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2023 봄호(250호)

[삼각산고] 성장에서 나눔으로,
나눔에서 평화로

이세주 명예기자

학생이 성장하는 교육의 장

학생은 날마다 성장한다. 성장은 다방면에 걸쳐서 일어난다. 신체가 왕성하게 자라날 뿐 아니라 알게 되는 지식도 많아진다. 그 무렵 한 인간으로서 내면과 정서도 깊어지게 마련이다. 성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학생은 다른 학생과 관계를 맺으며 인간을 이해하고 인식의 영역을 확장한다. 선생님과 교유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히고 안목을 키운다. 이 모든 과정은 주로 학교 공간 안에서 이뤄진다. 학교가 이전 세대가 쌓아 올린 문화와 지식을 후대에 고스란히 전수하는 물리적 교습소가 아니라, 한 인간의 전인적 성장을 도모하는 교육의 장으로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교육의 장으로서 학교는 학생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서 다각도에서 학생을 지원해야 한다. 지식을 전수하는 일을 기본으로 삼되, 거기에만 매몰돼서는 안 된다. 학생의 성장은 지식을 주입하는 일만으로는 촉진되지 않는 까닭이다. 학생 내면에 잠재된 가능성을 계발하고, 이를 외부로 발현시킬 때 참된 성장이 이뤄진다. 학생의 성장을 통합적으로 지원한다는 말은 이런 맥락 안에서만 진정한 의미를 획득한다. 오랫동안 혁신학교로 운영하면서 학생성장 통합지원 프로그램을 특색있고 내실 있게 진행해 온 삼각산고등학교(이하 삼각산고, 교장 문지연)를 찾은 이유다.

학생성장 통합지원의 밑그림을 그리는 교육활동 TF

학생성장 통합지원은 학교 공간의 전체적 재정비, 교실 환경의 전반적 재구축 같은 물리적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이보다 강력하고 중요한 동력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교 구성원의 의지와 노력, 소통과 합의에 기초한 실천에서 비롯된다. 학교 관리자나 업무 담당 부서에 속한 일부 교사의 노력만이 아니라, 교직원 모두의 마음이 학생성장을 향해서 하나로 모여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를 위해 삼각산고는 ‘교육활동 TF’(이하 TF)를 구성하고 교직원의 뜻과 의지를 모으는 소통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 TF는 학생성장 통합지원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모인 교사들의 모임이다. 이 학교에 소속된 교사라면 누구라도 회의에 참여하고 프로그램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제안할 수 있다. 아래로부터 형성된 모임으로 위계가 없는 까닭에 교장, 교감선생님도 평교사와 똑같은 발언권을 가지고 회의에 참여한다. TF는 교원학습공동체와도 연계하고 부서별, 연령별로도 안배하여 협의체를 구성한다. 하지만 교사들이 자발적이고 비공식적으로 모인 TF가 대표성을 띤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과 안건은 토론이 있는 교직원 회의에 공개하여 공식적으로 인준 받는 과정을 거친다. 말하자면 TF는 학생성장 통합지원의 밑그림을 그리는 자발적 협의체인 셈이다. TF에서 설계한 학생성장 통합지원 프로그램의 밑그림은 다채로운 빛깔로 채색된다. 각양각색의 붓과 물감을 들고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하는 이는 교사만이 아니다. 교육의 또 다른 주체인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지역 사회가 함께 힘을 모아 ‘학생성장’이라는 그림의 완성도를 높인다. 그럼 이제 삼각산고에서 그리는 학생성장의 그림을 세부적으로 들여다보자.

<교육활동 TF 회의>

<교원학습공동체 활동>

학생성장 통합지원을 위한 교육과정 설계와 정규 수업의 변화

학교교육의 뿌리는 교육과정이다.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한 나무는 하늘을 향하여 바르고 단단하게 자라기 어렵다. 삼각산고는 교육의 뿌리를 내리는 과정, 즉 학교 교육과정을 설계할 때부터 남다른 준비 과정을 거친다. ‘함께 만들어가는 학교 교육과정’이라는 기조 아래 학생, 학부모, 교사의 의견을 모으고 합의를 거쳐 교육과정을 설계한다. 학생의 과목 개설 요구를 가능한 선에서 모두 반영한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담임교사는 학생의 진로와 진학을 고려해 선택 과목에 대해 자세히 안내하고 충분히 상담한다. 과목 개설에 대한 학생 수요 조사를 바탕으로 학생 선택지를 다양하게 제시하고 과목 수요자인 학생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애쓴다. 이 과정은 1학기 5월부터 시작해 다음 학년 교육과정을 확정해야 하는 12월까지 지속된다. 학생이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교육과정을 결정짓지 않고 열어두는 것이다.

삼각산고의 학교 교육과정은 이렇게 오랜 숙고와 합의 과정을 거쳐 깊게 뿌리 내린다. 그 뿌리에서 자라나는 가장 큰 줄기는 정규 수업이다. 교육과정 내에서 이뤄지는 정규 수업이 변하지 않으면 학생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그 모든 기획과 노력도 수포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삼각산고가 학생의 전인적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교육과정 내 정규 수업의 변화를 가장 우선시하는 까닭이다.

이에 따라 모든 교사는 수업의 내용과 형식에 변화를 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데, 교과 간 융합 수업, 학생과 함께하는 수업, 관찰 수업 등이 삼각산고에서 수업 혁신을 위해 실천하는 사례다. 예컨대 교과 간 융합 수업은 ‘한국사’와 ‘미술’ 과목을 융합해 프로젝트 수업으로 진행한다. 한국사 시간에 독립운동 단체와 독립운동가에 대해 배우고 나면, 미술 시간에는 이에 대한 홍보물을 제작해 교내 전시회에 출품한다. 관찰 수업은 기존의 수업 공개에서 한 단계 더 진전된 형식이다. 교사는 자신의 수업을 정해진 기간에 공개해 누구든지 참관할 수 있게 한다. 수업한 교사와 참관한 교사는 수업에 대한 피드백을 교환하며 정규 수업의 질적 제고를 도모한다.

수업의 변화는 평가 방법의 변화를 자연스레 가져온다. 기존과 같은 평가 방식으로는 변화된 수업에서 학생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삼각산고는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를 목표로 학생이 성장하는 모습을 섬세하게 기록하고 더욱 북돋아 줄 수 있는 평가 방법을 고안하고 있다. 한 예로 모둠 토론과 활동 중심의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수행평가에 반영한다. 이 경우 성적에 대한 민원이 발생하기도 하고, 평가하는 교사의 어려움이 가중되기도 한다. 하지만 학생이성장하는 모습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평가하겠다는 교사의 의지가 뒷받침되어 있기에 그 모든 어려움도 기꺼이 감내하며 이겨내고 있다.

<역사 · 미술 융합수업 전시물>

이렇게 운영되는 교육과정과 정규 수업은 삼각산고 학생들을 성장시키는 밑거름이다. 수업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라는 믿음 아래서 학생들은 배움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처음에는 수업에잘 참여하지 않았던 학생들도 교사의 친절한 설명과 지속적인 노력, 친구들의 설득을 통해 배움과 성장의 길에 함께 발을 내딛는다. 그 모습은 누구에게나 활짝 열린 삼각산고의 모든 교실에서 자발적이고 활발하게 참여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통해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다.

학생성장 통합지원을 위한 통합교육과정 운영과 진로 교육

수업 시간에 학생이 참여하지 못하고 겉도는 이유는 자명하다. 학생이 교실에서 배우는 지식과 현실에서 경험하는 삶이 분리되기 때문이다. 교실 수업이 활기를 띠려면 지식이 가리키는 방향이 학생의 실제 삶을 향해야 한다. 수업 내용을 학생의 요구와 필요에 따라 구성해야 하는 이유다. 삼각산고는 이를 위해 ‘미래 능력을 기르는 통합교육과정’을 운영한다. 동일 교과 내에서의 통합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여러 교과를 통합하고 교과와 창의적 체험활동도 통합한다. 예컨대 1학년에서는 통합사회, 미술, 국어, 세계시민 교과를 통합해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경제’를 주제로 융합 수업을 진행한다. 학생 중심 프로젝트 수업으로 모둠별로 사회적 기업 창업 계획서를 작성한다. CIP 디자인이 포함된 사회적 기업 홍보 포스터를 제작하고, 그 산출물을 공유하고 성찰하는 활동도 진행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현대 사회에 꼭 필요한 지식정보처리 역량뿐만 아니라 창의적 사고 역량과 심미적 감성 역량, 의사소통 역량 및 공동체 역량도 키운다.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는 ‘생명’을 주제로 우리 주변의 환경 문제를 고민하고, 국어 시간에는 이와 관련된 내용을 소설로 쓰는 활동도 한다. 그 결과물을 모아 학기말에 운영되는 ‘교육과정 자율주간’ 시간에 발표하도록 지도한다.

<1인 1프로젝트 발표회>

이렇게 통합교육과정을 운영하여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는 지식과 경험을 통합하는 것이다. 앎과 삶이 일치될 때 학생이 나아갈 길을 찾아주는 교육, 즉 진로 교육도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고등학교 진로 교육이 대부분 진학 교육으로, 다시 말해 대학 입시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은데 삼각산고의 진로 교육은 그렇지 않다. 연간 기획으로 진행하는 ‘1인 1프로젝트 학습대회’도 이러한 진로 교육의 맥락안에서 이뤄진다고 볼 수 있다. 가령, 경영학중 마케팅 분야에 관심이 많은 학생은 지역사회를 직접 탐방하여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의 마케팅 전략을 비교 분석한다. 제약업을 진로로 정한 학생은 동네 약국을 직접 방문해 실태를 조사하고 문제점을 발견한 후 해결 방안도 제시한다. 이때 학생은 지도교사를 직접 선정하여 자문을 구하고 교사는 학생의 활동과 사고 과정이 논리적으로 이뤄지도록 조언해 준다.

이외에도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해 다양한 진로를 찾은 졸업생을 초청해 진로 관련 특강도 여러 차례 실시한다. 학생 개개인의 진로 설계와 관련된 담임교사의 지속적인 상담과 학년부 선생님들의 헌신적인 지도는 삼각산고 학생들이 나아갈 방향을 환하게 비춰주는 등대 역할을 하고 있다.

학생성장 통합지원으로 맺어진 결실들

학생성장을 통합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깊이 뿌리 내린 교육과정에서 자라난 나무에는 탐스러운 결실이 맺어진다. 삼각산고의 결실 가운데 돋보이는 것은 ‘교육과정 자율주간’ 프로그램 중 하나인 ‘나도 선생님’이다. 기말고사가 끝난 후 방학을 맞이할 때까지, 그 계륵과도 같은 시간에 선생님이 학생에게 교단을 잠시 내주고 학생이 스스로 준비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수업을 진행할 학생은 자신이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수업 계획서를 교사에게 제출한다. 교사는 계획서를 수합하고 심사한 후 수정할 부분과 보완할 내용을 학생에게 안내한다. 학생은 선생님의 지도와 안내에 따라 수업 계획서를 수정하고 수업 내용을 알차게 준비한다. 기말고사 종료 후, 교육과정 자율주간이 되면 학생은 교실에서 자신이 준비한 수업을 진행한다. 학생은 교단에 올라가 선생님이 되어 가르치는 일의 즐거움을 깨닫고 수업하시는 선생님의 어려움에도 공감한다. 듣는 학생들도 자신의 친구가 수업하는 모습을 신기하고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수업에 열심히 참여한다. 교사는 뒤에서 참관할 뿐 관여하지 않으며 수업이 끝난 뒤에는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잠시나마 선생님이 되어 본 학생은 교사의 격려에 고무되고 큰 성취감을 느낀다.

삼각산고의 학생성장 통합지원 프로그램이 빚어낸 또 하나의 결실은 ‘감성과 재능을 함께 나누는 아트 페어’ 행사다. 이 행사는 삼각산고 사회적 협동조합이 주관하고 진행한다. ‘풍요로운 삶을 위한 다양한 예술적 경험의 장’을 마련한다는 활동 목적 아래 협동조합 동아리 학생들이 기획하고 홍보하며 직접 제작한 물품을 경매하는 행사다. 아크릴로 그린 캔버스 작품, 색연필로 그린 엽서, 책갈피 등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경매에 참여하는 학생과 교사, 학부모와 지역주민 모두 만족하는 경험을 얻는다.

이외에 ‘스타트업 창업 페스티벌’도 연다. 마스크 끈, 못난이 과일로 만든 쿠키, 비건 재료로 만든 빵과 같이 사회적 가치를 담은 상품을 제작하고 판매하기 위해 사업 계획서를 작성한 뒤 제작부터 홍보, 판매와 정산 작업까지 학생들이 직접 진행한다. 여기에서 수익이 발생하면 그 금액을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한다고 하니 교육적 효과도 발생하는 것이다.

<나도 선생님>

<사회적 협동조합 아트 페어>

성장, 나눔, 평화의 교육의 장

지난 3년, 학교는 팬데믹과 싸우는 최전선에 있었다.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는 모든 활동은 학교라는 물리적 공간 안에서 활발하게 이뤄졌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상처가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공동체성의 붕괴는 우리 사회가 가장 먼저 치유해야 할 과제이다. 이런 맥락에서 학교는 역설적으로 무너진 공동체성을 회복할 가능성이 높은 공간이다. 교실에서 학생은 친구와 더불어 배우는 과정에 참여한다. 협력적 학습을 통해서 친구로부터 배우는 과정에도 동참한다. 이러한 과정이 온전하고 왕성하게 진행될 때 학생은 학교 안에서 전인적 인간으로 성장한다.

교훈은 학교 교육이 추구하는 궁극적 가치를 함축적으로 담는다. 2011년 개교한 이후에 삼각산고가 지향할 교육의 가치를 교육 공동체가 함께 고민해서 지었다는 교훈은 ‘성장, 나눔, 평화’다. 학생의 전인적 성장을 도모하는 교육, 나눔을 통해 학생의 성장을 확장하는 학교, 그것이 결국 평화로운 공동체의 형성으로 나아간다는 지향. 삼각산고의 교훈이 ‘성장, 나눔, 평화’인 이유를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성장에서 나눔으로, 나눔에서 평화로 이어지는 교육장으로서 삼각산고의 교육 활동이 특별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