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영 명예기자
드라마와 영화의 단골 주제 중 하나를 고르라면 ‘학원물’을 들 수 있다.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가 전 세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는 아마 학교라는 공간이 주는 학창 시절의 기억을 모두가 공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학교는 누군가에게는 추억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꿈이 되고 있다. 학교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학교 구성원과 학부모, 더 나아가 지역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서울강남초등학교, 용마중학교, 선유고등학교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학교 공간, 꿈과 만나다: 서울강남초등학교
서울강남초등학교(이하 강남초, 교장 이화) 안에는 숲이 있다. 숲 안에 학교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 공간에 숲이 조성되어 있어 교과 수업 시간에는 생태교육의 장으로, 점심 시간과 쉬는 시간에는 쉼의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강남초의 학교 숲은 환경부와 환경재단, L사에서 미세먼지 절감 및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기획한 <숨; 편한 포레스트> 사업을 통해 조성된 10번째 숲이다. 학교에 1500㎡나 되는 공간이 그저 방치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낀 이화 교장 선생님께서 이 공간이 학생들을 위한 학습 공간이자 안전한 쉼터가 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숨; 편한 포레스트> 사업을 신청하셨다. 미세 먼지 저감 수종인 교목류 및 관목류와, 교목인 소나무, 교화인 개나리가 식재되었고, 학생들에게 수확의 보람과 바른 먹거리 교육도 함께 제공하기 위해 사과, 감, 자두, 대추나무 등 과실수 식재를 추가로 요청하였다. 흙길도 조성해 대도시에 살면서 자연 상태의 흙을 밟고 만지는 기회가 적은 학생들에게 땅의 소중함을 느끼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학교 숲의 보다 높은 교육적 효과를 위해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요구를 할 수 있어야 함을 알 수 있다.
강남초의 학교 숲 ‘강남 꿈동산’은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학교 숲 이름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이름이다. ‘강남 꿈동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학생들은 학교 숲에서 꿈을 펼친다. 넓은 강남 꿈동산에서 줍깅1을 통해 모은 쓰레기를 분리해 막대그래프로 표현하며 수학을 공부한다. 미술 시간에는 겨울철 새를 위해 우유곽을 업사이클링한 새 모이통을 만들며 교과 연계 생태전환교육이 이루어진다. 5학년 학생들은 서울특별시농업기술센터에서 파견된 도시농업전문강사와 함께 농사 시기에 맞춰 단계별 텃밭 교육을 받는다. 또한 학생들은 숲 선생님과 광합성 놀이2를 통해 자연스럽게 나무에 대한 관심과 소중함을 느끼기도 한다. 4학년 학생들은 서울강남초등학교병설유치원 후배들과 유₩초연계 이음학기 활동에 참여해 함께 고구마를 심고 가꾸며 함께하는 즐거움을 느끼고, 유치원 아이들은 미래 초등학교 생활을 꿈꾸게 된다.
강남초의 학교 숲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꿈과 만나는 장소가 된다. 학교 숲 관리를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안전 문제로 학생들이 할 수 없는 숲 관리를 위해서 퇴직 교원으로 구성된 그린에듀팀과 서울특별시 50플러스 사업을 통해 파견된 중장년층, 장애인 근로자, 도시농업전문강사들이 강남초에 방문해 학교 숲 관리를 돕는다. 이처럼 강남초의 학교 숲은 누군가에게는 현재의 꿈과 만나는 장소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제2의 꿈과 만나는 장소가 된다.
학교 정문 옆에 설치한 학부모 대기 공간에도 교목인 소나무를 그대로 살려서 벤치와 테이블을 설치했다. 학교 내부와는 막혀 있으나 외부와는 연결된 이 공간에서 학부모는 자연을 흠뻑 느끼며 자녀를 기다리고, 학생들은 친구와 부모님을 기다릴 수 있어 모두가 만족하고 있다.
이처럼 강남초는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와 지역사회를 위한 공간이 되어 줌으로써, 학생들에게 학교라는 공간이 존재하는 한 학교는 졸업 후에도 언제나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학교 공간, 꿈을 표현하다: 용마중학교
용마중학교(이하 용마중, 교장 최정운)에서는 학기 내내 전시회가 열린다. 학교에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화사한 색감의 벽화는 여러 학생들이 함께 그려 만들었으며, 건물 앞에는 학생들의 이름으로 장식된 작품이 눈에 띈다. 학부모는 자녀의 이름을 찾아보며 기특함을 느끼고, 학생들은 자신의 이름을 가리키며 뿌듯함을 느끼며, 선생님은 학생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다시 보고 되새긴다.
학교 벽면, 창문과 창틀, 심지어는 수업나눔카페에도 학생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물의 내용과 위치도 매번 바뀐다. 학생들의 수업 결과물이 완성될 때마다 선생님이 새롭게 작품을 전시하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은 학교 내 더 좋은 전시 공간을 찾아다니고, 학생들은 자신의 작품이 전시된 곳을 찾기 위한 보물찾기에 나선다. 이러한 노력을 알기에, 최정운 교장 선생님께서 학교 계단의 벽에 타공판을 설치해 주셨다. 학교 내 공간 활용에 대한 허용적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보다 다양한 작품을 전시할 수 있게 되었다.
용마중 전시가 특별한 이유는 잘한 학생들의 작품만 전시하는 것이 아닌, 모든 학생들의 작품을 전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바탕에는 잘하고 못하고의 결과를 떠나 모든 학생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는 미술과 장영규 선생님의 교육 철학이 있다. 학생들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작품이 전시된다는 것을 알기에 학습 과정에 보다 열심히 참여하고, 전시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면서 자존감을 향상시킨다. 전시 작품이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학생들은 자신이 열심히 노력한 만큼 다른 친구의 노력을 알기에 함부로 다루지 않는다고 한다. 4층에 조성된 ‘용마 갤러리’에는 다양한 작품들과 제작 과정 사진이 전시되어 있어, 과거와 현재, 과정과 결과가 연결되도록 한다.
과학과 박수진 선생님은 학급 주변의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힐링되는 우리 반 창가’라는 제목의 프로젝트를 통해 학급마다 창가에서 허브와 꽃을 키우며 함께 화분을 돌보고 책임감과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관심 있는 학생들 위주로 참여하고 일회성 행사에 그치곤 했던 과학 행사의 결과물도 복도에 전시하여 지나가던 학생 누구나 전시물을 보고 느낀 점을 포스트잇에 적어 붙이도록 함으로써 과학 행사 결과물에 대한 지속적인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했다. 학급별로 제작한 원소 보고서 전시물은 계단을 오가는 후배 학생들에게 다음 학년에 배울 학습 내용에 대해 자연스럽게 관심과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한다.
과학과 이수경 선생님께서는 이 말씀과 함께 한 학부모님의 SNS 프로필 사진을 보여주셨다. 맞벌이 가정이 많은 요즘, 학교에 한 번도 오지 못한 학부모님께 자녀가 만든 작품 사진을 보내드리니 학부모님께서 매우 반가워하며 그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등록했다는 것이다. 학교 공간과 전시는 이처럼 가정과의 연결,가정 내 연결을 돕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학교 공간, 꿈을 향하다: 선유고등학교
2025년 고교 학점제 전면 시행과 2022 개정 교육과정 도입을 앞두고 고등학교에서도 교육과정에 걸맞는 학교 공간 조성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고등학교 학생들을 위하여 선유고등학교(이하 선유고, 교장 윤석주) 역시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학교 공간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선유고 건물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공간은 1층 자율학습 공간 ‘지혜의 숲’(교실)과 ‘에클레시아’(로비)이다. 두 이름 모두 학생과 교사를 대상으로 공모를 진행해 선정한 것으로, ‘지혜의 숲’은 유상미 선생님께서 ‘초록색 정원이 연상되는 숲 속 같은 편안한 학습공간’의 의미를 담아 지어 주신 이름이다. ‘에클레시아’라는 이름은 학생의 아이디어로, 에클레시아는 고대 민주주의의 시초인 아테네에서 사람들이 여러 토론을 나누는 민회의 이름이자 아테네에서의 민주주의를 이야기했을 때 떠오르는 이름이다. ‘고대 그리스의 평화로운 민주주의의 중심이었던 에클레시아처럼 평화롭고 좋은 아이디어들이 토의나 토론을 통해 잘 나오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지어졌다.
지혜의 숲에서는 개인 공부를, 에클레시아에서는 혼자 또는 여럿이서 공부할 수 있도록 다양한 크기의 테이블을 배치하였다. 방과 후 집에 가기 전 공부를 하거나 모둠 활동 과제를 위한 장소가 필요한 학생들은 에클레시아에 모여 꿈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시간을 갖는다. 에클레시아 가운데에는 구불구불한 곡선형의 커다란 목조 벤치가 놓여 있어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친구와 대화를 하기도, 피곤할 때 누워서 쉴 수도 있는 아늑한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과거 등교하는 학생들의 두발이나 복장을 검사하고 지각생을 확인하던 공간은, 오늘날에는 친구를 기다리고, 간식을 먹으며, 숙제도 하는 ‘맞이의 공간’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2층으로 올라가면 학생들이 자유롭게 공부도 하고 간식도 먹으며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꿈담 학습카페와 교사들이 모여 수업에 대해 논의하고 회의도 진행하는 수업나눔카페가 조성되어 있다. 꿈담 학습카페에는 많은 학생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 옆에 소그룹 토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통유리로 나눠 놓은 3개의 방에 큰 테이블이 놓여 있다. 꿈담 학습카페는 명사 강연, 국제공동수업, 사제동행 활동이 이루어지는 등 학생들의 꿈을 위해서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방과 후에 꿈담 학습카페에 남아 선생님과 함께 그리스에 있는 학생들과 국제공동수업을 위한 모둠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선유고 학생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이처럼 선유고는 꿈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협력과 소통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선유고의 변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고교 학점제를 위해 공강 시간에 학생들이 머물며 각자의 계획에 따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될 예정이다. 이처럼 선유고 공간 곳곳에서는 변화에 맞춰 보다 나은 교육 환경을 제공하려는 고민과 노력의 흔적들을 확인할 수 있다.
변화하는 학교, 연결되는 우리, 꿈꾸는 모두
강남초, 용마중, 선유고 세 학교의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변화하는 사회, 변화하는 교육, 변화하는 우리와 함께 학교 공간 역시 계속해서 변화하면서 학생을 비롯해 모두를 위한 배움의 공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의 기억 속 학교의 모습과 지금 학교의 모습은 달라졌을지언정, 학교라는 공간은 여전히 우리를 연결해주는 장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