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교육2023 봄호(250호)

A.I. 기반 프로그램 활용
영어 말하기 수업

고정은(양천중학교, 교사)

영어 말하기 수업에서 시작한 고민

수업 준비는 늘 정성과 고민을 동반한다. 특히 영어 말하기 수업은 학생들이 즐겁게 활동에 참여해 수업에 만족하더라도, 과연 영어 말하기 학습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곤 한다. 교과서 단원의 의사소통 기능에 따른 다양한 활동 자료를 찾아보고 적절한 개별 활동, 짝 활동, 모둠 활동 등을 통해 모든 학생들이 충분한 발화 연습 기회를 갖도록 노력했지만, 과연 학생들의 말하기 학습이 효과적으로 이뤄진 건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많았다. 게다가 학급의 모든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발화하고 있는지 혹은 충분히 발화 연습에 참여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도 쉽지 않았다. 의사소통 기능 숙달을 위해 필요한 기계적 반복 연습은 학생들을 쉽게 지루하게 만들었고, 교실 말하기 수업 중 개별 학생들에 대한 교사의 피드백도 쉽지 않았다. 더구나 다인수 학급에서 영어 수업 시간 중 학생 개개인에게 부여되는 발화 기회는 유창한 영어 말하기를 위한 연습 시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학생들이 영어 수업 시간 내외에서 밀도 있게 말하기를 연습하고, 적절한 개별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다.

세상은 인공지능, 인공지능, 인공지능···

클라우스 슈밥(Klaus Shcwab)이 세계경제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을 키워드로 소개한 이후, 기계학습과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한 산업의 변화는 생활 속 다양한 분야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우리는 매일 알고리즘이 제안하는 콘텐츠를 접하며, IoT 기술이 적용된 다양한 가전제품을 사용하고, 자율주행 자동차가 현실이 되어가는 세상에 살고 있다. 여기에 2020년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이 이어지며, 재택근무와 화상회의가 일상화되고 언택트를 넘어 온택트가 사회 각 분야에 나타나 교육환경에도 큰 변화를 맞게 되었다. 학교는 원격수업을 통해 교육환경의 디지털화라는 변화를 맞이하였으며, 교사와 학생 모두 다양한 프로그램과 디지털 도구를 접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인공지능 교육 도입, 교육대학원의 AI 융합 교육 전공 신설과 현직 교사 선발, 서울특별시교육청의 AI 기반 융합 교육 및 맞춤형 교육 정책, 인공지능 프로그램 개발사와의 MOU 체결 등 교육 현장에서도 적극적인 시도와 활용 방안의 모색이 필요한 시점으로 느껴졌다.

교실 속 인공지능 기술은?

2022학년도부터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디벗을 활용한 수업이 시작되고, 팬데믹으로 시작된 디지털 도구의 교육적 활용으로 교실 내 디지털 도구 사용의 접근성은 좋아졌지만, 교실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반 프로그램과 학습 도구는 여전히 제한적이었다. 특히 영어 말하기 학습 도구로 개발되고 있는 많은 애플리케이션이 유아나 성인을 대상으로 한 사교육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어, 중학교 영어 교육과정을 반영한 콘텐츠나 프로그램의 개발은 아직 미미하거나 교실 수업에서 그대로 활용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었다. 또한, 인공지능 기반 프로그램 관련 현장 연구들을 살펴보니, 교육용 혹은 상업용으로 개발된 챗봇이나 대화형 인공지능 스피커, 기계번역, 문법 검수 도구 등으로 국한되어 연구되었으며, 인공지능 기반 프로그램 활용 연구의 대부분이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거나 일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여 중·고등학교의 영어 교육과정을 반영한 연구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중학교 교육과정을 반영하여 정규 수업 중에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영어 말하기 수업에는 어떤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방법을 찾아보고 싶었다.

인공지능 배경지식 쌓기

인공지능 기반 프로그램을 사용하려면, 먼저 인공지능 기술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것 같았다. 무작정 ‘인공지능’이 들어간 여러 연수를 신청했는데, 인공지능 기술의 역사와 원리부터 접근가능한 다양한 인공지능 기반 프로그램에 관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관심사를 가진 선생님들과 교원학습공동체 속에서 다양한 인공지능 기반 프로그램을 탐색하며 영어 수업에 활용할 방법을 찾아 보았다.

인공지능에 대한 사전지식은 학생들에게도 필요했기 때문에, 교육과정과 성취기준을 분석하고 계획하는 단계에서 기술·가정 교과 선생님과 함께 인공지능 융합 수업을 구상하였다. 이에 따라, 영어 교과서의 관련 단원을 기술·가정 교과의 인공지능 개념 및 윤리 수업에 연이어 학습할 수 있도록 영어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였다.

인공지능 기반 프로그램을 영어 수업에 도입하기에 앞서 교과 융합 수업을 진행하여 인공지능 개념을 이해하고 올바른 기술 사용에 대한 토론의 기회를 제공한 것은, 이후 영어 수업 시간에 도입된 다양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와 활용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인공지능 프로그램 탐색하기

영어 교육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고 선구적으로 활용되는 것은 챗봇과 인공지능 스피커였는데, 교과서 기반의 중학교 영어 수업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작된 것은 없었다. 챗봇은 주로 초등학교에서 많이 활용되고 연구되었는데, 교육과정이 반영된 것은 ‘AI 펭톡’ 정도이고 그 외는 교사가 ‘단비’ 같은 챗봇 빌더를 익혀 교육과정에 맞게 제작해야 했다.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는 인공지능 스피커는 교육용으로 개발된 것이 아니다 보니, 학생들이 영어로 의사소통을 시도할 때 영어 수준 차이로 인해 대화가 이어지지 않아 교육과정을 반영한 통제된 교육 도구로는 한계가 있었다.

학생들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쉽게 사용할 수 있고, 영어 수업에 활용하기 적절한 프로그램의 선택을 위해 다양한 인공지능 기반 프로그램을 탐색하고 분석하였다. 그 결과, [표 2]와 같이 주활용 프로그램과 보조 프로그램들을 정할 수 있었다. 주요 프로그램으로 정한 ‘스피킹 클래스’는 중학교 영어 교육과정과 교과서 내용을 반영하여 학습 자료를 손쉽게 제작할 수 있고, 교사용 인터페이스를 제공하여 학생들의 학습 결과를 파악, 피드백을 제공할 수 있는 장점이 두드러졌다. 그 밖의 수업 내용과 활동 범위에 따라 기계번역기, Language Tool, STT 기반 프로그램과 TTS 기반 프로그램을 보조적으로 활용하였다.

인공지능 기반 프로그램을 적용한 영어 말하기 수업 모형 개발

‘스피킹 클래스’가 학생들의 집중적인 말하기 반복 연습에 용이한 점을 활용하여 세 가지의 영어 말하기 수업 모형으로 적용해보았다. 첫 번째는 Speaking Practice for the Interaction 수업 모형으로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준비로써 반복 말하기 연습에 스피킹 클래스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두 번째는 Speaking Practice for the Internalization 수업 모형으로 문법 등의 개념 수업 후 학습한 문형을 내재화하기 위해 학생들이 만든 의미있는 문장으로 스피킹 클래스를 활용하는 수업이다. 세 번째는 읽기-말하기-쓰기를 연계한 Speaking Practice for the Integration 수업 모형으로 교과서 단원의 주제에 관해 지문을 읽고 생각을 정리해 글로 쓰기 전에 말하기 수업을 배치함으로써 읽기 지문에 대한 이해와 정리를 돕고, 학생들의 수월한 글쓰기 활동을 도울 수 있는 방식이다.

 Speaking Practice for the Interaction 수업의 흐름

수업의 흐름은 [표 3]과 같이 목표 의사소통 기능을 소개하고(Present), 연습하고(Practice), 발화하도록(Produce) 설계하는 일반적인 형식을 따른다.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활용은 많은 언어학습에서 쉽게 지루해지고 학습 흥미를 반감시키는 기계적인 반복 연습을 위하여 비교적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학생들이 의미 중심으로 표현을 확장하여 사용해보는 연습을 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의사소통 활동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학습 표현을 내재화하여 말하기 성취기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스피킹 클래스 활용을 위해서는 수업 전에 학생들이 반복 연습할 학습 자료를 교사용 웹페이지에서 제작해야 하는데, <그림 1>과 같이 엑셀 파일로 손쉽게 만들 수 있다. 학생들은 애플리케이션을 열어 <그림 2>와 같이 음성안내에 따라 영어 말하기를 반복 연습하고, 연습을 마치면 별점과 자신의 말하기 녹음을 들으며 확인할 수 있다.

실제 수업 사례는 아래 [표 4]와 같다.

학생들은 <그림 3>과 같이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여 목표 표현을 반복 연습한 후, <그림 4>와 같이 간단한 퀴즈로 상호작용하며 자연스럽게 목표 표현을 말하였다. 이후 모둠별로 멘티미터에 의견을 묻는 질문을 올리고, <그림 5>와 같이 학급 전체가 실시간으로 답을 달아 가장 많은 의견을 학급 의견으로 정하여 말하였다.

인공지능 기반 프로그램을 활용한 영어 말하기 수업의 장점과 유의점

2년간 중학교 2, 3학년 학생들과 함께 인공지능 기반 프로그램을 활용한 영어 말하기 수업을 해 본 결과, 영어 학습에 대한 관심과 태도, 인공지능 프로그램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학생들은 프로그램을 사용하면서 짧은 시간 동안 집중적이고 반복적인 영어 말하기 연습을 하였고, 명확한 음성인식을 위해 발화 횟수가 자연스럽게 증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학생의 수준과 발화 속도에 맞춰 말하기 연습을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였으며,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하기 힘들어하는 내성적인 학생도 자신의 발음에 집중한 말하기 연습이 가능했다. 학생들은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발화 녹음을 확인하며 발화 연습을 충분히 하게 되어 영어 말하기에 대한 자신감이 높아지는 것을 인지하는 효과도 있었다.

다만 영어 말하기 수업에서 음성인식 기반 프로그램은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목표 표현을 반복 연습하는 데 활용하기를 추천한다. 음성인식 기반의 프로그램을 활용하다 보면 발음의 정확성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오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영어 말하기 수업에서는 발음의 정확성보다는 상호작용을 통한 의사소통 연습이 더 중요함을 잊지 않도록 주의한다.

인공지능 기반 프로그램을 활용한 영어 수업을 위한 제언

지금까지의 인공지능 활용 교육이 범용 프로그램을 학교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면, 이제는 빠르게 발전하는 인공지능 기술을 바탕으로 현장의 요구와 여건을 반영하면서도 실현가능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적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 현장의 교사와 교육청, 인공지능 기반 프로그램 개발사가 지속적으로 협의하며 공동 연구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testbed)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기술의 사용에 매몰되지 않는 효율적인 인공지능 기술 활용을 위해 영어 교사의 지속적인 경험 공유 및 연구하는 풍토 속에서 수업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 많은 인공지능 기반 프로그램들이 학생의 개별화 맞춤형 학습이나 교사의 깊이 있는 교육활동을 위한 보조 교사로서의 역할을 하리라는 이상이 실현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공지능 기술을 위한 데이터의 속성을 이해하고 인공지능 윤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교육 현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많은 에듀테크 기술과 인공지능 기술의 프로그램이 교육 현장에서 무료 혹은 유료로 활용되면서 다양한 데이터들이 모이고 있다. 특히 영어 말하기 학습을 위한 프로그램들은 학생들의 영어 발화 데이터를 모아 우리나라 학생들의 영어 발음과 억양 특징을 분석하는 빅데이터로 활용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데이터들이 교육적 목적 이외의 용도로 활용되거나 학생들의 동의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쓰이지 않도록 제도적인 장치와 함께 교사와 학생, 개발사들을 위한 인공지능 윤리 교육과 인식 확산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