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현장2019 봄호 (234호)

혐오 표현 안 쓰기 프로젝트

구본희 (관악중학교, 교사)

여혐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은 아직은 말랑해서 그런지, 아니면 내 앞에서 대놓고 그런 이야기를 못해서 그런지, 그다지 심각하다는 생각을 못하고 살았는데, 주변 선생님들 이야기를 들으니 상황이 자못 심각했다.

학교에서 함께 책을 읽는 독서 모임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한 선생님께서 ‘82년 생 김지영’을 읽고 있는 여학생에게 한 남학생이 그 책을 왜 읽냐고, 너 메갈이냐고 하는 소리를 복도를 지나가다 들으셨단다. 그 책을 읽어 보았냐고 선생님께서 물었더니 남학생 대답은 ‘왜 그 책을 읽어요.’였단다. 당장 그 자리에서 페미니즘 관련 책을 우리부터 읽어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몇 달에 걸쳐 여러 권 읽다 보니 수업 이야기로 이어졌다. 뒷반 국어 선생님과 ‘언어폭력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상대를 배려하며 말하는 태도를 지닌다.’라는 성취기준을 달성시키는 활동으로 혐오를 다루어 보자는 이야기를 하던 중 여름 방학이 되었다.
개학을 하고 뒷반 국어 선생님과 혐오 표현 수업 이야기를 하니 옆자리에 있는 선생님들께서 이 말 저 말을 보태셨다. 혐오 표현도 혐오 표현이지만 교무실에 앉아 있을 때 큰 소리로 *팔, *같아 좀 안 들었으면 좋겠어. 그런 거는 수업 안 해줘? 하긴 나도 귀를 씻고 싶은 생각이 가득했으니……. 그래? 그렇다면 비속어까지 함께 넣어보자. 어차피 성취 기준은 언어 폭력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말을 하면 되는 거니까.
모여 앉은 1학년 선생님들과 이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도중 갑자기 도덕에 인권 단원이 있다는 게 떠올랐다. 도덕 선생님, 2학기에 인권 단원 수업 어떻게 하실 계획이세요? 국어과랑 함께 해 보실래요? 그래서 도덕 시간에 혐오표현에 초점을 두고 인권 수업을 진행하면, 그것을 국어과가 이어 받아 ‘혐오 표현 안 쓰기’ 프로젝트를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도덕에는 ‘인간 존엄성과 인권, 양성평등이 보편적 가치임을 도덕적 맥락에서 이해하고, 타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통제하여 보편적 관점에서 모든 인간을 인권을 가진 존재로서 공감하고 배려 할 수 있다.’ 는 성취기준이 있다. 도덕 선생님은 수업을 6차시로 진행했다.
첫차시에는 인권의 개념에 대해 공부하고 그 다음 시간에 인권 카드를 만들어 보고 발표를 했다. 그 다음 차시는 먼저 혐오 표현에 대한 개념을 알기 위해 홍성수의 세바시 강연을 본 후

‘혐오 표현-현실을 마주하다’라는 수업을 진행했다. 내가 다른 연수에서 들은 내용을 말씀드렸더니 도덕 선생님께서 창조적으로 적용한 것이었다. 자원하는 학생이 한 명 앞쪽 의자에 앉고 카드를 하나 뽑는다. 앉은 학생이 확인할 수 없는 그 카드에는 노인, 취업준비생,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범죄자, 동성애자 등의 대상이 써 있다. 다른 학생들은 앉은 학생이 뽑은 대상에게 혐오 발언을 한 마디씩 한다. 그리고 나서 앉았던 학생은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자기가 어떤 카드를 뽑았는지 확인한다.

도덕 선생님이 전해 주신 이야기로는 의자에 앉아 이미 한바탕 혐오 표현 물벼락을 맞아 본 학생들이 자리로 돌아가 발언할 때 더 심한 혐오 표현을 쓴다고 했다. 선한 기운을 선순환시켜도 시원치 않을 우리 사회에서 안 좋은 것은 더 빨리 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디어에 혐오 표현이 많이 등장한다는 것에 착안하여 도덕 선생님은 혐오와 관련된 다양한 신문기사를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학생들은 모둠별로 어떻게 혐오표현이 드러나 있는지 살핀 후 발표를 했다. 도덕 인권 수업의 마지막은 혐오 표현을 대항 표현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이미 도덕 시간의 예고로 국어 시간에도 혐오 표현 관련 수업을 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융합 프로젝트의 제목은 ‘혐오 표현 안 쓰기’지만 국어 수업의 제목은 ‘전지적 나 참견시점’이다. 일정 기간동안 자신의 언어 생활을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수업 전 학생들에게 비속어의 뜻, 부정적인 말을 할 때 뇌의 상태에 대한 동영상을 몇 개 보여주고 다른 사람의 말 때문에 상처 받은 경험을 떠 올리게 했다.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항상 전체적인 흐름을 설명하고 목표를 잡는다. 학생들에게 2분 쓰기로 ‘혐오 표현 안 쓰기 프로젝트는 왜 할까? 하면 무엇이 좋을까? 하면 어떤 것이 달라질까?’라는 질문에 대해 글을 쓰게 한다. 2분 동안 열심히 쓰게 한 후, 3명 정도 발표시키면 프로젝트의 목적에 대해 좋은 이야기는 거의 다 나온다. 학생들은 나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이유들을 아주 훌륭한 학습지 인권 카드 만들기 말로 이야기 한다. 나는 감탄하며 칠판에 간단하게 요약한다.

그 다음 단계는 이 프로젝트에서 학생 각자가 ‘나의 목표’를 잡는 것이다. ‘전지적 나 참견시점’ 프로젝트에서 나의 목표는 무엇인지 2분 동안 쓴 후 발표를 한다. 학생들은 보고서를 잘 쓰겠다 자신의 언어 습관을 고쳐보겠다, 모둠 활동을 성실하게 하겠다, 등 다양한 목표를 잡기도 한다. 무엇이 되었든 자신이 목표를 한번 세워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 매 프로젝트 마다 이렇게 시작한다.

프로젝트 초반에 꼭 빼먹지 않고 하는 것은 ‘채점 기준표’(루브릭)를 함께 읽으며 자신의 상태를 예상하여 동그라미를 쳐 보는 일이다. 채점 기준표의 내용은 추상적인 언어이기 때문에 교사가 함께 읽으면서 설명을 한다. 채점 기준표는 3단계(잘함, 보통, 미흡) 척도로 되어 있는데 자신의 예상치에 동그라미 표를 한 후 보통이나 미흡을 받을 것 같은 항목을 적고 그렇게 예상한 이유를 두 줄 정도 적어 보게 한다. 학생들은 앉은 자리에서 모둠을 만들어 차례로 자신이 보통이나 미흡을 받을 것 같은 항목을 이야기한 후, 다른 친구들의 조언을 듣는다. 실제 도움을 준다기 보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 봄으로써 프로젝트의 목표와 평가 기준에 대한 이해를 분명하게 하고 자신의 상황을 메타인지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 매번 이렇게 진행한다.

오 년 전부터 수업 전에 학생들에게 10분 동안 책을 읽힌다. 학생들에게 독서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수업 시간의 10분을 할애해서 책을 읽힌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읽고 싶은 책을 읽히며 10분 독서에 적응하게 하고, 익숙해지면 8분쯤 읽고 짝끼리, 혹은 앞뒤 사람들과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것도 익숙해지면 수업과 관련된 내용으로 10분 독서를 옮겨 간다. 성취 기준과 관련지어 읽는 것이다. 예측을 하거나 내용을 요약하며 읽기도 하고, 시집을 읽으며 비유와 상징이 드러난 부분을 찾기도 한다

‘전지적 나 참견 시점 – 혐오 표현 안 쓰기’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에 10분 독서 활동으로 학생들에게 혐오 표현과 관련된 책들을 읽혔다. 책을 네 수준으로 미리 제시하고 학생들에게 소개했다. 홍성수의 ‘말이 칼이 될 때’는 최상 수준이다. 그 다음 상 수준은 ‘그건 혐오예요’ 이고 두 가지 수준의 책을 5권 정도 준비해 두었다. 학생들이 읽기에 알맞다고 생각한 ‘말이 세상을 아프게 한다’는 중 수준으로 10권을 준비했다. 읽기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위해 ‘세상을 아프게 하는 말, 이렇게 바꿔요’를 5권 정도 준비했다. 학생들은 내용을 요약하고 보고서에 쓸 내용을 인용하며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10분씩 꾸준히 책을 읽었다. 한 학기 한권 읽기와 관련하여 진행했다. 이미 다 읽은 학생들을 위해 여성, 장애, 이주노동자 등을 주제로 다양gks 책을 두 상자 준비하여 읽게 했다. 많이 읽은 학생은 3권 정도 관련 책을 읽었고 모두 한 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

다음 활동으로 자신의 언어 생활을 녹음하며 채집하게 했다. 학교 내에서는 핸드폰 사용 금지 규정이 있어 주로 하굣길이나 학원 쉬는 시간을 이용하라고 학생들에게 말했다. 녹음을 하는 동안 한글날과 관련한 수업과 품사 등을 배우는 ‘우리 말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학생들은 매일 언어 생활 체크리스트를 통해 자신의 언어 생활을 반성했다. 국어과에서 자신의 언어 생활을 점검하며 녹음을 하는 동안 수업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사회 선생님께 문의를 드렸더니 사회 시간에 문화 수업을 해야 하는데 이를 혐오 표현과 연결짓겠다고 하셨다. ‘대중매체와 대중문화의 의미와 특징을 이해하고, 대중문화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태도를 가진다.’라는 성취 기준을 혐오 표현을 중심으로 진행하신다는 거였다.

사회과 수업 계획은 다음과 같다.

먼저 관련 단원의 내용을 요약하며 정리한 후에 모둠을 나누고 예능과 드라마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정했다. 프로그램을 보면서 혐오 표현이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논의를 통해 정리한 후 이를 발표했다. 혐오 표현과 관련된 책을 읽고 자신의 언어 생활을 녹음하고, 또 매일 체크리스트를 진행하면서 또 다른 수업인 ‘우리말 프로젝트’가 끝났다. 다시 본격적으로 ‘전지적 나 참견 시점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애초 계획은 모둠별로 하는 것이었는데 자신의 언어 생활을 내밀하게 들여보고 성찰하기 위해 개인별로 진행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하여 개인별 보고서로 결과물의 내용을 바꾸었다. 컴퓨터실에 가서 읽었던 책의 내용과 자신이 녹음한 자료를 바탕으로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를 작성할 때 학생들이 편집 형식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도록 양식을 누리집에 올려 놓았다. 학생들은 자신의 이야기로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이때 과제로 내주기보다 수업 시간에 쓰는 시간을 주어야 성취도가 낮은 학생도 따라올 수 있고 교사가 피드백을 해주기 용이하다. 또한 보고서 쓰는 요령을 세세하게 안내해야 중간 이하의 학생들이 보고서를 보다 쉽게 쓸 수 있다.

학생들마다 속도의 차이가 나기 때문에 모든 학생들이 보고서를 다 쓸 때까지 수업을 진행할 수는 없다. 속도가 느린 학생들을 위해 점심 시간이나 방과 후에 컴퓨터실을 열어 놓고 계속 기회를 준다. 전체 학생들이 보고서를 다 올리면 2쪽씩 모아찍기로 설정하여 인쇄한다. 학생들은 인쇄한 보고서를 돌려 읽으며 친구들의 결과물에 빨간펜 선생님 노릇을 한다. 개인 보고서의 경우 7~8명 정도가 볼 수 있도록 돌리는데 전체 구성이나 어법, 맞춤법 등은 이 과정에서 꼼꼼하게 수정된다. 자기한테 돌아오지 않아 할일 없을 것을 대비하여 읽을 책 한 권씩을 책상 위에 올려 두도록 하면 느리게 검토하는 학생이 있어도 괜찮다. 그 동안 교사는 한 명씩 불러내어 구조를 비롯하여 큼직한 것만 고치도록 짚어 준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것을 받은 후, 친구들의 지적 사항을 고쳐 다시 올리는 것은 숙제로 해 오도록 한다. 다음 차시는 처음에 보았던 채점 기준표를 다시 점검한다.
처음에는 예상치를 표시했지만 과제가 끝난 후에는 자신이 직접 했던 수행의 결과를 토대로 채점 기준표를 다시 작성해 본다. 수업 시작하기 전 예상과 달라진 것, 그리고 그 이유를 적고 보통이나 미흡을 받은 항목을 적어 본 후 모둠 친구들과 잘함으로 향상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의논해 보도록 한다.

이후는 자기 평가의 단계이다. 처음에 자신이 세웠던 목표에 비추어 자기 자신이 수행했던 일을 되돌아 본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주고 관련하여 자신을 성찰하게 한다.

처음에 세웠던 목표를 얼마나 달성하였는가? 잘 되었다면 혹은 잘 되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수업을 통해 무엇을 알게 되었는가? 더 궁금한 점은 무엇인가? 궁금증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배움을 발전시키기 위해 자신이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프로젝트에서 자신이 잘한 점이나 부족한 점은 무엇인가?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재미있었던 점이나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프로젝트를 수행한 후 앞으로 다르게 해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어떤 능력과 지식이 향상되었는가?
이번 프로젝트는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마지막 단계는 이 프로젝트를 기록하는 것이다. 다음은 한 학생의 생활기록부 교과세부능력 및 특기 사항(자유학년제에서는 이것이 곧 성적표의 내용이다)에 교과별로 기록한 내용이다.

(2학기)국어(자유학기) :
언어 폭력의 문제점을 다각도에서 정확히 인식하고 자신의 언어 생활을 심도 있게 성찰하였으며, 순화가 필요한 부분을 찾아 매우 적절하게 수정함.

(2학기)사회(자유학기) :
대중 문화를 비평하는 프로젝트에서 ‘뷰티 인사이드’ 프로그램을 맡아 분석하였고, 그 내용을 친구들에게 잘 발표하였음.

(2학기)도덕(자유학기) :
혐오 표현 줄이기 프로젝트를 통해 혐오 의식을 근절하는 성숙한 대항표현을 만들어 냄.

학년이 끝나가는 시점인데 복도에서는 이제 큰 목소리로 씨이라든가 새라고 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친구에게 안 좋은 이야기를 했다가도 금세 스스로 입을 막거나 옆 친구의 지청구에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다. 이러한 모습이 얼마나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 1학년 수준에서 이만하면 괜찮다며 스스로 위로해 본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주체적이고 비판적으로 미디어를 접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혐오의 문제를 사회의 문제와 관련지어 고민하는 자세를 기른다면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민주시민은 이렇게 조금씩 더디게 더디게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