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영 (서울군자초등학교, 교사)
유독 아이들을 예뻐하고 36년간 몸담았던 교직을 떠나면서도 못내 정년 단축된 것을 아쉬워했으며 강사 제한 연한인 만 65세가 되었을 때는 “이제 학교도 못 가는 나이가 됐네.”라며 섭섭함을 토로했던 천상 ‘스승’이었던 분, 그런 분이 2021년 9월 주무시다가 홀연히 모든 이의 곁을 떠났다.
친목회장을 도맡아 궂은 일을 찾아다니고, 합동 체육으로 학년을 챙기고 그것도 모자라 남들이 꺼리던 잡다한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시던 모습들이 후배, 동료, 선배 할 것 없이 주변 이들의 이구동성 칭찬으로 증명되었던 분, 그분이 마지막까지 놓지 못했던 꿈은 바로 ‘작가’였다.
이제 그분 없이 덩그러니 홀로 선 아내가 생전에 남편이 써 놓은 시와 소설을 읽다가 오열하면서 추린 시들을 출판하게 되었다.
“처음 6개월간은 무엇을 해도 어디를 봐도 어디를 가도 무엇을 먹어도 낮이건 밤이건 그가 옆에 있었습니다. 머릿속에 가슴속에 노래 속에 드라마 속에 컴퓨터 속에 나타나고 생각이 나서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목놓아 울기도 하고 너무 빨리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난 그를 원망도 했지만, 날 힘들게 했던 일보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내가 잘못해 준 것만 떠올라서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부부 교사였던 아내의 절절한 마음이 후배인 나를 울렸다. 마지막까지 놓지 못했던 작가에 대한 꿈을 이뤄 주고자 남편이 남긴 작품을 살펴보고, 생전에 정식 등단을 꿈꾸었던 남편 분의 뜻을 받들어 뒤늦게라도 소원을 이루어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출판을 결심하셨단다. 이 세상에 정해성 선생님의 흔적을 남겨 그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에게 그의 숨결을 조금이나마 더 느끼게 하고 싶어서 유고 시집을 펴냈다고 한다.
「그대는 바람처럼 떠나가면 그만이지만」을 대표 시로 ‘문학시대 신인상’을 받고, 이 제목으로 소소리 출판사에서 교육지기, 사랑, 세월, 삶 등 네 갈래 소주제로 총 59편의 시가 수록된 시집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인간으로서 겪어야 할 운명의 순간을 앞두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남기는 사별의 복음’이라는 박종철 시인의 시평이 마음에 와닿는다. 이 시집이 그를 기억하는 분들과 교직에 몸담은 우리에게 작은 울림이 되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