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2022 여름호(247호)

[경문고] 세계시민의 목소리를 담아
마을에 스며들다

박거성 명예기자

“필요한 것은 사랑뿐이다.” 우리에게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OST로 더 친숙한 비틀즈 원곡의 노래 ‘All you need is love’는 60년대 미국의 반전(反戰)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곡으로 꼽히며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비틀즈는 사랑하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라고 노래했지만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하는 것’도 습득하고, 연습해야 할 수 있는 기술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또한 타인을 사랑하는 것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통찰을 얻게 된다면 분명 자신의 사회관계는 관습적 변화가 아니라 극적 변화를 맞이할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2015년 인천에서 열렸던 제3회 세계교육포럼(World Education Forum)에서는 지속가능한 개발과 함께 ‘세계시민교육(Global Citizenship Education)’이 화두로 떠올랐다. 평화, 관용, 책임 등을 핵심적인 역량으로 제시하고 있는 ‘세계시민교육’은 결국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통해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아닐까. 한국전쟁 관련 많은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는 동작구에서 세계시민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경문고등학교(이하 경문고, 교장 최원선)를 찾아 평화를 위한 교육의 노하우를 들어 보았다.

학교 교육과정 전반에 스며든 세계시민교육

1. 자율활동 : 학급사제동행 평화기행 활동, 세계시민 평화실천 캠프 활동

경문고에서는 오랜 기간 ‘키비처 민주시민 실천동아리’1와 연계한 다문화 자원봉사활동을 지역 내의 여러 기관 및 마을시민단체와 긴밀하게 이어 왔기에, 혁신교육지구 사업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을 가지고 동작구의 다양한 교육 자원들을 학교 교육과정 전반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사제동행 평화기행 활동 교육 계획서>

우선 자율활동에서 1학기에는 학급 단위의 ‘학급사제동행 평화기행 활동’을 2학기에는 그동안 평화기원 방과후 활동이나 민주시민 키비처 동아리 활동에 참여한 학생들과 사제동행 평화기행 활동 희망하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남에도 북에도 존재하는 지명인 강원도 고성에서 ‘세계시민 평화실천캠프활동’을 실시한다. 격주로 실시하는 학급 단위 평화기행 활동 추진 시 학급의 재량권을 존중하되, 담임교사들이 동작구에 있는 역사·문화 자원을 활용할 수 있도록 ‘창의체험·방과후부’에서 학년별로 운영하고 있는 SNS(네이버 밴드)를 통해 탐방 관련 정보를 담임 교사들에게 제공한다. 이런 정보 공유 활동을 통해 학급 활동을 주관하는 담임 교사들은 동작구의 독립운동가 심훈 선생과 ‘효사정 문학공원’, 한국전쟁과 ‘학도의용병 현충비’, 일본군 위안부와 ‘평화의 소녀상’,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세상에 알린 오연상 의사와 ‘중앙대 병원’ 등 학교 주변의 역사문화적 장소들과 관련된 의미를 고려하여 마을 탐방 활동을 계획할 수 있으며, 특히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 연구소와 협력하여 평화기행 인문학 프로그램 개발 및 운영에 내실을 더하고 있는 것도 특징적이다.

2. 동아리활동 : 키비처 동아리

한국에 온 지 수년이 지나 이미 지역사회에 정착했지만 여전히 ‘다문화’라는 용어 안에 갇혀있는 이주민과선주민이 지구인으로 만나는 것을 목적으로 시작된 ‘키비처’ 동아리는 동작구 마을 탐방에서 차츰 활동 범위를 넓혀 생태전환을 위한 플로깅(plogging)2 등 지역 사회 기여 활동으로 영역을 점점 넓혀가고 있다. 특히 10~20명 정도로 구성된 학교 안 ‘키비처’ 동아리 청소년들은 60명 정도의 동작구 주민과 이주민들이 참여하는 동작구 봉사활동 단체인 ‘동작다다름단’을 2018년에 결성하고 지역사회 시민 활동을 주도하여 삶의 터전인 마을 주민의 일원으로 마을교육공동체를 위한 지원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동작다다름단 교육>

<민주시민 키비처 활동>

<동작다다름단 우리 동네 이해하기>

3. 봉사활동 : 동작구 마을역사 탐방

정기고사 이후 운영되는 경문고의 체험활동 주간인 ‘꿈끼주간’에는 봉사활동으로 ‘동작구 마을탐방’, ‘현충원 평화의 길 걷기’ 등의 활동이 이루어진다. 동작구의 ‘효사정’, ‘학도의용병 현충비’, ‘삼일공원 유관순 열사상’, ‘평화의 소녀상’, ‘심훈 생가터’, ‘중앙대학교 캠퍼스’ 등 다양한 자원들을 탐방하며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들이 있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동작역사문화연구소(대표 김학규)’와 협업한 현충원 마을탐방길 발간 작업, 비영리 마을 방송국인 ‘동작FM’의 유튜브 채널을 통한 지역 역사 콘텐츠 시청, ‘사당 청소년 문화의 집’과의 교육 협업 활동 등 지역사회의 다양한 민간 기관과 협력함으로써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경문고에서는 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전 영역에 동작구의 풍부한 역사적 자원들을 바탕으로 민관학 거버넌스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평화통일·세계시민교육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경문고 꿈끼주간 봉사활동 계획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경험담, 세계시민의 역량을 발휘하는 교과 · 방과후 수업

[‘한국전쟁 70년, 우리의 선택은 평화’ 교과 연계 내용]

세계시민교육과 평화·통일교육은 다양한 교과에서 강조되는 학습 내용이다. 현충원이나 한강대교 등 학교 근처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장소를 언급하며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학습한다면 학습에 대한 학생들의 주의 집중이 향상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아가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해당 장소나 기관을 탐방해 본 학생이 교실에 있는 것만으로도 교과 수업에서 학생들의 참여도는 높아질 것이다. 생활 공간과 멀지 않은 ‘효사정’에서 조선시대부터 노태우 정권까지의 효사정에 얽힌 이야기들을 듣거나,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역을 지나며 볼 수 있는 ‘학도의용병 현충비’와 ‘평화의 소녀상’을 보고 6·25전쟁과 평화를 주제로 이야기하며 자신과 타인의 삶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게 된 학생들은 단편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데에서 나아가 자신의 삶과 사회를 바꾸기 위한 동력을 갖게 된다. 즉, 점점 더 책 속의 옛날 이야기와 거리가 멀어지는 학생들에게 그 비극적인 사건들이 왜 일어났고 어떤 배경들이 있는지 궁금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확장적인 사고는 학생들의 실제 삶의 경험과 체험을 통해 가능하게 된다.

‘사회현안 프로젝트’ 형태로 이루어지는 세계시민교육 방과후 활동은 학생들의 높은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2020년에는 ‘한국전쟁 70년, 우리의 선택은 평화’를 주제로 수업이 이루어졌다. 수업에서 학생들은 우선 사전 활동으로 ‘한국사, 동아시아사, 세계사, 사회문화, 통합사회, 생활과 윤리, 화법과 작문, 사회문제탐구’ 등 교과와 연계하여 학습한 내용을 상기하고, 자신의 역량을 파악한다.

[‘한국전쟁 70년, 우리의 선택은 평화’에 제시된 평화 역량]

특히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을 다룬 영화 <포화 속으로(2010)>를 보고 흑석동에 있는 ‘학도의용병 현충비’를 찾아 기억과 장소를 연결 지어 전쟁에 대한 기억을 평화에 대한 기원으로 기억을 전환해 보거나 영화 <암살(2015)>을 보고 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된 독립군 어머니 남자현 지사의 묘를 찾아보는 등 영상 매체와 학생의 체험을 연관 지어 비극적인 역사의 고통에 좀 더 쉽고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동작역사문화연구소 등 지역시민단체와 연대하여 삼일공원3에서 삼일운동에 참여한 후 삼일공원 부지 조성에 기여한 최은희 기자의 삶이나 삼일운동에 헌신한 우리 마을 청소년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함께 기억하는 활동을 실시하여 독립운동의 주체로 청소년과 지역을 연결시킨다. 그리고 한국 전쟁 이후에도 계속된 남북 대결의 현장인 실미도 사건 현장4 등을 탐방하며 전쟁이 계속되었을 때의 피해는 당대에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질 수 있음을 청소년들의 마을 탐방 활동을 통해 경험하게 된다. 탐방 후에는 단순히 역사적 아픔에 공감하는 데에서 나아가 세계 각국에 존재하는 ‘전쟁박물관’의 명칭들을 조사하여 의미를 비교하거나,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내가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구안해 보는 활동 등을 통해 자신이 속한 공간을 평화를 위한 곳으로 바꾸는 활동에 참여한다.

위와 같은 활동을 통해 전쟁으로 인한 고통에 공감했던 학생들의 경험은, 해외에서 우리와 같은 고통을 경험하고 살아가는 재일동포에 대한 관심과 공감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이듬해인 2021년에는 ‘한인 디아스포라를 만나다’를 주제로 교육 활동이 진행되었으며 일본의 조선인 학교 차별 등 재일동포의 고통을 주제로 탐구 활동이 이루어졌다. 올해는 ‘전쟁과 평화’를 주제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등 매번 평화라는 큰 주제 안에서 다양한 프로그램 참여자의 관심사와 흥미를 반영하여 구체적인 교육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삼일공원 유관순 열사상>

<세계시민교육 자료①>

<세계시민교육 자료②>

자율성을 바탕으로 작은 것이라도 무엇 하나 실천을

<사랑의 기술>에서 에리히 프롬은 파라켈수스의 시를 인용하며 사랑을 배우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경계하였다.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을 때까지 하자’는 다짐이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유지해 왔듯이 일단 무언가 ‘한다는 것’은 ‘안다는 것’으로 그리고 또 다른 관심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1. 2012년 지역 내 이주 여성 및 노동자와의 만남을 통한 봉사활동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동아리로, 영어 Kibitzer는 ‘훈수를 두고 참견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미국의 철학자 왈저(Michael Walzer)가 사적 영역에만 머물러 있는 ‘비(非)시민’과 ‘열성시민’의 중간자 역할을 하는 시민의 뜻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2021 서울교육연구년 최종보고서(중등)』(서울특별시교육청교육연구정보원)
  2. 환경 정화 걷기 활동
  3. 이수역에 조성된 독립공원, 한국 최초의 여기자로 알려진 최은희 씨가 1967년 4월 15일에 ‘독립공원을 설립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신문에 투고한 것이 계기가 되어 1989년 조성되었다고 한다.
  4. 대방동 유한양행 본사 앞, 1971년 8월 23일 실미도에서 훈련 중이던 북파공작원들이 집단 탈영하여 버스를 탈취하여 청와대로 가던 중 이곳에서 군경과 대치 중 자폭하는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