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2022 겨울호(249호)

‘교사 교육과정’의 가능성과 교사에게
주어진 역할 : 2022 개정 교육과정의
‘학교 자율시간’을 중심으로

김종훈(건국대학교, 교수)

들어가며

누가 뭐라고 해도 교육과정에 관한 한 가장 중요한 주체는 교사다. 교사는 문서와 활자로 존재하는 교육과정에 가르침이라는 삶의 행위를 통해 생기를 불어넣는다. 교육과정은 교육의 목적과 목표, 인간상과 핵심역량, 편제와 시수, 내용 체계와 성취기준이 제아무리 잘 만들어진다 해도 교사의 능숙한 손길이 아니면 완성될 수 없다. ‘교사’와 ‘교육과정’은 이처럼 가장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다. 이렇게 친근하고 일상적인 관계에 놓인 두 단어를 하나로 묶어 ‘교사 교육과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가능하다면 그것은 어떤 뜻이고, 기존에 유사한 말들과 어떻게 구별되며, 어떤 교육적 의미를 가질까?

국가 교육과정 체제를 따르는 우리나라에서 교육과정과 관련된 대부분의 정책에 대한 권한은 국가에 주어져 왔다. 교육과정 개정이 필요하다고 공식적인 개정의 출발을 알리는 ‘발의’로부터, 개발된 교육과정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고시’에 이르기까지 교육과정 개정 전반을 정부(교육부)가 주도해 온 것이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대로 교육과정을 가장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람들은 실상 국가도, 전문 연구자도 아닌 교사다. 교사를 교육과정의 실행자, 사용자, 실천가 등으로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최근 등장하고 있는 ‘교사 교육과정’에 대한 논의 역시 직접 경험하게 될 학생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주체인 교사가 교육과정에 대해 가장 많은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담고 있다. 기존에는 연구·개발을 포함한 교육과정 정책의 전반적인 과정에서 교사가 배제되어 왔다면(teacher-proof curriculum), 이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바탕으로 교육과정의 주인으로서 교사의 역할을 강조하는 흐름 속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교사 교육과정’이다.

‘교사 교육과정’의 의미

사실 ‘교사 교육과정’이라는 말은 아직 학술적으로 정립되거나 깊은 논의를 통해 만들어진 개념은 아니다. 교사와 교육과정을 단순 연결하여 만든 새로운 용어라는 점에서 어법적으로도 다소 어색한 측면이 없지 않으며, 오히려 ‘교사중심 교육과정’(teacher-centered curriculum)이나 ‘교사 주도 교육과정’(teacher-driven curriculum)이라는 용어가 더 일반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그렇다면 최근 일각에서 논의되고 있는 ‘교사 교육과정’ 이라는 개념은 어떤 맥락에서 등장한, 어떤 의미를 가진 말일까?

교사 교육과정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 개발의 ‘수준’(level)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교육과정은 그것이 개발되는 수준에 따라 다음 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국가, 지역, 학교 교육과정으로 구분되며, 지금까지 이 세 수준에서 개발되는 교육과정은 별다른 이견 없이 공식적 용어로 자리매김해 왔다.

[개발 수준에 따른 교육과정의 의미]

가만 보면 학교 교육과정의 의미에 이미 개발과 관련된 ‘교사’의 역할이 명시되어 있다. 물론 교사는 학교 교육과정 개발과 운영에 관여하는 여러 주체들 중 하나로 기술되어 있긴 하다. 따라서 굳이 ‘교사’를 따로 떼어내어 ‘교사 교육과정’을 교육과정 개발의 네 번째이자 새로운 수준으로 설정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교육과정 개발과 운영에 관한 교사의 주된 역할을 충분히 드러내기 위함이다. 위 표의 국가, 지역, 학교 교육과정에 준하여 교사 교육과정의 의미를 진술해 보면 ‘국가, 지역, 학교 교육과정을 기준으로 개별 교사가 학생의 교육적 필요를 반영하여 교실 수준에서 개발·운영하는 교육과정’ 정도의 의미가 될 것이다.

국가, 지역, 학교에 더하여 ‘교사’ 교육과정이라는 새로운 수준을 설정하게 되면 학교 교육과정을 더욱 구체화하여 학생의 교육적 필요를 보다 민감하고 세심하게 반영할 수 있다. 또한, 학교 수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교사 개인이 교육과정의 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그러나 교사 교육과정이 하나의 분명한 정책 용어나 학술 개념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학교 수준보다 더 작고 좁은 차원에서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이를 실행할 분명한 필요성이 전제되어야 하며, 교사 스스로도 교육과정 개발에 대한 강한 필요성과 그 교육적 가치를 인식해야 한다.

최근 들어 ‘교사 교육과정’이라는 개념을 명시한 연구물들이 조금씩 등장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교사 교육과정’이 다음과 같이 정의되고 있다.

  • 김덕년 외(2022): 학생들에게 배움이 일어나도록 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교실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교사가 실제로 실천하는 교육 활동으로서의 교육과정
  • 박수원 외(2020): 국가 수준에서 제시하는 표준화된 교육과정을 기반으로 하되 교사가 교육과정 전문성(curriculum literacy)을 발휘하여 새롭게 수정·개발한 교육과정이며, 주로 교실 속 학생들과 직접적인 만남에서 실제적으로 실행되는 교육과정

흥미롭기도 하고, 의미 있는 지점은 ‘교사 교육과정’이라는 말이 교사의 목소리를 통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덕년 외(2022)는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를 통한 교사와 학생의 성장에 초점을 두고 있고, 박수원 외(2020)에서는 전문성을 기초로 개발·실행되는 교사의 교육과정에 주목하며, 유영식(2020)은 교사의 수업 전문성에 관심을 둔다. 정리해 보면 교사의 교육과정 전문성을 기반으로 수업을 포함한 교육 활동 전반을 통해 교사와 학생이 함께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 교사 교육과정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교육과정의 자율화와 분권화

우리나라의 국가 교육과정은 지난 1954년에 고시된 제1차 교육과정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열 차례에 걸쳐 개발·개정되어 왔다. 초반에는 교육과정에 관한 거의 모든 권한을 국가가 독점하다시피 해 왔다면, 지방자치제도의 시행 등에 따라 ‘교육과정의 지역화’, ‘교육과정의 자율화’, ‘교육과정의 분권화’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제6차 교육과정(1992-1997)은 국가 교육과정을 지역 수준에서 구체화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으며, 지역과 학교의 상황에 맞게 교육과정을 재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한다. 제7차 교육과정(1997-2007)의 재량활동과 특별활동은 학교만의 특색이 담긴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운영함으로써 교육과정의 차별화를 위한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 2009 개정 교육과정에 이르러는 교과의 시수를 20% 범위 내에서 증감하여 학교가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제시되면서 시간의 편성과 운영에 관한 학교의 자율성이 과거에 비해 높아지기도 하였다. 이렇듯 교육과정에 대한 권한은 국가에서 지역으로, 지역에서 학교로, 그리고 학교 공동체를 이루는 교사에게로 조금씩 이양되어 왔다.

올해 말 고시되어 2025년부터 적용될 예정인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과거의 국가 교육과정에 비해 교육과정의 자율성이 한층 더 확대될 전망이다. 교육부(2021)는 ‘교육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국가·사회적 요구를 반영하여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포용성과 창의성을 갖춘 주도적인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초·중등학교 교육과정’(p. 10)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피력하며, 새로운 교육과정의 네 가지 중점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①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역량 함양이 가능한 교육과정
② 학습자의 삶과 성장을 지원하는 맞춤형 교육과정
③ 지역·학교 교육과정 자율성 확대 및 책임교육 구현
④ 디지털·AI 교육환경에 맞는 교수·학습 및 평가체제 구축
 
이 가운데 세 번째 개정 중점인 ‘지역·학교 교육과정 자율성 확대’는 ‘교사 교육과정’ 논의와 가장 근접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교육부(2021)는 ‘학생의 요구와 학교의 여건을 고려한 학교 교육과정의 자율성 확대 및 지역·학교 간 교육격차 완화와 책임교육 구현’ 및 ‘다양한 교육 주체들의 역할과 전문성을 존중하는 상호협력 체제 구축 및 지역사회와 교육공동체 간 상호협조 체제 마련’(p. 10)을 골자로 교육과정의 자율화를 꾀하고 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꽃, ‘학교 자율시간’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학교 자율시간’의 신설이다. 학교 자율시간이란 초·중학교 교육과정에 새롭게 도입되어 학교가 교육과정을 자유롭게 설계하고 운영할 수 있는 시간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각 학교는 교과 및 창의적 체험활동의 20% 범위 내에서 시수를 가져와 매 학년별 최대 64시간을 확보하여 학교만의 과목이나 활동을 개발하게 된다. 따라서 새 교육과정에 담긴 학교 자율시간은 ‘교사 교육과정’을 구현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적합한 교육과정상의 장치라고 볼 수 있다.

학교 자율시간은 고등학교에서 ‘수업량 적정화’의 일환으로 각 교과의 1학점 수업량을 50분 17회에서 16회로 감축하고 남은 시간을 활용하여 학교가 교과 융합 수업이나 미이수 보충지도 등의 프로그램을 자율적으로 운영하도록 한 데에서 출발하였다. 고등학교에서 수업량을 16+1로 편성함으로써 학교가 교육과정을 자유롭게 편성하고 운영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한 것처럼,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초·중학교에서는 학교 자율시간을 통해 학교만의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구현할 수 있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주요사항』(교육부, 2021)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는 학교 자율시간에 필요한 시간을 다음과 같이 확보하여 운영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학교 자율시간’ 확보 및 운영 방안(교육부, 2021:20)>

학교 자율시간을 위해 국가(교육부)와 지역(서울특별시교육청)은 교육과정 상에 근거를 마련하거나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선택과목 및 활동을 개발하여 학교에 제공하며, 학교는 이를 토대로 지역과 연계한 다양한 과목이나 활동을 설계하여 운영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앞의 그림 내용이 명시하고 있듯이 학교 자율시간의 가장 중요한 취지가 ‘교사의 교육과정 편성·운영의 자율권을 확대’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위해 초등학교는 다양하고 특색 있는 지역 연계 교육과정을 운영하거나 학교의 여건과 학생의 필요에 따라 선택과목(활동)을 신설하여 운영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학년별 2개의 선택과목을 운영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학생들은 3~6학년까지 총 8개의 과목을 배울 수 있다. 지역과 연계된 과목이나 활동, 과학기술과 사회의 급속한 변화를 반영한 과목이나 활동 등이 사례로 제시되어 있으며, 이 외에도 학교는 ‘삶과 학습에 필요한 기초소양, 학습 진단과 개별 보정 교육, 진로 선택 활동 등을 교과목 및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편성·운영’(교육부, 2021:21)할 수 있다.

<학교 자율시간을 위한 학교 선택과목(초등) 예시(교육부, 2021:21)>

중학교에서는 지역과 연계되거나 특색 있는 교육과정 운영을 위해 시·도교육청 또는 학교장 개설 과목(활동) 개발을 활성화하는 것이 학교 자율시간의 기본 취지이다. 교사는 교과 교육과정에 제시된 내용요소 및 성취기준 등을 적극 활용하여 지역과 연계한 단원을 구성하여 프로젝트 활동 중심의 수업을 운영하거나, 여러 교과를 아우르는 주제(지역 연계, 인공지능, 지속가능한 미래 등) 중심의 과목을 개발하여 운영할 수 있다.

사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학교 자율시간’은 국가가 주도하는 정책이 아니라, 지역(시·도교육청)의 실험적인 시도를 국가의 정책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학교 자율교육과정이라는 이름 아래 여러 지역에서 실천해 온 교육과정 편성·운영의 자율적인 노력이 국가 교육과정에 공식적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다음 표에서와 같이 경기, 충북, 전북지역은 학교 수준에서 교육과정을 자유롭게 편성·운영해 온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된다.

[지역(시·도교육청)별 학교 자율교육과정의 사례]

학교 자율시간의 가능성과 이에 대한 우려

학교 또는 학년이 선택과목을 개발하면 지역의 특성과 연계하여 의미 있는 내용과 활동을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교 자율시간의 취지에 잘 어울릴 뿐 아니라 ‘교사 교육과정’을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된다. 앞서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주요사항의 학교 선택과목 예시 그림에 나와 있는 것처럼 3~6학년에서 동학년별로 특정한 과목을 선정하여 가르치게 되면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우리 학교가 만든, 우리 학교만의’ 과목을 최대 8개까지 배울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과목을 선정하고, 내용을 구성하며, 교재를 개발하고, 스스로 만든 교재를 가지고 가르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흔히 말하는 교사의 교육과정 역량도 의미 있게 향상될 수 있다.

그러나 자율성 확대는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교사의 부담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장 시간, 내용, 운영, 방법 등을 결정하려면 교사가 학교에서 해야 할 일이 늘어난다. 동학년이나 각 교과별로 선택 과목을 선정해야 하고, 그에 맞는 교재를 직접 개발하거나 인정 도서 또는 그에 준하는 교재를 선택해야 한다. 어쩌면 적당한 교재를 먼저 찾아보고 거꾸로 그에 맞는 과목을 개발하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학교나 학년에서 목소리가 큰 사람의 의견대로 하게 될 수도, 다른 사람이 하는 대로, 주변 학교가 하고 있는 것을 가져와 큰 물줄기에 편승하는 분위기도 어렵지 않게 예상된다. 실제로 학교 자율시간과 관련된 연구학교의 사례로부터 교육과정을 담당하는 부장과 학년부장의 업무 부담과 피로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교육과정의 변화 앞에서 ‘과거에 해 오던 대로’, ‘일을 맡은 사람이 알아서’, ‘가급적이면 부담되지 않게’ 하고자 하는 관성의 힘을 거스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이때를 틈타 외부의 영리 업체들이 학교 자율시간에 ‘쉽게 가져다 쓸 수 있는’ 과목, 교재, 학습지, 영상 자료 등을 앞다투어 공급할 것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이미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을지 모른다. 교사의 입장에서는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내용, 교재, 과목의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 않아 보인다. 학교가 자유롭게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운영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었는데 이렇게 되면 학교 자율시간의 본래 취지는 어느새 무색해지고, 쉽고 편한 방법을 찾으려는 빈틈을 다른 이들이 메우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속에서 우리는 학교 자율시간을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까? 우선 학교 자율시간이 아니더라도 교사로서 지금까지 의미 있게 실천해 온 프로그램이나 활동(온작품 읽기, 1인 1악기, 프로젝트 수업 등)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정리하여 ‘과목’의 모습을 갖추도록 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꾸준한 실천과 경험을 바탕으로 최소한 이것만큼은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무언가(과목, 프로그램, 프로젝트 등)를 가짐으로써 교육과정 전문가, 과목 개발자로서 교사인 나를 브랜딩하는 일은 앞으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동학년의 협력과 상호존중은 매우 중요하다. 콘텐츠를 많이 가진 사람은 그렇지 못한 교사들과 공유하고, 반대로 동료의 경험과 자료를 받아들이고 배우려는 열린 마음도 필요하다. 학년부장이나 교과주임(중등)을 중심으로 지혜를 모아가되 부장이 홀로 고군분투하지 않도록 동학년 교사들의 힘을 모을 필요도 있다. 동시에 각 교사들의 개성과 노하우가 ‘통일’이라는 이름으로 희석되지 않도록 학년 및 교과 단위에서의 과목 선택과 개발은 가급적 포괄적인 주제로 가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학교를 넘어 교사 집단 속에서 자발적으로 공유하는 문화도 필요하다.

교육과정 개발의 관점에서 본 학교 자율시간

학교 자율시간을 준비하며 국가는 아직 (어쩌면 앞으로도) 관심을 두지 못한, 그렇지만 교사의 입장에서 좀 더 힘을 내서 관심을 두어야 할 두 가지 지점이 있다. 그것은 ‘연속성’과 ‘위계성’이다. 다른 말로 하면 ‘쌓아가기’와 ‘확장하기’라고도 할 수 있다. ‘연속성’은 교사 개인의 입장에서 해가 바뀌더라도 학교 자율시간의 개발과 운영이 단절되지 않고, 자료와 경험치가 누적되어야 함을 말한다. 올해의 경험을 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터전으로 삼아 그 위에 쌓아갈 때 교사에게 교육과정을 ‘보고’, ‘알 수 있는’ 눈과 힘이 생긴다.

‘위계성’은 교사 개인을 넘어 학년 간의 연계를 말한다. 학교교육은 학년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이 사실이나, 어디까지 이번에 신설되는 것은 ‘학년’ 자율시간이 아니라 ‘학교’ 자율시간이다. 교사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학교 자율시간을 통해 연속적이고 위계적인 교육의 경험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학년 ‘간’의 대화가 필요하다. 학교 교육과정 워크숍 등의 기회를 통해 초반에 학교 자율시간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을 함께 그릴 수 있다면 정말 좋다. 그 학교에 근무하는 동안 어떤 학년을 가더라도 이만큼은 맡아서 가르치고 진급을 시키면 학생의 입장에서는 학교 자율시간이라는 이름으로 1년이 아니라 해당 학교급의 기간 전체를 체계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이듬해 교육과정 워크숍에서는 한 해의 실천을 돌아보며 조금씩 다듬고 발전시켜 갈 수 있다. 연계와 위계가 확보된 학교 자율시간이 정착되려면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경기도 D중학교의 경우, 지금의 평화 중심의 가치 교육과정을 만들기까지 약 8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것이 바로 학교와 교사 수준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의 대표적인 모습이자 ‘교사 교육과정’의 핵심이다.

나가며

교육과정 자율화에 대한 선행 연구들은 자율성에 대한 교원의 인식이 대체로 긍정적이라는 점을 보고한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자율에는 부담과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자율성이 한없이 늘어난다고 해서 마냥 교육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그러한 자유는 지침이나 문서가 설명하지 않는 빈 공간을 채워야 한다는 점에서 교사에게 환영을 받을 수도 없다. 교사 교육과정은 ‘주어진 자율성’(given autonomy)에서 ‘누리는 자율성’(appreciated autonomy)이 기초가 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한 가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교사 교육과정’의 종착지가 우리가 가르치는 학생들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학생들의 삶이 중심에 있어야 교사 교육과정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학생은 배움이 자신의 삶과 관련이 있을 때 그 즐거움과 의미를 획득한다. 지금껏 우리 교사들이 교육과정을 재구성을 하기 위해 노력해 온 것도 이러한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어느 정도의 시수를 어떻게 조정할지에 대한 제한 범위를 제시하거나, 재량활동, 창의적 체험활동 등의 자율적인 장치를 설정하는 방식 등으로 지금까지 학교와 교사에 주어진 자율성이 지극히 기술적이었다면 ‘교사 교육과정’은 이러한 방법론과 인식론(epistemology)을 넘어 존재론(ontology)으로 나아가야 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van Manen, 2015). 다시 말해 교사 교육과정에 대한 고민은 우리가 가르치는 한 학생이 누구이고, 어떤 존재인지를 인식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렇게 학생들의 ‘삶과 연계된 교육과정’은 교사 교육과정의 기본 전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 교육부(2021).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주요사항(시안). (2021. 11. 24.) 세종: 교육부.
• 김덕년·정윤리·최미현·김지연·고승선(2022). 교사 교육과정: 학생과 교사가 함께 성장하는. 서울: 교육과실천.
• 박수원·심성호·이동철·이원님·임성은·정원희·최진희(2020). 교사 교육과정을 디자인하다: 이론편. 서울: 테크빌교육.
• 유영식(2020). 수업 잘하는 교사는 루틴이 있다: 교사 교육과정과 역량중심수업의 모든 것. 서울: 테크빌교육.
• Van Manen, M.(2015). 가르침의 묘미: 교육적 기략을 통해 발견하는(김종훈·조현희 역, 2022). 서울: 학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