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복 (중동고등학교, 교사)
“읽기를 버거워하는 ‘미운 오리 새끼’를 도울 방법은 없을까?”
에디슨은 어린 시절 글을 잘 읽지 못했다. 그래서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난독증이 심했다. 그는 뛰어난 화가에게는 옆에서 글을 읽어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푸념하곤 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역시 글 읽기를 힘들어했다. 그는 세 살이 될 때까지 거의 말을 못 했다고 한다. 단어를 끊임없이 떠올리며 말을 이어야 하는 외국어 공부에서 그는 전부 낙제했다. 『프루스트와 오징어』에 등장하는, 난독증이 있던 천재들의 사례 중 ‘일부’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마음이 복잡했다. 우리 교실에는 단지 책 읽기가 느리다는 이유로 열등생 취급받는 천재들이 과연 없을까? 백조가 될 가능성을 품은 아이들이 ‘미운 오리 새끼’처럼 천덕꾸러기 신세에 있다면 큰일 아닌가? 실제로 학교에서는 공부만 못할 뿐, 다양한 분야에서 놀라운 능력을 지닌 아이들이 넘쳐난다. 체육대회나 학교 축제를 빛내는 친구들이 어떤 부류인지 떠올려 보라.
안타깝게도, 이 학생들이 자신의 꿈과 끼를 제대로 펼치기란 쉽지 않다. 학교 교육과정은 ‘마태 효과’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탓이다. 이는 처음 잘했던 학생이 갈수록 유리해지고, 출발점에서 더뎠던 아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해지는 모습을 일컫는 말이다. 뒤처지는 아이들의 학업 결손 누적은 갈수록 커져 가지 않던가. 그렇다면 읽기를 버거워하는 학생들을 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프루스트와 오징어』는 이 물음에 답을 준다.
“읽기는 인간 정신을 만드는 활동이다.”
“우리 뇌는 책을 읽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책의 내용을 한 마디로 압축해 주는 말이다. 인간의 유전자에는 ‘독서’를 담당하는 부분이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시각, 운동, 상상, 판단을 담당하는 뇌의 여러 영역을 끌어모아 서로 연결해야 한다. 테니스나 피아노를 익히는 일은 무척 버겁다. 의식적으로 여러 근육이 필요한 동작을 기억해야 할 뿐더러, 그것도 움직임이 몸에 밸 만큼 수없이 거듭해야 하기 때문이다. 글자를 읽고 이해하는 기술 역시 그러하다.
인류 문화가 알파벳 문자를 만드는 때까지는 약 2,000년의 세월이 걸렸다. 아이들이 글자를 익히는 데까지는 대략 2,000일 정도(만 6~7세에 이르는 나이)가 걸린다고 한다.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거듭한다.’ 는 생물학의 설명은 읽고 쓰기를 배우는 과정에도 그대로 통할 듯싶다. 인류가 활자를 발명해서 쓰고 익히며 두뇌를 길들였던 과정을, 우리는 글자를 수없이 읽고 쓰는 가운데 따라간다. 그러면서 자신의 뇌를 조금씩 변화시킨다.
지은이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구조를 스스로 바꾸어 가는 ‘오픈 아키텍처(open architecture)’로 되어 있다. 제목 『프루스트와 오징어(Proust and Squid)』는 글을 익히는 두뇌의 두 측면을 콕 짚어준다.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언어가 지닌 위대함을 상징한다. 그는 책 읽기를 “편안한 안락의자에서 벗어나지 않고도 독서하는 사람이 스스로를 지적으로 변화시키는” 활동으로 본다. 반면, 오징어는 1950년대 이후 과학자들 사이에서 뉴런이 어떻게 발화하고 서로 연결되는지를 연구할 때 주로 쓰이곤 했다. 오징어는 독서에 필요한 복잡한 뇌 활동도 결국 뉴런들을 어떻게 연결 짓고, 이 결합을 튼튼하게 하는지에 달려 있음을 나타내는 은유다.
우리는 책을 읽으며 말 그대로 정신을 만들어 간다. 흔히, 우리는 ‘배운 사람이라 다르다.’라고 말하곤 한다. 배운 사람은 당연히 활자를 많이 읽고 쓴다. 짐승은 본능과 감정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반면, 배운 사람은 자기의 느낌과 생각이 제대로인지를 가늠하며 자신을 다듬는다. 그러면서 감정과 행동 사이에 간격을 벌린다. 즉, 반성과 성찰을 할 줄 안다는 뜻이다. 글자를 읽는 것, 나아가 내용을 이해하며 마침내 판단을 통해 자기 생각을 키우는 독서는 이렇듯 뇌를 바꾸어 가며 인간의 정신과 영혼을 만들어 가는 행위이기도 하다.
“디벗 사업, 독서 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다.”
책을 따라가다 보면, 읽기를 버거워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계속 샘솟을 터이다. 지은이는 우리가 글자와 내용을 이해할 때 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미세한 시간 단위로 나누어 알려 준다. 치료가 제대로 되려면 증상의 원인부터 제대로 짚어내야 한다. 읽기에서 뒤처지는 아이가 활자의 모양을 알아채는 단계에서 문제가 있는지, 새롭게 눈에 들어온 낱말을 기억과 연결시키는 과정에서 버벅대는지 등등을 세세하게 진단해 낸다면, 독서에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가 분명해진다. 나아가, 이 책은 현재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추진하고 있는 디벗 사업에도 혜안을 준다.
“너, 책 읽을 때 글자들이 책장에서 둥둥 떠다니지? 그건 네 마음이 고대 그리스와 회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야.” 퍼시와 함께 여름 캠프에 온 회색 눈의 애너베스가 이렇게 설명한다. “그리고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때문이다. 너는 성격이 충동적이라서 교실에서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잖아. 그게 다 전투사 본능 때문이야. 여기가 진짜 전쟁터라면 그것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을 거야. 주의력 문제는 말이지, 보이는 게 너무 많아서 그런 거야. 퍼시. 보지 않아서가 아니란 말이야. 너는 평범한 인간들보다 훨씬 훌륭한 감각을 가졌거든. 명심해. 너는 반쪽짜리 신이야.”1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교실에는 책 읽기에서‘만’ 뒤처진 수많은 에디슨,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들이 있다. 디벗은 이 아이들에게 희망이 될 수있다. 디지털 매체는 활자뿐 아니라 입말로 하는 설명과 대화, 몸으로 표현하기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펼치게 하기 때문이다. 배움의 활동이 읽고 쓰기를 넘어 말하고 그리고 움직이며 표현하는 데까지 나아간다면, 우리 교육은 아이들의 가능성을 한껏 크게 틔워줄 것이다.
또한, 『프루스트와 오징어』는 독서 교육의 중요성 또한 거듭해서 일러준다. 인간의 뇌는 읽기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독서를 통해 두뇌를 인간다운 뇌로 만들어간다. 독서는 영혼과 도덕성, 인격을 만드는 행위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내년부터 수학, 영어, 정보 과목을 시작으로 디지털 교과서가 도입된다. 디벗 사업도 이제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고 있다. 『프루스트와 오징어』는 이런 역사적인 변화 앞에 선 선생님들에게 큰 혜안을 안겨준다. 시간을 내서 꼭 읽어 보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