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2022 여름호(247호)

세계시민교육, 거대 담론을 넘어
교육자의 일상 속 실천으로

김진희(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새로운 세계를 여는 글로벌교육의 본령: 세계시민교육의 개념과 방향

교육계에서 세계시민교육의 키워드가 이제는 그리 낯설지 않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의 비전과 각종 정책 사업에도 세계시민성(Global Citizenship)을 함양하는 방향이 어느 정도 투영된 것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념적으로 볼 때 세계시민교육은 포괄적이고, 다층적이다. 이 지면에서는 세계시민교육의 기원과 철학적 개념을 다시 한 번 정리하여, 교육 현장에서 세계시민교육을 실천하는 이론적 토대를 제시하고자 한다.

어느 문명, 어느 시대이건 교육과 사회는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교육학은 시대 정신을 반영하여야 하며, 미래 사회를 주체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사람을 키우는 전인적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교육자는 사회 변화를 누구보다 기민하게 비판적으로 읽어내고, 학습자의 인식을 폭넓게 확장해주는 견인자의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세계화의 영향은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교육의 제 측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세계 간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과 상호연계성(inter-connection)의 수준과 깊이가 심화됨에 따라, 교육 영역 역시 국가 단위의 경계를 넘어서 인권, 평화, 사회 정의, 다양성, 지속가능성 등 인류의 상호 발전 문제를 고민하면서 세계시민으로서 의식과 행동 변화를 촉구하는 교육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국민국가의 ‘컨테이너’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형태의 시민사회의 출현과 그에 걸맞은 새로운 형태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세계시민교육의 발현을 구성하는 사상적, 실천적 토대는 마련되어 왔다. 이처럼 세계시민교육은 발생 배경 자체가 글로벌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세계시민교육은 어느 날 갑자기 역사적 뿌리 없이 부상한 영역이 아니며 그동안 세계시민성, 세계시민주의, 그리고 그것을 교육적으로 연계·결합한 다양한 궤적을 가지며 전개되어 왔다. 기본적으로 세계시민주의는 민족이나 국가와 같은 특정 공동체의 울타리를 넘어서, 세계시민(cosmopolitan = a citizen of the world)으로서 살아가는 것을 강조한다(김진희, 2017).

세계시민주의 담론의 시작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 헬레니즘 문화에서 그 뿌리를 찾는다. 인류 공통의 보편적 문화와 사회기반이 점차 형성되어 단위 폴리스를 초월한 세계시민주의와 개인주의적 경향을 띤 문화가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나는 세계의 시민이다’라고 말한 그리스 견유학파(犬儒學派)의 논의와 개인주의적 사고방식과 세계시민주의를 바탕으로 금욕을 강조한 스토아 학파에 이르면서 철학적 세계시민주의의 기초가 형성되었다. 스토아 학파는 ‘나’라는 동심원이 가족, 이웃, 지역사회, 국가, 세계 인류로 나아가는 확장된 동심원을 상정하면서 세계시민주의의 기본적 골격을 이루었다(Appiah, 2006). 그런 가운데 근대 철학사에서 세계시민주의는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의 평화 사상,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영구평화론 등에서 토대를 형성하면서 모든 인간은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평화와 인류애, 그리고 도덕성에 대한 보편적 규범과 가치를 존중한다는 원리를 품고 있다. 특히 칸트는 역사철학적 용법으로 세계시민, 세계시민적 사회, 세계시민적 체제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 개인은 하나의 세계시민으로 자신을 파악하고, 나아가 개인들과 국가들이 세계시민법에 따라 보편적 인류국가의 시민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논의는 국가 안에서의 시민적 자유가 기반이 되어야 하며, 세계의 보편적인 공민적 질서는 국민의 자유와 세계의 자유에서 완성된다는 점을 담고 있다(김진희, 2019).

요컨대 국가 내의 계층적, 문화적, 인종적 갈등과 공존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를 넘어서 전 지구적 문제 해결을 위해 전 지구적 수준의 연대와 협력을 강조하는 세계시민교육은 세계인이 하나의 공동체 시각을 갖고 세계체제를 ‘이해’하고 국제 이슈를 해결하는 데 ‘참여’하는 역량을 키우는 교육이다.세계시민교육은 세계를 하나의 단위로 인식하여 세계 안의 다양한 문화 및 사람들과의 상호의존성을 이해하는 보편적 인류 공영을 추구하는 가치 지향적 교육이자 사회적 실천을 도모하는 교육이라는 점에서 지구촌 전체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빈곤, 인권, 평화, 환경, 형평성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에 대한 공동체적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세계적 시각과 참여적 태도를 강조한다. 즉 이는 단순히 국민국가 내부에서 집단 간의 평등과 다양성을 증진시키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는 지구촌의 모든 구성원 간의 연대와 협력의 태도를 함양하고, 초국적 상호학습의 맥락을 중요시하는 교육이다. 바로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서 세계시민교육은 특정 국가의 단위 교육과정에서만 다루어지는 교육이 아니라, 전 지구촌이 학습해야 하는 교육 영역으로 부상하고 있다(UNESCO, 2016).

전 지구적 영향력이 일상생활까지 미치는 오늘날, 개방과 포용성으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야 하는 한국사회에 세계시민교육은 가장 중추적인 교육으로 자리매김해 나가야 할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알맞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미래교육의 방향에서 세계시민교육은 담론의 주변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여는 미래를 향한 교육이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와 세계시민교육: 지금 왜 세계시민교육이 중요한가?

우리는 지금 어떠한 세상에 살고 있을까? ‘어떠한’을 채울 수 있는 형용사는 개인과 집단마다, 그리고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정의’와 ‘공정’이 중요한 사회적 화두가 될 만큼 사회·경제적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으며, 적어도 하루가 24시간이라는 시간의 공평함은 주어지지 않았냐는 말이 서글픈 위안이 될 만큼 개인, 집단, 지역, 국가 간 다중 격차가 현저하게 벌어지고 있는 세계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2020년부터 2022년 현재까지 지구촌의 구성원 모두에게 공통의 제약 조건이 된 것이 있다. 바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서 물리적으로 ‘닫힌’ 세계를 직면하게 된 엄혹한 현실이 그것이다. 코로나19가 안겨준 전대미문의 충격은 적지 않은 상흔을 안겨주고 있다. 전염병 시대에 안전을 위해서 인간이 인간에게 다가갈 수 없도록 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개인이 국가로부터 간섭받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자유권을 박탈한 ‘봉쇄’라는 지침은 우리의 일상을 뒤흔들며, 새로운 사회적 표준을 정립하는 파열음의 과정을 생성시켰다.

이렇게 움츠러들고 닫힌 세계에서 왜 우리는 바로 지금, 세계시민교육을 논해야 하는가? 코로나19로 국제사회는 바이러스를 억제하기 위해서 서로의 국경을 차단하고 하늘길을 폐쇄하였다. 우리나라 역시 코로나19의 여파로 2021년 기준 국제선 항공여객은 전년도 대비 78% 급감하였고, 약 30년 동안 개발도상국으로 봉사단을 파견했던 한국국제협력단(KOICA)도 45개국에 파견된 해외 봉사단원들을 귀국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필자 역시 정부의 국제교육협력 사업을 평가하기 위해서 아프리카 동쪽에 있는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에 출장을 다녀온 2020년 1월 이후, 우리나라에 머물렀다. 이렇듯 국제교류의 문이 닫히고, ‘나’와 우리 국가(nation-state)의 안전과 생명이 가장 중요해진 시기에, 국경 밖에 존재하는 나라들을 이해하고 협력을 이어갈 대의명분이 있느냐고 누군가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동전의 한 면만 보고, 다른 면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미 21세기 지구촌의 세계화는 세계를 하나의 마을로 바꾸어 놓았다. 오히려 코로나19의 여파로 글로벌 연결성은 역설적으로 더욱 심화되었으며, 세계 간 상호의존성의 필요는 더욱 커지고 있다. 팬데믹 시기에 더욱 불어 닥친 글로벌 물류 공급망의 연쇄적인 붕괴와 그로 인해 개인의 일상이 마비되는 병목현상이 확산되고, 국경 폐쇄를 비롯해서 자국 중심주의로 대응한 감염병 관리와 보건의료 경쟁이 오히려 코로나19의 대유행을 악화시켜 선진국 중심의 백신 제국주의를 야기했다는 비판적 목소리 역시 제기되었다. 이처럼 심화되는 불확실성과 국제적 불평등을 해결하고 코로나19의 충격파를 근본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 국제협력과 연대의 중요성은 더욱 더 커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미 지구촌은 대면세계와 가상세계에서 거대하고 촘촘한 상호연결망 안에 편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그문트 바우만(2017)은 ‘연결된 세계에서 글로벌 이주는 21세기의 새로운 혁명’이라고 말했다.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 비자발적으로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떠나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움직일 것이다. 하물며 매일, 매순간 네트워크로 묶여있는 온라인 세계의 연결망과 그 파급력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연결된 세계에서 이주는 새로운 혁명이다. 20세기의 대중혁명이 아니라 개인과 가족이 벌이는 이데올로기가 그린 미래상이 아니라, 국경 저편의 삶을 담은 구글 지도 사진에 영감을 받은 21세기의 탈출 주도 혁명이다. 이러한 새로운 혁명에서는 정치 운동이나 정치 지도자의 성공이 필요 없다. 따라서 비참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유럽연합의 국경을 건너는 것이 어떤 유토피아보다 매력적이라는 점은 놀랄 일이 아니다. 갈수록 많은 사람들에게 ‘변화’라는 개념은 자국 정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터전 자체를 다른 나라로 바꾼다는 뜻이다(바우만 외, 2017: 135 ; 김진희·이로미, 2019: 59).

이처럼 혈연 기반의 동질적 국민국가라는 정치 단위는 점차 동질성의 신화에서 벗어나고 있으며 개인은 국가 경계를 넘어서는 자유의 담지체이다(김진희·이로미, 2019). 이처럼 긴밀해진 세계 간 상호의존성은 거대한 담론과 사상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 의식주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같은 영향은 경제적 이슈에 그치지 않는다. 예컨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과 전쟁으로 유가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고, 국내 경제에도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제사회의 외교 질서는 균열이 일어나고 있으며, 더불어 우리나라의 일부 교육 현장에서는 러시아 출신이라는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되는 러시아 배경 학생들과 고려인 동포 아동의 고충이 보도되기도 했다(연합뉴스, 2022.03.04.). 전쟁의 불똥은 우크라이나에서 유학하던 아프리카, 인도 등 제3국 출신의 유학생들이 공포와 패닉 속에서 피란 행렬에 동참할 때도 유학생의 출신 국가의 대통령이 러시아를 지지하는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가에 따라서 차별과 갈등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한국일보, 2022.03.02). 이들을 향해서 ‘러시아로 돌아가라’ 혹은 ‘전쟁 범죄국 출신이니 우크라이나 침공을 책임져라’라는 대응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비극이 또 다른 혐오로 이어지도록 부추기고 있는 형국이다.

바로 이러한 시점에서 세계시민교육은 학습자들이 혼란스러운 국제 역학을 읽고 세계의 역동을 판독하는 시각을 비판적으로 확장시키도록 견인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 개개인은 다양한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지만, 지구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국제사회의 공동 문제에 대응하는 태도를 키우며, 인류의 공동 번영과 평화의 가치를 지켜나가기 위해서 어떻게 참여해야 할지에 대한 의식을 함양시킬 수 있어야 한다.

우크라이나 난민 학생을 수용하는 이탈리아 학교, 그리고 세계시민성

필자가 안식년을 보내고 있는 이탈리아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가 한층 더 밀도 있게 다가오고 있다. 유럽 내 전운(戰雲)이 감도는 분위기가 한층 고조되는가 하면, 우크라이나 난민으로 입국한 학생들이 속속들이 이탈리아의 학교로 편입되고 있다. 이를 보도하는 이탈리아 언론의 태도도 현재까지 매우 우호적이고, 지역의 주민들의 반응도 환대로 가득 차 있는 점이 흥미롭다. 흥미롭다는 것은 이 사안을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이다. 이탈리아 중부 지역의 한 학교에서는 우크라이나 국기를 흔들며 ‘전학생’으로 온 우크라이나 난민 남매를 뜨겁게 환영하는 모습이 주요 뉴스로 보도되었다. 전교생 200여 명이 모두 나와서 환호하고, 남매의 손을 잡고 교실로 향하는 뭉클한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목숨을 걸고 탈출한 우크라이나 난민 학생들에게 학습권을 보장하고 따뜻하게 환대하는 모습은 이탈리아의 인도주의적 외교정책을 방증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 이탈리아는 2014년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넘어온 난민들을 추방하고 그리스로 강제 송환하여 유럽인권재판소(ECHR)의 ‘인권 침해’ 판결을 받은 나라라는 점에서 눈여겨볼 지점이다. 여기서 필자는 이탈리아 볼로냐대학과 베로나대학에 재직하는 동료 교수들에게 이러한 역설에 대해서 현지인의 시각을 물었다.

‘우크라이나 난민이 유독 이탈리아에서 환영받는 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탈리아 교육계 역시 이 문제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필자는 그들과 여러 토론 끝에 선택적 인도주의 혹은 선택적 인도주의적 개입(selective humanitarian intervention)이라는 개념이 난민에 대한 일관성이 없는 모순적인 조치를(Szende, 2012) 잘 설명해 주고 있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해안선을 타고 목숨을 걸고 탈출한 중동과 아프리카 출신 난민과 달리, 우크라이나는 유럽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점, 그리고 가톨릭을 국교로 삼는 이탈리아와 우크라이나의 종교적 기반이 유사하다는 종교적 결속력, 그리고 인종적으로 백인이라는 공통성이 연대와 협력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지점이다.

실제로, 이탈리아인들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감정적이고 도덕적인 환대를 넘어서, 이탈리아 정부는 2022년 3월에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보호·지원하는 행정명령을 승인하는 법제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로써 난민들은 1년간 합법적으로 체류하면서, 무상 의료 혜택과 교육 권리, 그리고 노동 허가를 제공받게 되었다. 이탈리아의 선택적 인도주의적 조치를 차치하더라도, 세계시민적 관점에서 이 사태를 조망하는 것은 의미있다. 현재 이탈리아로 들어온 우크라이나 피란민이 7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전쟁이 남의 나라의 일이 아니라 ‘나’ 개인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의 환경과 자원의 재배치, 그리고 인식의 변화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자국중심주의적 관점에서는 내 국토에서 내가 노동으로 일한 세금을 내면서 안정과 번영을 추구하는 개인들이, 왜 전쟁을 피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외국인’이 내가 일군 영토에 살 수 있도록 무상으로 지원해야 하는지 설득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국가의 이익을 도모하는 동시에, 세계평화를 추구하는 거대한 인류의 연결망 속에서 살고 있는 구성원이라는 점에서 세계시민성의 근원적인 필요를 소환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사회이든 이질적인 난민의 수용 과정은 로맨틱하지 않으며 이주로 인해서 발생하는 각종 사회적 이슈와 갈등이 수반된다. 이와 동시에 난민과 이주민의 수용은 넓게는 국제사회가 풀지 못한 평화, 인권, 정의, 인간 존엄의 근원적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김진희, 2019).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한국의 시민이자 세계의 시민이라는 정체성을 인식하고, 국제사회가 풀지 못한 문제들에 눈을 감지 않고, 책임감과 참여의식을 키우는 세계시민교육이 필요하다. 전 지구적 협력과 연대의식을 키우는 교육은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신뢰를 쌓아하는 중장기적인 삶의 변화를 요청하고 있다. 세계시민교육의 실천 지형에서도 우리는 특정한 인종, 민족, 종교적 배경을 가진 사람을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선택적 인도주의를 지양해야 하며, 사회적 약자에게 우월적 지위에서 일시적으로 시혜를 베푸는 자선주의적 관점 역시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세계시민교육은 하나의 개별 교과교육으로 완성될 수 없고, 제도와 법전의 힘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을 중장기적으로 변화하도록 하는 전 생애적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김진희, 2022).

세계시민교육자, 교사들의 일상 속 경험과 실천

필자는 지금까지 세계 60여개국의 교육 현장을 둘러볼 수 있었다. 국경을 넘어서 다양한 세상을 만날 때마다 기존의 선 관념을 다시 되짚어 보게 되는데, 그 일환으로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뛰어넘지 못한다’라는 전제를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전제에 수긍한다고 할 때, ‘세계시민교육의 질은 어떻게 담보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회귀하게 된다. 세계시민교육을 질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교육자의 세계시민의식의 성장이 필요하지 않을까?

교사들은 지식을 가진 교육 실천가 집단이다. 필자가 생각할 때, 현재 우리나라에서 세계시민교육을 내실 있게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이미 지식과 정보력을 가진 교사들이 활용할 수 있는 세계시민교육 관련 자료의 부족이나, 제도적 인프라의 한계로 인한 것이 아닐 것이다. 물론 학력경쟁이 치열한 교육세계에서 비(非)인지교육으로서 세계시민교육이 가지는 위상은 취약한 것이 사실이다. 아울러 이미 구조화된 교육과정 속에서 세계시민 관련 내용을 융합적으로 다룰 수 있는 교사의 통합적 역량은 함양될 필요가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 가장 근본적인 지점은 ‘세계시민성’에 대한 교사 스스로의 인식과 해석이 피상적이라는 점에 있다. 국제관계의 역동성을 이해하고, 지구촌의 다양한 문제를 다루는 내용적 지식 전달 측면에서 세계시민교육은 어렵지 않게 달성될 수 있지만, 질 높은 세계시민교육을 위해서는 교육자의 실천적인 경험과 성찰적 지식이 필요하다(김진희, 2022).

필자가 전국 단위의 교원 연수 강의 혹은 세미나를 통해서 만나게 되는 교사들은 대부분 열린 자세로 세계시민교육의 개념을 이해하고, 미래교육의 방향성으로서 세계시민교육의 중요성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많은 교사들은 ‘머리로는 다양성의 가치를 존중하고 편견을 없애며 세계시민교육을 실천하고 싶지만, 자신의 성장기에 스스로 세계시민적 정체성을 가지거나 다양성을 접한 경험이 없어서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다’는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교육의 철학과 교육 방법은 어우러져야 한다. 세계시민교육은 지식과 개념 이해 만큼이나, 학습자의 태도 변화를 통한 행위 영역의 실천이 강조되는 교육이다. 세계시민교육을 다양한 유사개념을 활용해서 분석하더라도, 연대와 협력(solidarity and cooperation)은 세계시민성의 함양에서 공통적으로 강조되는 핵심어로 나온다. 연대와 협력은 관념적 인식 영역을 넘어서, 인간의 행위 영역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런 측면에서 세계시민교육을 실천하는 것은 곧 세계시민성을 교육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세계시민교육이 어떤 세부 주제 영역을 다루더라도, 그것이 궁극적으로 담고 있는 철학과 방향은 ‘글로벌 사회를 읽는 개방성’과 ‘다양성 존중’, 그리고 ‘참여와 연대’의 정신을 담고 있다. 세계시민교육을 가르치는 교사가 학습자와의 상호작용에서 정의적 영역의 소통을 등한시하거나, 주입식으로 지식과 태도를 가르치는 것은 교육 철학과 방법의 불일치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 즉, 세계시민으로 살아갈 학생들에게 국제사회의 역동, 이를 둘러싼 지식 정보만 가르치는 방식으로 세계시민교육은 완성될 수 없다. 세계시민으로서 정체성, 인류공동의 번영을 도모하는 태도, 연대와 협력을 실천할 수 있는 교육적 실천이 필요하다. 단순히 교육의 방법을 ‘테크닉’ 수준으로 받아들이고 적용한다면 뿌리는 취약해진다. 왜냐하면 하나의 기술적 적용을 선택하고 취하는 것 역시 교수자의 인식론이 반영되기 때문에, ‘무엇을 왜 활용하고 적용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이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게 될 경우 개방성, 다양성, 세계적 연대성이라는 본질적인 가치를 담은 교육내용이 다양한 방법으로 실천될 수 있다.

중앙정부나 교육청의 시대적 요구에 따라 당위적으로 세계시민교육을 가르쳐야 할 때 교사들은 소외될 수 있다. 설령 교사들을 위해서 세계시민교육의 방법론이 A부터 Z까지 풍성하게 ‘제공’된다고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세계시민교육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교육자의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교육자의 ‘개인적·실천적 지식(Personal Practical Knowledge)’이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는 코넬리와 클란디닌(Connelly & Clandinin, 1988)의 말처럼, 유년기에 성장하면서 세계시민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거나, 일상에서 다양성과 개방성, 세계의 연결성을 깊게 성찰할 기회가 없었던 교사들에게 세계시민교육이 뿌리의 힘을 가질 수 있을까? 교사들 스스로 일상의 내러티브와 생애 속에서 다양성과 세계시민성을 연관시켜서 반추하는 ‘한 사람의 삶의 경험(a person’s life experience)’이 필요하다. 학생들에게 세계시민교육을 효율적으로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계시민교육자라는 정체성에 대해서 교사들이 스스로 질문하고, 도전하면서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 내에서 세계시민교육을 실천하는 작은 걸음들을 만들어 간다면 세계시민교육은 피상적인 국제교육으로 밀려나지 않을 것이다.

강조했듯이 세계시민교육은 학생들이 지구공동체 일원으로서 세계에 대한 다각적인 이해도를 높이고, 세계시민사회의 협력과 인류의 번영을 위해서 참여하고 행동하도록 세계시민성을 함양하는 교육이다. 이 같은 교육을 질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서 우리 교육자들도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일상에서, 교실 현장에서, 지역사회에서 상호 공존을 위해서 세계시민교육의 무형적인 경험을 점진적으로 만들어 나가고, 세계시민교육자로 성장할 수 있는 사회적 학습 기회를 확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바쁘게 돌아가는 교육 현장에서 교사들이 힘과 자원을 얻을 수 있도록 교육부와 지역교육청은 세심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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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희(2017). 글로벌시대의 세계시민교육 이론과 실제. 박영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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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희(2022). 교육자를 위한 다문화교육과 세계시민교육 방법론. 박영스토리.
• 바우만 외(2017). 거대한 후퇴. 서울: 살림출판사.
• 연합뉴스(2022.03.04.)“러시아로 돌아가”…우크라 사태로 ‘고려인’ 혐오 확산 우려, https://www.yna.co.kr/view/AKR20220303160600371에서 인출
• 한국일보(2022.03.02.) “우크라이나가 인종차별”…외국인·유학생들의 험난한 피란길,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30210160001596에서 인출
• Appiah, Kwame Anthony(2006). Cosmopolitanism: Ethics in a world of strangers. New York ; London: W.W. Norton.
• Connelly, F. Michael & Clandinin, D. Jean.(1988). Teachers as curriculum planners: Narratives of experience, Teachers College Press.
• Szende Jennifer(2012). Selective Humanitarian Intervention: Moral reason and collective agents, · Journal of Global Ethics, 8(1), 6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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