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현장2019 봄호 (234호)

3월의 어느날,
특수교사 강 선생님의 하루 일기

강민주 (중화중학교, 교사)

학교란,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교육공동체를 이루는 공간이다.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꿈과 끼를 길러주기 위하여 여러 방면의 전문가들이 교육에 힘을 쓰고 있다.
다양성과 창의성을 강조하는 서울교육의 방향에 따라 학교형태 및 교사 구성원도 매우 다양해지고 있다. 다양한 주체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만큼, 서로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협력의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금은 생소할 수도 있고 다소 특별해 보일 수 있는 학교구석의 이모저모를 접하다 보면, 우리 서울교육공동체가 소통·공감·나눔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1. 나에게 기다림이란…

아침 8시 30분, 특수학급 교실에서 학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교실 조회 시간은 8시 40분이지만, 조회 들어가기 전에 특수학급 교실에 들려 선생님과 인사하자고 약속해두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하나 둘 교실에 들어온다. 2학년, 3학년 아이들은 익숙한 듯 왁자지껄 떠들고 지나갔다. 신입생 1학년 아이들은 아직 교실이 낯선 듯 쭈뼛거린다. 특수교육대상 아이들에게 새 학년 교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키고 보낸 다음, 특수학급 교실로 돌아간다. 그런데 그 때, 대인기피증이 심하다는 신입생 A가 복도 끝에 서성거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 이제 8시 40분, 얼른 교실에 들어가야 할 텐데! A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보지만 아직 교사인 나도 낯선지 내 얼굴을 보려 하지 않는다. 특수학급 교실에도 들어가지 않고, 원반 교실에도 들어가지 않는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복도에서 맴도는 A를 보고 있자니 내 마음이 조급해진다.

“A야, 선생님 말 좀 들어볼래? 이제 곧 수업 시작할 텐데, 복도에 계속 서있으면 안 돼. 수업시간은 꼭 지켜야 하는 약속이야. 응?”
규칙을 들먹이며 설득도 해보고, 달래도 보고, 회유도 해보았으나 A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시간은 속수무책으로 지나 어느 덧 1교시 중반, A의 원반 교실에서는 사회 수업이 한창일 것이다. 일단 교실로 가서 사회 선생님께 상황을 설명한다. 춥고 정신없는 복도에 하염없이 서 있는 A, 시간이 갈수록 내 인내심도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이라도 해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올때쯤 A와 눈이 살짝 마주쳤다. ‘아 저 눈빛! 그래, 이 아이는 지금 이 학교가 처음이었지!’ 6년 동안 다닌 익숙한 초등학교를 떠나 처음 교복을 입고, 낯선 학교와 낯선 사람들을 한꺼번에 맞닥뜨린 이 상황이 A에게는 너무나 부담일 것이다. 교사인 나조차도 이 학교에 처음 방문을 왔을 때 얼마나 긴장했었던가! A는 정서적 어려움을 지닌 특수교육대상 학생이다. 사회공포증 때문에 자신의 의사 표현에도 어려움을 겪는 아이다. 이런 A에게 새 학교, 새 학기 3월은 두렵기만 할 것이다.

나는 조급해진 마음부터 가라앉힌다. ‘A는 여기가 처음이다, 나는 A를 기다려주어야 한다, A가 나를 믿을 수 있게 해야 한다.’를 생각하며 A에게 천천히 해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두어시간 뒤 A는 특수학급 교실에 들어왔다. 쉬는 시간에 다른 학생들이 나와 대화하는 것을 곁눈질로 지켜보며 상황을 파악 중인 것만 같았다. 기다림! 기다리는 것은 특수교사의 숙명, 동시에 반드시 지켜야 할 마음가짐인 것을 오늘 내가 정신이 없어서 잊어 버린것이다. 오늘 A는 자신의 원반 교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아마 내일도 들어가지 않을 수 있겠지?
그러나 이렇게 하루, 이틀, 차츰 A가 이 공간에 익숙해지면 교실도 들어가고 수업도 듣게되겠지. A야, 선생님은 네가 얼른 마음을 활짝 열어주기를 여기서 기다릴게!

2. 학교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어느덧 오전 11시, 3교시 수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나는 복도를 돌아다니며 각 교실에서 특수교육 대상 아이들이 수업을 잘 듣고 있는지 확인한다. 마침 이동수업 중 교실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아이를 복도에서 마주친다. 아이를 데리고 시간표와 수업 장소를 확인하여 데리고 간다. 쉬는 시간, 특수학급 교실에 들른 2, 3학년 아이들에게 시간표와 준비물을 확인시키고 신입생 1학년 아이들에게는 내가 직접 교실로 찾아간다. 1학년 학생들이 교실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있는지, 시간표대로 교과서를 챙겨 왔는지, 긴장한 나머지 컨디션이 나빠지지는 않았는지, 대 여섯 개 교실을 왔다 갔다 하느라 정신이 없다, 휴!

오전은 특수학급 학생들을 지도하느라 시간이 훌쩍 흘렀고, 이제부터는 공문 작업을 해야겠다 생각하는 순간 점심시간 종이 울린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다니! 특수교육 대상 아이들이 점심시간 맞춰서 급식실에 잘 가는지, 자리는 잘 찾아 앉는지 급식실에 들러 확인해본다. 급식을 다 먹고 온 아이들은 특수반 교실에서 양치질을 하도록 지도한다.

점심시간이 끝나 아이들을 교실로 올려보내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아이들의 원반 시간표를 모두 가져다 놓고 시간을 체크하면서 특수학급 시간제 시간표를 짠다. 특수교육대상 학생이 10명 이상이면 10개의 시간표를 늘어놓고 한참을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학생별로, 반 별로, 과목별로 최대한 적합하게 시간표를 만들어야 하니 여러 가지 변수가 많아진다.

컴퓨터 앞에서 시간표와 특수학급 운영 계획서, 특수학급 방과후 계획서 등을 작업하다가 7교시가 되었다. 7교시는 특수학급 학생 B가 있는 1반에서 장애이해수업을 해야 한다. 새로운 반이 꾸려졌으니 그 반 아이들에게 우리 학교에 특수학급이 있고, 어떠한 일들을 하며, B와 같은 반 친구로서 일 년 동안 조심해야 할 점과 부탁하고 싶은 말들을 해주어야 한다.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최대한 재밌게 해보려고 어제 늦게까지 PPT를 만들었는데 아이들이 재미있어하면 좋겠다. 떨리는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섰고 다행히 아이들은 처음 보는 선생님인 나를 반겨준다. 간단한 장애 상식 퀴즈를 맞춘 아이들에게는 사탕 선물을 주니 더욱 좋아하는 눈치다. B의 또래지원도우미 모집 홍보를 끝으로 수업을 마쳤다.

한 해 동안 B가 이 반에서 원만하게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 오늘은 1반 수업 끝냈고, 내일은 3반, 5반, 6반 수업이다. 얼른 가서 PPT를 조금 더 손봐야겠다.

3. 3월은 마치 집을 짓는 시기와도 같다

금방 출근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오늘 하루 일과도 끝이 났다. 예상치 못한 학생 A의 행동으로 오늘 계획한 것을 다 하지는 못했다. 교직원 대상 장애이해 연수도 준비해야 하고, 각 반의 담임 선생님들을 찾아가 특수학급 아이들에 대해 면담도 해야 한다. 내일은 학부모님 상담 일정이 잡혀있다. 특수교육대상 학생의 개별화 교육 계획을 세우기 위해 학부모님과 상세하게 면담을 하게 될 것이다. 아, 맞다. 특수학급 방과후 외부강사님께도 연락 드려야 하는데……. 내일은 꼭 잊지 말고 체크해야겠다.

3월은 아이들도, 교사인 나도 긴장하게 되는 시기인 것 같다. 신입생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을 만나게 되는 날이니까 더욱 신경이 곤두서는 거겠지. 그리고 특수학급과 관련한 교육계획 프로그램들을 3월에 결정하고 관련 회의까지 참석해야 해서 더 바쁘게 느껴진다. 마치 일 년 사용할 집을 3월에 뚝딱뚝딱 만드는 것 같다. 기초 공사를 튼튼히 해야 오래 잘 쓰는 것처럼 꼼꼼하게 잘 계획을 세워 보아야겠다. 어느새 퇴근 시간이 넘었다. 우리 학교의 특수학급 학생들이 올 한해 건강하게, 또 즐겁게 학교를 다니기를 바라며 교실을 정리하고 문을 나선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