있다.
셋째, 친구들의 글에 답글을 달 수 있다.
넷째, 글뿐만 아니라 사진이나 영상으로 설명을 도울 수 있다.

알림장을 확인하고 나서 아이들이 적은 수업일기를 보면, 교사로서도 어떤 수업이 아이들 마음에 남았는지 피드백을 받은 기분이라 다음날의 수업을 더 준비하게 된다. 아이들에게도 수업일기의 단계를 나누어 따로 지도했더니 더욱 수업일기가 자세해졌다. 특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3줄 이상 쓴 아이들의 수업일기를 매일 10분 시간을 내어 읽어주는 시간이다.

30여 년 아이들 옆에서 살아가며 깨달은 한 가지는 아이들은 선생님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해서 중요하게 생각하진 않지만, ‘선생님이 매일 시간을 들이면 중요하게 생각한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진도를 나가기 바쁜 중에도 매일 시간을 내어 반 아이들 수업일기 중에서 3줄 이상 쓴 아이들의 글을 읽어주었다. 똑같이 보낸 하루였지만, 친구들의 수업일기를 들으며 아이들은 어제 하루를 돌아보는 습관을 지니게 되었고, 나와는 다른 생각을 하는 아이들을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되었다. 어떤 아이들은 내가 싫어하는 음악 시간을 가장 기쁘고 즐겁게 참여했고, 어떤 아이들은 내가 좋아하는 체육 시간을 즐기며 열심히 참여한다. 그리고 덤으로 어제 공부한 내용 중에서 어떤 것이 아이들 마음에 남았는지 복습할 시간도 되었다. 특히 교과전담 교사의 수업시간처럼 담임이 함께하지 못한 시간까지 들여다보게 되며 아이들을 더욱 밀도 있게 지도할 수 있었다.

학급 아이들의 마음과 마음이 처음 만나는 아침 시간, 업무로 바쁘다고 해도 아이들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컴퓨터만 보고 있다면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일까? 교실에 들어서는 아이들과 한 명 한 명 눈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고, 자기 자리에 돌아가 앉으면, 함께 친구들이 쓴 글을 선생님의 목소리로 전해들으며 차분하게 이야기 나누는 시간, 친구들의 글을 통해 선생님도 아이들도 서로에 관한 관심이 더욱 깊어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들과의 깊은 관계 맺기는 이렇게 사소하지만 매일 학급에서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1. 학교 폭력과 따돌림이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해마다 ‘평화반’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