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율 명예기자
2000년대 초반, 학교와 주거 단지 주변의 공원과 놀이터에는 친구들과 함께 뛰노는 아이들을 그리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다. 운동장에 가면, 나이를 불문하고 함께 땀 흘리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스포츠를 온몸으로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미디어가 발달하고, 개인주의가 확산되며 함께 뛰노는 아이들을 보기 어려워졌다.
COVID-19 팬데믹이 끝나 종전의 교실 형태로 돌아가자마자 교육부는 학교체육 활성화 예산을 대폭 확대하여 학교스포츠클럽이 더욱 활발해지도록 도왔다. 온라인에 익숙해져 신체적인 활동을 어색해하고, 공동체 역량이 부족해진 학생들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야 했기 때문이다. 서울 지역 내에서도 지리적 입지, 소득 수준 등으로 인해 지역 간 격차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처럼 다양한 변수로 인해 운동에 부담감을 가진 학생들이 다시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강북구의 번동중학교(이하 번동중, 교장 강운석)는 스포츠클럽이 활성화되어 학교에 아이들의 함성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과연 무엇이 이곳에 ‘스포츠클럽’ 열풍을 가져오게 된 것일까.
모두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스포츠클럽
번동중은 학교 중장기 발전 계획에 스포츠클럽에 관한 내용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을 정도로 학생들이 온전한 스포츠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이곳은 매일 아침(07:30-08:20) 농구, 축구, 줄넘기 등의 운동으로 체육관과 운동장이 시끌벅적하다. 점심시간에는 주요 경기 점심 리그에 아이들이 직접 심판 혹은 선수로 참여하여 시간을 보낸다. 방과 후 시간도 예외는 아니다. 요일별로 육상, 배드민턴, 농구, 댄스 등 다양한 스포츠 활동이 열린다. 주말에는 인근 학교 대항전과 운동 관련 재능 기부를 진행하거나 각종 대회에 참가하며 진정한 스포츠맨십과 팀워크, 리더십 등을 함양하고 있다. 담당 교사인 오경태 선생님(체육안전부장)에 따르면, 스포츠클럽 참여 프로그램의 결정은, 학생들에게 그 누구도 강제성을 부여하지 않고 학생들이 직접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한다. 누구든지 방과 후에 학원이나 개인적인 일정이 없다면, 학교에 남아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많은 학생에게 아침 운동과 스포츠클럽 등으로 운동의 즐거움과 기초적인 체력 단련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곳의 스포츠클럽은 총 3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가장 먼저, 매주 금요일 1시간씩 자신이 원하는 종목을 선택하여 참여하는 교육과정이다. 축구, 농구, 테니스, 씨름, 댄스, 요가 등 7가지 종목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씨름은 스포츠클럽에서 두각을 드러낸 학생들을 선별하여 체계적으로 교육 및 활동을 진행하고 씨름 분야 유망주를 길러내기도 한다. 다음으로 매일 점심 식사 후 반별 대항전으로 경기를 치르는 ‘점심 리그’가 있다. 3개 학년이 3주 간격으로 반별 대항전을 진행하고, 리그전 결과를 바탕으로 2학기 때 토너먼트로 최종 순위를 가린다. 마지막 유형은 점심 식사 전 농구부와 육상부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체력 운동을 하는 것으로, 별도의 지도 없이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20분간 운동을 한다.
또한 번동중은 지역사회와도 긴밀하게 협력하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저녁 6시가 되면, 지역 주민들이 학교 운동장 트랙을 산책하기 위해 줄을 서고,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인 운동을 하다가 돌아간다. 학생들의 스포츠클럽 활동에 지장이 가지 않는다면, 체육관도 지역 주민들이 소정의 사용료를지불하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교내 체육관과 운동장에 농구, 축구 등 다양한 종목을 할 수 있는 공간과 테니스장, 골프 등 다양한 종목이 가능한 시설이 갖춰져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생활 그 자체로 내재화된 ‘운동’
이런 스포츠클럽의 운영이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치게 될까. 담당 선생님은 스포츠클럽이 비단 운동에서 끝나지 않고 학생의 인생과 진로, 관계 등 다양한 요소에 크게 작용한다고 전했다. 스포츠는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각종 역량을 배우고 내면화하는 장이다. 승리와 패배를 반복하며, 내적 가치를 배우고 반성을 거듭한다. 존 듀이(John Dewey)가 ‘교육은 생활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생활 그 자체다.’라고 말한 것처럼, 스포츠를 통해 생활 전반을 배우고, 성찰적 사고를 경험하는 것이다. 노력으로 실패를 극복하고 더 나은 스포츠 활동으로 성과를 만든다면, 학생들의 전인적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스포츠클럽의 긍정적인 영향은 다음과 같다.
2학년에 재학 중인 한 남학생은 1학년 때 스포츠클럽 활동을 통해 몸무게를 무려 16kg 감량하였다. 이뿐 아니라,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인내심과 지구력, 체력 등을 길러 고등학교 때 공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보통의 여학생들은 운동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데, 담당 교사의 열정과 지속적인 관심 덕분에 꾸준히 체력을 관리하고 학업에 대한 의지도 상승했다.
또한 경기 중의 활동에 관하여 심판이 판정한 것을 빠르게 수긍하고, 해결책을 찾으려는 과정에서 문제해결력을 함양하고, 팀을 위해 구성원 모두가 희생하는 등의 자세는 학생들이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미덕을 발견하게 하였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을 거듭하고, 다른 학교의 팀들까지도 두루 사귀게 되어 공동체 역량과 의사소통 역량 등을 증진할 수 있게 된다. 최근에는 SNS의 발달로 학생들끼리 다른 지역 또는 상대 팀의 플레이 영상과 활동 모습을 함께 보고 토론하며 교학상장(敎學相長)이 완성되었다.
번동중의 스포츠클럽은 학생들이 체육 관련 진로를 설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2022년에는 한 학생이 선일여자고등학교 농구부에 우수한 실기 성적으로 진학했고, 2023년에는 숙명여자중학교 농구부, 서울체육중학교 육상부로 전학한 학생들도 있었다. 이 학생들은 서울체육고등학교의 자신이 원하는 종목에 우수한 성적으로 진학하였고, 올해 재학생 중에서 조정부와 육상부 등 다양한 스포츠 종목으로 진로를 설정한 학생들 역시 스포츠클럽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믿음과 신뢰로 맺어진 스포츠맨십
오경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스포츠를 지도할 때, 가장 주안점을 두었던 것은 동료 간 믿음과 신뢰였다. 2023년 초, 대한민국농구협회 주관 여중부 농구 결승전에서 차기 주장을 맡은 학생이 슛 시도를 계속 실패하자 작전타임 시간에 ‘슛을 못해서 지면, 더 열심히 해서 우리를 우승으로 이끌자. 우리 멤버 중에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선생님과 동료를 믿고 던져.’라고 조언을 건넸다. 팀원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루게 되었다. 이후, 번동중의 여자 농구부는 시 대회, 전국대회 등 출전하는 대회마다 우승하였다. 슛을 던지지 못하겠다고 주저했던 학생은 거듭 성장하여 팀을 챔피언으로 만들었다. 학생들은 성공과 실패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은데,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주저하게 된다면 성장하기보다 그대로 멈추거나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 스포츠클럽에서 이루었던 성공은 어떤 식으로든 학생의 학업, 진로 등 다양한 일상생활 전반에 높은 전이가 발생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 선수는 실패를 거듭해 온 것이 그가 성공했던 이유라고 밝혔다. 번동중은 담당 선생님과 부서, 학교 구성원 등을 중심으로 스포츠클럽을 통해 학생들이 실패를 경험하고 성공으로 확장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나갔다. 이는 스포츠클럽이 가진 본질적인 가치와도 일맥상통한다.
주체적인 사회구성원으로 거듭나기 위해
번동중은 지리적 입지 특성상 어렸을 적부터 스포츠를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학생들이 많다. 다른 학교에 비해 운동 경험이 부족했던 약점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중학교에 다니는 동안 최대한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에 집중한다. 특히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도 스포츠클럽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주시며, 체육과 교사뿐 아니라 타 교과 교사들까지 학생들의 운동 활동에 관심을 보였던 것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둔 요인이었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등 다양한 SNS, 미디어 플랫폼을 활용하여 점심 리그와 스포츠클럽 경기에 대한 릴스, 쇼츠 등 홍보 활동을 꾸준히 하는 것도 번동중만의 특색이다. 이런 다양한 활동을 통해 운동에 관심이 적은 학생들도 조금이나마 스포츠와 마주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런스포츠 활동으로 학교폭력 및 각종 사안이 현저히 감소함과 동시에 학생들의 자립심과 주체적 자기효능감을 키우는 데 크게 기여하였고, 이와 관련하여 언론에도 소개된 바 있다.
스포츠로 배우는 진정한 ‘인생’
사실 번동중의 이런 성과 이면에는 인식 전환의 어려움이 있었다. 각종 사회적 시선과 프레임에 씌워진 학생들도 있는데, 이런 학생들이 뭔가를 이뤄내는 것을 좋지 않게 보는 시선이 있었으나 그에 굴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이후 조금씩 주변의 시선이 변화하기 시작했고, 학생들의 자기효능감 또한 대폭 상승하는 결과를 얻었다. 포기가 빠르고 쉽게 체념하는 아이들에게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 담당 선생님이 가진 사명이었다. 번동중에서 스포츠클럽을 경험한 학생들은 외향적이며 자존감이 있고 근성과 열정으로 자신의 진로를 개척하는 성격을 갖게 된다. 또한 소외되는 학생들 없이 모두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스포츠맨십과 문화를 지향하고 있다. 운동 신경이 부족하거나 소극적인 학생들에게는 쉽게 성공할 수 있는 과제를 먼저 주고 칭찬을 많이 한다. 그 결과, 다소 운동에 부담을 갖던 학생들도 스포츠클럽에 호의적인 마음이 생기게 된다. 실력과 경험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고 나면, 훈련이나 전술을 학생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과정을 경험하고, 스스로 내린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도 동기부여에 큰 역할을 한다. 학생의 체력을 평가하는 PAPS에서 낮은 등급을 받은 학생들은 스포츠클럽에서 우수한 학생들과 멘토-멘티 관계를 만들어 서로 도와 운동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문화 덕분에 부모님들의 반응 또한 긍정적이었고, 스포츠클럽 활동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모습을 보였다.
번동중의 교장선생님과 오경태 선생님은 한 인간의 일생 속에서 절실하게 필요한 ‘체력’을 기르는 것에서 스포츠클럽의 함의가 충분하다고 전했다. 스포츠클럽 전문 강사와 체육 교사들이 함께 협업하여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강사의 특강을 통해 전문성을 함양하는 것 또한 다른 학교와 차별화되는 이곳의 특징적인 부분이었다.
운동으로 지구력과 기초 체력을 증진하고, 공동체 역량을 기르는 번동중의 사례를 통해 학교스포츠클럽이 가진 교육적 효과와 학생들에게 미치는 다양한 영향을 살펴볼 수 있었다. 번동중 교사와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프로그램에 임한 덕분에 스포츠클럽이 가지는 가치가 더욱 극대화된 것으로 보인다. 번동중 담당 선생님과 학생들이 각종 스포츠 활동에서 보여주었던 열정처럼, 서울교육 내 많은 스포츠클럽에도 이와 같은 뜨거운 열기가 퍼져나가 지속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