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교육2019 봄호 (234호)

학교의 교육성취 평가와 교사의 역할 과제

학교의 교육성취 평가와 교사의 역할 과제
– 독일 교육학의 학업성취 평가 논의를 참고하여

정영근 (상명대학교, 교수)

1. 근대 교육의 전개와 성취평가

인간의 합리적 사유능력을 인정하고 자유로운 개성의 발현을 추구한다는 근대 교육이념은 계몽사상가 루소(J.-J. Rousseau)에게서 나타났다. 그는 인간 자신과 세계를 밝혀내는 핵심 개념으로 이성과 자유를 설정하고 인격과 도덕성을 바탕으로 인류의 완전성을 지향하는 교육을 제시하였다. 칸트(I. Kant) 또한 인간의 개방적 자연성이 동물과 다르다는 점에서 자율적으로 선한 목적을 설정하는 도덕성의 실현을 교육의 과제로 삼았다. 그러나 계급적 신분제도를 넘어 자유롭고 평등하며 서로 포용하는 시민을 육성하려던 계몽주의 교육은 실천적 측면 에서 아동의 자유로운 자연성 함양과 공동체 삶에 필요한 사회적 가치의 습득이라는 상충되는 요구와 부딪혔다. 교육은 인간을 새롭게 형성되는 시민사회에 적응시켜야만 하였다. 근대 교육이념 자체에는 교육의 힘으로 인간을 계발·제어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내포되어 있었다.
인간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구현·통제하도록 이끌려던 근대 사회의 욕망은 교육에서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었다. 교육을 통한 새로운 시민계층의 형성은 사회적 문명화 과정을 동반하였고, 이를 위해 학교교육은 외부의 통제를 내면의 자기통제 형식으로 전환시키는 일을 담당하였다. 규범화된 학교교육은 성장세대의 육체 및 성적 욕망을 제어하였고, 정교하게 구축된 국가와 사회적 평가시스템의 요구를 시민 스스로 따르도록 하였다. 교육성취의 핵심이란 소수의 상위등급에 도달하는 것으로 내면화한 학생은 등급으로 나뉜 평가체제에 적응하며 성적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근대 독일의 학교교육에 큰 영향을 준 박애주의(Philanthrophismus)
교육학자들은 학교교육의 이념적 목적과 사회의 현실적 요구 사이에서 고민하였다.근대 초기 교육학의 격렬한 논쟁점은 ‘학교교육이 자유로운 도덕적 인간을 목표로 해야 하는가, 아니면 사회의 요구에 부합하는 유용한 인간을 목표로 해야 하는가?’였다. 이는 결국 사회적 유용성을 위해 교육에서 개별 인간의 완전성을 얼마나 희생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었다. 물론 완성된 사람됨과 사회적 유용성이 원천적으로 상반되는 것은 아니다. 도덕적으로 성숙하면서도 사회에 기여하는 유용한 사람이야말로 공동체 삶에 진정 필요한 인물일 것이다. 그러나 근대 교육이념의 요구는 당시 현존하던 계급적 차등과 더불어 수월성과 유용성사이의 모순을 발생시켰다. 학교교육은 계층에 따른 인문교육과 직업교육으로 분화될 수밖에 없었고, 모든 개별 인간의 완성된 인격을 목표로 하는 일반교육의 이념 또한 국가와 사회의 실용성 요구에 따라 상대화되었다. 이후 정치와 사회의 민주화를 거치며 교육기회의 평등과 학교교육에 의한 사회적 계층이동이 점차 확산되었다.
경제적 가치의 획득이 중요시되는 현대 산업화사회에서는 학교교육이 사회·경제적 지위획득과 이동의 통로인 양 인식됨으로써 학업경쟁이 점점 더 강화되었다. 1961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OECD는 교육을 경제성장과 연결하여 고찰했는 바, 경제학적 인간이해에 근거하여 노동과 자본에 이어 ‘인간자본’을 생산에 결정적인 제3의 요소로 규정하였다. 그 결과 개별 인간의 사회·경제적 성취목표 달성을 위해 교육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전 세계적 관심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는 학교교육의 결과를 경제적 효용성의 관점에서 국제적으로 비교·연구한다. 문제는 이러한 현실이 인본주의적 학교교육을 추구하는 교사와 학부모의 입지를 더 약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학업평가의 본질마저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학교교육은 성년이 되지 않은 성장세대를 자신의 고유함을 형성·표현할 수 있는 사회구성원이 되도록 이끄는 임무를 지녔다. 성장세대가 교과교육을 통해 사회·문화적 삶에 필요한 지식과 소양을 학습하는 것은 직업과 사회생활에 필요한 준비인 동시에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깨닫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인성교육’이나 ‘도덕성’ 같은 용어를 통해 학교교육의 과제와 의미를 표현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수업이 비록 다양한 교과로 분리되어 진행되지만 학교의 수업과 교육은 실용능력과 사람됨의 형성 모두를 지향한다. 학교는 교육의 포괄적 결과를 산출하기 위해 지식의 내용뿐만 아니라 개별 학생이 학습하는 과정· 환경·조건은 물론 가치의 인식과 태도 변화 등을 함께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수-학습의 역동적 과정을 포괄하는 평가방식이 중요한데, 이는 학습결과를 수치로 객관화하는 방식과 차이가 있다.

2. 학업평가의 대상 : 전인적 지식인가 역량인가?

학교교육이 교과수업의 수치화된 점수산출에 그치지 않고 건전한 상식과 민주적 사회성을 지닌 사회구성원을 양성해야 한다는 요구는 거의 모든 사회에서 명목상 당연시된다. 학교교육의 성적 경쟁이 극심한 한국이 그 효과를 가늠할 수 없는 ‘인성교육진흥법’까지 제정한 것만 보아도 그렇다. 비록 명시적이진 않지만 한국사회 스스로가 사람됨의 교육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하다고 자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입시 위주 성적 경쟁의 학교교육만으로는 성장과정의 청소년을 올바른 사회인으로 이끌지 못할 것임을 인식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교육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배워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터인데, 문제는 교과내용 구성만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장세대가 배워야 할 지식의 형식
과 속성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현대 산업화사회에서 요구되는 인재를 효율적으로 양성·공급하기 위해서는 실무·직업능력 형성에 집중하는 학교교육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교육정책 당국과 교육공학 중심의 관련 학계는 국제경쟁 시대에 부합하는 인재상과 핵심역량을 설정하여 역량중심 교육과정을 개발·시행하였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학교의 교육과정만 개정하는 작업이 아니라 수업과 평가의 내용 및 방식에도 영향을 주는 대대적인 교육체제 개편이다. 인간 존재와 사회생활에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에 대한 본질적 고민을 배제하면 지극히 경제·공학적 교육논리가 학교교육을 일방적으로 지배하도록 한다. 학교교육이 근대 교육의 두 쟁점이었던 사람됨과 사회적 유용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보다는 인력양성·관리의 관점에서 산업체의 요구를 따라야 하는 것이다.
기업경영의 원리에 나온 역량(competence)은 변화에 신속히 적응하는 개인의 능력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도구적·공리주의적 성향의 현대 교육학과 산업인력 배양을 목표로 하는 교육정책에서 선호된다. 개인이 실제로 성취해낸 것을 기존의 검사도구로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실제 수행을 통해 드러나는 것을 측정하려는 관심에서 역량개념이 나왔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정보의 효용성과 가치는 교환 가능한 환금성 역량이나 능력으로 전환될 수 있을 때 비로소 평가되고 인정받는다. 따라서 교육되는 인간은 일종의 자본이나 자원으로 간주되고 기대수익 창출을 위한 생산요소로 인식된다. 직업훈련이나 성인교육에서 사용되던 이 개념은 국가·경제적 요구에 부합하는 교육과정 개발을 빌미로 공교육 영역까지 침투하였다. 이는 학교의 일반교육에 사회·경제적 생산의 문제를 과도하게 끌어들이는 것으로 성장세대의 포괄적 교육에 타당할지 의문이 생긴다. 이 지점에서 역량중심의 교육정책이 학교를 진로와 연관된 지식중개업소로 전환시킨다는 비판이 나온다(Jürgens, 2004: 51).
역량개념을 주도한 OECD는 PISA연구를 통해 초·중등학교 교육경쟁력 강화정책을 추진하였는 바, 학교교육에 기대하는 우선적 관심사 역시 변화하는 사회적 환경과 시장의 요구에 적응하는 능력의 개발이었다. 교육에 대한 이해가 이렇게 전환되는 과정에서 학교교육은 그 목표를 고유한 개성을 지닌 자율적 인간의 형성에서 ‘가시적 성과 지향의 실천능력 개발’로 은연중에 전환된다(정영근, 2013b: 2). 이러한 성과산출 중심의 교육체제에서는 특정한 역량을 요구·평가하기 위해 교육표준이나 표준화된 테스트가 필연적으로 요구되어 수업과 평가에서 교사와 개별 학생의 자율성이 심각하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
반면, 교육학적 의미의 학교교육은 인간 사이의 연대의식과 이성적 비판능력의 형성 및 자기결정에 따른 주체적이고 책임 있는 행위를 지향하는 것이다. 학생이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지식은 본질적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 논의된다(정영근, 2013a: 181 ff.). 첫째, 사물과 문화세계에 대한 ‘내용적 지식의 도야’가 요구되어 이제까지 축적된 자연과 사회 및 지식의 세계를 학교에서 배워야 한다. 둘째, 가치의 관점에서 세상을 고찰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행위를 깨닫고 실천하는 ‘도덕적 도야’를 해야 한다. 학생이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은 교과지식의 세계에 국한되지 않고 가치 지향의 행위 및 그에 대한 자기평가와도 연관된다. 수업과 생활지도를 통해 학교는 학생이 가치를 감지하여 올바른 행위를 할 수 있는 의지를 기르게 해줌으로써 그들이 도덕적 존재로 성장케 한다.
이처럼 학교가 교육의 목표와 과제를 사회와 직업에 필요한 지식 습득을 넘어 도덕적 품성의 형성으로 확대할 경우 학업평가는 그 대상을 최근에 강조되는 역량기반 지식의 습득에만 국한할 수 없다. 교육적 차원의 학교는 특정 상황에서 명시적으로 확인되는 정보와 지식의 수준을 넘어 사람됨의 교육을 담당한다. 주어진 과제상황 전반을 판단하고 자발성과 책임의식에 근거해 행동할 수 있는 지식과 능력을 성장세대에게 갖춰주는 곳이 바로 학교이다. 그러므로 학교는 세계 및 실생활과 연관된 실용적 지식과 더불어 가치지향의 도덕적 삶을 이해· 형성하도록 교육해야만 한다. 이러한 전인적 지식은 객관식 단답형 시험이나 평가를 통해 확인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수업에서 나타난 개별 학생의 내용이해 과정 및 가치와 연관된 전인적 지식의 역동성은 학생의 고유한 말과 글로 이해·표현되어야 비로소 드러나기 때문이다.

3. 학업평가의 방법과 관점 : 독일 교육학의 논의내용 몇 가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학업성취 및 평가의 개념을 교육학적으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학교교육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학업성취의 의미는 민주주의 교육목적으로부터 도출되는데, 이는 바로 성장세대를 전인적 차원에서 성숙하고 자립적 민주시민이 되도록 하는 일이다. 또한 학교의 수업은 자율적·비판적 사유, 유연한 지성, 문화적 개방성, 성취하는 즐거움, 객관화하는 능력, 사회적 감수성 및 협동심, 스스로 책임지려는 자세 등을 목표로 해야 한다. 이와 같은 포괄적 교육목적과 구체적 수업목표를 통해 개별 학생은 ‘자기결정 능력’ 및 ‘사회적 연대의식’을 갖추게 됨으로써 자기 고유의 행위능력을 이뤄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집단의 문제를 민주적 방식으로 협력· 해결하는 능력과 상호이해의 관점에서 의사소통하는 능력도 갖추게 된다. 이와 같은 학교교육의 목적과 수업목표를 전제로 독일의 교육학계는 학교교육의 학업성취가 교육학적 의미를 지니기 위한 성적평가의 속성과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의하고 있다(Klafki, 1975: 89 f.; 정영근, 2013b: 10 f.).

첫째, 성취 그 자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목적 및 규준(規準)과 연관해 학업성취를 이해해야 한다. 즉 주어진 상황에서 특정한 태도를 지시하거나 기대하면서 학생을 최대한 교육적으로 지원할 수 있게 하는 확고한 성취규준이 필요하다. 학교 및 수업의 규범적 목표와 연결된 교육적 성취에는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보편적 기본가치가 전제되는데, 이는 학생이 학교의 교육과 수업에 내재된 의미와 목적을 뚜렷이 체감·이해하여 수용할 때에 실현 가능하게 된다.
둘째, 학업성취는 타고난 유전적 능력과 주어진 환경의 제약을 받는다. 지능 같은 인지적 요인은 물론 동기·인성 변수 및 교사의 태도나 사회·문화·경제적 환경 같은 비인지적 요인 또한 학생의 성취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학생에게 현재까지 드러난 것보다 더 큰 교육적 잠재능력과 발전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전제하면서 그가 지닌 능력을 최대한 발현시키기 위한 최적의 학습 환경을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학생을 개별적으로 지원하는 일을 개인의 무제약적 자기개발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교육학적 성취의 자기개발에는 언제나 개인의 사회에 대한 책임이 동반된다.
셋째, 학업성취에서 산출된 결과뿐만 아니라 그 과정 역시 중요하다. 더 나아가 학생이 학습대상에 접근하는 태도나 방법 그리고 논의하는 수준과 자세처럼 지식 습득과정의 요소들 또한 성취평가에 포함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역량개념 및 교육표준에 따른 학업성취와 평가에서는 학생이 지식을 자기 자신과 연결해 습득하는 과정적 요인들이 거의 고려되지 않고 수치화된 성적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문제가 있다.
배움의 과정을 고려하는 역동적 성취개념이 학교교육에 적용될 수 있도록 수업에서의 의사소통능력, 비판적으로 논의하는 자세, 문제해결에 도달하는 세부과정 같은 학생의 정신적 태도 형성과 연관된 성취기준이 개발되어야(Klafki, 1983: 493) 한다.
넷째, 학교교육의 학업성취는 개별학습인 동시에 사회학습의 특성을 지녔다. 민주사회에서 학교교육의 성취는 개별성취와 타인의 협력이 전제되는 공동성취 사이의 역동적 계기를 포함한다. 학업성취를 개인만의 문제로 파악할 경우, 배움과 이해의 사회적 맥락이 간과되어 경쟁지향적 성과를 당연시하게 된다. 또한 시험점수 같은 수치에만 매달리게 하는 외재적 동기가 학생을 지배함으로써 배움의 자율성과 내면성이 상실될 위험이 있다.
다섯째, 학교교육의 과제는 교육과정에 준해 개별 학생에게 학습과 성취를 지원하는 것이지, 학습결과를 수치화해 증명해내는 것이 아니다. 학교교육의 핵심과제는 학생이 사회·정서·인지적 행위에서 습득한 지식과 기량을 자기 독립적·책임적으로 활용하여 더욱 성장·발전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식과 책임성의 긴장관계가 반영된 수업”(Jürgens, 1993: 6 ff.)이 학교교육에 뿌리내려 성적산출 그 자체보다 학생의 전인적 성장을 강화해야 한다.
여섯째, 학업성취는 과제 해결능력을 넘어 다양성을 지향하는 배움의 과정이다. 역량개념으로 규범화된 최근의 성취평가는 인지·언어·학술적 학습결과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교사에게 역량개발을 위한 지시적 수업을 강요한다. 또 수동적 학습을 통해 학생이 지식의 재생산에 머무르게 되어 창의성·도덕성·갈등해결 능력 같은 또 다른 유형의 학업성취가 소홀해진다. 학교는 사회의 성취경쟁 요구를 상대화하면서 학생이 개인 및 공동체적 책임을 인지·수행하며 창의적으로 생활하도록 비판·협동능력을 신장시키는 교육에 전념해야 한다.
이처럼 학교교육의 성취원리를 교육학적으로 의미 있게 개념정의 하는 일은 교육의 결과를 평가하는 사회의 규범적 표상들과 연결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학은 사회의 지배적 성취원리를 당연한 것으로 수용해 학교교육에 그대로 적용하든지, 아니면 교육적 관점에서 새롭게 규정함으로써 현행의 평가기준을 상대화·인간화하여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Beckmann, 1973: 248). 교사 역시 성취·평가기준이 학생의 삶에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인식하고 그들의 성취를 올바로 평가하는 일을 자신의 직업적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경쟁사회의 비인간화가 학생의 일상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현실에서 사회적 성취기준을 무비판적으로 따라갈 수는 없다. 학교교육 나름의 긍정적 동인들을 형성시켜 경쟁 지향의 성취동기를 억제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4. 교사의 역할 과제 : 교과 성적산출을 넘어 교육의 실천으로

대한민국 교육기본법 제2조는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 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는 교육이념을 제시한다. 그럼에도 교원양성 교육과정이나 학교교육 업무목록에는 현직교사가 교육이념에 근거해 수행해야 할 교육학적 과제가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다. 교원양성교육에서 교과지식과 더불어 교육학 지식을 배우게 되어 있지만 그 내용은 교육과 교직의 목적 지향적 의미가 아닌 교수방법 또는 행정적 실무내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결과 교사는 수업에서 교육과정에 정해진 내용을 전수하고 시험을 통해 평가한 뒤 그 결과를 수치로 산출하는 일에만 매달린다.
그 결과 학교교육의 이념적·이론적 과제를 진지하게 생각·고민할 동기와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다.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나면 교과수업과 행정업무의 굴레 속으로 빠져들게 되어 있다.
학교의 수업은 단순히 학생에게 지식 내용을 숙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식을 형성하도록 지원해 이해·통찰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활동이다. 교사는 학생의 지적 흥미를 일깨워 교수 방법적으로 안내함으로써 배울 수 있게 하는 교육적 책임을 지녔다. 따라서 배움을 유발·안내하는 과정으로서의 수업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뛰어난 교사는 교수-학습 방법적으로 학생을 자신의 교과내용 영역으로 이끌어 격려·지원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인식의 단계에 들어서게 하는 사람이다. 교사에게 주어진 본연의 교육학적 역할 과제는 수업을 통해 학생에게 교과지식뿐만 아니라 그들이 독자적이고 책임성 있는 삶을 준비하도록 지도하는 일이다. 즉 교과교육과 인격교육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학교교육의 학업평가는 교사의 수업과 연관되는 바로 이점에서 교육학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수업을 통해 학생을 교육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학업평가는 필수적이며, 성적산출을 위한 평가에서 교사는 개별 학생이 도달한 학습의 수준과 상황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게 된다. 그런데 이 정보는 흔히 생각하듯 해당 학생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그 학생을 위한 정보여야 한다(A. 플리트너/H. 쇼이얼, 2009: 194). 그래야만 수업을 통해 얼마나 성공적으로 배울 수 있었는지, 아니면 학습과정에 어떤 제약과 방해요인이 있었는지를 교사와 학생 스스로 평가·수정할 수 있는 계기가 형성된다.
교사의 평가는 표준화된 교과 성적 산출이라는 제도적 형식과 수단을 넘어 교수-학습의 과정에서 드러난 개별 학생의 학습상황까지 고려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이럴 때 개별 학생-교사-다른 동료학생이 서로 횡적으로 연결·설정된 교수-학습의 역동적 과정이 포함될 수 있으며 교육학적으로 의미 있는 세심한 평가를 수행할 수 있다.
성적 산출에 객관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표준화된 평가방식이 통용되고 있다. 하지만 객관적 성적평가가 지금보다 더 보편적 공정함을 확보하고 또 교육적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개별 학생의 전제조건과 잠재적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참고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학교의 수업은 학생의 학습뿐만 아니라 교사의 교수내용과 방법이 서로 교차하는 역동적 교육의 과정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래야만 학생의 학습결과 산출을 위한 평가가 교사의 수업방식과 질을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배움의 과정을 협력·지원하는 평가가 아닌, 학생의 학습결과를 일방적으로 점수화 하는 평가는 교사를 교육자의 위치에서 행정가로 전락시킨다. 민주적·인본주의적 학교교육이 목표로 하는 교육학적 학업평가란 결과구성 요소뿐만 아니라 배움의 과정을 구성하는 요소들 또한 포함하는 역동적 성취개념을 전제로 한다.
이제 학교는 일방적 교과수업 및 시험성적 산출에서 벗어나 역동적 자아성장의 과정으로 이해되는 교육적 다양성을 추구하는 인간교육의 공간으로 변모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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