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2019 여름호 (235호)

서울교육공간의 미래를 위한
일곱 개의 실천전략

김승회 (서울대학교, 교수)

학교의 공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교과서이다. 학교 공간에는 ‘배움이 전수되는 형식’이 그대로 담겨있다. 교사가 앞에 있고 줄을 맞추어 학생들이 앉아있다면, 강의식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교사와 학생이 둥글게 앉아있다면, 함께 토론을 하는 수업일 것이다. 학교의 공간에 는 학생들의 ‘생활방식’도 담겨있다. 운동장과 체육관, 도서관과 동아리실, 그리고 그들이 머무는 교실에서 그들의 놀이와 운동, 독서와 취미, 그리고 개인의 생활에 대해 읽을 수 있다. 학생들은 교육 공간을 경험하는 과정을 통해 지식이 전수되는 형식, 생활을 영위하는 방식, 그리고 그 공간이 내포하는 문화적 취향을 익히게 된다.


학교 공간은 교육의 장으로서, 생활의 공간으로서 잘 작동하고 있을까? 학생들의 텍스트인 학교 공간은 수준 높은 완성도를 갖고 있을까? 학교 공간에 대해 문제를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전문가뿐만이 아니라 학생들과 교사, 학부모들도 저마다 학교 공간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 그러나 지적된 문제와 접수된 민원만으로 미래는 준비되지 않는다. 대개 그런 방식의 논의는 비전을 품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계통이 없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해답을 만들지 못하여 소위 ‘땜질식 처방’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의 대부분은 일제 강점기와 산업화 시대에 급조되어 만들어지고, 그 뒤로는 땜질식으로 보수하고 증축하는 형식으로 진화 되어 왔다. 신축 학교들은 교육에 대한 ‘비전’과 학교 운영에 대한 밑그림 없이 지어졌기 때문 에, 그곳에 배정받은 교사와 학생들은 그 공간에 억지로 맞추어 지내게 된다.

학생과 교사의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교육 공간에 대하여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시기에, 필자는 서울특별시교육청의 요청으로 2015년 12월 교육감과 간부들에게 ‘서울교육공간’의 미래를 위한 실천전략을 발표했다. 이후 ‘건축 자문관’으로 임명되어 서울교육공간을 구축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여러 건축가와 담당 공무원들의 헌신에 힘입어 꿈담교실, 꿈담학 교, 창의인성센터와 같은 결실을 거두었다. 발목을 잡는 법규과 지침, 최소기준에도 못 미치 는 예산 등,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 남겨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시점에 시작점과 지금의 중간지점 사이의 흐름을 짚어보는 것이 유익할 것이라 생각한다. 2015년 제시되었던 서울교육공간의 미래를 위한 7가지의 프레임(실천전략)의 주제와 내용을 살펴보는 작업을 통해 그간의 성과와 문제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7가지의 실천전략은 2018년 9월 공표된 ‘서울교육공간플랜’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서울교육공간플랜’은 지난 3년의 논의와 경험이 집약된 공간정책으로 앞으로 서울교육공간의 실행에 적용된다.

실천전략1 – 비전과 전망의 수립

첫 번째 프레임은 서울교육공간에 대한 질문, 그리고 그에 대한 논의와 합의 과정을 포함한다. ‘서울교육공간의 비전은 무엇인가’, ‘서울교육공간을 실행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등의 질문을 제기하고 그것에 대해 토론하며 콘센서스(사회 구성원의 이해, 합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질문과 토론은 일회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서울교육공간 수립의 모든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수행되었다. 서울교육공간 비전의 수립은 교육 전문가 집단과의 워크숍, 토론회, 교사와 학생과 시민이 참여하는 공청회 등을 통해 다층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렇게 도출된 비전과 목표는 서울교육공간의 모든 지침과 프로젝트에 담겨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이렇게 지난한 과정을 통해 도출된 교육공간에 대한 비전이 구성원들과 관계자들에게 적극적으로 공유되는 것이다. 비전이 공유되어야 구체적인 실행과제들이 서로 연계되고 지속 되기 때문이다.

실천전략2 – 현황 파악 및 사례연구

실천전략 2는 서울교육공간플랜의 수립을 위해 현재의 상황과 조건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 교육공간의 실행은 어떠한 제도와 시스템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지,그리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계획과 프로젝트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진단한다. 교실의 구성부터 시작해서 학교의 배치와 경관이 어떻게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는지 그 실행 메커니즘의 이해를 통해 서울교육공간의 현재를 짚어보는 과정이다. 또한 현재 서울교육공간이 지닌 정체성은 어떻게 규정 되고 있는지 파악한다. 이러한 진단과 분석은 교육 환경을 이루는 물리적인 조건 뿐 아니라, 서울교육공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탐구를 포함한다.

서울교육공간의 현재에 대한 진단은 백서의 형식으로 출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별도의 백서 발간이 어려웠기 때문에 ‘서울교육공간플랜’의 일부로 만들어졌다. 공간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제도에 대한 문제 제기를 통해,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서울교육공간플랜’이 완성될 수 있었다.

또한 교육공간 문제의 발원지를 추적할 수 있었다. 교육청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 교육부와 연관된 문제, 기획재정부의 예산 배정과 일정에 관한 문제 등, 문제의 발원지에 대한 확인을 통해 해결 방법을 모색할 수 있었다. 이 과정 에서, 정부가 예산을 편성할 때 학교의 공사비를 공공건물의 공사비 중 가장 낮게 책정한다는 문제를 알려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정확한 현실 진단을 바탕으로 한 문제 제기를 통 하여 더 나은 교육공간의 여건이 만들어지리라 믿는다.

실천전략3 – 원칙과 가이드라인 설정

서울교육의 비전을 바탕으로 교육공간의 계획 원칙이 만들어져야 한다. 계획의 원칙이 구성원에게 공유될 때, 구성원은 정확하게 판단하고 실천할 수 있다. 교육공간에 소위 땜질식 처방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교육공간에 대한 계획 방향이 공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전과 원칙이 공유되어 프로젝트가 진행될 때,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 할 수 있다.

교육공간은 공통된 시설이 많다. 교실, 가구, 특별교실, 도서실 등 여러 시설에 대한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것도 공간의 질을 높이고 비용을 절약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개별 학교는 시설을 계획하고 지침을 만들 수 있는 역량이 없다. 따라서 잘만들어진 가이드라인과 체크리스트가 구비된다면 많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꿈담교실’의 조성에 있어서 디자인 가이드라인은 시행착오를 줄이고 더 나은 공간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서울교육공간을 무조건 헐고 다시 짓기보다는, 교육공간에 깃든 시간을 존중하여 잘 고치고, 필요에 따라 잘 활용되도록 계획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치밀하게 만들어진 개보수 계획의 수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계획 중인 학교는 미래에는 역사가 될 것이므로 오래도록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설계되어야 할 것이다. 올해 만들어진 학교가 서기 2219년에는 200 년 전에 만들어진 유서 깊은 학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천전략4 – 실행체계

서울교육공간플랜의 핵심은 실행체 계이다. 서울교육공간을 이끌어가는 주체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기획이 있더라도 그것을 실천하는 실 행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결 국 실패한 결과를 만든다.

발주방식의 변화는 서울교육공간의 변화를 이끌었다. 전자입찰을 통해 발주하던 것을 현상설계 방식으로 전환했다. 존경받는 건축가들을 대거 심사위원으로 초빙했다. 공정한 현상설계가 진행된다는 것이 확인되자 뛰어난 건축가들의 참여가 대폭 늘었다. 한편, 수의계약으로 발주할 수 있는 프로젝트는 재능 있는 건축가에게 부탁했다. 적은 용역비이지만, 발탁된 건축가들은 최선을 다해 좋은 작업을 해주었다.

실행체계에서 중요한 변화는 ‘프로젝트 건축가’(PA 또는 MA)의 초빙이다. 중요한 프로젝 트를 위해 기획부터 현상설계, 준공에 이르는 전 과정을 주관하는 건축가를 지명했다. 마을학교, 창의인성센터, 교육청 신축, 꿈담교실 등의 프로젝트는 이를 주관하는 건축가들이 권한을 갖고 일을 추진하여 일정수준이 상의결과로 만들어 질 수 있었다. 일부현장 공무원의 인식 부족으로 프로젝트 건축가와 원만한 체계를 만들지 못한 경우도 간혹 있었지만, 성공한 케이스들이 모범이 되어 프로젝트 건축가 제도가 정착할 수 있었다.

실행체계의 운영에 있어 중요한 시도 중의 하나는 ‘사용자 참여’이다. 꿈담교실 등 교육공간 설계 과정에서 교사와 학생의 의견을 수렴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결과도 좋았지만 그 과정이 매우 교육적이었기 때문에 공간을 만드는 과정이 교육으로 승화될 수 있었다. 교실에 낙서를 하던 아이들이 자신이 설계에 참여한 교실의 먼지를 스스로 닦는 아이로 변했다. 사용자 참여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것은 교사나 학생의 의견은 참고해야 하는 것이지 설계지침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잠시 그 공간을 사용하는 이들이므로, 건축가가 판단하여 그 공간이 지속 가능한 공간이 되도록 보편적인 질서를 부여해야 한다.

공공건축이 성공하느냐의 여부는 실행체계의 확립에 있다. 실행체계는 발주체계, 실행조직, 관련 법규를 포함한다. 전자입찰 대신, 현상설계와 수의계약 제도, 프로젝트 건축가 제도가 도입되었지만 여전히 고질적인 문제가 남아있다. 설계비가 적고 비합리적인 심의와 인증 과정이 많은 것 등 우리나라 모든 공공 설계 발주제도의 문제로 지적되는 것들이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문제는 프로젝트 처음의 ‘기획’이 어설프고, 끝의 ‘마무리’가 부실하다는 것이다. 프로젝트 초반부에 충분한 예산과 시간을 투입하여 보다 완벽한 기획안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해서 건축가가 시공과정에 권한을 갖고 참여하고, 설계 의도가 완전히 구현되도록 최선을 다해 공공에서 도와주어야 한다.

실천전략5 – 과제 설정과 프로젝트 제안

실행체계가 수립되고 서울교육공간 의 현재에 대한 진단이 이루어진다면, 그다음 단계로 구체적인 과제를 수행 할 수 있다. 서울교육공간의 과제는 교사 신축에서부터 시작해서 책상 디자인까지 실로 다양한 영역을 포함한다. 각각의 영역은 독립적이기보다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책상은 교실과 관계가 있고, 교실은 학교의 전체 구성과 관계가 있다.
서울교육공간플랜의 실천은 이와 같이 여러 분야를 통합할 수 있는 과제를 통해 토털 디자인의 개념으로 이루어져야한다. 이를 통해 각각의 분야는 고립된 섬이 아니라 네트워크된 작용점으로 서울교육공간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교육공간의 통합된 실천과제의 활용방안을 고려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서울교육공간의 성과를 잘 정리한다면, 국·내외의 교육 관계자들에게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서울특별시 교육청 꿈담교실 가이드라인과 성과품이 타시도의 교육청에 공유되고 있다. 참여했던 건축가들이 자발적으로 설계도면의 저작권을 풀고 오픈-소스로 개방하여 다른 교육청에 제공하고 있다. 지방 교육청의 경우에 원하는 수준의 건축가를 섭외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자료는 국제적으로 제공되고 활용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서울교육공간에 참 여한 모든 분들의 노력과 성취가 서울을 넘어서 더 넓게 확산되기를 바란다.

실천전략6 – 파일럿 프로젝트의 실행

서울교육공간을 진행함에 있어 파일럿 프로젝트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파일럿 프로젝트를 먼저 수행하면서 실행체계 등을 비롯한 문제점과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를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일럿 프로젝트는 선도 프로젝트로서 토털 디자인이 가능한 것이 바람직하다. 교실, 가구, 조경, 디자인 등 다층적인 실행을 통해 설계 지침, 발주방식, 시공, 가구, 조경 등 여러 부문에 대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단 하나의 프로젝트라도 성공적인 사례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사전 기획이 정밀하게 준비되어야 한다. 또한 전체 프로젝트를 이끌어갈 프로젝트 건축가를 지명하고, 건축가에게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프로젝트 건축가의 기획하에 제대로 된 지침서가 만들어지고, 훌륭한 건축가와 디자이너를 선정하여 완공 때까지 감독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필수적이다.

2017년 꿈담교실 파일럿 프로젝트의 성공은 프로젝트 진행을 맡았던 건축가의 헌신적인 노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꿈담교실 파일럿 프로젝트의 성공은 교육부의 대대적인 예산 증액을 거쳐 전국적으로 꿈담교실이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 사례를 통해 파일럿 프로젝트의 실행에 있어 충실한 기획과 프로젝트 건축가 지명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할 수 있었다.

실천전략7 – 향후 과제의 재설정

서울교육공간의 실천전략으로 제안된 ‘서울교육공간플랜’의 수립은 서울특별시교육청이 역점적으로 추진한 일의 하나이다. ‘서울교육공간플랜’이 일회적인 사건으로 그쳐서는 안 될 것 이다. 업데이트되고,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플랜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에 제시된 과제들을 실행하고, 그 결과를 검증해야 한다. 그리고 구성원들이 동의하는 과정을 통해 과제의 목표와 실천방식을 수정하고 서울교육공간플랜을 더욱 훌륭하게 진화시켜 나갈 수 있는 체계의 수립이 요청된다.

한편 공모전과 전시회, 심포지엄 등의 개최를 통해 획기적인 교육공간의 개념을 소개하고 발전시키는 계기를 만드는 것을 제안한다. 서울교육공간이 화제를 낳고 이슈를 생산하여 관심을 받아야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맺는 글

서울교육공간의 실천을 위한 7가지 전략의 틀을 살펴보았다. 7가지 전략의 틀은 독립적이 면서도 서로 의존적이다. 실천 전략은 공간만큼이나 입체적으로 짜이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교육공간에 관여한 2년 동안 여러 뛰어난 건축가들의 열정과 헌신적인 공무원들의 노 력에 크게 감동했다. 서울교육공간이 조금이라도 나아진 근본적인 이유는 좋은 분들이 많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 ‘좋은 분들을 모시는 것’이 성공의 열쇠이다.

참고자료
http://buseo.sen.go.kr/web/services/bbs/bbsView.action?bbsBean.bbsCd=94&bbsBean.bbsSe- q=7426&ctgCd=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