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2022 겨울호(249호)

[서울양동초병설유치원] 유아·놀이중심
교육과정으로 함께 성장하기

전선영(서울양동초등학교병설유치원, 교사)

유치원 교육과정, 그 흐름을 타고

2011년 9월 5세 누리과정을 공통과정으로 제정하여 고시한 이후, 2012년 7월 3-5세 연령별 누리과정이 고시되었고, ‘누리과정’이라는 말이 유치원 교육과정으로 익숙해질 때쯤 2019년 7월 2019 개정 누리과정이 고시되었다. 2019 개정 누리과정은 유아·놀이중심 교육과정으로 유아가 중심이 되고 놀이가 살아나는 교육과정을 추구한다. ‘유아는 놀이하며 배운다’는 큰 명제 아래 교사가 계획하여 주도하는 교육과정에서 유아가 주도적으로 놀이하며 배우는 교육과정으로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교과서가 없는 유치원 교육과정은 그동안 대부분 ‘생활주제’ 중심으로 운영되어 왔다.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을 토대로 어떠한 교육 내용을 어떠한 방법과 과정을 통해 가르칠 것인가를 교사가 고민하여 생활주제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계획하고, 이렇게 수립한 교육계획의 실행 및 평가까지 일련의 과정이 일맥상통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교육과정이었다. 연간교육계획, 월간 및 주간교육계획, 일일교육계획으로 이루어지는 계획안 흐름에 따라 미리 계획한 활동을 실행하고 그 결과를 평가하여 다시 계획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어느 유치원이나 새학년이 시작되기 전, 한 해의 교육과정을 체계적으로 수립하기까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다. 개정 누리과정이 고시되고 현장은 고민과 혼란 속에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하는지 어려움이 많았다. 체계적으로 연간교육계획을 수립했던 그 익숙함에서부터 벗어나야 했다. 교사 주도에서 유아 놀이 주도로 변화를 주는 것이 처음엔 낯설고 어색했다. 그러나 유아와 교사가 ‘함께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은 생활주제 중심에서 놀이주제 중심으로의 변화뿐만 아니라 교사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교사 교육과정의 가치를 인정하는 변화이다. 유아의 놀이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고 진행될지 예측하기 어렵고,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일어나므로 교사는 상황에 적합한 판단을 해야 한다. 놀이를 통한 교육과정은 교사가 좀 더 자율성을 가지고 교육과정을 실천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교육과정의 시작을 함께 고민하며

서울양동초등학교병설유치원(원장 최옥문)은 2021년 3월에 개원한 신설유치원으로 초등학교에서 사용하던 식당이 이전하면서 기존의 식당에 벽을 세워 교실과 복도를 만들며 시작되었다. 신설유치원에 발령받아 처음으로 모였던 2월 초, 교사들은 설렘과 동시에 부담감도 함께 느꼈다. 넓고 텅 빈 곳에 벽이 세워지고 공간이 만들어지듯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한다는 것은 남다른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어려운 일이었다. 연령별, 학급별 교육과정을 위해서는 유치원이 가지고 있는 교육목표와 실천과제, 중점 교육을 우선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각 기관의 지역적 특성이나 교육목표, 철학은 기관 전체의 구성원이 공유하면서 학급의 교육과정 속에 반영해야 할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는 교사의 자율성에 달려 있다. 우리 유치원은 처음 유치원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교육과정 틀을 세우기 위해 많은 논의가 필요했다. 교육목표와 실천과제는 어떻게 세울 것인가, 우리 유치원의 특성을 반영한 중점 교육은 무엇으로 할 것인가, 연령별 교육과정은 어떤 방향으로 나갈 것인가 등 교육과정의 출발점을 잡는 것에 고민이 많았다. 개원과 동시에 코로나19로 정신없이 2021학년도를 보내고 2022학년도를 맞이할 때는 교육과정 평가 협의회를 통해 몇 가지 수정사항이 반영되었다.

중점 교육을 놀이로, 놀이는 다양하게

중점 교육1

‘체험으로 즐기는 호기심 탐구놀이’는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해 유치원과 가정에서 유아들의 체험에 제한이 많았던 것을 고려하여 수립되었다. 찾아오는 체험활동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하고 체험에서 나온 호기심이 탐구놀이로 이어져 놀이 속에서 배움이 일어나기를 바랐다.

국악공연, 미술관 여행, 매직버블쇼, 빛놀이터, 샌드아트, 예절교육, 탈춤공연, 목공체험, 원예체험, 난타체험 등 매월 찾아오는 체험활동을 계획하였고 각각의 체험활동은 학급에서의 놀이로 연계되어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연령별, 발달수준에 따라 유아들의 관심은 달랐고 놀이의 전개도 달랐다. 유아의 놀이를 지원하는 교사의 지원 방법도 달랐기에 각 학급에서의 교사는 그에 맞는 교육과정을 유아들과 함께 만들어갔다. 어떤 체험은 단순한 호기심으로 끝나기도 하였으나 이러한 경험이 바탕이 되어 유아들의 놀이 속에 종종 등장하는 경우도 볼 수 있었다.

다음은 미술관 여행 체험활동 후, 연령별 관심에 따라 진행된 놀이 사례이다.

(3세) 그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종이 이외에 다양한 재질에 그리고 싶어하였으며, 그림 도구와 재료의 탐색으로 이어졌다.

(4세) 화가의 다양한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개성있게 표현해보는 놀이로 전개되었다.

(5세) 구글 아트 앤 컬쳐(Google Art & Culture)를 활용하여 교실 안에서 가상현실을 통해 미술작품을 감상해보는 놀이로 전개되었다.

중점 교육2

‘도구를 활용한 어울림 신체놀이’는 지하 1층에 위치한 넓은 신체활동실을 활용하고자 계획하였다. 바깥놀이를 포함하여 일 2시간 이상의 놀이시간 운영을 위해 학교 운동장과 신체활동실을 적절하게 이용하였다. 신체활동실에는 유니바, 평균대, 파라슈트, 공, 훌라후프, 줄, 풍선, 빌리보, 대형블록 등의 도구를 준비하여 두었고 유아들은 주 3~4회 신체활동실에서 놀이를 즐겼다. 교실에서 진행되는 놀이 주제가 신체활동실로 연계되어 진행되기도 하고, 도구를 활용한 다양한 놀이가 그때그때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했다.

다음은 신체활동실에서 연령별 관심에 따라 진행된 어울림 신체놀이 사례이다.

(3세) 버스놀이: 교실에서 진행된 버스놀이는 신체활동실에서 다양한 교통기관 놀이로 이어졌다.

(4세) 도구를 활용한 놀이 만들기: 신체활동실에 있는 도구들을 활용하여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내고 있다.

(5세) 텐트놀이: 교실에서 진행된 캠핑놀이는 신체활동실에서도 텐트놀이로 연결되었다.

중점 교육3

‘모두가 함께하는 협력적 책놀이’는 인성교육의 일환으로 계획되었다. 5세 형님과 동생이 짝이 되어 책을 읽어주거나 주 1회 있는 도서대여 활동 시 도움주기, 인성 동화를 선정하여 교사가 비대면(zoom활용)으로 들려주기를 계획하였다. 책읽기 활동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유아들이 즐겁게 책에 접근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모든 학급이 동시에 참여하는 비대면 동화 듣기 시간은 함께 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형님들의 생각을 듣고 배울 수 있는 시간도 되었다.

유아·놀이중심 교육과정 사례 살펴보기

우리 유치원의 3세 놀이 실행사례를 살펴보며, 유아의 경험에서 시작되는 놀이가 교사의 지원을 받아 어떻게 ‘만들어가는 학급 교육과정’이 되는지 나눠보고자 한다.

놀이의 시작

5월 말 빛놀이터 체험을 하고 그림자 놀이에 관심을 보이던 유아들을 위해 놀이지원 계획을 세웠다. 3세 유아들은 경험으로 시작되는 놀이를 즐긴다. 식당으로 이동하는 점심시간과 교육과정 수업이 끝나는 하원 시간은 햇빛이 강하여 그림자 놀이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시간이다. 이 시간을 이용해서 다양한 그림자 만들기 놀이를 시작했다.

<밖에서 이루어지는 그림자 놀이>

다양한 탐색과 실험

며칠 후 교실 한쪽에 그림자 놀이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유아들의 놀이가 교실과 밖에서 연계하여 이루어지도록 환경을 구성하였다. 유아들이 손쉽게 조작할 수 있는 손전등을 준비하고 손으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모양의 사진을 함께 게시하였다. 교사가 손전등을 비추어주면 유아들은 손으로 다양한 모양을 만들어냈다. 손전등 조작에 관심을 보이던 유아들은 손전등으로 바닥을 비춰보기도 하고 천장을 비춰보기도 하는 등 흥미를 보였다. 교실에 있던 공룡모형을 가져와 나란히 세워놓고 비춰보는 유아도 있었다.

놀이 확장

교사는 교실에 있는 여러 동물 모형을 비춰보고 놀이하는 유아들을 관찰하며 좀 더 정교한 그림자를 보여주고자, 종이로 동물 모형을 오려서 제시해 주었다. 종이로 오리고 만든 동물 모형은 좀 더 선명한 그림자를 보여주었다. 정교하게 나타난 그림자 놀이를 하던 유아들은 손전등을 비춰보며 위치를 조정하여 그림자 크기를 변화시켰고, 손으로 조작하는 것을 좋아하는 유아들에게 그 과정에서 다양한 탐구를 통한 배움이 일어났다. 또한 자연스럽게 동물 모양 종이 인형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상상하는 활동으로 확장되었다. 유아들은 손전등이나 동물 그림의 위치를 변화시키면서 그림자 동물의 크기와 특징을 잘 살리기도 하고, 목소리를 동물에 특성에 맞게 변형시키는 등 이야기를 자유롭게 상상하며 극놀이로 표현하는 과정을 즐기고 있었다.

<동물의 형태가 정교하게 나타난 그림자>

<위치를 조정하며 그림자 크기를 변화시키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유아들>

계속되는 실험과 관찰

교실의 물건들을 가져와 손전등으로 비춰보는 놀이를 하던 유아들은 색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검은색으로만 비춰지던 그림자에서 벗어나 손전등의 색을 그대로 비춰보기도 하고, 빛을 차단하거나 물건 두 가지를 겹쳐 다른 색을 만들기도 하였다.

<교실에 있는 물건을 비춰보며 색을 발견하는 유아들>

놀이 확장

교사는 OHP 필름에 동물 도안이 그려진 것을 제공해주었고 유아들은 원하는 색으로 색칠하고 손전등으로 비춰보는 놀이로 확장되었다. 또한 큰 손전등을 준비하여 앞쪽을 셀로판지로 감싸고 제공해주기도 했다. 셀로판지로 감싼 손전등은 생각보다 색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유아들은 큰 손전등에서 나오는 둥근 불빛에 더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빛과 그림자 놀이는 3세 교실에서 3주가 넘게 진행되었다. 그림자를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그림자 인형극 놀이로 발전하였고, 그림자뿐만 아니라 색을 발견하고 다양한 색의 그림자를 만들어보는 것으로 확장되었다. 교사는 놀이의 확장을 위해 자료 제공과 적절한 환경 변화를 주기도 하였고, 여러 종류의 그림자 동화를 찾아 들려주기도 했다.

또한 검은 우드락에 별 스티커 붙이기, 검은 망사천 달고 밤하늘 느껴보기, 교실 전등 끄고 놀이하기, 무대로만들고 춤추기 등 유아들의 의견을 반영한 놀이도 함께 진행되는 가운데 발전하고 변형되었다.

빛과 그림자 놀이가 진행되는 동안 함께 이루어지면 좋은 놀이가 무엇일지 생각해 본 결과, 다양한 거울과 라이트 테이블이 떠올랐다. 각도가 다양하게 벌어지는 거울과 대칭을 만들 수 있는 거울, 이동이 가능한 대형 안전 거울을 준비하였다. 라이트 테이블에서 가지고 놀 수 있는 다양한 색의 놀잇감도 제공해주었다. 어떻게 놀이해야 할지 안내하지 않아도 유아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놀이에 참여하였다. 교사가 제시한 놀이와 유아가 제안한 놀이는 교실에서 함께 어우러져 유아들의 놀이를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다. 놀이가 놀이를 만들어내는 가운데, 3세 유아들의 경험은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다양한 종류의 거울놀이>

<라이트 테이블 놀이>

유아가 중심이 되고 놀이가 살아나는 교육과정을 향해

개정 누리과정에서 5개 영역의 내용은 교사가 가르쳐야 할 내용이 아니라 유아가 경험하며 스스로 배우는 내용이다. 빛과 그림자 놀이의 진행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놀이 속에 교육과정에서 제시한 내용이 골고루 포함되어 있고 유아들은 놀이 속에서 경험하며 스스로 배워나간다.

유아들이 만들어내는 놀이 주제가 때로는 막막해서 교육과정을 어떻게 구성해 나가야할지 어려울 때도 있다. 옆 반 교사의 교육과정 구성 능력을 엿보며 조바심이 나기도 하고 유아들의 놀이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패들렛으로 놀이 과정을 기록하고 가정으로 보내는 사후 놀이 이야기를 만들며 그때서야 느껴지는 아쉬운 점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유아·놀이중심 교육과정을 실천하고 있는 교육현장은 앞으로도 많은 놀이 사례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교사들은 늘 분주하게 움직이며 놀이와 교육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이런 고민과 노력들은 교육과정 속에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유아가 중심이 되고 놀이가 살아나는 교육과정, 그 속에서 빛나는 유아들의 모습과 교사의 노력이 교사 교육과정의 길이 되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