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와 나눔Vol.223.여름호

선생님, 우리 스무살에 다함께 수학여행 다시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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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장민경 / 서울연가초등학교 교사

‘수학여행’하면 으레 길게 늘어선 대형버스 행렬이 떠오른다. 장소도 경주 아니면 설악산 정도랄까? 하지만 요즘은 수학여행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 이름도 어렵고 다양하게 ‘소규모 테마형 교육여행’이라 불린다. 물론 여전히 길게 늘어서서 대형버스를 타고 가기 도 하지만 예전처럼 획일적인 것은 아니다. 동학년 세 개 반 담임교사들이 소규모 학교에 소규모 학급을 맡고 있던 터라 과감하게 ‘학급별 테마여행’을 가자고 교장님과의 협의를 거쳐 결정했다.
대규모 수학여행일 때에도 6학년 부장교사와 담임교사에게 수학여행은 최대 과업이 다. 장소 선정부터 숙박, 일정, 식사까지 모든 일을 도맡아 처리해야 한다. 그런데 이제는 학급별이니 담임 손에 달렸다. 하나부터 열까지 각 담임들이 계획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 에 따른 엄청난 서류작업은 덤이다.

첫 고비는 장소 선정이었다. 9월 예정된 수학여행을 위해 학기 초부터 설문조사를 했는데, 반 아이들 3분의 1 이상이 제주도를 원했다. 내가 있었던 학교는 ‘교복특’ 학교였다. 아마도 제주도로 결정하면 비용 때문에 수학여행을 포기해야 하는 아이들이 있을 게 뻔 했다. “수학여행은 모두가 함께 가야 의미가 있다.” “돈 때문에 수학여행을 못 가거나 고 민해야 하는 친구가 생기지 않도록 다른 곳으로 가자.”고 아이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이들이 수긍해주어 수학여행지로는 익숙하지 않은 전라도를 최종 낙점했다.
생소한 전라도로 여정을 짜려니 이 역시 쉽지 않았다. 대행업체도 많고 여행사에서 소규모 테마여행용 일정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무언가 부족함을 느꼈다. 여행을 좋아하는 취미를 살려 혼자 일정을 짜보기로 결심했다. ‘자연을 오감으로 체험하기’를 테마로 잡고 이 주일간의 검색 끝에 ‘고창-구례-전주’로 여정을 짜고, 산, 바다, 강, 농촌을 모두 체험하고픈 욕심을 반영했다. 학부모님과 사전답사도 다녀왔다. 역시 전라도는 음식이 최고였다. 아이 들에게도 전라도의 맛을 경험하게 해 주기로 했다. 계획안을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심의 받고 몇 차례 더 결재를 받으니 벌써 9월. 걱정했던 서류작업이 드디어 끝나고 여행만을 눈앞에 두 고 있었다.
그런데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태풍이 불어 닥친다는 예보였다. 안전 때문에라도 강행할 수 없지만, 그대로 추진하면 아이들이 가장 기대하던 캠프파이어가 무산될 상황이었다. 복 잡한 과정을 거쳐 일정을 변경했다. 그나마 소규모 여행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드디어 여행 첫 날, ‘수학여행용’이라 새겨진 빨간색 단체 티셔츠를 입고 전라도로 출발했다. 차로 4시간 반을 달려 내려와 도착한 곳은 구례 화엄사. 지리산의 기운을 받아 장중하면 서도 매력이 넘치는 중년배우 같은 모습이었다. 답사를 마치고 돌아 나오는 길에 수녀님들 이 스님들과 인사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며 “저렇게 다름을 인정하며 살자”고 아이들과 약속했다. 첫날부터 섬진강을 온 몸으로 느끼게끔 래프팅을 했다. 일정 이 변경된 탓이었지만 다행히 아이들은 즐거워했다. 반짝이는 섬진강에서 나올 줄 모르던 특수학급 학생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 아이가 그렇게 행복해 하는 모습을 처음 볼 수 있었다. 숙소는 다름 아닌 펜션이었다. 가족과 여행 온 기분이라고 한 녀석이 소리쳤다. 펜션 사장님 과 약속해 두었던 삼겹살 바비큐 파티가 저녁식사였다. 래프팅 후 먹는 삼겹살은 꿀맛 중에 단연 최고의 꿀맛이었다. 한 달 전부터 공모를 통해 계획한 저녁게임 시간을 끝으로 하루가 알차게 마무리 됐다.

둘째 날 아침엔 아침식사 만들기 경연대회를 열었다. 준비해 온 토스트와 과일, 채소, 햄 등으로 만든 서양식 아침식사가 대회 메뉴. 다들 어찌나 맛있게 잘 만들던지 숨어있던 실력에 놀랐다. 그 날 오후에는 전북 고창으로 이동해 바다에서 그물 물고기 잡기 체험을 했다. 처음 에는 물고기를 맨손으로 잡지도 못하던 아이들이 나중에는 게도 들었다 놨다 하며 드넓은 갯벌을 들쑤시고 다녔다. 우리가 잡은 물고기로 끓인 기가 막히게 맛있는 매운탕을 먹고 상사화가 아름답게 핀 선운사,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인 고인돌을 돌아본 뒤 교육농장으로 갔을 때는 이미 다들 지친 상태였다. 아이들이 열심히 채소를 따며 오감체험을 하고 있을 때 나는 의자에서 졸다 깨다 했다. 아이들은 양푼 가득한 새싹과 채소를 보더니 탄성을 질렀다. 계란후라이를 얹어 고추장을 듬뿍 넣어서 먹었던 새싹비빔밥을 생각하면 아직도 군침이 절로 넘어간다. 둘째 날 숙소는 고창 마을회관이었다. 나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을회관이라는 곳에 가보았다. 약간은 춥고 시설도 당연히 펜션 같지는 않았지만 매우 특별한 추억이 됐다. 아이들과 마을회관 밖에 나와 캠프파이어를 했다. 전봉준 기념비가 있는 공터였다. 역사 속으로 들어간 기분으로 고구마를 구워 먹었다. 엄마를 생각하며 우는 캠프파이어는 아니었다. 함께 추억을 얘기하고 다 같이 바닥에 누웠다. 별을 보며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셋째 날, 드디어 마지막 날, 전주에 들러 돌아오는 날이다. 이 날은 ‘자유여행’이 테마였다. 물론 미리 내가 만들어 놓은 ‘미션’과 함께였다. 답사 때 찍어두었던 장소들을 아이들에게 나 누어주며 이 사진들이 찍힌 장소를 찾아 나에게 미션 해결 사진 메세지를 보내라고 했다. 대 신, 중간 중간 무엇을 먹든지 사든지 허락받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이들을 기다리며 나도 여유롭게 전주를 즐겼다. 그야말로 모두의 자유여행이었다. 간간히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옛날과자를 사먹거나 전통무늬가 있는 물건 을 사고 있는 우리 반 아이들이 보였다. 숨겨진 맛집에서 상다리 휘어지게 나온 전라도 반찬 들이 가득한 한정식 먹는 것을 마지막으로 우리의 ‘특별한 소규모 테마여행’은 막을 내렸다. 나는 녀석들에게 스무 살 때 만나자는 약속을 담은 기념 팔찌를 하나씩 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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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학년에서 가장 말썽꾸러기로 소문났었던 녀석이 버스가 떠나가라 소리쳤다. 그간 고생했던 것들이 그 말 한마디에 싹 사라졌다. 교사에게 보상은 역시 아이들의 ‘행복’이다.
매년 담임을 해 보면 아이들 분위기가 참 다르다. 어떤 해 아이들은 애교도 많고 나에게 몰입해 있는 것이 느껴졌다고 하면, 이번 아이들은 서로 밀착돼 있다는 생각이 덜 들었던 터였다. 그런데 수학여행을 계기로 반 아이들이 품 안에 들어온 기분이다. 교실로 돌아와서도 아 이들은 생각나서 샀다며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들고 오기도 하고, 무뚝뚝하던 남자아이들이 내 책상 주변을 맴돌기도 한다. 학년 초부터 공들여온 학교폭력예방교육도 수학여행을 통해 제대로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내 제자들아, 언젠가 전주에서, 고창에서, 혹은 섬진강을 다시 만나러 갈 때 우리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하며 웃을 수 있기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