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2018 가을호 (232호)

자유! 인헌! 인헌고등학교 자유교양과정 운영사례

지정은 인헌고등학교 교사

인헌고등학교 학생들은 문과반, 이과반 외에 자유교양반이라는 또 하나의 선택을 할 수 있다. 직업반이나 직업위탁교육과는 별도로 학교 내 대안교육과정을 2017년부터 2년째 운영하고 있으며, 2018학년도에는 20명의 학생들이 자유교양과정을 선택하였다. 자유교양과정은 전통적인 교과 필수 이수 단위를 최소한도로 하고 문학 4시간, 영어회화 2시간, 체육 2시간, 미적분 2시간 외에 생활스포츠 3시간, 세계이해 3시간, 문화예술체험 3시간, 철학 2시간, 진로와 직업 2시간의 수업을 개설하였다.
이러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기까지는 일반계 고등학교의 난감한 교육 현실에서 비롯된 고민이 있었다. 대학 진학을 목표로 성적에 의해 우열이 나누어지는 학교 시스템 안에서 자기 존중감의 상실을 경험하면서, 학업의 의미와 동기를 찾지 못하고 있는 학생들을 위한 새로운 교육과정을 만들고, 그들이 학교교육으로부터 충분한 지원과 학생으로서의 배울 권리를 누리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인헌고등학교의 자유교양과정이 만들어졌다.
대학 진학을 위한 교과지식 수업을 과감하게 벗어난 폭넓은 인문교양수업,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한 예술·체육 교과의 확대, 그리고 사회적 가치에 주목하는 진로경제교육이 자유교양과정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유교양반 학생들은 매주 화요일에는 학교가 아닌 서울혁신파크로 등교한다. 다양한 사회적 기업들과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청년사업가들이 모여 있는 서울혁신파크는 학교라는 물리적·인적 경계를 넘어 또 다른 배움의 공간이 되고 있다. 여기에서 학생들은 전일제 수업을 통해 충분한 여유를 두고 학교 문화와 다른 새로운 시공간에 ‘몸을 담그는’ 경험을 쌓아가게 된다.

오전의 ‘세계이해’ 수업은 다문화 여성들의 자립을 돕는 사회적 기업 ‘마을무지개’와 함께 하는 요리 수업이다. 필리핀, 베트남, 일본, 중국 등 여러 나라의 요리와 함께 간단한 인사말과 역사, 생활 예절 등을 배운다. 머리가 아닌 미각과 음식 문화 체험을 통해 문화적 감수성을 키우고 나와 다른 존재에게 열린 마음의 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 자세를 갖도록 하는 것이 ‘세계이해’ 수업의 목표이다.

지난 6월에는 그동안 배운 요리 실력을 발휘하여 또 다른 사회적 기업 ‘빅이슈’와 함께 노숙인 자활을 돕는 식사 봉사활동으로 50인 분의 식사 준비를 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단지 수업을 받는 수동적인 입장에서가 아니라 지속적인 상호 이해와 교감을 통해 사회적 기업의 활동에 협력자로서의 역할을 해내기도 한다. 이것은 고등학교 학생들의 체험활동에서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혁신파크에서 하는 화요일 오후 ‘문화예술체험’ 수업은 매달 다른 활동을 배치하여 다양한 개성을 가진 학생들이 자신의 특성을 발견하고 진로를 탐색할 수 있도록 했다. 3월에는 사회적 기업 ‘금자동이’와 함께 버려진 플라스틱 장난감을 재생하는 창작활동 ‘쓸모’를 진행하였고, 4월에는 3D 창작, 5월 융합예술 수업, 6월에는 폐목재를 재활용하는 목공 수업을 진행하였다. 이러한 활동 가운데 아이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청년사업가들을 만나고 교류하면서 그들이 추구하는 대안적인 가치와 경제활동을 어떻게 실현하는지 목격하게 된다. 이러한 관계는 수업이 끝난 후에도 지속성을 가지며, 수업을 했던 마을 기업의 추후 활동에 관람이나 봉사활동의 형태로 기회가 되는 대로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학교 내에서 이루어지는 진로와 직업 수업 시간에 사회적 경제 이론 수업을 병행함으로써, 서울혁신파크에서 경험하는 여러 사회적 기업들의 실제 활동과 연결지어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구성하였다.
창작예술활동 수업이 자칫 단순한 체험활동에 머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수업자원을 제공하는 마을 기업과 강사, 지도교사의 긴밀한 교육과정 협의와 수업설계 및 조정이 필요하다. 장난감 재생활동 ‘쓸모’ 수업의 경우 기존의 체험프로그램을 그대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특성과 심리적 상태를 끌어내고 표현할 수 있는 창작활동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상담 전문강사와의 코티칭을 통한 수업모델로 새로 설계하였다.
그 결과 이 수업에 참여한 학생과 교사들은 환경문제와 업싸이클링이라는 수업 주제와 더불어 내면의 상태를 창작물로 표현하고 스토리텔링하는 과정을 경험하였고, 학생 개개인의 특성과 상태를 드러내어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는 데 도움을 얻게 되었다.

철학 수업의 경우 예술강사 지원 사업을 통해 연결된 사진 강사와 지속적으로 사전수업설계를 협의했다. 사진을 매개로 한 자유교양과정 철학 수업 계획안을 만들고, 수업을 실행하면서 이를 다시 조정하는 과정을 계속 진행하였다. 이를테면, 문화예술체험 수업의 전시 관람에서 본 작품이 모티브가 되어 철학 수업의 사진 작업 활동에 연결되는 식으로 교과 또는 수업 간 의도적인 또는 의도하지 않았던 연결을 가급적 풍부하게 하고자 하였다.
인헌고등학교 자유교양과정은 몸과 마음의 힘을 기르는 생활체육을 중요시하여 일반적인 체육 수업 외에도 암벽과 요가 수업을 한다. 주로 서울대학교 야외 인공암장 및 관악산 자연암장에서 진행되는 암벽 수업은 전문 암벽 강사의 지도로 충분한 안전장비를 갖춘 상태로 진행되며, 학생들의 마음의 한계를 극복하고 강인한 몸을 기르는 활동으로 의미가 깊다.요가수련실이 마련된 학교 도서관에서 요가 수업을 진행한다. 요가 수업도 마찬가지로 명상을 통하여 몸과 마음의 상태를 돌아보는 방법을 배우고 정신의 힘을 기르는 훈련을 하게 된다. 이와 함께 기회가 되는 대로 다양한 실내외 레저 활동이나 학급 여행을 통해 건강한 휴식과 놀이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중요한 교육 내용으로 하고 있다.
학교 내에서 이루어지는 문학, 미적분, 영어, 중국어, 세계사 등의 교과 수업도 역시 자유로운 수업 형태로 진행되는데, 정해진 교과 지식의 성취목표에 도달하는 것보다는 학생들 자신이 학업 성취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를테면 바리스타 활동 수업을 통해 커피의 역사를 배우는 세계사 수업을 코티칭으로 시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수업 시도는 교육과정을 전면적으로 재구성하게 될 뿐 아니라 교과의 가치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6월 미적분 교과의 제안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교사가 되어 수업을 주도하는 발표수업을 했으며, 모든 교과의 교사들이 학생으로 참가하여 교사와 학생의 자리를 바꾸어보는 체험 수업을 했다. 이 수업에서 학생교사들이 발표한 수업 주제 중의 하나는 극한 개념으로부터 유한과 무한의 문제를 사고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자유교양과정에서 배우는 교과지식은 인문교양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이를테면 미적분 1학기 기말고사의 서술형 평가 문항 중 하나는 방정식과 함수의 역사와 문화적 특성, 철학적 배경을 비교하는 것이었으며, 문학 수업의 논술형 평가는 컴퓨터실에서 오픈북으로 실시되었다.
자유교양과정은 경쟁적 입시교육체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교사와 학생, 학부모 모두에게 아직까지는 어려운 도전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성큼 나아가고자 하는 학생들이 존재한다면 변화를 위한 시도는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