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교육2022 여름호(247호)

[난민 수업] 타자의 얼굴과 이름을
찾아주는 세계시민교육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적용한 난민 수업

이지혜(서울미동초등학교, 교사)

나의 세계시민교육은 ‘삶의 우연성을 깨닫는 교육’

세계시민교육이 막연한 까닭은 추구하는 세계시민이 집단의 얼굴, 다중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급격한 사회변동과 예상할 수 없는 글로벌 이슈에 대해 세계시민은 어떻게 행동하고 판단해야 하는가? 세계시민교육은 수업의 소재가 전 세계로 확장된 수준을 넘어 공동체에 요구되는 세계시민성을 밝히는 것이어야 한다. 세계시민성의 모호성을 극복하기 위한 나의 세계시민교육 목표는 ‘삶의 우연성을 깨닫는 교육’이다. 누스바움(Nussbaum, 2019)은 ‘모든 인간은 평등한 존엄성과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출생이나 국적 같은 우연이 공동의 책임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 삶의 우연성은 그가 태어난 국가, 성별, 인종, 생애 환경, 신체 조건, 시대 등 무수한 곳에 걸쳐져 있다. 삶의 우연성을 깨달은 인간은 내가 누리는 것들이 삶의 우연함으로 비롯된 것을 아는 양심을 가진 사람이다. 또한 타자가 겪는 고통 또한 삶의 우연함 때문임을 깨닫고 내가 누리는 것을 타자와 나눌 줄 아는 책임을 가진 사람이다. 삶의 우연성으로 접근하는 세계시민교육의 이점은 타자에 대한 양심과 책무를 가진 세계시민으로서 그가 가져야 할 구체적인 삶의 행동 양식을 제시할 수 있다. 또한 다른 세계의 시민을 다중의 얼굴 없는 집단이 아닌 저마다 고유한 생애를 가진 ‘특정한 개별자’로 인식할 수 있게 한다. 삶의 우연성을 깨닫고 타자의 얼굴과 이름을 찾아가는 과정을 교육으로 표현하는 것은 타자의 생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겠다는 세계시민의 우호적 선언을 경험하는 것이다. 또한 개별자로서 타자가 지닌 존엄과 역량이 타고난 조건에 의해 저해되지 않도록 세계시민으로서 타자를 도와야 한다는 연대의 요청을 수락하는 것이기도 하다.

왜 보이텔스바흐 합의인가?

삶의 우연성을 깨닫고 타자의 얼굴과 이름을 찾아주는 세계시민교육을 실천하기 위해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적용한 난민 수업을 실행하였다. 본 수업은 난민 수용 찬성과 반대로 대별되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이동과 이주가 자유로운 세계화 시대에 ‘인간이 누구와 살지 선택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인간 존재를 찬성하고 반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기존의 난민 수업처럼 존재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토론하는 것이 아닌 타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난민과의 공존 가능성을 묻고 상상하는 수업, 즉 타자의 이름과 얼굴을 찾아주는 수업을 만들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세계시민교육을 상황에 대한 비판적 판단이 배제된 교조적, 정서적 호소에만 머무르게 한다고 비판받을 수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난민으로 인해 벌어지는 사회적 쟁점들을 수업의 소재로 삼았다. 양측의 쟁점을 심층적으로 파악하고 그 속에 존재하는 타자의 이름과 얼굴을 발견할 수 있게 구안하였다. 이때 쟁점을 재구성하는 수업 원리로 삼은 것이 보이텔스바흐 합의이다. ‘보이텔스바흐 합의’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에 대한 학문적·정치적 논쟁이 교실에서도 드러나야 한다는 정치교육의 원칙으로 독일 정치교육의 헌법이라 평가받는다.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강압 금지, 논쟁성 재현, 학습자 이익 상관성 세 가지를 원칙으로 한다. 이를 적용한 수업은 쟁점으로 비롯되는 갈등 상황을 접하고, 조정과 합의의 과정을 경험함으로써 학습자들의 상호 이해와 타협의 능력을 신장시킬 수 있다(이지혜, 2020).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정치교육에 있어서 합의된 최소한의 원칙을 의미하는 것이다. 최소 원칙이 갖는 의의를 왜곡하지 않기 위해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적용한 수업이란 어떠한 수업의 절차나 모델이 아니라 교사가 수업을 조직하고 실행하는 데 필요한 점검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어야 한다. 보이텔스바흐 합의 실행과 관련한 여러 선행연구를 참고하여 본 수업에서 달성하고자 하는 보이텔스바흐 합의의 실행 요인을 아래와 같이 마련하였다.

[보이텔스바흐 합의 적용 수업의 실행 요인]

보이텔스바흐 합의 활용 난민 수업의 실행

보이텔스바흐 합의의 실행 요인에 따라 계획된 난민 수업 흐름은 아래 표와 같다. 1차 수업에서는 난민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수집하여 타자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우리 사회와 난민과의 연관성을 살펴본다. 2차 수업에서는 교육연극기법을 통해 난민의 여정을 정서적으로 이해하고, 제주도에서 벌어진 난민 사태를 에피소드 형식의 역할극으로 재구성하여 해당 쟁점과 그와 관련된 개인들의 삶의 배경을 파악해본다. 2차 수업을 통해 쟁점 속의 개별자로서 타자의 이름과 얼굴을 발견하고자 한다. 3차 수업은 앞선 수업을 바탕으로 깨닫게 된 평화가 무엇인지 각자의 정의를 내리고 평화와 공존을 위한 지속적 실천을 다짐하며 마무리 짓는다. 수업 후 난민과 공존에 대한 인식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수업 전후 학습지를 제공하였다. 본 수업은 2019년 5학년 1개 학급을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보이텔스바흐 합의 적용 수업의 점검 요인에 따른 수업 계획]

[1차 수업] 깨트리기: 난민에 대한 편견

[1차 수업 개요]

위의 내용은 온 책 읽기를 하며 정리한 결과물 중 하나를 예시로 정리한 것이다. 온 책 읽기에서는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진 책들을 선정하였다. 난민에 대한 정보나 사례를 제공하는 책, 난민 소녀들의 우정을 다룬 동화책, 난민의 여정을 조약돌 사진으로 나타낸 책 등이다. 논쟁성을 재현하되 수업 부담을 고려하여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동화책과 중학년 수준의 도서로 책을 선정하였다.

온 책 읽기로 난민의 뜻과 조건을 알고 난 후에는 ‘우리나라에도 난민이 있었을까?’ 라는 질문으로 다음 시간을 이어갔다. 학생들에게 난민과 나의 생활, 나의 뿌리와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게끔 의도한 질문이었다. 학생들은 이 질문을 처음에는 ‘우리나라에도 난민이 (와)있었을까?’로 이해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한국인과 난민은 쉽게 연결 지을 수 없는 동떨어진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1차 수업으로 난민에 대한 개념적 정의, 이야기를 통한 난민의 삶 등을 파악하였다. 더불어 난민 신분으로 업적을 남긴 위대한 인물들을 통해 난민의 역량 발휘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었다. 또한 우리 역사 속 난민에 대해 찾아보며 우리나라와 난민의 연관성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우리 독립운동가들을 중국에서 내쫓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혹은 ‘아인슈타인을 받아준 국가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와 같은 질문을 통해 그들이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데는 난민을 향한 해당 국가의 포용이 있었다는 점을 상기시키지 못한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2차 수업] 느끼기: 아콱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2차 수업 개요]

난민에 대한 정서적 이해를 할 수 있도록 교육연극기법을 활용하여 난민의 여정을 표현하였다. 교실에 있는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평화로웠던 조국의 삶에서부터 안전한 육지에 닿기를 바라는 보트피플(boat people)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경험하게 하였다. 25명의 학생들은 평화롭고 안전했던 가상의 나라의 시민에서 시작한다. 전쟁 등 그들의 평화를 위협하는 몇 가지 사건이 일어나는데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난민으로서의 여정에 함께 할 수 없게 된다.

난민 연극을 하고 보니 난민들이 불쌍한 것 같다. 처음에는 난민이 뭔지도 몰랐고 선생님께서 갑자기 난민 수업한다고 하셨을 때 그냥 거지 느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수업을 할수록 머리에서 그 생각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갑자기 전쟁이 나서 외국까지 가는 동안 가족, 친구, 물건도 다 잃으면서 갔는데 그 나라 사람들의 시선도 안 좋고 차별당하기 때문이다. 나는 연극을 했을 뿐인데 진짜 난민은 얼마나 힘들고 슬펐을지 상상도 안 간다.어느 날 갑자기 집을 잃고 가족도 잃으니 약간 이산가족이 생각나기도 했다. 난민이 어떤 나라에 가면 그 나라 사람들은 ‘왜 우리나라에 와?’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생각을 버려야 한다. 난민을 같은 지구인이라고 생각하고 난민이 생활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난민의 여정 몸짓극 소감문 중 일부)

학생들은 몸짓극 이후 소감에서 ‘갑자기’ 나라를 떠나게 된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하며 난민에게 벌어진 삶의 우연성을 발견하였다. 또한 ‘난민을 도와주어야 할까?’라는 질문 없이 난민을 도와주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찾아냈다.

다음 활동은 ‘제주도 이야기’ 역할극으로 주어진 역할에 따라 제주 예멘 난민 상황을 이해한다. 에피소드 제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난민과 비난민 그룹에 따라 동일 상황 속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제주 예멘 난민과 관련한 사회적 쟁점을 심층적으로 파악하고, 쟁점 속에 처한 인물들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통해 타자의 생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이 활동에는 역할 카드와 상황 카드가 필요하다. 역할 카드에는 난민, 서울 사람, 제주도 사람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뒷면에는 그 사람의 이름, 나이, 하는 일, 살아온 환경에 관한 정보가 적혀있다. 상황 카드에는 제주 예멘 난민 쟁점과 관련된 사회현상이 적혀있다. 상황 카드는 난민에 대한 서로 다른 주장, 제주도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감이나 불만 등을 뉴스와 기사 댓글을 참고하여 재구성하였다. 상황 카드는 자신의 것만 받을 수 있는데 역할극이 진행되면서 처음에는 몰랐던 서로의 입장을 알게 된다. 에피소드는 낯선 타자와의 만남으로 비롯된 갈등 상황으로 시작하지만, 인물 카드와 상황 카드의 내용들이 하나씩 공개되며 개별자로서 이름과 얼굴을 서로 발견하게 된다.

<‘제주도 이야기’ 역할극 장면>

각각의 상황은 난민의 등장으로 제주도 여성들이 느끼는 불안감, 전에 한 적 없는 3D(힘들고, 더럽고, 위험한)노동을 제주도에서 강요받은 난민의 입장, 난민 수용을 두고 벌이는 서울 사람과 제주도 사람 간의 입장 차이 등을 다뤘다. 학생들에게 이 논쟁들은 모두 실제로 벌어진 것임을 알리고, ‘난민과 한국인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난민과 한국인의 차이가 너무 크고, 한국인이나 난민이나 서로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친구가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의견을 보였다.

다음 상황은 학습자 자기 맥락화를 실행하기 위한 가상의 상황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제주도 어린이 지호와 지수, 예멘 어린이 아콱과 사미가 노래와 축구로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시간을 공유하게 된다. 이 상황 후 같은 질문을 하였다. 이 학생들은 서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모든 학생들은 그들이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응답하였다. 그 이유는 나라에 상관없이 서로 공통점이 있고 그것을 공감하며 나눌 수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였다.

마지막 상황은 난민 수용에 대한 결정의 순간을 재현하였다. 정책을 마련해야 하는 정치인과 다른 나라로 떠나야 할지, 기다려야 할지 고민하는 난민의 입장이 드러난다. 정치인 역할을 맡은 학생들이 내놓은 결과는 난민이 제주도에 남도록 허용하되 제주도 사람들과 잘 지내야 하는 조건부 허용이다. 찬성의 근거는 우리도 예전에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난민도 안전하게 살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받아주지 않으면 또 먼 길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등이 있었다.

정리 활동으로 난민과 비난민들이 짝을 지어 서로의 공통점을 확인한 후 평화 인사를 만들어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핸드셰이크(hand shake)는 단순한 악수가 아니라 함께 안무를 짜고 외워야 한다. 핸드셰이크의 합을 맞추기 위해서는 그들의 동작이 자연스럽게 완성될 때까지 손을 맞잡고 연습해야 한다. 핸드셰이크 평화인사 만들기 활동은 몸짓이라는 공통된 언어를 사용한 것으로 난민과 비난민의 소통과 화합의 가능성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이 활동에 대해 학생들은 ‘피부색, 종교, 언어, 성이 달라도 마음만 먹으면 친구가 될 수 있다.’, ‘핸드셰이크를 잘하려면 두 사람이 거울같이 움직여야 하는데 이 활동을 하면서 사람은 모두 다르지만 누구나 같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평화란 핸드셰이크다. 평화와 핸드셰이크 모두 적어도 2명이 필요하고, 서로 생각이 달라도 맞추면 되고, 공통점을 찾고 친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등 공존과 화합의 가능성을 찾아낸 응답을 보였다.

[3차 수업] 표현하기: 평화와 공존을 상상하다

[3차 수업 개요]

3차 수업의 첫 활동으로 존 레논의 Imagine을 들으며 평화에 대한 영감을 떠올리고 존 레논처럼 자신만의 평화를 표현할 수 있게 하였다. Imagine에 맞춘 김연아 선수의 피겨스케이팅 안무를 보며 곡의 분위기가 어떠한지, 무슨 가사를 담고 있을지 예상하게 하였다. 다음으로 Imagine의 가사를 그림으로 표현한 책 『이매진』(존 레논, 2017)을 함께 읽었다.

『이매진』에서는 평화의 상징 비둘기가 인간을 상징한다. 이것과 연관하여 평화 비둘기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꾸미고, 공존의 마음을 담아 올리브 가지 대신 평화 메시지를 붙인다. 평화 비둘기를 꾸민 후에는 자신이 생각하는 평화와 공존의 정의를 발표하고, 그것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여 공언한다.

학생들이 생각하는 평화와 공존의 정의로는 ‘공존이란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평화란 나의 삶이다.’, ‘평화란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것이다.’ 등 삶이나 생활과 연결하여 표현하였다. 평화를 위한 노력으로는 ‘난민을 만나면 도와주기’ 등 수업 주제와 직접 관련한 것도 있었지만 평화의 범위를 확장시켜 ‘세계에 일어나는 일에 관심 갖기’라고 응답하거나, ‘어느 나라 사람이든 친절한 마음 갖기, 친구와 전쟁 벌이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기’ 등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평화와 공존의 방법을 이야기하였다.

3차 수업의 아쉬움으로는 평화를 표현한 후 실천 의지를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다. 예를 들어 나만의 평화 비둘기를 그려 지속적으로 사용한다거나, 존 레논 같은 예술가처럼 나만의 평화를 타인에게 표현하는 발표회 등의 방법이다.

[수업 결과] 만나기: 같은 지구인으로

<수업 전후 서클맵 결과 예시>

수업 전후의 서클맵 학습지를 비교하여 총 3차에 걸친 수업 효과를 살펴보았다. 학생들의 서클맵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보이는 변화는 먼저 난민에 대한 고정관념 변화다. 이전에는 난민을 터번, 히잡을 두른 사람이나 보트에 타고 있는 사람으로 한정되어 인식했었다. 수업 후 결과지에는 인종, 성별, 배경 등 난민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의 유형이 훨씬 다양하게 나타났다. 이는 학습자들이 난민이란 어떤 전형성을 갖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연하고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난민이 된 것을 깨달았음을 뜻한다.

다음으로는 ‘난민에게 묻고 싶은 말’이라는 질문에서 가장 다른 답변을 보였다. 수업 전 학생들은 난민에게 묻고 싶은 말에 대해 왜 난민이 되었는지를 가장 많이 적었다. 하지만 수업 후 난민에게 묻고 싶은 말은 ‘고국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가족이 몇 명인지’ 등과 같은 개인에 관한 구체적인 질문을 던졌다. 수업 이후 난민이라는 집단성을 벗어나 난민을 개별자로서 인식하려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역할극 활동을 통해 개인의 생의 배경을 파악하는 것이 갈등과 오해를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함으로써, 공존을 위한 타자의 얼굴과 이름을 찾는 타자와의 의미 있는 대화를 시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서클맵 비교를 통해 학생들은 난민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파악하고, 우연한 사건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에게 같은 지구 공동체에 살고 있는 세계시민으로서 ‘난민을 도와야겠다,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겠다’ 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는 난민을 저 멀리의 낯선 사람이 아니라, 오늘의 세상에 함께 존재하는 세계시민으로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마음에 무늬를 새기는 세계시민 수업을 꿈꾸며

본 수업은 난민이라는 사회 쟁점을 소재로 삼아 삶의 우연성을 깨닫고 연대의 필요성과 책임감을 갖는 세계시민을 키우는 데 목적이 있다. 감각으로 인식하는 막연한 세계시민의 상이 아닌 구체성을 띠고 실존하는 세계시민으로서 개별자의 모습을 떠올리기 위해,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통해 쟁점을 심도 깊게 드러내면서 그 속에 숨겨진 타자의 얼굴과 이름을 발견할 수 있게 하였다.

총 3차의 수업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학생들이 평화 인사를 만들며 깔깔 웃고 신나게 즐기는 모습이었다. 학생들은 처음 역할극을 시작할 때 난민과 비난민으로 나뉘어 앞으로 일어날 갈등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던 것과는 달리, 평화 인사를 만든 이후에는 갈등 해소의 가능성과 공존의 방법들을 적극적으로 피력하였다. 쟁점을 파악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타자와의 낯선 만남에 대한 경계가 허물어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울림은 곧 사라지지만 무늬는 항상 남는다. 비록 역할극이지만 예멘에서 축구를 좋아했던 아콱과 한국에서 게임을 좋아하는 지호가 만나 서로를 소개하며 몸짓이라는 공용의 언어로 그들만의 인사를 만들어내며 기쁨과 즐거움을 느꼈다. 그 과정에서 타자를 이름과 얼굴을 지닌 개별자로서 인식하는 것의 필요성, 그와 나누는 의미 있는 소통의 가능성에 대해 감동을 느꼈다면 이 수업은 학생들의 마음에 작은 무늬로 남지 않았을까.

학생들은 예측 불가능하고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사회의 문제들을 계속해서 만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본 수업을 통해 세계시민으로서의 삶의 우연성이 마음의 무늬로 남은 학생이라면 판단의 혼란을 겪을 때마다 가슴 속에 남겨진 무늬가 선택의 지침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삶의 우연성이라는 무늬의 원리가 어떻게 하면 개별 시민의 차원을 넘어 서로와 연대하는 공동체로 확장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교사들의 지속적인 실천과 반성, 나눔과 공유를 통해 밝혀질 수 있길 기대한다.

참고문헌
• 이지혜(2020).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적용한 평화 수업의 실행. 글로벌교육연구, 12(4), 109-138.
• Lennon, J. & Amnesty International(2017). Imagine. 공경희 역(2017). 이매진. 서울: 사파리.
• Nussbaum, M.(2019). The Cosmopolitian Tradition: A Nobel but Flawed Ideal. 강동혁 역(2020). 세계시민주의 전통 고귀하지만 결함 있는 이상. 서울: 뿌리와 이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