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Vol.228.가을호

학교자율운영 2.0의 원리와 방향

|김용

1. 다시 제기된 학교자율운영

한국 교육에서 ‘자율’ 담론이 널리 활용되기 시작된 것은 1980년대 말부터다. 당시 교육계 전문가들은 오랜 기간 지속된 군부독재 체제와 관료제 문화가 교육에 타율과 획일을 초래 하였다고 판단하였다. 같은 시기 한국교육을 ‘붕어빵을 찍어내는 교육’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비유는 당시 정황을 잘 보여준다. 타율과 획일의 대척점에 ‘자율’이라는 지표를 세웠다.
한국이 OECD에 가입한 것은 교육계의 여망을 정책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1990년대 들어 OECD 국가들은 ‘권한 이양(devolution)’을 교육개혁의 방향으로 설정하고, 이 방향을 구현한 대표 정책으로 학교자율운영을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한국의 OECD 가입을 계기로 OECD 내부의 논의가 한국의 교육개혁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교육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교육의 자율과 OECD의 학교자율운영 아이디어가 자연스럽게 결합하게 되었다.
한국 교육에서 학교자율운영은 한동안 대표적인 개혁으로 간주되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힘을 잃고 점점 사라졌다. 그런데 근래 학교 혁신의 흐름을 타고 학교자율운영 담론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1995년 개혁 당시의 학교자율운영을 학교자율운영 1.0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바야흐로 학교자율운영 2.0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2. 학교자율운영 1.0의 운영 모형

김영삼 정부의 교육개혁은 교육계의 열망과 일단의 경제학자 집단의 교육 변화 모형이 결합한 혼합물과 같은 것이었다. 교육계 전문가들은 ‘자율과 다양성’이라는 방향을 세우고 평생학습사회 구현이라는 미래 전망을 제시하였으며, 이 아이디어는 상당 부분 개혁안에 포섭되었다. 한편, 경제학자 집단은 신제도경제학에 근거한 신공공관리적 개혁 모형을 제시하였다. 학교자율운영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 것은 후자였다.
제시하였다. 학교자율운영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 것은 후자였다. 박세일 등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의 경제학자들은 ‘학교가 잘 움직이지 않는’ 문제를 ‘교육에서의 경쟁 구조의 왜곡’이라는 관점으로 설명하였다. “학생은 경쟁하지만 학교와 교사는 경쟁하지 않는다.”는 말이 그들 주장의 핵심이다. 이들은 ‘교육에서의 경쟁 구조를 정상화하는 것’, 즉 학교와 교사 간 경쟁을 유발하여 학교를 변화시키는 것을 개혁의 방향으 로 설정하고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원칙을 제안하였다. (1) 대학에 대한 진입, 공급 규제를 철폐할 것 (2) 교육정보 공개의 흐름을 활성화할 것 (3) 학생 및 학부모의 선택 범위를 확대 할 것 (4) 학부모, 산업계, 지역사회 등의 교육 관련 의사결정 참여를 확대할 것 (5) 교사 및 교수들에게 경쟁의 유인을 제공할 것.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사실이지만, 1995년 교육개혁 이후 앞의 다섯 가지 원칙이 차례로 제도화되었다. 대학설립준칙주의, 교육정보공개제도, 새로운 유형의 고등학교 설립과 학생 선택권 확대, 학교운영위원회, 교원평가와 성과급 제도 등은 다섯 가지 원칙을 구현한 것들이었다.

 

3. 학교자율운영 1.0 모형의 조직론적 의미

신공공관리적 학교 변화 모형은 교사와 학교에 관한 모종의 평가와 나름의 변화 방향을 구현한 것이다. 이 모형은 교사와 학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어떻게 변화시키고자 하는가?
하는가? 이 모형에서 종종 ‘지대 추구자’나 ‘지대 추구적 행위’라는 개념이 교사와 결합하여 사용된다. 특권이나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나 활동을 지대 추구(rent seeking)라고 하며, 사회 구성원 다수를 희생시켜 특정 세력들에게 이득을 몰아주는 여러 가지 행태를 지대 추구 행위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학생들의 성장에는 별 관심이 없고 자신 들의 복지와 편의를 향상시키는 일에만 관심을 두는 교사들을 지대 추구자로 보는 것이다. 지대 추구자인 교사들은 신뢰할 수 없다. 그들이 스스로 학생들의 교육에 관심을 갖고 자발 적으로 변화의 흐름에 동참할 것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외부의 충격이 필요하다. 책무성을 확인하는 일도 중요하다. 교원평가와 성과급제도, 더 넓게는 교육정보공개제도까지도 이런 문제의식에서 제도화되었다. 이런 제도의 옹호자들은 평가와 성과급 같은 외적 동기 유발 기제를 투입하여 교사들의 내적 동기를 추동할 것을 기대한다.
한편, 학교자율운영 1.0 모형은 학교의 느슨한 결합적(loose coupling) 성격을 문제로 본다. 학교는 얼핏 ‘이상하게’ 보이는 조직이다. ‘전인교육’을 학교의 목적으로 들면서도, 정작 학교의 주된 과업인 교과를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전인교육과 그다지 관계가 없다고 생각 하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 학교구성원, 특히 교사들 간의 관계도 느슨하다. 이런 관계에서 ‘부적격 교사’들이 온존할 수 있는 토양이 형성되었으며, 선구적인 교사의 혁신이 학교 전체로 확산되기는 어려웠다. 교수 방법은 교사 수만큼 다양하여 종잡을 수 없다. 연공급적 보수 체계는 교사 개개인의 성과를 반영하지 못한다. 학교 조직의 이와 같은 특성은 기업의 특성 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기업은 목적과 과업, 과업과 기술, 과업과 구성원, 구성원과 구성원, 과업과 평가 간의 관계가 상당히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다(tight coupling). 학교자율운영 1.0은 학교를 단단한 결합 조직으로 변화시킨다. 이명박 정부에서 시행된 일제고사와 학교 성과급 제도를 둘러싼 학교 조직의 변화는 이런 경향을 잘 보여준다.

 

4. 학교자율운영 1.0 모형의 평가

학교자율운영 1.0 모형에는 공과가 있다.
먼저 성과를 살펴보자. 정부 규제의 문제점을 직시하게 된 것은 중요한 성과다. 인사, 교육과정, 재정 등 학교 운영 요소들에 관한 과도한 규제는 교사들의 창의를 저해하고 사기를 떨어뜨린다. 과도한 규제가 타율적 문화와 획일적 학교 운영을 합리화하고 제도화하기도 한다. 학교자율운영 1.0 개혁의 성과로 교원초빙제도, 교육과정 규제의 완화, 학교회계제도 등이 도입되어 규제가 완화되었다. 개별 학교가 나름의 특색을 갖추고 자율적으로 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은 것도 학교자율운영 1.0 시대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도모할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은 것도 학교자율운영 1.0 시대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형의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문제는 학교 개혁의 약속과 현실이 다른 것이다. 애초 학교자율운영으로 교사들의 창의와 사기가 살아나고, 학교교육은 다양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그러나, 자율을 배경으로 삼고 추진된 책무성 정책은 교사들의 열의와 창의를 꺾고, 시험을 위한 수업(teaching to test)을 강요하여 교사들을 탈전문화시켰다. 또, 학교 다양화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유형의 학교가 많이 생겨 났으나, 기실 새로운 학교들은 교육을 다양화하기보다는 서열화하여 기존의 위계 구조를 한층 강화하였다. 또 하나의 문제는 학교자율운영 1.0이 개별 학교 중심 변화 전략으로 채택되면서, 지역을 배경으로 한 학교 간 관계가 부정적으로 고착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현대 사회에는 기득(旣得) 집단들이 자신들의 경제·사회적 이익을 유지하기 위하여 사회적 폐쇄(social closure) 기제를 작동시킨다는 막스 베버(Max Weber)의 통찰이 학교 자율운영 1.0 모형의 운용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학교자율운영은 학교 단위로 구사할 수 있는 자율권을 발휘하여 학교 간 벽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학교자율운영 으로 학교 간 연대와 협력이 강화되기는커녕 학교 간 분리가 심화된 것이 사실이다. 학교 간 연대와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한 학교의 긍정적인 변화가 지역사회를 분리하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5. 학교자율운영 2.0의 문제 인식

근래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학교자율운영을 제창하는 배경에는 학교 혁신이 더디다거나, 기대만큼 빠르고 광범하지 않다는 문제 인식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학교가 잘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문제 인식은 이십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미묘한 차이도 있어 보인다.
있어 보인다. 학교자율운영 1.0 모형은 학교 조직의 불활성 문제의 원인을 교사의 개인적 속성에서 찾았다. 즉, 교사 개개인의 기회주의적 성향, 즉 학생의 성장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고 교사 자신의 편의만을 좇는 성향 탓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보았다.
자신의 편의만을 좇는 성향 탓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보았다. 학교자율운영 2.0 모형은 교사들이 자율적이지 않고 창의를 발휘하지 못하며, 사기가 높지 않으며, 변화를 도모하려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이유를 교사의 개인 내적 성향에서 찾지 않는다. 교사들이 일을 하는 상황(과업 여건)과 학교 조직의 상황(조직 여건), 그리고 학교 밖 교육 및 사회체제의 상황(체제 여건)이 교사의 자율과 창의를 가로막고 있다고 본다.

 가. 과업 여건
자기 스스로 어떤 일을 자유롭게 기획하고 실행하는 사람은 자율성과 창의성이 높고, 이런 역량을 계속 발전시킬 수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교사들이 과업을 수행할 때 누릴 수 있는 자율성의 여지가 넓지 않다. 예를 들어, 국가교육과정 또는 교육과정 관련 각종 지침은 교사들의 수업을 사실 영역에서 공식적으로 규제한다. ‘창체는 시체’1) 라는 자조적인 말은 창의적 체험활동에서 다루어야 하는 정부 지침이 과다함을 비꼬는 말이다. 학교장의 지나치게 안정 지향적이고 보수적인 학교 운영이나 교육과정 재구성을 수용하지 못하는 학부모들의 압력은 인식 영역에서 비공식적으로 교사들의 수업 실천을 규제한다.
자율의 부재라는 과업 여건은 무책임의 구조를 형성한다. 누구나 자신이 자유롭게 행위 하였을 경우에 한하여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진다. 그런 행위만이 비난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칭찬을 받을 수도 있다. ‘시체 시간이 되어버린 창체 시간’에 책임감을 가질 교사는 많지 않다. 수업의 내용뿐만 아니라 속도와 순서 같은 방식마저 통제하는 과잉 입법이 교실에 침투할 때, 수업에 책임감을 느낄 교사는 많지 않다.
몰입의 방해물이 많다는 사실도 중요한 과업 여건을 구성한다. 몰입은 가장 높은 수준의 동기를 유발한다. 그런데, 학교에는 교사들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인들이 너무 많다. ‘잡무’ 라고 부르는 일이 대표적이다. 자신이 수업하는 사람인지 공문 작성하는 사람인지 모르 겠다는 푸념은 학교자율운영체제 구축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나. 조직 여건
학교는 느슨한 결합 조직이다. 본디 ‘느슨한 결합’은 전문적인 일을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이 모인 조직에 적합한 조직 형태다. 그러나 느슨한 결합 역시 부정적인 현상을 나타 낼 수 있다. 느슨한 결합 안에서 교사들이 고립적으로 나 홀로 편의만을 추구할 수도 있다. 사실 2000년대 초 부적격 교사 문제나 교원평가 관련 논란이 한창일 때, 다수 시민이 정부 정책을 지지했던 배경에는 느슨한 결합의 부정적 현상이 만연한 데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자리하였다. 교사들이 연대와 협력하지 않고 자신의 편의만을 추구할 때 자율이 살아나지도, 창의가 솟구치지도 않는다.
학교에 참여구조가 미흡하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참여하여 자신의 목소리(voice)를 낼 수 없을 때, 그 일을 자신의 일이라 여기는 사람은 없다. 의사결정 권한이 누군가에게 독점 되어 있고,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조직에서 책임과 헌신을 구하는 일은 연목구어(緣木 求魚)와 같다. 여러 사람의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의사결정의 질이 높을 수도 없다. 교육은 공산적(共産的) 활동이다. 수업이 교사의 일방적 활동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이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일인 것처럼, 학교 운영은 교장 단독의 활동이 아니다. 교사와 학생, 학부 모와 직원, 나아가 주민들 모두의 힘을 모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누구나 이런 말을 하지만, 이런 일이 현실에서 자주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학교가 자기 충족적 조직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해두고 싶다. 학교 자체적으로 모든 교육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교장이 학교를 멋지게 운영하고 싶은 의지가 있어도, 또 교사들이 그럴듯한 교육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싶은 열정이 넘쳐도 개별 학교의 빈약한 자원 앞에서 쉬이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 적절한 사람을 찾기 어렵거나, 시설이 미비하거나, 돈이 부족하거나 하는 등의 문제는 열정을 가로막는 항상의 조건이다.

다. 체제 여건
학교 밖의 교육체제도 학교자율운영의 현실에 영향을 끼친다. 호주에서 성공적이었던 자율 경영학교가 영국에서 제도화되었을 때, 그 결과는 완전히 기대 밖이었다. 당시 호주의 자율 경영학교는 한 개의 고등학교만 존재하던 상황에서 운영되었다. 경쟁에 휘말리지 않고, 말 그대로의 ‘전인교육’을 실천하기 쉬운 조건에 있었다. 반면, 영국의 자율학교는 학생 선택과 경쟁이 제도화된 시장 상황에서 운영되었다. 영국의 자율경영학교는 학교 서열화 체제에서 윗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운영되었다. 한국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교육 규제 완화는 곧잘 좁은 의미의 학력 경쟁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며, 서열화한 학교 체제 에서 상위에 위치한 학교들은 학교자율운영을 사회적 폐쇄를 강화하는 기제로 활용한다.
교육부와 교육청이 하는 일과 일하는 방식도 학교자율운영을 저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시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복지부동한다는 비판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관료들은 끊임없이 일을 만들어낸다. 학교로 많은 정책적 요구가 전달되고, 이런 일은 학교의 리듬을 깬다. 교육부와 교육청이 즐겨 활용하는 사업 방식은 개별 학교가 사업을 기획하여 공모에 응하면, 교육행정기관이 이를 평가하여 선택하는 공모 방식이다. 학교별 공모 방식이 일반화되면 학교 간 연대와 협력은 어려워진다.

 

6. 학교자율운영 2.0의 주요 원리

학교자율운영 1.0은 신공공관리적 학교 변화 접근법으로서 교사에 대한 불신(distrust)을 전제로 한다. 교사를 믿을 수 없기에 그들을 강제할 수 있는 장치로 선택과 경쟁을 도입 하고자 하였다. 궁극적으로 책무성 기제를 도입하여 변화 여부와 수준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학교자율운영 2.0은 사뭇 다른 원리에 근거한다. 교사 수준에서 볼 때, 학교자율운영 2.0은 교사에게 책임감을 발동시키는 일을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 책임감은 신뢰받는 상황에서 일어난다. 신뢰가 책임감의 전제 조건이라면 민주주의는 책임감을 고양하는 중요한 요건을 형성한다. 한편, 학교자율운영 1.0이 개별 학교 차원의 변화를 기도한 것이었다면, 학교 자율운영 2.0은 학교 간, 그리고 학교와 지역사회 간의 연대와 협력, 동반성장을 도모한다. 두 모형의 주요 원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7. 학교자율운영 2.0 모형의 구조

학교자율운영 2.0 모형은 한 학교의 변화와 지역을 공동 기반으로 하는 여러 학교의 변화,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교육행정기관의 변화 등 세 차원의 변화를 개념화한다.
먼저 학교를 자율적으로 운영하고자 할 때,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학교가 공동체로 변화 하는 것이다. 특히 교사들 사이의 학습 공동체를 구축하는 일이 중요하다. 교사들은 학습 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느슨한 결합의 단점은 치유하고 장점은 살릴 수 있다. 한 사람의 교사가 단독적으로 실천할 때에는 자신감을 가지기 어렵지만, 함께 논의하고 함께 실천할 때는 자신감이 생긴다. 공동체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교사들 사이에 전문직업적 덕(virtue)과 동료의식이 생겨난다. 전문직업적 덕과 동료의식은 교육행정기관의 통제를 불필요하게 만드는 리더십 대체제(leadership substitute)가 될 수 있다. 자신이 동료들과 함께 논의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책임감은 자연스레 높아진다.
학교가 공동체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교사 개인, 교사 간, 학교 전체 차원에서 조건을 갖추어주는 일이 필수적이다. 첫째, 교사들이 일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사들이 자신들의 교육 활동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을 때 아이들에 대한 책임과 헌신이 절로 우러나며, 교사들 사이에, 교사와 학생, 학부모 사이에 살아있는 대화가 가능하게 된다.
둘째, 교사 간에는 장기간의 친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공동체를 구성하는 최소 필수 요건은 구성원들이 일정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하지만 매우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다. 매년 학교 구성원 다수가 바뀌는 학교에서 공동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셋째, 학교의 참여 구조를 형성하는 일이다. 학교 구성원들이 제각기 권한을 나누어 가지고 행사할 수 있는 제도를 형성하는 것은 공동체를 형성하고, 구성원들의 책임과 헌신을 유발 하는 중요한 요건이다. 교사만이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 등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를 구축하고 문화를 형성해야 한다.
이상은 개별 학교의 변화 모형을 설명한 것이다. 학교자율운영 2.0 모형은 교육 생태계를 교란하는 방식으로 학교 발전을 도모하는 일을 삼간다. 오히려 이웃 학교, 나아가 지역과 개방과 공유, 협력의 관계를 형성하면서 동반 성장과 동반 혁신을 도모한다. 지역을 배경으로 여러 학교가 네트워킹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자율운영 2.0을 지탱하는 네트워킹은 개방적 심성을 계발하고 공유적 차원을 발전시켜서 협력적 실천을 제도화할 때 작동한다. 개방적 심성은 학교 울타리 안에서 모든 일을 어떻게든 해결한다는 생각을 타파하는 것, 외부자의 시각에서 나 또는 우리 학교를 객관화하겠다는 태도, 나 또는 우리 학교의 단점을 숨기지 않으며, 장점은 나누겠다는 태도, 누구에게서나 배울 수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마음 가짐 등을 의미한다.
또, 이미 여러 학교가 공간이나 자료를 공유하는 실천을 시작하였지만, 앞으로는 시간과 사람을 공유하는 수준으로까지 공유 차원을 확장하여야 한다. 사실 학교 현장에는 공유의 의의를 자각하지 못하는 학교 행정가와 교사가 적지 않다. 또, 초등과 중등, 중학교와 고등 학교 간의 단절의식은 심각하며, 이로 인하여 공유 가능성이 차단된다. 공유에 관한 폭넓은 성찰이 필요하다.
학교자율운영은 학교와 교사의 몫이지만, 교육청은 학교자율운영 환경을 관리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학교자율운영에 친화적인 교육행정을 전개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