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2021 겨울호(245호)

인공지능 시대, 우리가 꿈꾸는 교육은?

권정민 (서울교육대학교, 교수)

1. 교육은 시대와 사회·경제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시대에 따라 교육은 변해야 합니다. 사회가 달라지고, 학습 환경이 달라짐에 따라,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의 특성이 달라짐에 따라 교육도 달라져야 합니다.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분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왜 우리의 교육은 그렇게도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요? 교육의 가치는 플라톤 시대에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하지만 교육과정(무엇을 가르칠지)이나 교육의 방식(어떻게 가르칠지)은 시대에 따라 달라져야 합니다. 저는 그것을 귀한 경험을 통해 뼛속까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수년 전 저는 코이카(KOICA: 우리나라의 국제원조프로그램)를 통해 아프리카와 중동 등 개발도상국들의 교사들을 우리나라로 불러 우리 대학에서 1~2개월씩 연수를 해주는 업무를 했었습니다. 처음에 업무를 맡게 되었을 때, 저는 그들의 문제와 우리의 문제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교육학은 보편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깊은 학습을 하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교사교육을 더 잘할 수 있을까?’, ‘테크놀로지를 어떻게 더 잘 활용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은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프랑스나 일본과 같은 선진국들이 비슷하게 고민하는 질문들입니다. 저는 이것이 교육학이라 생각했고, 교육자라면 누구나 하는 고민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평소 연수를 하듯이 교수·학습, 깊은 학습, 테크놀로지 활용 등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습니다. 강의가 끝난 후 이 분들에게 질문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런 질문들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는 전기가 항상 들어오나요?”

“학교에 화장실이 없어서 학생들이 학교에 안 오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자녀를 농장 대신 학교에 보내라고 부모를 어떻게 설득하면 좋을까요?”

“우리도 저런 공장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에 공장을 지어주실 수 있나요?”

“극단주의 테러 때문에 학교에 아이들을 보낼 수가 없어요. 우리는 동굴에 숨어서 살기도 해요.동굴에 사는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을 하면 좋을까요?”

그 중 아직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이 하나 있는데, 바로 세네갈에서 온 선생님의 질문이었습니다.

“학교를 지어 놓으면 소가 와서 학교를 먹어버려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소가 학교를 왜 먹냐고 물으니 학교를 지푸라기로 지어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건물 문제, 전기 문제, 안전 문제, 그리고 아동노동 문제로 인해서 학생들을 학교에 오게 하는 것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 나라들의 교사들과 대화를 해보면 이들에게 가장 급한 문제는 인프라 확충과 경제 발전이었습니다. 가난 때문에 학교를 지을 수가 없고, 교과서를 만들 수가 없고, 학교에서 밥을 먹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부모들이 가난 때문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농장으로 보낸다고 했습니다. 이들에게 교육학은 교수·학습이나 깊은 학습, 미래형 인재, 블렌디드 러닝이 아니었습니다. 안전, 인프라, 교과서 공장, 소와의 전쟁이 이들에게는 교육학이었습니다.

저는 이때 사회와 경제, 시대적 배경에 따라 교육의 모습과 고민은 모두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당연한 것이었음에도 추상적으로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던 것이지요. 저에게는 교육에 대해 거시적 안목을 갖게 한 참으로 귀한 경험이었습니다.

2. 교육의 포커스도 사회적 필요에 따라 전략적으로 정해야 한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처럼 빨리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는지를 가장 궁금해했습니다. 그 나라들은 ‘놀랍게도’ 대부분 초·중·고 무상의무교육을 이미 오래전부터 정책적으로 시행해 오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2021년에야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이 실현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문해율이 낮고, 학교에 학생들을 오게 하는 것이 지속적인 문제였습니다. 무상교육이라는 선진적인 정책에도 불구하고, 왜 개선이 되지 않는 것일까요?

저는 197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때부터 최근까지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이끌어온 경제학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교육의 힘이 컸는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우리나라는 초등학교까지만 무상의무교육을 했다. 그런데 저 나라들은 훨씬 더 발달된 정책을 갖고 있음에도 발전이 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 경제학자의 설명은 이러했습니다.

우선적으로는 그 나라들의 경제개발이 더딘 이유는 부정부패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으로 효율성이 떨어지는 교육정책이 문제라고 하였습니다. 한 국가의 자원은 유한합니다. 그 유한한 자원을 어디에 써야 할 지 전략적으로 타게팅을 잘해야합니다. 우리나라는 초등교육만 무상의무교육으로 하고, 모든 자원을 거기에 집중하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농업이 주 산업이었고, 공업으로 가려는 문턱이었기 때문에 일단은 문해력이 가장 급하고 중요했습니다. 글만 읽을 줄 알면 일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에는 전 국민의 문해력을 높이는 것이 주 목표였습니다. 우리나라는 국가의 자원을 문해교육, 즉 초등교육에 올인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제조 산업이 주가 되면서 무상의무교육은 중학교까지 확대가 되었으며, 지식 산업의 시대가 된 이제서야 우리는 고등학교까지 국가에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처음부터 초·중·고 모두 무상의무교육을 하는 것이 더 발전된 정책같아 보이지만, 국가의 자원을 전략적으로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 경제학자의 설명이었습니다. 문해율이 낮은 개발도상국가에서 고등학교까지 무상의무교육을 추진하여 자원이 분산되어 버리는 바람에, 가장 급한 문제인 문해율을 올리는 데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이 경험을 통해 시대에 따라, 산업에 따라, 국가적 필요에 따라 교육의 목표와 방법, 모델, 정책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교육은 대부분 국가, 시대, 사회를 벗어나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평생 한 시스템 안에서 교육을 받기 때문에 그것이 전부이고, 이제까지 그렇게 해 왔으니 계속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대적 안목으로 교육을 보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즉각적 수익이 걸려있는 비즈니스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시대의 변화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심지어는 예측해서 더 앞서나가려고 합니다. 사교육 업체들도 학교교육과 교육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그러나 교육정책, 교육과정, 학교교육은 그렇지 않습니다. 시대를 초월하는 지식과 가치를 가르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서이기도 하고, 즉각적인 결과와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AI, 코로나19를 겪으며 시대가 더욱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고 그에 따라 격차는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습니다.

3. 지금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교육은 어떤 교육일까?

그렇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그리고 우리 앞에 바짝 다가온 AI 시대에 우리가 해야하는 교육은 어떤 교육일까요? 현재의 교육 시스템을 최초로 제안한 사람은 1800년대 미국의 토마스 제퍼슨이었습니다. 그가 생각한 이상적인 교육 시스템은 학교를 3개의 수준으로 나누고, 수준에 미달하는 학생을 효과적으로 걸러내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공부를 못해서 상급 학교로 진학을 하지 못하거나, 학교 부적응으로 중퇴하는 사람들이 생기면 그것을 교육 시스템의 ‘성공’으로 여겼습니다. 실패자를 떨궈내고, 지적으로 우수한 소수의 사람만을 걸러내기 위해 디자인된 시스템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지금 우리 교육 시스템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국민의 문해율을 높이기 위해 공장형 학교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초기 학교는 교실이 한 개였고, 여러 연령의 학생들이 한 방에 모여 개별화된 수업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문해율을 빨리 높이기 위해서는 짧은 시간에 대량의 학생들을 효율적으로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래서 공장 시스템 같은 학교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공장에서 제품을 찍어내듯이 문해력을 갖춘 노동인력을 찍어내는 곳이 바로 학교였습니다. 학생들을 같은 나이끼리 묶고, 모든 학생이 같은 과목을, 같은 방법과 속도로 배우도록 했습니다. 이 모델은 대량의 학생들을 취학시켜 문해율을 높이는 데에 효과가 있었습니다. 동시에 실패자를 재빨리 떨궈내고 소수의 엘리트만 걸러내는 데에도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짧은 시간에 문해율을 최대로 높이고자 했던 토마스 제퍼슨의 시대나 한국전쟁 직후의 시대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백년 전에는 전체 직업의 17%만이 전문적 지식을 필요로 했으나 지금은 60% 이상의 직업이 전문적 지식을 요합니다(Horn & Staker, 2015). 지금은 직업이 서바이벌을 위한 노동으로 여겨지기보다, 개인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여겨집니다. 무엇보다 인공지능과 데이터 사이언스의 발전으로 기존의 직업이 사라지고,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는, 변화를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100년, 200년도 더 된 교육 모델을 아직도 붙잡고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소가 학교를 먹어버리는 환경에 맞게 세워놓은 모델을 최첨단 스마트 도시 환경에서 고수하고 있는 것과 별다를 바 없습니다.

4. 인공지능(AI) 시대 교육에 대한 허상

여기서 잠깐 AI 시대 교육의 모습에 대해 상상해봅시다. 어떤 모습이 떠오르시나요?

AI가 핫한 키워드로 뜨기 직전 한창 로봇이 뜨거운 키워드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미래교육의 모습으로 로봇 교사를 떠올렸습니다. 로봇이 교사라는 직업을 대체하게 되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를 하던 선생님들도 많이 만나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이번에 그 두려움의 대상이 유튜브로 바뀌었습니다. 원격교육 연수를 하러 다니는 곳마다 유튜브로 인해 ‘이제 학교나 선생님이 필요 없어지는 것 아닐까요?’라는 질문을 하시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점차로 미래교육의 모습이라고 하면 AI가 관리해주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림 출처: unsplash.com>

도대체 AI가 관리해주는 교육은 무엇일까요?

AI 교육이라고 하면 AI가 관리해주는 맞춤형 교육이 가장 자주 언급됩니다. 왜 맞춤형 교육이 그렇게 강조되는 것일까요? 왜 그것이 꿈의 교육인 양 거론되는 것일까요? 맞춤형 교육의 실체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수학 문제를 푸는데 내가 못 푼 문제를 AI가 분석하여 내가 무엇을 못하는지 알고 그것을 연습할 수 있는 문제를 제시하는 것이 바로 AI 시대 우리가 꿈꾸는 교육인 것인가요?

우리 교육과정은 학습자의 역량 개발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교육과정에도, 미래의 교육에 대한 기대에도 구체적으로 역량을 어떻게 개발시킬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현재 AI 교육에 대한 논의에서 학습자는 관리의 대상으로 봅니다. 관리의 대상인 학습자는 수동적이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는, 한마디로 ‘생각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인간에게 똑똑한 AI는 사람 대신 생각해 학습자에게 학습 콘텐츠를 제시하고, 학습자의 강약점을 분석해서 약점을 훈련시켜 보완할 수 있는 연습문제를 제시해주고, 채점해줍니다. 이렇게 학습자를 수동적으로 지식을 받아들이기만 해야하는 자로 보는 관점에서는 학습자 역량을 키우기 위한 교육 방법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학습자는 그저 더 많은 지식을, 더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가르쳐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테크놀로지가 대부분 이러한 잘못된 관점 위에 개발되고 있습니다. 교육과정, 교과서, 교육정책 모두 비슷한 문제점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학습자를 어떻게 보는지, 학습자에 대한 관점은 한 나라의 정책, 테크놀로지, 인프라, 교육과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학습자는 수동적인가, 능동적인가? 학습자는 스스로 자신이 무엇을 학습해야 하는지 아는가, 모르는가? 학습자는 스스로 찾아서 학습할 수 있는가, 없는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여러분이 보는 학습자는 수동적입니까, 능동적입니까?

우리의 교육과정은 학습자를 수동적으로 보는 관점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말로는 아무리 역량을 강조해도 실제 교과서는 역량을 키우는 내용으로 만들어져있지 않습니다. 주입식으로 지식을 떠서 먹여야 하는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우리의 교과서는 정답과 오답이 뚜렷합니다. 정답과 오답이 뚜렷한 교육과정은 지식을 떠먹여주고 학습자를 수동적으로 보는 관점에서 만들어진 교육과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진심으로 학습자의 역량을 키운다면 정답을 맞히는 것보다 고민하고, 생각하고, 비판하고, 창조하는 학습을 하게 해야 합니다. 단적인 예로, 국어 교과서에서 시에 대해 배울 때, 소나무가 무엇을 의미하고 구름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일방적으로 가르쳐주고 시험보기 보다, 스스로 분석하게 하고, 고민하게 하고, 시를 써보게 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적 역량을 갖춘 사람이 아닐까요?

로봇 교사, AI의 진도 관리는 모두 학습자를 수동적으로 보는 관점에서 만들어진 미래교육의 허상입니다. 여기에 학습자의 자율성, 자기결정권, 역량은 끼어들 자리가 없습니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메타인지라고 하는데, 이 메타인지가 바로 역량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내가 길러야 할 메타인지를 AI가 해준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 컴퓨터가 내 표정과 눈동자 움직임을 감시하여 내가 집중 안하고 있으면 집중하라고 피드백을 해줄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우리가 꿈꾸고 있는 AI가 적용된 교육은 학습자를 감시하는 시스템인 것입니다. 이런 시스템에서 학습자 역량은 어떻게 길러질까요? 운전자의 음주나 졸음을 감시하는 기술은 필요합니다. 우주선을 타야하는 과학자를 훈련하기 위해서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 학습자들의 역량을 기르는 방법은 아닙니다. 학습자를 감시의 대상으로 보고, 학습자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존재로 보는 기술입니다. 이러한 기술은 학습을 재미없고 고통스럽게 만들 뿐입니다.

그에 대한 실제적인 사례가 있습니다. 교육부에서는 에듀테크 멘토링 사업이라는 사업을 2020년 실시한 바 있습니다. 일부 학교들에 민간기업의 에듀테크 기기를 나누어주고 그것으로 학습격차를 줄일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멘토링 교사를 학교마다 다르게 활용하였는데, 교육부에서 낸 결과보고서1를 보면 멘토링 교사가 기기 관리만 하고, 진도 및 학생 관리는 업체가 제공하는 AI만 맡긴 경우 모두 실패했다고 보고되어 있습니다. 한편, 멘토링 교사가 학생과 신뢰의 관계를 맺고 직접 가르치고 관리하며 기기는 문제은행과 같은 자료로만 사용한 경우에 학습격차가 좁혀지고 학생과 교사 모두 만족한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이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애초에 원격수업으로 인해 야기된 학습격차를 더 많은 원격수업과 AI 감시자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5. 학습자의 역량을 키우는 블렌디드 러닝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미래교육은 어떤 교육인가요?

21세기를 위한 파트너십(Partnership for 21st Century)2에서는 미래교육에서 추구해야 하는 역량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습니다. ‘비판적 사고력, 문제해결력, 창의성, 의사소통, 협력, 혁신’. 익히 아시는 단어들입니다. 이미 우리 교육과정에 명시되어 있는 역량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것들은 어떻게 길러질 수 있을까요? 학습자에 대한 관점과 교육과정, 교육방식, 교과서, 그리고 입시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한낱 교수자인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당장 내 수업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교수법의 혁신입니다.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요. 저는 교수법의 혁신을 가장 쉽고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블렌디드 러닝’이라고 생각합니다.

크리스튼슨 연구소에 의하면 블렌디드 러닝은 “형식 교육 내에서 일부분을 온라인으로 학습하며, 여기에는 시간, 장소, 경로, 속도 중 적어도 한 가지 이상에 대하여 학습자가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고 정의합니다. 쉽게 풀어 말하면, 블렌디드 러닝은 학교 (대면)교육의 일부분을 온라인으로 학습하는 것인데, 학습자가 학습에 대한 시간, 장소, 방법, 속도 등을 조절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블렌디드 러닝이 학교나 교실 내에서 컴퓨터를 활용하는 것으로 한정되었다면, 이제는 완전 비대면 원격수업이 일반화되면서 이제는 학교 밖으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대면 방식과 컴퓨터를 이용한 방식 두 가지를 모두 사용한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블렌디드 러닝의 모습을 한번 묘사해보겠습니다. 이것은 실제로 미국의 한 초등학교에서 제가 관찰한 수업의 장면입니다. 학생들은 모두 개인 크롬북을 가지고 있습니다. 체육 수업 시간이고, 몸으로 활동하는 체육이 아닌 건강에 관한 이론적 수업을 하는 시간입니다. 학생들은 4명씩 그룹이 되어 교사가 제시한 주제 중 하나를 고릅니다.

(1) 우리는 왜 운동을 해야 하는가?
(2) 흡연은 왜 안 좋은가?
(3) 우리는 왜 건강한 식생활을 해야 하는가?

각 그룹은 이 세 가지 주제 중 하나를 골라 조사를 한 후, 하위 주제들을 정합니다. 예를 들면 ‘(1) 우리는 왜 운동을 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를 골랐다면 조사 후 다음의 하위주제를 정합니다.

A. 운동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
B. 운동이 심리에 미치는 영향
C. 운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D. 운동을 하지 않으면 생기는 일

이 하위 주제는 담임 선생님의 피드백을 받은 후 보완해서 최종적으로 정합니다. 그런 후에 조원은 하위 주제 하나씩을 책임지고 조사합니다. 그리고 구글 프레젠테이션에 공동으로 발표 자료를 만듭니다. 이 모든 과정은 교실 내에서 이루어집니다. 토론은 대면으로, 발표 자료와 조사는 컴퓨터로 합니다. 학교가 끝나면 집에 와서 온라인으로 토론을 이어 합니다. 일주일 내에 끝낸 후, 대면 수업 시간에 조별로 발표를 합니다.

그렇게 대단하고 특별해 보이지는 않지요? 하지만 이 블렌디드 러닝 수업에는 앞서 묘사한 AI를 활용한 수업과 다른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학습자에 대한 관점, 두 번째는 테크놀로지의 도구 기능이고, 세 번째는 그에 따른 교사의 역할입니다.

컴퓨터는 도구입니다. 인터넷강의형(이하 인강) 원격수업에서 컴퓨터는 TV와 별반 다르지 않게 사용되었습니다. 콘텐츠가 필요하다,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결국 인강을 더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 입니다. 인강은 입시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경제적, 시간적으로 효율적인 수업방식이지 학습자의 역량을 키워주는 질 높은 교육 방식이 아닙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학습자를 지식의 소비자로 보는 수업입니다. 인강형 수업, 콘텐츠형 원격수업에서 컴퓨터를 가장 많이 사용한 이가 누구였습니까? 바로 교사였습니다. 학습자는 컴퓨터를 이용해 아무것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반면 블렌디드 러닝은 그 컴퓨터를 이용한 콘텐츠 생산을 학생에게 넘기는 수업 방식입니다. 컴퓨터를 무엇을 생산하기 위한 도구로 보고, 그 도구의 사용권을 학생에게 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학습자는 생산자가 됩니다. 대단한 지식이 아니어도 됩니다. 블렌디드 러닝에서는 어린 학생들도 유튜브를 시청만 하게 하지 않습니다. 컴퓨터를 도구로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고 그림을 그리고 프레젠테이션을 만들게 합니다.

도구는 인간에게 힘을 줍니다. 할 수 없었던 일들을 가능하게 하지요. 요즘 시대의 위인들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스티브 잡스도, 빌 게이츠도, 조앤 롤링도, 최근 ‘오징어 게임’을 쓴 황동혁 감독도 컴퓨터로 소비만 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컴퓨터로 코딩을 하고, 작곡을 하고, 글을 쓰고, 영화를 편집하고, 제품 디자인을 하고, 문제를 해결한 사람들입니다. 컴퓨터를 이용해 새로운 것을 창조해낸, 즉 생산적 도구로 사용한 사람들입니다. 컴퓨터는 생산의 도구입니다. 컴퓨터는 손으로 하기에 복잡한 일들을 더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혁신적인 도구입니다. 컴퓨터는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을 유능하게 만드는, 학습자에게 권한을 부여하는(empowerment) 도구입니다. 그래서 컴퓨터를 도구로 사용할 때 학습자는 생산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컴퓨터를 망치에 비유하자면, 이전에는 교사만 들고 있었던 망치를 이제는 학생들 손에 하나씩 모두 쥐어주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그 망치라는 도구와, 지식이라는 재료를 이용하여 의미있는 것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블렌디드 러닝의 심장입니다. 도구를 학습자에게 쥐어 주어 이전에는 교사가 하던 생산적인 일을 이제는 학생들이 하게 하는 것입니다. 망치를 들고 있는 학습자의 역량은 자연스럽게 향상될 것입니다. 블렌디드 러닝에서 교사의 역할은 더 중요해집니다. 블렌디드 러닝에서 교사는 지식을 먹여주는 유튜브 캐릭터가 아닙니다. 혹은 도구와 자료만 던져주고 학습이 일어나길 기다리는 무기력한 존재도 아닙니다. (망치와 재료만 준다고 멋진 집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학습자 중심의 수업일수록 물밑으로, 보이지 않게 교사는 치밀한 준비와 계획을 해야 합니다. 의도하는 학습이 일어나기 위해 어떤 사전 지식이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학습되어야 하는 지식은 무엇인지, 교사가 계획한 활동을 통해 정말로 의도한 학습이 일어나는지, 일방적으로 가르쳐주지 않고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지, 어떤 순서로 어떤 자료를 제시하고 어떻게 상호작용을 유도할 것인지 등. 교수자는 아이디어를 짜내는 것 뿐 아니라 학생의 입장이 되어 시뮬레이션을 돌려봐야 하고, 어떻게 의미있게 평가할 것인지까지 사전에 계획해야 합니다. 블렌디드 러닝은 진정한 구성주의적 교육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며, 비고츠키가 말한 비계의 역할을 교수자가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6. 인공지능(AI) 시대 블렌디드 러닝과 교사의 역할

그렇다면 AI 시대에는 어떻게 될까요? AI도 컴퓨터입니다. 우리는 미래교육을 상상할 때 AI를 도구로 보지 않고, AI가 학습자 위에 군림하는 모습을 생각합니다. AI를 도구로 보지 못하는 이유는 학습자에 대한 관점이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AI를 이용한 맞춤형 수업은 이미 사교육 기관에서 하고 있습니다. AI를 이용한 맞춤형 교육은 현재의 입시 위주의 교육을 강화시키는 방법이지, 우리가 꿈꾸어야 할 미래교육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학습자는 생산자이며, AI가 학습자를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가 AI에 대해 배우고, AI를 이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나아가서는 사회에 도움이 되는 AI를 꿈꾸고 창조해내는 모습이 우리가 꿈꾸어야 할 이상향이고 나아가야 할 길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블렌디드 러닝은 AI와 대치되는 수업이거나, AI보다 뒤떨어진 수업방식이 아니라, AI를 제대로 활용하는 수업 방식입니다. 그리고 AI 시대 미래역량을 가진 학습자를 길러내기 위해 교사는 없어질 존재가 아니라, 더욱 중요한 존재가 됩니다.

이 글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교육은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하고, 국가의 자원은 전략적으로 집중 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학습자의 역량이 중요해진 시대인데, 역량은 학습자를 생산자로 볼 때 비로소 키워 질 수가 있습니다. 학습자를 생산자로 보면 컴퓨터는 도구가 되고, 교수자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집니다. AI를 이용한 교육은 학습자를 감시하는 교육이 아니라, 학습자가 AI를 도구로 보고 AI를 이용해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교육입니다. 이것은 블렌디드 러닝을 통해 가능합니다. 블렌디드 러닝은 AI 시대를 대비하는 교육이자, 그 동안 우리가 추구해온 역량 중심, 학습자 중심의 교육을 하는 방법입니다. 성공적 블렌디드 러닝과 AI시대 교육을 위해 교사의 역할은 새롭게 바뀌겠지만, 교사의 존재 자체와 역량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AI를 이용해 맞춤형 교육을 하는 것은 결국 현재의 입시 위주의 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보다 AI를 이용해 사회를 바꾸고 약자를 도와주는 방법을 고민하고 연구하는, 그러한 교육을 우리는 꿈꿔야 합니다. 오늘 작은 크롬북을 이용한 블렌디드 러닝을 시작하는 것은 앞으로 다가 올 AI시대 훌륭한 교육을 하기 위한 첫 발자국입니다. 그 첫 발자국을 테크 기업이 아닌, 선생님인 여러분이 주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1. 교육부(2020). 에듀테크 멘토링 사업 분석 및 개선방안 연구. 정책연구보고서(11-1342000-000761-01).
  2. http://static.battelleforkids.org/documents/p21/P21_Framework_Brief.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