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교육Vol.228.가을호

수업은 평가를
바꾸고 평가는
수업을 바꾼다

|장홍월

 

1. 교사에 의해 무심코 행해지는 폭력

지난 봄 후배가 건넨 책자1)를 뒤적이다 발견한 한 컷의 그림은 자못 충격이었다. 이 글을 읽기 전에 먼저 나의 물음에 독자들 스스로 상상해보고 답해볼 것을 권한다.

책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교사의 우월한 지식과 말이 폭우와 홍수처럼 들이닥치는 상황은 하늘에서 무자비하게 투하되는 폭격의 상황과 닮았다. 들을 준비가 되지 않은 학습자에게 권위를 덧입고 쏟아지는 지식들은 학생들을 무관심과 무기력에 빠지도록 등을 미는 것과 같으며, 이렇게 학생의 상황이나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지식의 폭격은 후유증을 가져오게 된다.”

지식 폭격적 수업의 다른 이름은 우리가 매일 행하고 쉽게 바꾸려하지 않는 교수법, 바로 ‘강의’다. 저자는 강의식 수업의 가장 큰 문제로 배움의 과정에서 학습자가 호기심과 생각, 동기와 관심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하는 것을 들었다. 그리하여 교사 앞에서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는 대신 지식이나 권위에 대한 두려움과 망설임이 자리잡게 되고 무언가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무너져 버린다는 것이다.

강의는 교사가 자신도 모르는 새 행하는 교실폭력이다. 이렇게 수학 시간과 교사에 대한 상처들이 쌓이고 쌓여 돌이킬 수 없이 수학으로부터 멀어진 버린 학생들을 우린 너무도 태연히 ‘수포자’라 부른다. 그러나 과연 누가 수포자인가? 나는 수포자를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

수학을 수학답게 가르치고 평가하기를 포기한 교사

기억하자. 수포자 학생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교실에는 수포자 교사가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을.

2. 4차 산업혁명시대의 교사의 역할

4차 산업혁명시대에 필요한 것은 고정불변의 지식에 대한 선행학습이 아니라 하나를 파고들며 탐구하되 다른 관점에서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능력, 미래사회 핵심역량이라 일컬어지는 4C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량은 끝없이 학생들의 입을 다물게 하고 조용히 들을 것을 요구하는 주입식 교실에서는 결코 키워질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시대, 교사의 역할과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핵심역량은 학습자 스스로 말하고 생각하고 지식의 구조화가 가능한 수업, 즉 질문이 있는 교실 수업과 과정중심의 평가를 통해서 가능해진다. 그러나 지면의 한계로 수업 이야기는 잠시 접고 논의의 핵심을 과정중심평가에 한정하기로 한다.

 

3. 왜 ‘과정중심 평가’인가?

가. 평가와 수업은 서로를 견인한다

평가는 교육과정을 완성시키는 중요한 교육활동 중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는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창의력·문제해결력 등의 역량 함양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객관식 정답 찾기 평가’를 줄곧 해왔고 지금도 객관식 평가는 교육평가의 객관성 확보라는 미명 하에 그 비중이 단연 높다. 수업개선 노력이 지속적인 탄력을 받지 못하는 주된 요인이 평가 방법과 수업내용 혹은 수업방법이 일치하지 않은 데 있음을 누구나 알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교육부에서는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을 표방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을 고시하고 ‘과정 중심 평가’를 강조하고 있다. 2018년부터 시행되는 새 교육과정은 교육 목표와 내용, 평가에 이르는 수업의 과정이 일관되게 이루어져 학습자가 교육의 목표에 도달하도록 돕는 것을 핵심내용으로 삼고 있다.

수업과 평가는 일치해야 한다. 수업방법을 제아무리 바꿔도 수업한 것과 달리 결과만을 보는 평가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아이들은 교사의 변화된 수업방식을 신뢰하지 않게 된다. 수업을 바꾸려 해도 평가가 결과 중심, 지식 중심의 전통적인 평가방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수업개선은 동력을 잃는다. 따라서 평가방법의 개선 없이 수업방법 개선은 요원하다. 평가와 수업은 서로를 견인한다.

나. 과정중심평가의 장점

1) 평가 중에 이루어진 학생들의 관찰 결과는 교수 결정에 즉각적으로 적용이 가능하며, 학생의 학습과정 맥락에서 평가가 이루어진다.
2) 학생의 학습동기 유발을 시켜주고 학생들의 자부심을 증진시키며, 학습참여와 성취를 지속시킨다.
3) 여러 측면의 지식이나 능력을 지속적으로 평가하며 교수-학습 활동 개선도 가능하다.
4) 학생들이 자기 평가를 통해 자신의 수준을 알고 새로운 목표 설정에 도움을 주어서 학생중심 수업 전략에 도움을 준다.
5) 교사와 학생 간의 상호작용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

다. 과정중심평가를 가능하게 하는 환경

1) 이유가 있는 수학
아이들은 수학이란 도구를 통해 생각하는 힘,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힘을 갖게 된다. 따라서 수업은 패턴형의 반복적 문제풀이를 벗어나 ‘이유가 있는 수학’ 수업으로 이루어진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수학적 근거를 들어 말하는 습관은 논리적 사고 형성에 필수적이며, 논술형 평가가 가능한 교실환경을 구축한다. 결과만이 아니라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집착하며 생각의 논리적 연결고리를 만들어 가는 일이야 말로 수학 교과의 존재 이유다. 비판적 사고의 기본은 논리적 사고의 토대 위에서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유가 있는 수학시간>의 예를 만나보자. 예컨대 다음과 같은 대화를 음성파일로 제작하여 듣기평가로 진행하는 식이다.

2) 또래 교수 문화 정착
교과교육 못지않게 중요한 교육의 목표 중 하나는 더불어 사는 삶의 태도를 갖게 하는 일이다. 수학적 문제해결에서 또래교수와 생각 나눔의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유대인의 학습법으로 알려져 있는 하브루타는 ‘친구 가르치기’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말을 할 수 없다면 모르는 것과 같다고 단언한다. 누군가에게 설명을 함으로써 내가 모르는 것을 알게 되며,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명확해진다는 것이다. 지금 나의 수업 구성의 가장 본질적인 고민은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의 언어로 표현하는 수업까지 나아가기를 바란다는 것! 하브루타가 내 수업에 남긴 흔적이다.

3) 서술형 평가의 확대 및 인수 수학능력 평가
본교는 형성평가는 100%,정기고사는 50%의 서술형 평가를 하고 있다. 서술형 평가의 확대는 학생들의 공부 방법은 물론 수업 참여도에도 놀라운 변화를 가져온다. 생각을 논리적인 식으로 표현하는 연습이 일어나는 수업을 지속하면 학생들에게 점수 그 자체에 연연하게 하기보다는 수학 교과 자체의 매력을 알아가게 하는 효과가 있음을 확인했다.

이는 정기고사가 끝난 학년말에 실시되는 우리 학교 만의 수학능력평가에서 최고의 빛을 발한다. 성적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 시험임에도 학생들은 당해 학년 교육과정 전체를 시험범위로 하는 수학시험을 성실히 준비하고 그 결과에 점수가 아닌 권위를 부여하는 모습이 발견된다.

4. 수학과 과정중심 평가의 실제

가. 말하기 평가

말하기 평가는 매 단원이 끝날 때마다 실시한다. 핵심성취기준에 해당하는 문항들을 선별하고 평가 일주일 전에 학생들에게 제공한다. 문제지를 미리 제공하는 것은 본 평가의 목적이 ‘수학적 말하기’ 능력을 향상시키고자 함이지 수학적 문제해결력을 평가하고자 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핵심성취기준에 따른 문제는 ‘기본’과 ‘도전’의 2단계 수준별 문제로 구성하여 학생들에게 수준을 고려한 자기 선택권을 부여한다. 한편 내가 ‘말하기 평가’를 고집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교육과정과 수업과 평가의 일치
수업 방법을 제아무리 바꿔도 수업에서 교사가 강조했던 가치와 달리 결과만을 보는 평가방식에 여전히 고수한다면 학생들은 교사의 변화된 수업방식에 도리어 신뢰를 느끼지 않는다. 심지어 수업방법의 변화에 저항하는 학생이 나타난다. 차라리 일목요연한 강의식 수업을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수업방법 개선이라는 말 속에는 당연히 평가방법 개선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교육과정과 연동 되어야 한다. 수학적 의사소통 능력을 키우기 위해 수업과 평가, 일련의 과정 속에서 학습자가 말하고 표현하게 하려는 다양한 장치들이 필요했고, 말하기 평가는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2) 학습의 결과가 아니라 학습의 한 과정으로서의 평가
정기고사를 제외한 모든 평가는 학습의 한 과정이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따라서 수업 중 말하기의 모든 방식은 일방적 설명이 아니라 질문을 통해 교사나 다른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도록 지속적으로 지도한다. 말하기 수행평가 역시 문제해결과정을 학급 친구들과 공유하되, 일방적인 설명이 아니라 단원에서 학습한 수학용어를 사용하여 단계별 질문을 통해 상대를 문제해결에 참여시키며 가르치는 체험을 하게 하고자 고안되었다. 이 평가는 발표학생이 학습내용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를 평가하기 위함이 아니다. 학습이 느린 학생들에게 말하기 평가가 또 다른 방법의 학습 기회요, 학습 과정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또한 친구들의 설명을 영혼 없이 관성적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설명이 모호하거나 오류가 있는 부분에 대해 항시 질문을 던질 태세로 경청하도록 지도한다. 발표를 방해하거나 집중하지 않은 경우에 패널티를 적용하며, 문제의 본질에 근접하는 예리한 질문에는 보상이 따른다. 이렇듯 말하기 평가는 발표자와 청자 모두를 성장시키는 학습의 한 과정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나. 사회·수학·국어 교과 융합 프로젝트 평가


다. 동료 평가

모둠 수업이 이루어지는 질문이 있는 교실의 가장 놀라운 열매는 아이들 인성에 일어나는 변화이다. 수업참여도의 50%는 동료 평가를 실시하여 학생들의 의견을 그대로 반영한다. 모둠에서 나의 문제해결과 성장에 가장 큰 도움을 준 친구를 구체적 사유와 함께 2명씩 추천하게 하고 모둠 내에서 논의하여 결정한다. 아이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며 같은 모둠의 친구들을 추천했다.

5. 제언

교사들은 교원양성기관에서 평가전문성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채 학교에 발령을 받는다. 따라서 온·오프라인의 다양한 교사 연수를 통해 수행평가를 포함한 과정중심평가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또 교사는 과정중심 평가를 점수화하는 것 외에 학생이 학습의 과정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성장을 했는지 기술하고 피드백을 주는 방안을 고민해야한다. 평가도 교육의 한 과정이며 그것 역시 성장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사교육은 결과중심 평가를 악용해 공교육을 뒤흔들 수 있는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발 빠른 진화를 거듭하면서 파괴력은 점차 세지는 사교육시장 속에서 공교육이 건강하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교사의 다양한 측면에서의 평가와 수업 전문성을 높여서 과정중심 평가를 실시하면서 수업방법을 개선해 나가야만 한다.

협업, 소통, 창의성, 비판적 사고와 같은 역량을 키우는 수업으로 전환하는 길만이 4차 산업혁명시대에 학교, 그리고 교사가 살 길이다.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고유한 자신의 수업과 평가 전문성을 쌓아가며 길을 찾는 교사로 살 때, 그 교사만이 우리 교육의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