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현장2019 여름호 (235호)

학교 공간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

배성호 (서울삼양초등학교, 교사)

삶터 공간으로 학교 다시 보기

학교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생각해보자. 오래전 학교를 다녔던 아련한 추억을 비롯해 네모반듯한 교실 등 저마다의 기억 한 곳에 자리한 학교 모습은 참 다양할 듯싶다. 그런데 최근 학교 공간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이전과는 다른 형태로 학교가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
변화하는 학교 공간을 살피는 출발점은 삶터 공간으로서 학교의 재조명이다. 학교는 그저 당연한 교육 공간만이 아니라 학생과 교사가 함께 만들어가는 다채로운 삶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늘 오가던 길들도 자세히 보면 새로운 것이 보이듯 학교 공간 역시 마찬가지다.
학교 공간을 새롭게 바꿔나가는 것은 무엇보다 교육적으로 학생들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 학생들이 학교 공간을 바꿔나가는 과정은 마치 학생 스스로 진로를 찾아 새롭게 길을 만들어가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학교 공간을 새롭게 탐색하고 이를 바꿔나가는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의 삶을 디자인하는 기회와 마주할 수도 있다.

학교 공간 혁신은 학생들의 성장을 열어가는 발판

학교 공간을 바꾸는 것은 꼭 건축과 관련된 전문지식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공간을 바꾼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만의 변화를 뜻하지 않는다. 스스로 보는 관점을 바꾸는 동시에 자기 스스로와 새롭게 마주할 수 있는 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특히, 이 변화에서는 선생님들의 삶터 공간인 학교를 새롭게 살피는 것도 매력적이다. 익숙하게 마주하는 복도와 교실 등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소박하게 교실 뒤판을 바꾸고, 의자 배치만 바꿔보아도 공간이 새롭게 살아날 수 있다. 이 과정을 학생들과 함께한다면 그 자체로 유쾌한 공간 프로젝트 수업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 학생뿐만 아니라 선생님께서도 많은 자극을 담뿍 받을 수 있다.
최근 학교 공간에 대한 관심들이 많아져서 전담 부서가 생기고 서울시교육청, 광주시교육청을 비롯해 교육부에서도 대대적으로 학교 공간 변화를 위한 정책이 나오면서 현장이 바뀌고 있다. 이런 변화는 더 이상 학교가 과거 네모난 규격 형태의 장소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공간으로 재탄생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학교 공간 변화는 매력적이다. 공간 변화로 인해 삶의 모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아가 삶터에 기반을 둔 공간 혁신은 학생들이 주인공이 되어 직접 학교를 바꿔나가면서 학생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교사, 학생, 학부모, 그리고 교육 공동체가 더불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다.

비울 수록 충만해지는 학교도서실

도서실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고 있다. 이곳은 필자가 근무하는 삼양초 도서실이
다. 사진처럼 따뜻하면서도 정겨운 공간으로 많은 학생들이 좋아하는 곳으로 거듭났다. 사실 이전에는 도서실이 빼곡하게 들어선 책들 때문에 갑갑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세심하게 학교 도서실을 설계한 홍경숙 건축가와 교직원들의 노력이 합해져 환하고 너른 공간으로 바뀌었다. 도서실을 꽉 채운 책들을 희망하는 학급이나 유휴 공간 등으로 분산했기 때문이다. 이런 운영의 묘 덕분에 현재 도서실은 비어있어서 오히려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실제로 학교 현장은 최근 출산율 저하 등으로 인해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다. 삼양초 역시 5년 전에는 6학년이 10학급으로 운영되다가 최근에는 5학급으로 줄어들었다. 이로 인해 빈 교실들이 생기면서 새롭게 공간을 만들어갈 수 있는 여지가 많아졌다. 이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도서실의 여백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삼양초 도서실이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유는 도서실 곳곳에 아기자기하게 인형들과 소파 등이 잘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서실이라는 공간이 독서만이 아니라, 편안하고 친근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의 역할까지 겸할 수 있게 탈바꿈한 것이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책만 읽는 게 아니라 편안하게 누워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도 도서실은 책과 친숙해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서 참 좋아하는 공간이다.
공간을 바꾼 후에 학생들에게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이전엔 “도서실 가자.” 라고 말하면 “또 가요?” 라고 소극적으로 답했는데 지금은 도서실 선호도가 높아지고 학생들은 이 공간에서 책도 책이지만 카페에 온 것 같고 존중받고 있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오히려 본인들이 더 원하는 책들을 도서실 곳곳에서 자유롭게 읽어나가는 것이 새로운 취미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작은 것부터 바꿔나가는 학교 공간의 변화

공간이 주는 여러 가지 의미 중에서 행동 규범들이 진짜 달라질 수 있는 아주 전형적인 사례인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렇게 바깥 풍경을 보면서 기대서 책도 읽을 수 있고, 그리고 책과 멀었던 친구들도 ‘와, 나 이렇게 책 읽으니까 되게 좋다.’라고 하고, ‘책을 읽는다는 게 참 멋진 일이구나. 기분이 좋다’ 라고 생각하게 된다. 아이들의 이런 변화를 보면서 익숙했던 우리 교실, 학교 공간들에 관심을 갖고 조금씩 손을 보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 그렇다면 학교 공간은 어떤 모습이면 좋을까?

무엇보다 학교 공간이 학생들의 활기찬 에너지처럼 살아 있는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익숙한 공간을 새롭게 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선 교실과 복도라는 공간을 다시 생각해 보길 권하고 싶다. 흔히 복도에서는 학생들에게 뛰지 말라고 많이 이야기한다. 안전사고가 나거나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해 보면 복도, 그 뻥 뚫린 공간을 보고 질주 본능을 일으킨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학생들이 대단히 건강하다는 증거가 될 수 도 있다. 그렇기에 아이들에게 무조건 뛰지 말라고 제한을 할 것이 아니라 복도라는 공간을 우리가 어떻게 새롭게 모색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면 좋겠다.
그런 변화가 반영되어서 최근에는 일자형 복도에 유쾌한 변화가 생겼다. 대개 지금도 많은 학교에서 일자형 복도를 볼 수 있는데, 사실 일자형 복도를 볼 수 있는 곳은 서대문 형무소나 역사관 같은 곳이다. 일자형 복도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새롭게 설계를 하거나 공간 구획을 했을 때 그런 부분들에 변화를 준다면 아이들도 훨씬 더 흥미로워할 것이다. 이런점에서 학교 복도나 교실에 소파를 하나 가져다 두는 것을 추천한다. 소파 하나 있을 뿐인데 복도나 교실 공간이 새롭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복도에 소파가 놓인 후, 소파가 동네 사랑방처럼 아이들로 북적이게 되었다. 학생들도 소파를 이용하면서 새롭게 복도 공간을 이용하였다. 쉼터이자 정보 나눔터로 소파는 많은 학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나아가 요즘 관심 있는 것은 물리적 공간뿐만 아니라 그 공간의 연장선에 있는, 예를 들면 복도에 있는 소파라든가, 그리고 교실에서 흔히 마주하는 책걸상, 그리고 학용품들의 안전 등 이다. 사실 체육 시간에 즐겨 사용하는 농구공 같은 경우, 마감재질에 중금속 카드뮴 성분들이 많아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이제 학교 공간 혁신에서 비단 물리적 공간만의 변화가 아니라 아이들이 마주하는 생활 문화 전반의 변화도 모색해 보면 좋겠다. 우리 대한민국이 점점 더 좋은 사회로 바뀌고 있다는 걸 체감하는 데 있어 이런 변화가 아주 중요하다.
필자 역시 예전에는 학교 공간의 외적 변화에 주목했었지만, 이제는 외적 공간을 이루는 그 재일은 어떤 것인지, 그 공간을 구성하는 마감재는 과연 어떠할지에 더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페인트를 쓰거나 벽지 하나를 바르더라도 친환경 재질을 사용하면 좋겠고, 마감재 역시 학생들이 교육 활동을 하는 데 안전한 것이길 바란다. 그런 세심한 관심들이 어우러지고, 그리고 그런 사항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같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사회적 상상력으로 만들어가는 학교 공간 혁신

어떤 공간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서 심리적 안정감과 정서적, 사회적 관계들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부분들이 지금 주목받고 있기 때문에 학교 공간에 대한 관심은 더 높아질 것 같다. 실제로 필자가 요즘 학생들과 만나면서 가장 많이 하고 있는 것이 교실 안에서의 변주다. 바로 사회적 상상력을 키워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잘 구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세계지도다. 우리는 늘 세계지도하면 한반도가 가운데 있는 지도를 떠올린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베스트셀러 지도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만든 지도다. 왜냐하면 각 나라에서 발행한 세계지도는 그 나라가 가운데 있다. 그래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만든 지도는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거꾸로 되어 있다. 왜냐면 남반구와 북반구의 위치가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지도는 거꾸로 되어 있는 게 아니며, 지구가 자전을 하고 공전을 하기 때문에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을 반영한 것일 뿐이다.

사실 학교라는 공간도 마찬가지다. 지역의 특성에 맞게끔 경사가 있으면 경사가 있는 대로 또 산림, 수풀이 많으면 수풀이 많은 대로 각 지역의 특성을 잘 포착해서 공간을 만든다면 훨씬 더 매력적인 장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아이들이 직접 ‘우리는 이런 교실, 이런 복도, 이런 운동장, 이런 놀이터가 좋겠어요.’라고 제안을 해서 만든다면 여태까지 우리 기성세대들이 인지하지 못했고 마주하지 못했던 새로운 공간이 바로 학교의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