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마당2020 여름호 (239호)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던져야 할 질문

윤상혁 (서울특별시교육청정책안전기획관, 장학사)

브라운 백 미팅과 뉴 노멀

작년 파견 나갔던 한 기관에서 ‘브라운 백 미팅’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이 단어의 의미는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이 갈색 봉투에 담긴 간편한 음식과 함께 어떤 겉치레도 없이 가볍게 회의에 참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점심시간까지 브라운 백 속의 약간은 눅눅해진 음식을 먹으며 누군가의 일장연설을 듣는 것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더군다나 소위 간부들이 참석하는 회의에 브라운 백이 등장하는 것은 시기상조가 아닐까 싶다.
결국 브라운 백 미팅이라는 것은 점심시간을 활용하여 따뜻한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으며 개인 또는 조직의 역량을 쌓는 일종의 전문적 학습공동체를 칭하는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래서 나는 묻게 된다. ‘굳이 브라운 백 미팅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있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뉴 노멀’이라는 말이 덩달아 유행을 하고 있다. ‘새로운 표준’을 의미하는 뉴 노멀의 의도는 이해할 수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온라인 개학,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논의 등 코로나-19로 인해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현실이 되고 있다. 아마 과거의 사회적 계약 중 상당 부분이 수정되거나 폐기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속을 채우는 내용이지 단어가 아니다. 아무리 브라운 백 미팅을 열고 뉴 노멀을 선언한다 한들 현실의 구조가 강고하고 구성원들에게 변화의 열망이 없다면 전환의 동력은 눈 녹듯이 사라질 것이다. 실천이 병행되지 않는 언어는 (뭔가 있어 보이는)외래어의 아우라가 사라지는 순간 힘을 잃기 마련이다. 말의 사용에 있어 항상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낡은 기준의 철폐가 선행되어야 한다

지난 4월 20일 전대미문의 온라인 개학이 초·중· 고 모든 학교에서 시작되었다. 학교는 학교대로, 가정은 가정대로 황망함 속에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대한민국에서나 가능한 기적이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많다. 특히, 10년을 넘어선 혁신교육의 성과를 언급하고 싶다. 배움의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수업 나눔의 문화와 전문적 학습공동체가 없었다면 학교가 이 정도로 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온라인 개학과 함께 교육 분야에서도 뉴 노멀이 논의되고 있다. 이른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교육’이다. 일찍이 피터 센게는 <학습하는 학교>에서 산업 시대의 표준을 기반으로 한 학교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다섯 가지로 제시한 바 있다. 첫째, 지식의 변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둘째, 세계는 점점 상호의존적이 되고 있다. 셋째,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의 불확실성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넷째, 기술의 변화가 학교를 압박하고 있다. 다섯째, 교육의 질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학습’에 대한 산업 시대의 표준을 넘어서야 한다. 첫째, 아동에 대한 결핍 관점을 폐기해야 한다. 둘째, 학습은 신체 모든 곳에서 이루어진다. 셋째, 모든 사람은 다른 방식으로 배운다. 넷째, 학습은 학교를 넘나들며 삶의 맥락 속에서 일어 난다. 다섯째, 아동의 재능은 서열화될 수 없다.
피터 센게가 묘사하는 <학습하는 학교>는 산업 시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기준이라 할 만하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코로나 이후에도 학습하는 학교, 학습하는 지역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올드 노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없는 뉴 노멀 논의는 허구라는 사실이다.

코로나 이후의 세계, 우리의 질문은 무엇인가

코로나-19로 인하여 의도치 않게 교사의 정체성이 ‘가르치는 자’에서 ‘배우는 자’로 옮겨가고 있는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르치는 자’라는 정체성은 교사가 법령과 지침에 따라 움직이는 국가교육과정의 전달자임을 암시하는 반면, ‘배우는 자’로서의 정체성은 교사가 질문의 주체가 되었음을 암시한다. 여기서 말하는 ‘질문’은 원격수업의 기술적 측면을 넘어선다.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학교가 폐쇄되었을 때 가르침과 배움은 어떻게 가능한가?’, ‘코로나 이후의 학교를 어떻게 재정의할 것인가?’ 등의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코로나-19는 세계교육개혁의제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1 코로나-19가 공적·국가기반 접근을 강화하게 할지, 아니면 시장 기반의 경제적 접근을 강화하게 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세계교육개혁의제의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은 확실해 보인다. 핀란드 교육문화부 국제이동센터 사무국장을 역임한 파시 살베리는 <21세기 교육의 7가지 쟁점>에서 21세기 교육 사조로 세 가지를 언급하고 있다. 첫째, 교육에 대한 구성주의적 접근이 강조되면서 교육의 초점이 교사에서 학생으로 옮겨가고 있다. 둘째, 모든 학생에 대한 책임 있는, 포용적 교육을 요구하는 대중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셋째, 학교와 교사의 자율성을 확대한 교육 거버넌스2의 분권화가 요구되고 있다.
원격수업의 도입으로 인한 디지털 기반 수업혁신의 흐름은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와 함께 교육에 대한 상업적 이익 집단의 개입이 점점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이후의 교실은 구글, 애플, MS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의 각축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학부모를 비롯한 민간 부분의 관심도 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교사를 위시한 교육 혁신가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파시 살베리는 같은 책에서 다음과 같은 미션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연구 결과를 활용해 교육 변화의 성공모델을 찾아낼 것. 둘째, 변화에 대한 지식과 연구를 바탕으로 성공을 좌우할 결정적인 새로운 질문들을 만들어 낼 것. 셋째, 매우 중요한 이 질문들에 대한 찬반 양편의 주요 논거를 이해할 것. 넷째, 교육개혁의 난제들에 관해 전문가와 일반 대중 모두에게 설득력 있게 읽힐 글을 쓸 것.
<21세기 교육의 7가지 쟁점>은 파시 살베리와 하버드 교육대학원생들이 이와 같은 미션을 품고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이제 우리가 결과물을 만들어야 할 때다. 학습하는 학교, 학습하는 교육청이 필요한 까닭이다. 책을 펴자. 함께 질문을 만들자. 그리고 세상을 향하여 이야기하자.

  1. 세계교육개혁의제(Global Educational Reform Agenda)는 앤디 하그리브스가 처음으로 제시한 용어로 OECD의 PISA 역시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 속에 있다.
  2. 거버넌스(governance):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의사 결정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제반 장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