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2022 봄호(246호)

[오디세이학교]
함께 떠나 삶을 견인할
힘을 키우는 여정, 열일곱 살,
모험이 시작되다

이경민 명예기자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오디세우스의 항해는 삶의 의미와 방향을 찾는 여정이었지만, 그 역시 항해 도중 수많은 파도를 마주했을 것이며 때로는 길을 잃었을 것이다. 삶에서 길을 잃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이때 잠시 앉아 ‘숨’을 돌리고 찾지 못했던 또 다른 길을 돌아볼 ‘쉼’이 필요하다. 2015년 개교한 오디세이학교(교장 조중기)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자신의 삶을 구상하고 기획하는 시간을 갖는 전환학년(Transition Year)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1년 과정의 공립 각종학교이다.1 오디세이학교는 덴마크의 ‘에프터스콜레(Efterskole)’2를 벤치마킹했지만, 공교육 체제 밖에서 운영되는 덴마크와는 달리 서울특별시교육청이 직접 운영하고 학력을 인정하는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한국형 전환학년제를 추구하는 오디세이학교의 교육이념과 이를 구현하기 위한 과정을 취재했다.

항해의 시작은 ‘나’를 탐색하는 것으로부터

오디세이학교의 본부이자 다섯 개의 오디세이 캠퍼스 중 하나인 ‘꿈틀’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숭인동에 위치한다. 학교는 겨울방학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어 방학임에도 학생들의 소리로 활기찼으며, 학생들의 드나듦은 자유로워 보였다. 교실과 복도에 전시된 학생 결과물과 작품 진열에서도 자유로움이 느껴졌다면 과장일까.

<오디세이 학교의 캠퍼스 구성: 오디세이학교는 다섯 개의 각기 다른 캠퍼스로 구성된다. 각각의 캠퍼스는 교육 공간이 독립되어 있고 교육과정 또한 자율성을 갖지만, 공통의 교육이념과 오디세이학교라는 공동의 이름으로 긴밀하게 협력하며 하나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오디세이학교는 오랫동안 교육의 본질을 고민해 온 민간 대안학교들과 교육과정을 함께 운영하는 민관협력 구조로 출발했다. 그래서 민간 대안교육 기관인 ‘민들레’, ‘꿈틀’, ‘하자’는 대안학교 교사 2명과 공교육 교사 1명이 함께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공교육 기관인 ‘혁신파크’와 ‘이룸’은 공교육 교사 3명이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오디세이학교의 전환학년제와 중학교의 자유학년제는 다양한 진로와 적성 탐색이라는 큰 틀에서의 지향점은 같지만, 교육과정의 설계-운영-구현의 과정에서 차이점이 보인다. 오디세이학교는 부분이 아닌 1년 교육과정 전체를 진로 탐색에 집중하며 교육과정 편성에 대한 자율권을 보장받기 때문이다.  오디세이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다양한 직업 세계를 탐색하기 전에 ‘나’를 먼저 탐색하는 것이 우선시되며, 교육과정 설계 과정에 교사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수업의 주체는 학생이고 교사는 ‘길잡이3’역할을 한다.

안전한 출항을 위한 3월, 관계 회복을 통해 여유와 성찰을 배우는 시간

<오디세이 ‘꿈틀’ 전환 여행>

<오디세이 ‘민들레’ 출항식 준비>

오디세이학교의 3월 풍경은 일선 학교에서 보이는 모습과는 다르다. 입학과 동시에 어색한 친구들과 정해진 자리에 앉아 주어진 시간표에 따라 수업을 받는 흔한 교실 풍경을 볼 수 없다. 아니, 어쩌면 3월 둘째 주까지 교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을 만나기 힘들지도 모른다. 학생들은 개학과 동시에 약 2~3주간 제주도로 전환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1년의 배움을 위해 몸과 마음을 전환하는 시간을 갖는다. 코로나19로 인해 여행이 어려웠을 때는 학교에서 동일한 내용으로 전환 구간을 진행하고 온라인으로 출항식을 가졌다.

모든 항해가 그러하듯 출항지에서 목적지까지의 거리, 기후, 지리적 환경과 같은 외부 요건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긴 항해를 함께 할 동료들을 파악하고 서로 알아가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오디세이학교는 관계 구축과 적응을 위한 3주의 오리엔테이션 과정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학생들은 이 시기에 오디세이학교에서 가져야 할 배움의 자세를 이야기하고, 각자 자신의 성장을 위한 학습 계획서를 작성하며, 함께 지켜야 할 학교 규칙 역시 토의를 통해 스스로 정한다.

<오디세이 ‘하자’ 아침열기 활동>

<오디세이 ‘혁신파크’ 자치회의>

학생들은 매일 ‘아침열기’와 ‘하루 닫기’, 매주 ‘주간나눔’ 시간을 통해 서로의 생각과 삶을 나누며 피드백하는 시간을 갖는다. 비폭력 대화를 통해 서로 말하고 듣기를 반복하며 경청을 배운다. 점수로 평가받거나 옳고 그름을 가르기 위한 대화가 아니라 공감과 이해, 여유와 성찰을 배우기 위한 시간이다. 공동체에 대한 신뢰가 쌓이는 것은 배움의 승패를 결정할 만큼 매우 중요하다. 우정을 쌓고 서로를 환대할 수 있는 연대의 시간4이 구축되면 학생들은 이곳을 안전한 장소라고 생각하며 서로에 대한 신뢰감을 느낀다. 오디세이 교사들은 바로그 지점에서 ‘배움’이 일어난다고 믿고 있다.

삶의 파도에 맞설 힘을 기르는 교육과정 만들기

오디세이학교의 학생들은 ‘배우기’를 배운다. 즉,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탐색하고 이것을 팀 프로젝트를 통해 세상과 연결 짓는다. 프로젝트 수업은 기획하는 역량, 갈등을 조율하는 역량 등 더불어 배우는 활동을 지향한다. 결과보다는 과정에서 배움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특히 오디세이학교의 프로젝트 수업은 주제 선정이나 활동 범위가 열려있어 교실과 마을을 넘나들며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된다. 공간적 경계가 없으므로 비구조화된 활동들이 창의적으로 자유롭게 펼쳐진다. 물론 모든 팀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아니다. 실패한 팀은 우리 팀이 실패한 이유를 분석하고 이를 발표하기도 한다. 실패가 허용되는 프로젝트다. 아이들이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의 배움을 경험할 수 있는 이유는 자신들의 결과물이 점수화되거나 경쟁을 통해 만들어지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가능하며, 이로써 학생들은 팀 내 구성원 간 갈등 과정에서도 기다릴 수 있는 여유를 배운다.

“오디세이학교는 매해 학생을 중심에 두고 교육과정을 새롭게 짜기 때문에 교사가 학생의 삶을 깊이 관찰하고 소통해야 합니다. 교육과정에 대한 자율권이 커진 만큼 교사들의 책임감 또한 커지기 때문이죠. 또한 교육과정 편성 과정에 학생들도 함께 참여하므로, 자연스럽게 수평적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 김명규 교감 선생님

<오디세이 ‘민들레’ 사진 프로젝트>

<오디세이 ‘하자’ 텃밭농사>

<오디세이 ‘이룸’ 프로젝트 발표회>

<오디세이 ‘하자’ 질문을 찾아 떠나는 여행>

오디세이학교는 프로젝트, 자치회의, 글쓰기, 여행, 멘토와의 만남 등 공통교육과정 외에도 문화예술, 인턴십, 시민참여, 문학과 성장, 문화기획, 예술공방 등 다양한 선택교육과정을 운영한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의 필수 교과 수업 역시 모둠 활동과 토론, 발표 등 학생 참여 수업으로 진행되며 수행평가 비율이 높다.5

일주일에 2시간씩 확보된 자치 시간을 통해 학생들은 스스로 규칙을 정하거나 여행을 기획한다. 코로나19 이전에는 1년에 총 4번의 여행을 다녀왔다. 학생들은 3월의 전환 여행, 5월의 테마 여행, 10월의 질문을 찾아 떠나는 여행, 12월의 수료 여행을 통해 배움의 매듭을 짓는다. 여행의 많은 부분을 학생들이 직접 기획하고 매일 밤 평가와 나눔의 시간을 가지며 성찰한다.

오디세이학교의 아이들은 서울 전역에서 모이며, 자발성이나 학업 성취 수준 역시 다양하다. 즉 학생 개개인의 특징에 따라 배움의 방향이나 역량이 다르다. 현대 사회는 점차 개인의 개성을 강조하고 드러내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다원화된 사회 구성원 사이에서 나를 알아가는 동시에 타인을 존중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 절실해 보인다. 구성원의 다양성은 오디세이학교의 장점이자, 누구나 오디세이학교에 지원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경쟁은 교육이 아닙니다. 제도를 당장 바꾸기는 힘들지만, 아이들의 생각을 바꿀 수는 있지 않을까요? 아이들이 원적교로 복교하더라도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통해 학교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기를 바랍니다.”

– 정병오 선생님(교육기획부장)

코로나19에도 깃발을 올리는 길잡이들

오디세이학교가 추구하는 것은 학생 한 명 한 명이 자신의 삶과 연결된 배움의 맛을 누려가며 세상과 마주하여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성장을 돕는 교육이다.6 이와 같은 교육이념은 학생들뿐 아니라 학부모와 교사에게도 적용된다. 오디세이학교는 자녀가 쉼과 성찰 탐색의 시간을 갖는 동안, 부모 역시 학부모의 역할을 잠시 내려놓고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삶의 폭을 넓히고 성장을 위해 도전하며 자녀를 온전히 기다리는 법을 배워가기를 바란다. 길잡이 교사들도 학생들의 배움이 삶과 연결되도록 이끌고 학생들을 신뢰하는 과정에서 학생들과 함께 성장해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교과 융합을 넘어 나와 타인의 삶을 융합하고자 ‘함께 배우기’를 지향하는 오디세이학교는 코로나19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아니, 그 속에서 또 어떤 성장과 배움을 이루었을까? 오디세이학교의 교육 원리는 ‘넘나들며 배우기’, ‘실행하며 배우기’, ‘더불어 배우기’, ‘몸으로 배우기’로 이에 맞추어 교육과정이 운영되어왔다. 물론 코로나19 상황에서 위와 같은 활동들은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수업 상황은 오히려 오디세이학교의 본질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만약 여행을 갈 수 없다면? 프로젝트 활동을 하지 못한다면? 그렇다면 과연 오디세이학교가 추구하는 본질은 없어지는 것인가? 교사들은 원점에서 교육에 대한 본질을 고민하고 코로나19 상황에 맞는 대안적인 실천을 시도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전체 교육계에 발표하는 포럼을 개최하기도 했다.

포럼에서는 코로나19 상황에서의 교육 본질과 회복에 대해 다양한 교육 주체 간 토의가 진행되었다. 원격수업에서 대면수업으로의 전환되는 기간에도 친구들과 유대감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기다림’과 ‘느림’의 미학을 알게 되었다는 재학생의 발표를 비롯하여 원격수업에서도 ‘교사실재감’을 구현하고자 했던 다양한 노력들이 발표됨으로써 속도를 줄이고방향을 찾기 위한 오디세이의 교육 이념에 대한 본질과 실천 과제를 재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매년 자율적으로 교육과정을 새롭게 구성하는 오디세이학교의 교육 기획 전문성과 교사 문화는 탄력적 운영이 필요한 특수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코로나19로 대면 수업이 중단되자 즉시 ‘재난’에 대해 생각해보고 ‘재난 상황에서 던질 수 있는 다양한 삶의 질문’들을 수업용 워크북으로 제작하여 함께 고민했다. 관계 회복을 위해 실천하던 ‘아침열기’와 ‘하루 닫기’ 활동은 구글 클래스룸을 통해 피드백하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전환 여행은 전환 책 읽기 활동으로 대체해 함께 같은 책을 읽고 친구의 집 근처로 찾아가 소집단으로 책 나눔 시간을 갖거나, 1인용 텐트를 활용하는 캠핑 활동으로 대체됐다.7 제한적 상황에 머물지 않고 오디세이학교가 지향했던 교육적 본질을 실현 시킬 방법을 유연하게 조금씩 찾아 나간 셈이다. 다섯 개 기관의 교육 공간이 독립되어 운영되는 분산형 구조 역시 코로나19로 인한 등교 상황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요인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지도에 없는 바다를 향한 항해를 꿈꾸다

오디세이의 항해와 실험 정신은 공교육에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을까?

먼저 제도적 측면에서 공교육과의 연계 방법에 대한 고민이다. 고교학점제를 앞두고 대두되는 학점 공유나 공유 캠퍼스에 대한 요구, 대안 교육의 학생 자치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교사 연수 공간의 부재를 고려한다면, 교육계의 수요에 응답하여 다양한 실천 교육의 장으로서 그 역할이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위기의 상황에서 숨을 고르고 돌아보는 교육적 본질에 대한 성찰이다. 코로나19로 우리는 모두 멈추었고, 함께 그 끝을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게 지속되고 있다. 오디세이학교는 이 쉼의 시간에도 ‘배움’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쉼의 시간은 걷던 길을 멈추고 내가 가는 길의 방향을 잠시 살피며, 함께 걷고 있는 친구들을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이다.

코로나19 이후 학교는 세계적 수준의 초고속 인터넷망을 활용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온라인 도구들을 접할 수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더불어 ‘함께’ 배워야 하는 이유 또한 체감했다. 친구들의 손을 잡고 온기를 느끼고, 눈을 마주해 친구의 활짝 웃는 미소를 보던 시간을 그리워하는 지극히 ‘인간다움’을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학교는 이 역설적 상황에서 지식 전달을 넘어 과연 무엇이 교육의 본질인가를 다시 한번 ‘느리게’ 되묻고, ‘함께’ 고민해보아야 한다. 어쩌면 ‘쉼’의 시간은 오디세이학교의 학생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시간일 것이다.

  1. 오디세이학교 학생들은 1년간의 전환학년기를 마친 후, 원적교로 돌아가 1학년이나 2학년으로 복교한다.
  2. 덴마크의 에프터스콜레(Efterskole)는 정규학교와는 별도로 14세~18세 청소년들이 1년 동안 진로를 탐색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돕는 1년 과정의 학교이며 대부분 기숙학교로 운영된다.
  3. 오디세이학교에서는 교사를 ‘길잡이’라는 용어로 대체하여 사용한다.
  4. 정병오·김경옥, 2019, 삶의 힘을 키우는 오디세이학교, 민들레, 144쪽 일부 인용
  5. 선택교육과정 프로그램은 석차를 산출하거나 점수화하지 않고 학생의 세부 활동 내용을 생활기록부에 기재한다.
  6. 정병오, 2020, 코로나19 시대 오디세이학교의 교육적 실천이 교육혁신에 주는 함의, 오디세이 포럼 발표책자 22쪽
  7. 신을진, 2020, ‘코로나19 시대 교육의 본질을 지키는 배움 토론문, 오디세이학교’ 포럼 발표 책자 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