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교육2019 봄호 (234호)

두려움 없는 글쓰기를 위하여

박경희 (서울과학고등학교, 교사)

“글쓰기는 어릴 때부터 좋아하지 않았어요. 초등학교 때 일기나 독후감 같은 숙제를 할 때마다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고, 항상 잘 쓰지 못하고 끙끙대다 밤늦게 대충 쓰고 끝내는 경우가 많았었죠.

중학교 때는 학교에서 글쓰기를 항상 피하려 하면서 대충대충 넘겼던 것 같고, 고등학교에 와서도 독후감을 몇 번 썼지만 억지로 써야 하는 글이 많아서 글쓰기가 더 싫다고 느끼게 된 것 같아요.

평소에 글쓰기를 할 때면 글을 쓰는 데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몇 줄 쓰다가 딴 짓을 하는 경우가 많고, 심하면 아예 나중으로 미룰 때도 있어요. 그래서인지 머릿속에 글쓰기는 어렵고 힘들다는 인식이 박혀 버린 것 같아요. 자신감도 줄어들고요.”

학교에서 글쓰기에 대한 이러한 고백을 듣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무엇인가 쓰고 싶거나 써야 할 일이 생겼을 때 책상 앞에 앉아 막힘없이 써 내려가는 필자, 이것은 누구나 꿈꾸는 모습이지만 현실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다. 쓰기는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사고 과정을 필요로 한다거나 현재의 학교교육에서 글쓰기를 제대로 하기 위한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을 그 원인으로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것은 학생들이 겪은 그간의 경험들로 인해 글쓰기는 어렵고 힘든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어 글쓰기의 흥미로운 세계로 한 발 내딛는 것조차 두려워하기 때문은 아닐까?

다음의 몇 가지 사례는 학생들이 이러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연스럽고 흥미 있게 글쓰기에 접근할 수 있었던 실천적인 쓰기 수업의 일부이다. 이 내용이 단초가 되어 많은 쓰기 교실에서 더욱 즐겁고 풍성한 글쓰기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1. 프리라이팅(free writing)

프리라이팅은 맞춤법이나 문법, 글씨 등에 구애받지 않고 생각나는 것을 자유롭게 쓰는 것이다.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는 이유 중에 하나가 처음부터 완벽하게 글을 써야 한다는 중압감이다. 글감과 관련하여 떠오르는 생각을 멈추지 말고 써 내려가다 보면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을 줄이면서 흥미를 돋울 수 있다. 프리라이팅은 주어진 시간 동안 가능한 한 많은 양을 써 보는 경험을 하는 것이므로, 쓰다가 막힐 때는 앞의 내용을 반복하여 쓰거나 쓸 내용이 없다는 고백을 적어도 된다.

학생들의 수준과 흥미에 따라 처음에는 단어를 제시하면서 1 ~ 2분 정도 글쓰기를 하다가 점차 주제를 다양화하고 시간도 늘려 가면 좋다. 수업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수도 있고, 과제로 제시하면서 학생 스스로 프리라이팅 훈련을 하도록 지도할 수도 있다. 활용할 수 있는 쓰기 주제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다섯 가지의 냄새로 자신의 고등학교 주변 묘사하기
  •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자신의 인상착의를 설명하는 문자메시지 보내기
  • 우주에서 발견된 새로운 생명체에게 지구와 인간을 소개하는 첫 번째 교신 작성하기

아래의 학생 글은 ‘작년 담임 선생님의 관점에서 자신에 대해 평가해 보기’라는 주제로 작성한 프리라이팅이다.

작년 담임 선생님이 이런 말을 쓰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뭐, 프리라이팅이니까… 아마 우리 담임쌤이 나를 평가하는 글을 쓴다면 내 이름으로 지칭하겠지만 뭔가 객관적인 듯한 느낌을 주고 싶기도 하고 내가 내 이름을 쓰는 게 부끄럽기 때문에 ‘이 학생’이라고 칭하겠다. 이 학생은 초반에는 그렇게 눈에 띄는 학생은 아니었다. 특별히 조용하지도 않았고, 특별히 말이 많다거나 뭔가 활동적이라던가 그렇지도 않았다. (중략) 학교 생활을 포함해서 자기 미래에 대해서까지 굉장히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남에게도 잘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너무 이 학생을 모르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이거 낯부끄려워서 못써먹겠따.

이 글쓰기 사례를 보면 학생은 주제를 받은 후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부터 적어 나가기 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에도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게 적었는데, 일반적으로 글쓰기 과제를 제출할 때는 생략하는 부분이다. 또한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등에서 틀린 부분이 있지만, 프리라이팅에서는 검토나 평가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프리라이팅은 내용을 구조화하여 주제에 맞는 글을 잘 쓰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생각나는 것을 부담 없이 자유롭게 적어가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학생들은 글쓰기를 더욱 쉽고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2. 작문 편력 쓰기

학생들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것에 대해 글을 쓸 때 비교적 어려움을 덜 느낀다. 작문 편력은 글쓰기 경험과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고 구체적으로 하는 것이므로 쉽게 도전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자신의 글쓰기를 성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활동이다. 작문 편력을 쓸 때는 글쓰기에 관한 다양한 내용을 소재로 삼을 수 있는데, 자신의 글쓰기 습관, 글쓰기와 관련된 에피소드,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 자신만의 글쓰기 방법이나 비법, ‘잘 쓴 글’에 대한 생각, 작문 수업에서 배우고 싶은 것 등이 주요 내용이 될 수 있다. 이 활동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의 글쓰기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기도 하고, 글을 잘 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주체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글을 쓸 때, 정말 한 치의 앞도 안보이고 막힐 때가 있다. 가장 괴로운 것은 내용의 궁핍함이고, 그 다음은 표현에서의 궁핍함이다. 무엇을 쓸지 모를 때가 가장 힘들다. 무엇을 쓸지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글을 꾸역꾸역 쓰다보면 자꾸 분량이 생각나고, 같은 말을 반복하고, 문장을 늘리게 된다.


이런 괴로움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는 솔직함이라고 생각한다. 머릿속에서 떠오른 전개와 생각들을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줄줄 풀어내는 것이, 비록 글이 혼란스러워지고 중구난방 뛰어도 가장 내가 글을 쓰기 편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쓸지 모르는 주제에 대해서도 이 주제에 대한 솔직한 나의 생각을 파고들어 자유롭게 쓰는 것이 가장 쉽게 글 쓰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잘 쓴 글이란 솔직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솔직하지 않은 글이 얼마나 있겠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여기서 내가 말하는 솔직한 글이라는 것은 비록 서툴더라도 내가 나의 글을 읽었을 때, 작가가 자신의 글을 읽었을 때, 글쓴이와 공감할 수 있는, 즉 나와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글쓰기를 말하는 것이다. 쭉 읽어봤을 때 이것이 ‘나’이고, 형식이나 표현, 더 나아가 환경, 사회 등에 얽매이지 않고, 나의 생각을 때 묻지 않게 표현했는지가 나에게는 가장 중요하고 잘 쓴 글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이 글쓰기 사례에서 학생은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서 그러한 어려움을 타개해 나갔던 경험을 떠올리고, 그것으로부터 좋은 글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있다. 이와 같이 작문 편력 쓰기는 자신에 대해 서술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글쓰기에 접근할 수 있게 하면서, 자신의 글쓰기 경험을 돌아봄으로써 어떻게 글을 써야 할 것인가에 대한 관점과 태도를 정립할 수 있게 한다.

3. 섬세하게 관찰하기

글쓰기가 두렵고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쓸 거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제를 선택하고 내용을 생성하는 것이 의외로 어렵지 않다고 느끼는 경험이 필요하다. 이 활동은 그동안 글쓰기의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사물을 섬세하게 관찰해 봄으로써 새롭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글쓰기의 실마리를 찾아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실마다 하나씩 있는 프로젝터를 관찰하면서 생각나는 내용을 학급의 모든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중복되지 않도록 이야기해 볼 수 있다. 이런 단순한 소재에서 어떤 내용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생각되지만, 실제로 이 활동을 해 보면 학생들에게서 무궁무진한 이야깃거리가 나온다. 처음에는 ‘프로젝터는 흰색이다. 딱딱하다. 직육면체다.’와 같이 눈에 보이는 것을 표현하는 것에서 시작하는데, 중복되는 내용을 피하려다 보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섬세하게 관찰하게 된다. 다음은 프로젝터를 섬세하게 관찰한 학생들의 발표 내용 중 일부이다.

프로젝터는 외눈박이다. / 수동적이다. / 미련이 많다. 종료 버튼을 두 번 눌러야 꺼지니까. / 윗면이 아래를 향하고 있다. / 주변이 어두울수록 밝게 빛난다. / 점묘법의 대가이다. / 무력하다. 컴퓨터가 있어야 한다. / 항상 의지한다. 스크린이 없이는 안 된다. / 이 발표를 하기 전까지는 무관심의 대상이었다. / 한 곳만 바라보는 해바라기다. / 남을 빛나게 만들어 준다. / 항상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산다. / 처음에는 책상에 올라가야 닿았는데 이제는 의자 위에만 올라가도 닿는다. 그만큼 키가 컸다. / 자음 5개와 모음 4개로 이루어져 있다. / 수많은 구멍이 양파의 체세포를 보는 것 같다.

프로젝터의 외형을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데에서 출발한 관찰은 ‘외눈박이, 해바라기’와 같은 비유적인 표현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프로젝터의 기능과 역할에 주목하면서 ‘미련이 많다, 의지한다.’ 등의 내용을 연상하는 것에 이르기도 한다. 학생들은 이러한 경험을 통해 조금만 더 새롭게 보거나 더 깊이 관찰하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글쓰기의 내용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4. 필자 추체험하기

축구를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여러 가지 방법 중에 필수적인 한 가지는 아마도 훌륭한 축구 선수가 어떻게 축구를 하는지 분석하고 그것을 본받아 연습하는 일일 것이다. 필자 추체험하기는 잘 썼다고 평가되는 글을 읽으면서 필자가 글을 쓰는 과정을 따라가 보는 것이다. 필자의 쓰기 과정을 직접 관찰할 수는 없으므로, 자신이 그 글의 필자가 되었다고 가정하고 글을 쓰게 된 동기, 글에서 활용한 구조와 표현, 글을 쓰면서 어려웠던 점 등이 무엇이었을지 추측해 본다.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을 하도록 안내하면 학생들의 활동에 도움이 될 수 있다.

  •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 글의 짜임(구조, 전개 방식)은 어떠한가?
  • 문단의 연결 관계, 단어 선택은 적절한가?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있는가?
  • 인상적인 표현이나 단어가 있는가?
  • 글쓴이가 글을 쓰면서 느꼈을 고민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했는가?

학생의 후기를 조금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필자 추체험하기를 통해 나는 쉬운 설명문이란 어떻게 구성되는가에 대해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글의 난이도는 매우 낮다. 그것은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설명문 본연의 목적인 ‘내용의 전달’에 있어서는 분명한 장점이다.


이 글은 교과서적으로 제목과 첫 문단에서 주제를 제시하고, 한 문단 당 하나의 국가만 분석함으로써 사람들의 글의 구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나 역시 설명문을 쓸 때 이런 구조가 이해하기 쉽다는 것을 머릿속에 넣어놓고 글을 적어나가야겠다. 그렇다고 항상 이 글과 같이 쓰는 게 정답이라는 말은 아니다.

한편 이 글을 쓸 때 필자는 한 문단 안에 한 국가의 내용을 다 담는 것에 집중하다보니 설명이 조금 빈약하다는 단점을 감수한 것 같다. 짧고 간단한 내용을 적을 때는 이런 구성이 좋겠지만, 다소 복잡한 내용을 적을 때는 오히려 이런 구성이 설명을 빈약하게 하거나 한 문단이 지나치게 길어지게 만들 수도 있다. 글이란 것은 그 내용에따라 천차만별의 구조를 가질 수 있다. 각 내용마다 궁합이 잘 맞는 구조는 각각 다르고, 그 환상의 궁합을 선택했을 때 좋은 글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학생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해 필자에게서 배울 점을 스스로 찾아보고 필자가 글을 쓰면서 했을 법한 고민을 떠올리며 해결 방법의 적절성을 판단하고 있다. 이러한 주체적인 필자 추체험을 통해 학생들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본받아 배울 수 있고, 이러한 실천을 통해 글쓰기 능력을 신장하고 태도를 개선할 수 있다.

그동안 글을 써야 할 때가 되면 처음에 어떻게 쓸까 한참 동안 고민을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무엇을 써야 하는지 첫 문장을 떼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어려웠습니다. 작문 수업을 듣고 나서 가장 바뀐 건 일단 시작하고 본다는 거예요. 물론 글쓰기가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확실히 예전보다 더 즐겁게, 놀이처럼 글쓰기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렇게 생각하니까 좀 더 자유롭게 글을 쓰게 되고, 그래서인지 글쓰기 능력도 좋아진 것 같아요.

프리라이팅과 필자 추체험을 하고 섬세하게 관찰하기도 하며, 작문 편력을 쓰는 일련의 활동을 통해 학생들은 조금씩 두려움 없는 글쓰기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쓰기 과제를 받고 난 후 때로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멍 하니 빈 종이를 바라보기도 하고, 때로는 머릿속은 엄청나게 복잡한데 단 한 문장도 쓸 수 없었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첫 문장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과 그 이면에 있는 잘 쓸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것들을 내려놓으면 자유롭고 편안하게 글을 쓸 수 있고, 그 지점에서 좋은 글은 탄생할 수 있다. 놀이처럼 즐겁게 글쓰기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 그것은 두려움 없는 글쓰기 활동에서 출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