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칼럼2022 가을호(248호)

내일이 기다려지는 학교

양신호(서울특별시교육청교육연수원, 원장)

어떤 사람들은 요즘 학교가 위기라고 말한다. 코로나19가 학교의 필요성과 존재 이유를 많이 감소시켰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학교는 언제나 학생들과 교사가 함께 소통하고, 웃고, 꿈을 키워나가는 공간이며 또 그런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학교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선생님과 학생 간의 소통이 훨씬 더 어려워진 상황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서로 표정을 보면서 대화를 해도 속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운데, 마스크를 쓴 채로 대화를 하다 보니 답답하고 불편하기만 한 것이다. 교사로서 학생들과 잘 소통하는 것만큼 기쁘고 즐거운 일이 어디 또 있으랴. 특히나 학생들과 멋진 하모니를 이루어 재미있게 수업을 한 날은 교사로서 얼마나 가슴 벅차고 자존감이 높이 올라갔던지. 하지만 코로나19와 더불어 시작된 원격수업과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거리두기 수업 환경에서는 학생들과 소통하면서 협력하는 수업이 요원해져 안타까울 뿐이다.

선생님들에게 “당신은 어떤 교사가 되고 싶은가?”라고 묻는다면 누구나 ‘좋은 선생님’이라고 답할 것이다. 내 주위에서 본 몇몇 선생님들을 떠올려보며 ‘좋은 선생님’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40대 중반의 김 선생님은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특히 수학을 포기했거나 싫어하는데 어쩔 수 없이 선택교과를 수학으로 정한 학생들이 대부분인 문과 반에서! 수학을 가르친다는 것은 정말로 힘든 일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그런 교실에서는 수학 시간에 고개를 들고 선생님 수업에 집중하는 학생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도 김 선생님은 쉬는 시간이나 공강 시간이나 할 것 없이 늘 수학책과 씨름을 하고 있다. 수업을 듣는 학생도 많지 않을 테고, 이미 경력으로 볼 때 수학 교과서에 나와 있는 문제쯤은 다 외우고도 남을 텐데 여전히 문제를 푸는 데 집중한다.
“김 선생님! 수학 문제 푸는 게 지겹지도 않으세요?”
김 선생님이 허허 웃으며 대답한다.
“대부분 학생들이 수학을 어려워하니까 좀 더 쉽게 가르치고 싶어서 그래요. 문제를 풀고 또 풀다 보면 새로운 접근으로 쉽게 풀리는 경우가 있어요.” 김 선생님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여전히 공강 시간에 수학 문제를 풀고 있다. 아마도 김 선생님은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이 무척이나 재미있나 보다.

중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50대의 이 선생님이 있다. 이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실험을 활용하여 어려운 과학 이론을 설명하는 것을 좋아한다. 또 공강 시간은 수업 관련 내용을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새로운 실험 도구를 고민하고 고안하는 데 할애한다. 물론 과학실에는 실험 기구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도 이 선생님은 고집스럽게 실험 도구를 설계하고, 실험에 활용할 도구를 직접 사고, 붙이고, 각종 도구들을 이용하여 제작하고, 이를 수업 시간에 활용한다. 그리고 학생들에게는 실험 보고서 작성을 꼭 당부한다. 이 선생님의 책상 위에는 학생들이 놓고 간 노트가 늘 수북이 쌓여 있다. 물론 이 노트들은 퇴근 시간 이후에도 이 선생님이 학교에 남아서 해야 할 일이다. 이 선생님은 보고서 하나하나를 꼼꼼히 읽고 코멘트를 달아 준다. “준호야, 오늘 실험 시간에 조원들이 모두 하기 싫어하는 뒷정리를 네가 맡아줘서 참 보기 좋았어.” 언젠가 퇴근 무렵에 우연히 본 이 선생님의 차 뒷좌석은 온통 실험 도구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마도 이 선생님의 과학 시간을 학생들은 내일도 기다릴 것이다.

정년을 5년여 앞둔 박 선생님은 여자고등학교에서 체육을 가르치고 있다. 박 선생님은 수업을 대충 준비하지 않는다. 체육 교사라고 해서 모든 운동을 다 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박 선생님은 운동기구를 사서 본인이 먼저 충분히 연습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다음에 수업 시간에 먼저 학생들에게 운동 자세의 시범을 보이고, 늘 학생들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한다. 어느 날은 학생들과 체육관에서 신나는 음악 소리와 함께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엑슬라이더를 타고, 느리게 가는 사이클을 탄다. 또 어느 날은 학생들과 소프트볼을 하고, 테니스를 치고, 골프채를 휘두르고, 소총으로 BB탄 사격을 한다. 그리고 어느 날은 체육대회 날도 아닌데 흙으로 된 운동장에 백회로 육상 트랙라인이 정성들여 그려져 있다. 박 선생님은 이곳에서 학생들과 배턴 터치와 이어달리기를 연습한다. 이런 여러 가지 운동 중에서 하나쯤은 학생들도 재미있게 하는 운동이 생기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박 선생님이 처음 발령을 받았을 때부터 지금껏 수업일기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한 시간 수업을 위해 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수업이 끝난 후에는 자신의 수업에 대하여 잘된 점과 그렇지 않은 점에 대하여 성찰해 보는 수업일기를 정년을 앞둔 지금까지 써 오고 있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숙연해진다. 나도 이런 박 선생님 같은 분을 체육 선생님으로 만났으면 체육을 좋아했을 텐데, 나에게는 불행하게도 그런 체육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아마 박 선생님은 오늘도 학생들과 호흡을 맞춰 교과 전용 교실인 운동장에서 체육 시간을 이끌어 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정든 운동장에서 정년을 맞이할 것이다.

내 주변에 이런 선생님들이 점점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니 이미 많이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알지 못할 뿐. 서울교육이 꿈꾸는 ‘더 질 높은 교육, 더 따뜻한 교육, 더 평등한 교육’도 학생들의 성장을 위해 묵묵히 노력하는 이런 선생님들로부터 나오지 않을까? 나도 이 여름, 힘을 다해 이런 선생님들의 아름다운 노력을 따라가 보고자 한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수업을 가지고 사랑스런 학생들을 만나는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여름방학이 끝난 시원한 가을날 아침이 기다려진다. 모든 교실이 웃음으로 가득찰 것 같다. 그런 학교의 내일이 기다려진다.

오늘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강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날이다. 강 선생님은 올해 8월 말로 40년 정든 교직을 떠나신다. 코로나19와 더불어 더 어렵고 각박해진 교단에서 평교사로 꿋꿋하게 학생들과 소통하다 정년을 맞이하는 강 선생님께 후배로서 정말 존경스럽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강 선생님! 존경합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더불어 강 선생님이 우리에게 전해준 것처럼 평생 교사로서의 소박한 꿈을 꾸는 우리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