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2018 봄호 (230호)

수업과 평가를 바꾸는 한 학기 한 권 읽기

이정희 공릉중학교 교장

1. 독서, 정책은 늘고 독서량은 줄고

도서관 및 독서진흥법(1994), 도서관법(2006), 독서문화진흥법(2006), 학교도서관진흥법(2007), 학교도서관 활성화 종합방안(2003~2007), 학교도서관 진흥 기본 계획(2차 2014~2018), 학교 독서교육 및 도서관 활성화 방안(2009), 초중등 독서 활성화 방안(2011)은 독서를 더 확산하여 많은 학생들이 책을 읽게 할 목적으로 중앙정부 차원에서 추진해 온 정책들이다. 각 시도별로 교육청이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실시한 독서 관련 정책은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렇다면 독서는 이런 정책에 힘입어 학교에서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정책이 수립될 때마다 책 읽는 학생들은 증가했는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년에 한 번씩 실시하는 국민독서실태 조사 결과는 온갖 독서관련 정책들을 무색하게 만든다.
  조사 결과를 보면 학교급이 높아질수록, 해가 갈수록 독서량이 큰 폭으로 줄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 독서인구와 독서량이 줄어드는 것이 학교교육만의 책임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동안 학교에서 어떤 형태의 독서교육이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본다면 적어도 왜 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는지, 독서교육의 어떤 점이 문제인지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국어시간에 학생들은 많은 글을 읽는다. 문학, 비문학을 막론하고 내로라 하는 작가들의 뛰어난 글들이 교과서를 통해 학생들에게 제공된다. 그런데, 수업시간에 하는 읽기와 개인이 독자로서 하는 읽기는 참 많이 다르다. 학생들은 제공된 글을 ‘그냥’ 읽을 수 없다. 글의 구조와 주제, 지은이의 의도, 인물의 심리, 수사법 등을 파악하는 데 모든 신경을 기울인다. 어떤 부분에서 기쁨을 혹은 슬픔을 느꼈는지, 다른 학생 역시 나와 같은 느낌을 받았느냐 등은 중요하지 않다. 작품에 대해 이미 정해진 해석을 기억하고 출제된 문제를 제대로 풀면 ‘잘’ 읽은 것이다.
이렇게 읽으면서 감동을 받으라고? 인생의 지혜를 찾으라고? 독서를 할 때 삶을 깊이 있고 풍요롭게 가꿀 수 있다고? 자칫 잘못했다가는 함정에 빠지기 십상인 읽기 문제를 풀어야 하는 학생들에게는 독서를 삶 속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2. 한 학기 한 권 읽기의 의미

미래사회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이 커지면서 과연 우리 교육이 학생들의 미래를 제대로 준비해주고 있는가에 대한 반성과 함께 교수학습방법과 평가가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목소리가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반영되었고, 초·중·고 국어교과에 한 학기 한 권 읽기가 편성되었다.

지금까지 독서교육은 교과 시간 외에 책을 읽는 별도의 시간을 확보하거나(주로 아침 수업 시작 전이나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 도서관을 중심으로 독서 관련 행사를 몇 가지 진행하는 것이 주를 이루었다. 독서는 그저 책을 읽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굳이 진도 나가기에도 빠듯한 교과 시간에 책을 읽는 것은 시간낭비라는 인식 하에 교육과정 속에서 독서시간을 별도로 확보한 학교에서조차 ‘자! 지금부터 조용히 책 읽어.’라고 말하는 것으로 독서교육이 끝나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의 ‘한 학기 한 권 읽기’는 학교 안 독서교육, 특히 ‘국어과 수업 내’에서 실행되는 ‘책’ 읽기 교육을 의미하고, 동시에 ‘국어과 교수·학습 방법론으로서의 책 읽기 교육’을 구현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1) 2015 교육과정에서의 책 읽기 교육은 단순히 ‘읽기’에 방점을 둔 것이 아니라 ‘읽고, 생각을 나누고, 쓰는 통합적인 독서활동’ 전반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교육과정에서 요구하는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긴 호흡으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학습자의 수준과 특성에 맞는 도서가 갖춰져야 하고,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서시간이 확보되어야 하며, 읽은 책에 대해 생각을 나누고 쓸 수 있도록 학습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즉, 독서가 ‘정규 수업’으로,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교사 중심의 일제식 수업을 통해서는 한 학기 한 권 읽기의 운영 방향에 맞게 긴 호흡으로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고, 쓰는 활동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교사가 아무리 잘 가르친다고 해도 학생이 읽고, 토론하고, 쓰는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학생이 전면에 나서 스스로 수업의 주체가 되어야만 수업이 진행된다는 점에서 한 학기 한 권 읽기가 갖는 교육적 의미는 매우 크다. 교사 중심 수업으로 진행할 수 없기 때문에 수업방법의 변화를 고민해야 하고 학생 활동 중심으로 진행된 수업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과정중심의 평가를 실시할 수밖에 없다.

3. 교실의 변화를 불러올 한 학기 한 권 읽기

‘교사가 중심이 되어 정해진 진도를 나가기 위해 강의 중심으로 이루어진 수업’과 ‘과정이 고려되지 않는 객관식 지필 평가’는 우리 교육의 문제로 계속하여 거론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 시간 내내 교사가 지식을 전달해주지 않으면 그 수업은 제대로 된 게 아니라거나, 객관식 지필평가를 보지 않으면 학생들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교사와 학부모가 적지 않다. 과연 어떻게 가르치고 평가하는 것이 학생들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교육은 교육의 공이 피교육자에게 돌아가게 할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완성될 것이다. 교육의 공을 차지한 사람이라야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생명력을 발휘하여 비로소 이 세계에 우뚝 서는 별이 될 것이다.’ 2)
교사가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전달해서’ 학생이 알았다면 그 교육의 공은 교사에게 있다. 그러나 학생이 스스로 고민하고 탐구하면서 크든 작든 깨우친 것이 있다면 교육의 공은 학생에게 돌아간다.

학생이 교육의 공을 차지할 수 있을 때 학생 스스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는 이 글은 우리의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해 주고 있으며, 한 학기 한 권 읽기는 이 방향에 정확히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수업 모형을 만들어 갈 수 있겠지만 한 학기 한 권 읽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내고, 그 질문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형태로 학생 중심의 활동을 설계하는 것이다.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 학생들이 어떻게 시험공부를 하는가를 보여주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서는 교수가 강의하는 내용을 그대로 답안지에 쏟아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학생들은 강의 시간에는 교수의 강의를 받아 적고 시험 전에는 적은 것을 그대로 외우기에 바빴다. 심지어 어떤 학생은 ‘교수님이 말씀하신 농담까지도 기록한다.’고 했다.
‘당신의 생각은 무엇입니까?’라는 지적사항과 함께 낮은 점수를 받은 우리나라의 캐나다 유학생은 아버지에게 “그런데 아버지, 내 생각은 어떻게 하는 거예요? 난 내 생각을 못하겠어요.”라고 말했다는 글을 보았다.5) 우리 교육이 과연 무엇을 위해 힘을 쏟고 있는지 자문하게 한다.
다음 두 개의 평가를 비교해 보자.

이 문제를 풀기 위해 학생들은 굳이 작품을 다 읽거나 다른 작품을 추가로 읽을 필요가 없다. 오히려 다른 작품을 읽고 비교하면서 고민하는 것이 정답을 찾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 정해진 틀에 맞춰 문학 작품을 해석하는 방법을 외우고 제재만 달리하는 이런 형태의 수많은 문제들을 풀어보면서 ‘기술’을 익히는 것이 좋은 점수를 받는데 유리하다.
그런데 다음 문제를 보자.6)

문제에서 요구하는 답을 두 시간에 걸쳐 쓰기 위해서는 조건으로 제시하는 두 작품 외에도 작가의 다양한 작품을 읽고 작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정리되어 있어야만 한다. 수업시간에 교사가 알려주는 몇 가지 지식을 암기하고 관련된 문제를 열심히 풀어보는 것으로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은 물론 2시간 동안 답을 써나가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하지만 한 학기 한 권 읽기는 우리 학생들도 이런 평가를 제대로 치를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 지속적인 읽기와 생각 나누기, 쓰기 등의 활동을 통해 깊이 있게 생각하고 폭넓게 사고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미래에 도움이 되는 수업과 평가가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통해 정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것일까?

4. 서울의 독서교육, 미래를 지향하다

서울 교육에서는 누구보다도 먼저 ‘미래지향적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그 대책을 모색하여 왔다. ‘책 읽는 시민, 토론하는 사회’라는 독서교육의 비전을 수립하고 학생들이 제대로 된 독서교육을 받아야만 스스로 책을 읽는 독자로 성장할 수 있고, 책 읽는 시민이 늘어날 때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올바른 토론문화가 조성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질문과 토론이 중심이 되는 수업 모형을 개발하고, 비경쟁식 토론의 확산을 위해 실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캠프를 진행하였으며, 교사들이 학교에서 수업에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교사가 직접 참여하는 수업과 캠프 등의 워크숍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활동을 추진하였다. 또한 부모와 지역주민들도 책 읽는 문화를 조성하는 데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단체와 연계한 독서운동 전개에도 많은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결국 교사가 바뀌지 않으면 교실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작게는 읽기 교육의 변화를 위해, 크게는 교실 수업과 평가의 개선을 위해 한 학기 한 권 읽기가 교육과정에 들어왔지만 교사들이 고민하고 연구하며 실천을 통해 수업을 바꿔가지 않는다면 독서는, 그리고 우리 교육은 위기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느린 흐름으로 길게 이루어지는 학생 중심의 독서활동을 통해 다양하고 깊이 있는 배경지식을 쌓아가고,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자신의 생각을 체계적, 논리적으로 쓰거나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미래지향적인 학생을 키우는 교실을 기대해 본다.


1) 김영란(2017), 2015 개정 교육과정과 ‘한 학기 한 권 읽기’, 서울특별시교육청.
2) 최진석(2017), 경계에 흐르다, 소나무.
3) 교육부·대전광역시교육청(2016), 2015 개정교육과정 교수·학습 자료집(중학교)
4) 한창호 외(2017), 2015 개정교육과정에 따른 고등학교 국어과 선도교원 연수 자료집: ‘고전 읽기’의 이해와 적용, 교육부·서울대학교사범대학 교육연수원.
5) 최진석(2017), 경계에 흐르다, 소나무.
6) 이혜정(2017), 대한민국의 시험, 다산.
7) 스위스에 위치한 비영리 공적 교육 재단인 IBO(International Baccalaureate Organization)에서 주관한다. 고등과정인 IB 디플로마(Diploma) 프로그램은 우리나라 고등학교 2, 3학년에 해당하는 연령대의 학생들이 2년에 걸쳐 이수하는 과정으로 대입시험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