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연구2020 가을호(240호)

교육의 변화와 디지털 역량

 장은주 (마곡중학교, 교사)1

전자책이 등장하면서 ‘종이책이 언제까지 존재할까?’라는 물음이 생겼던 것처럼 각종 디지털 플랫폼은 교실이 없는 교육을 상상하게 한다. 종이책이 여전히 잘 팔리는 것을 보면, 디지털 세상에서도 학교는 어떤 형태로든 존재할 테고, 대면 소통이나 정서적·감성적 교감을 디지털 기기가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은 이제 우리 교육의 공간이 되었고, 우리에게는 이 환경에서 잘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필수 과제가 되었다.
유례없는 전염병으로 이제는 비대면으로 소통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원격수업 전면화를 경험하면서 디지털이 주민인 교사나 학부모는 디지털 원주민의 삶에 가까워져야만 했다. 영상을 촬영하고 디지털 공간에서 소통하는 것도 보편적인 삶의 모습이 되었다. 즉, 교육현장의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디지털 기기를 능숙하게 다루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디지털 환경에서 개인으로서 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사회적으로 강조되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 글에서는 원격수업을 계기로 강조된 디지털 리터러시, 미디어 리터러시, 디지털 역량 등의 의미를 살펴 보고, 향후 원격수업을 위해 고려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교육 환경과 소통 방식의 변화 : 원격수업의 명과 암

원격수업은 교사들의 헌신과 사회 각층의 협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원격수업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려면 먼저 교실에 태블릿이나 노트북, 와이파이망, 온라인 플랫폼 등과 같은 원격수업을 위한 인프라가 안정적으로 구축되어야 하고, 원격수업에 맞는 교수·학습·평가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육용 콘텐츠 이용·가공과 교사와 학생을 위한 심리·정서적 지원 등 제도적 기반 등도 갖추어져야 한다.

충분히 준비하고 원격수업이 실시된 것은 아니었지만 최근 원격수업에 대한 유의미한 결과들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학교급, 경력을 초월한 교사들의 협업이 이루어졌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온라인 공간에서 교수학습 자료와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학교 내에서는 교과와 경력을 뛰어넘어 디지털 역량에 능숙한 저경력 교사가 고경력 교사의 멘토가 되기도 했다. 온라인을 통한 학생 출결 관리 및 생활지도 등 낯선 상황에서 교사들은 마이크, 조명, 펜태블릿 등 새로운 장비에 적응하며, 영상을 편집하고, 저작권 문제를 확인해 가면서 수업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고, 학생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 교실 안에서 소극적이었을 아이들은 실시간 쌍방향 소통툴이나 패들렛 등의 앱을 이용하는 상황에서 더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수업에 참여하는 경우도 생겼다. 또한 학생들은 자신의 학습 속도에 맞게 콘텐츠를 반복 재생하기도 하면서 주도적으로 학습하기도 했다.
그러나 원격수업을 통해 디지털 공간에서의 소통과 관련된 문제점들도 드러났다.

첫째, 교사와 학부모의 디지털 역량, 가정 내 디지털 환경의 차이로 인한 디지털 격차이다.
원격수업 상황에서 학생이 이용할 수 있는 디지털 기기 존재 여부와 기기의 사양, 기기를 이용하는 공간의 특성, 그 리고 학생을 지도하는 교사와 보호자의 디지털 리터러시 차이가 극명히 드러났다. 이러한 디지털 격차는 학생 간 학습 격차로 이어지며, 이는 결국 사회적 양극화를 강화시킨다.


둘째, 가정에서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나 디지털기기 교육 방침을 학교의 원격 수업 상황과 조율해야 하는 문제도 생겨났다.
아이가 언제부터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도록 할지, 하루에 얼마나 이용하도록 할지, 오픈채팅방 등 소셜미디어에서의 소통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는 어느 가정에서나 고민거리일 것이다. 아이가 미디어에 접근하는 시기를 늦추고 싶더라도 원격수업이 디지털 기기나 소셜 미디어로 이루어지다 보니 가정과 학교 사이의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셋째, 디지털 공간에서 새로운 형태의 범죄에 노출될 위험도 커졌다.
디지털 정보는 편집이나 복제, 전송이 매우 용이하기 때문에 교사들은 수업에 쓸 콘텐츠가 저작권법에 저촉되지 않도록 유의하는 한편,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함부로 도용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또한 디지털 공간에서는 유용한 정보가 쉽고 빠르게 공유되기도 하지만 개인정보나 민감정보, 불법적이거나 유해한 정보, 가짜 정보가 유통되기도 하며, 타인을 사칭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그러므로 학생들은 소셜미디어의 소통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알아야 하고, 사이버불링 등에 노출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도 알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원격수업에서 나타난 문제들로 인해, 디지털 환경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고, 효과적으로 학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교육 내용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디지털 환경의 속성을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타인을 존중·배려하며 소통하는 태도도 필요하다. 이것은 디지털 리터러시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내용으로, 디지털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역량이다.

디지털 사회, 시민의 필수 요건 : 디지털·미디어 리터러시2

소통 환경의 변화에 따라 리터러시의 의미도 계속 변화해 왔다. OECD가 제시한 교과 교육과정 내용 체계화를 위한 역량에는 리터러시, 디지털 리터러시, 미디어 리터러시의 개념이 정의되어 있다. 3(Hobbs, 2010), 디지털 리터러시와 미디어 리터러시의 주요 역량의 관계를 좌측과 같이 제시하였다(Hobbs, 2018).

<디지털 리터러시와 미디어 리터러시 비교·대조 ( Hobbs, 2018)>

그렇다면 학교 교육에서는 디지털·미디어 리터러시를 어떤 내용으로 구체화할 수 있을까? 정현선 외 (2015)는 우리나라 학생들의 미디어 이용 실태와 해외 연구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수행 목표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위 수행 목표에 제시된 미디어를 디지털 미디어로 본다면, 미디어 리터러시의 교육 내용과 디지털 리터러시의 교육 내용은 많은 부분 중첩된다. 그런데 디지털 리터러시는 정보통신기술이나 리터러시 외에 시민성 등 여러 소양으로 논의되면서 디지털 역량, 디지털 시민성 등으로도 개념이 확대되고, 기관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되기도 한다.

원격수업 상황에서 더욱 강조되는 디지털 역량

그렇다면 해외의 학교 교육에서는 디지털 리터러시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선도적으로 실행해 온 영국, 프랑스, 핀란드, 캐나다 등은 교육과정에 미디어 관련 내용을 명시하거나 준정부기구나 비영리 단체 등을 통해 미디어 교육 내용을 구체화해 왔다. 최근에는 전통적인 미디어 개념에서 디지털 미디어로 확장하여 교육 분야에 적용하고 있으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 1인 미디어 등을 학습 주제로 설정하고 있기도 하다.4 핀란드는 교육과정 문서에 디지털·미디어 리터러시 관련 역량을 명시하였다. 국가교육위원회가 개정한 국가 교육과정에는 미래 사회를 대비하기 위한 7가지 교과 공통역량을 제시하였는데, 이 공통역량에는 ‘멀티 리터러시’와 ‘ICT 활용 능력’이 포함되어 있다. 한편, 아일랜드의 교육과정평가원(NCCA)에서는 학생의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함양을 지원하는 단기 코스를 개발하였고,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도 디지털 리터러시 프레임워크를 개발하였 다. 영국에서는 비영리 자선기구인 남서부학습그리드(SWGfL)에서 교육자료를 개발해 무료로 제공하였다.
이 자료들은 디지털 리터러시 하위 역량을 분류하고, 학년(군)별로 도달해야 할 수준을 정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유럽연합위원회에서는 ‘디지털 리터러시’ 대신 ‘디지털 역량’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시민을 위한 기본 교육으로서 생활 전반에 적용되는 역량으로 그 개념을 확대하였다. 그래서 디지털 역량을 “업무, 여가, 참여, 학습, 사회활동, 소비, 역할 수행을 목적으로, 과제 수행, 문제 해결, 의사소통, 정보 관리, 협업, 콘텐츠 창작과 공유를 위해 ICT와 디지털 미디어를 효과적 · 비판적 · 창조적 · 자율적 · 윤리적 · 반성적으로 사용할 때 요구되는 지식, 기능, 태도(능력, 전략, 가치와 인식 포함)”로 정의하였다. 최근에는 기존에 3수준으로 제시했던 디지털 역량을 8수준으로 확대하고, 각 수준에서 요구하는 역량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유럽연합위원회에서 제시한 디지털 역량과 각 역량별 하위 역량은 다음과 같다(European Commission, 2017)

이러한 디지털 역량은 학생은 물론, 교육자에게도 필요하다. 디지털 역량을 바탕으로 원격수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고민해야 할 것들을 몇 가지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디지털 환경에 맞는 교수 · 학습 · 평가 설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디지털 공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교실 안에서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학습, 교실과 온라인 공간을 병행한 학습, 온라인 공간에서만 이루어지는 학습 모두 가능하다. 학생의 잠재능력을 끌어내기 위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어떻게, 어떤 목적으로 배치할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또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하며 소통하는 가운데, 학습을 유도하기 위한 동기유발 방법이나 개인별 학습 속도와 관심 등을 고려한 개별화 교육을 활성화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

둘째, 풍부한 디지털 자원을 수업에 활용하되, 학생들이 스스로 탐구하거나 새로운 정보와 콘텐츠를 생산 하도록 하는 교수 · 학습 모형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정보와 콘텐츠를 재구성하거나 새로운 정보와 콘텐츠를 효과적으로 생성해내는 능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자원을 활용하는 능력이 길러질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소통과 협업을 위한 능력이 디지털 공간에서 소통을 통해 함양되어야 한다.
디지털 공간에서는 지역·연령·가치관·취향 등이 전혀 다른 이와 쉽게 접촉할 수 있는데, 이것은 위기이기도 하고 기회이기도 하다. 소통하는 공간 자체가 안전하고 소통의 규칙이 적절하게 지켜진다면,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고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하며 소통 과정에 능동적이고 합리적으로 참여하면서 사회적 의제에 대해서 숙의하는 경험도 필요하다.

넷째, 안전한 디지털 환경을 만들기 위한 방법을 찾아 실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초상권, 저작권, 개인정보 등 정보윤리를 실천 규범 수준으로 구체화해야 한다. 정보윤리는 디지털 환경에서 자신을 지키고, 타인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사회적 차원에서도 안전한 디지털 환경을 위한 제도적 · 물리적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다섯째,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디지털 역량 교육을 위해 디지털 역량을 수준별로 체계화하여 초 · 중등 교육 내용에 포함하고, 예비 교원 양성 및 교사 재교육 과정에도 디지털 역량을 필수적으로 포함해야 한다.
원격수업의 경험은 학교의 중요성을 확인하고 교사의 역할을 새롭게 정립해 가는 계기이기도 했다. 이후에도 원격 수업은 등교수업과 병행하면서 우리 교육 환경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원격수업을 위한 환경을 안정적으로 구축하는 동시에 학생들이 미래 사회를 주도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급변하는 교육 현실에서도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논의해야 할 것이다.

※ 참고문헌
계보경(2017) 해외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과정 및 프로그램 운영 동향, 연구자료 RM 2017-5.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이미경(2018). OECD Education 2030 교육과정 내용 맵핑 참여 연구,RRC.2018-12,한국교육과정평가원.
정현선·박유신·전경란·박한철·이지선·노자연(2015) 미디어.문해력(Media.Literacy)향상을 위한 교실수업 개선 방안 연구,교육부.2015-12.
European.Commission(2012) Digital Competence in Practice : An.Analysis of Frameworks, Luxembourg: Publications office of the European Union.
European Commission(2017) DigComp 2.1: The Digital Competence Framework for Citizens with eight proficiency levels and examples of use Luxembourg : Publications office of the European Union
Hobbs,.R(2010)..Digital.and.media.literacy:A.Plan.of.action Washington,D.C. : Aspen.Institute.
Hobbs,R(2018) Media.and.Meaning-Making in the Fake News Age (email.interview) by Alison Head & Margy MacMillan, Project.Information.Literacy,Smart. Talk.Interview, no.29.(30.January.2018)
Livingstone,.S.(2004) Media Literacy and the Challenge of New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ies, The Communication Review,7(1),3-14.
OECD(2019)Education 2030 Curriculum Content Mapping : An Analysis of the Netherlands curriculum proposal, OECD.

  1. 현재 교육부 민주시민교육과 파견 중
  2. 디지털 리터러시와 미디어 리터러시의 관계는 학자나 기관마다 조금씩 다르게 서술된다. 두 개념을 대등하게 보는 경우도 있지만 미디어 리터러시를 디지털 리터러시의 하위 요소로 보기도 한다. 두 개념이 상당 부분 중첩되기만 각각 고유의 영역이 있고, 모두 디지털 시대에 중요한 교육 내용이다. 이 글에서는 두 개념을 함께 지칭하기 위하여 ‘디지털·미디어 리터러시’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3. OECD에서 설정한 교과 교육과정 내용 맵핑(CCM)의 역량 범주는 ⑴ 기초 소양, ⑵ 기능, 태도, 가치 구인, ⑶ 주요 개념, ⑷ 변혁적 역량 및 역량 개발, ⑸ 복합 소양의 5개로 나뉘며 총 28개의 역량이 제시되었다.
  4. 해외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에 대해서는 계보경(2017)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