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환보(충남대학교, 교수)
들어가며
우리나라에서 세계시민교육은 이제 더 이상 낯선 용어가 아닌 것 같다. 2015년 인천에서 개최된 세계교육포럼(World Education Forum, WEF)에서 ‘세계시민교육’이 국제사회 공동의 목표로 제안된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학교 현장을 비롯한 사회 전반에 걸쳐 ‘세계시민교육’이라는 용어나 실천 사례가 확대되었다. 관련 연구에 한정짓는다면, 필자가 지난 2016년에 세계시민교육 연구동향을 분석할 당시만 해도 197편의 학술논문과 58편의 석박사 학위논문, 총 255편의 관련 연구가 있었지만(박환보·조혜승, 2016), 2021년 4월 기준으로 ‘세계시민교육’이라는 용어를 표제로 한 연구물이 학술논문 350편, 석박사학위 논문 169편, 총 519편으로 두 배 이상 증가하였다. 2016년과 마찬가지로 유사한 용어(예를 들어, 세계시민, 세계시민성, 글로벌시민 등)나 주제어로 검색한다면,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실천의 영역에서도 서울특별시교육청이 ‘세계시민’을 명시한 담당조직을 설치한 것을 비롯해서, 각 시도교육청마다 세계시민교육 업무를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전담 인력을 두고 있다(박환보 외, 2021). 이러한 지원 체계를 토대로 세계시민교육 교사 연수, 세계시민교육 활동 프로그램, 동아리 활동, 세계시민교육 교육과정과 교과서 개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시민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무엇이든 단기간에 빠른 속도로 진행해 나가는 한국 사회의 역동이 세계시민교육의 확산 과정에서도 나타난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세계시민교육이라는 용어의 확산, 관련 정책과 실천의 양적인 확대, 세계시민교육에 대한 인지도 향상 등이 실제로 교육 현장의 변화를 초래했을까? 더 나아가서 세계시민성 함양이라는 목표를 얼마나 어떻게 달성했을까? 지난 2년여 간 우리가 경험한 삶은 세계시민교육이 단순히 지식 습득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 현실적인 문제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 전 지구적인 문제가 곧 내 삶의 문제이며, 동시에 나의 문제가 곧 전 지구적 문제라는 점을 체감하였다. 빈곤과 기아, 기후변화, 사회·경제적 불평등, 차별 등의 글로벌 사회 문제들이 내 삶과 동떨어진 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였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 해결과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글로벌 협력과 연대가 중요하고, 개인에게도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시민성이 요구된다는 점에 대해 공감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자국 우선주의와 인종주의, 혐오와 배제, 차별, 폭력 등의 문제도 더욱 확산 되었다. 코로나19 대응 초기에 나타났던 우한 교민 수용 논란, 예멘과 아프가니스탄 난민 수용 문제, 성별·세대별·지역별 갈등 문제 등은 과연 국내에서 지금까지 진행해 왔던 세계시민교육이 얼마나 실효성을 갖고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글로벌 의제로서 세계시민교육이 주목받고 실천이 본격화된 지 아직 10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세계시민교육의 성과를 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지난 십여 년은 한국 사회에서 세계시민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시기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는 세계시민교육의 성과를 논하는 것이아니라,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지금까지의 세계시민교육 실천에 대해 성찰해보고자 한다.
지금까지 세계시민교육을 어떻게 실천했는가?
우리나라의 학교 교육 현장에서 세계시민교육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뚜렷하게 밝혀진 바가 없기 때문에, 세계시민교육의 등장과 전개 과정을 탐색하는 것도 하나의 중요한 연구과제이다. 다만 한 연구에서 밝힌 바와 같이, 교육 정책 문서에서 ‘세계시민으로서의 자질’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은 1995년의 교육개혁위원회의 보고서(5·31 교육개혁안)이다(유혜영 외, 2017). 소위 5·31 교육개혁으로 불리는 본 보고서에서 정부는 “세계시민으로서의 자질과 지도력을 갖춘 글로벌 인재의 육성을 목표로 하고, 내용적으로 평화교육, 외국어교육, 국제이해교육”을 강조하였다(교육개혁위원회, 1995: 55). 이후 1997년에 발표한 교육개혁위원회 보고서에서 민주시민교육의 강화라는 과제를 설정하고, 그 속에서 세계시민의식(환경교육, 상호의존성, 문화다양성 등을 포함)의 확립을 위한 교육내용의 보완을 목표로 학교교육과정 개혁 방안을 제시하였다(교육개혁위원회, 1997: 344). 이러한 교육과정 개혁은 2000년 7차 교육과정부터 적용되어 사회 교과, 윤리 교과, 지리 교과 등의 교과 내에서 글로벌 사회의 시민성 교육이 진행되었다. 이와 함께, 1997년 우리나라 정부가 유네스코 총회에서 유네스코 산하 국제기구인 아시아 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APCEIU, 이하 아태교육원) 설립을 제안하고, 2000년 한국에 아태교육원을 설치함으로써 국제이해교육 관련 활동이 확대되었다.1유네스코 한국위원회나 아태교육원을 통한 세계시민교육은 주로 교사연수, 학생교류, 관련 정책연구 및 자료 개발 등 학교 교육현장에서 국제이해교육 및 세계시민교육 실천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학교교육과정 외에도 학교 외부로부터 세계시민교육의 실천이 확대되었다. 지속가능발전교육(환경단체), 인권교육(국가인권위원회), 민주시민교육(선거관리위원회), 개발교육(KOICA, 시민사회단체) 등 글로벌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시민의식 함양을 목표로 한 교육과 실천이 관련 단체들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2010년대 이후에는 시민사회의 성장과 진보적인 지방교육당국의 등장을 통해 민주시민교육이 학교 교육정책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였고, 세계시민교육은 2010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OECD) 개발원조위원회(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 DAC) 가입과 2015년 세계교육포럼을 계기로 국제교육의 일부로써 교과보다는 비교과 활동이나 학교 밖의 NGO 등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처럼 2015년 이후 정부의 세계시민교육 관련 정책은 크게 학교 교육과정에 기반을 둔 민주시민교육과 학교교육 활동을 지원하는 세계시민교육이라는 큰 줄기를 갖고 전개되고 있다. 교육부는 2018년 민주시민교육 활성화 종합계획을 마련하고 민주시민교육과를 설치함에 따라 학교 내에서 시민성 교육을 추진하기 위한 보다 안정적인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반면에 세계시민교육은 국제교육협력 담당 부서의 업무 중 하나로 실행되고 있으며, 한국국제협력단(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KOICA)이나 시민사회단체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학교 현장의 세계시민교육 실천을 지원하고 있다. 이외에도 세계시민교육은 다양한 주체들에 따라 상이한 관점과 지향점이 존재하며,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실천의 지향점도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나 형식적인 측면에서 볼 때, 세계시민교육은 학교 내에서 교과중심의 접근과 학교 밖에서의 활동이 다소 분절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시도교육청의 세계시민교육 정책은 각 시도교육청이 지향하는 교육비전과 지역의 특성 및 현안 등이 맞물려 지역마다 내용이나 규모 면에서 상이한모습으로 진행되고 있다. 최근 17개 시도교육청의 ‘2021년 주요 업무계획’에 명시된 전체 교육정책 사업 중에서 세계시민교육의 6개 주제영역(세계시민성, 성평등, 평화, 인권, 문화다양성, 지속가능발전)에 기초해서 세계시민교육 정책 현황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박환보 외, 2021), 전체 3,887개의 정책 사업 중에서 세계시민교육과 관련한 정책은 전체의 7.4%인 285개로 나타났다. 세계시민교육 정책 사업의 비중은 인천이 17.1%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서울은 평균 수준인 7.4%로 나타났으며, 시도교육청별로 편차가 다소 큰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세계시민교육 정책 예산은 약 977억 원이며, 세계시민교육의 6개 주제 영역 중에서 문화다양성 영역의 예산 비중이 37.3%로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세계시민성이 26.7%, 지속가능발전 17.4%, 평화 8.5%, 인권 6.0%, 성평등 4.1% 순으로 나타났으며, 시도교육청별로 주제의 비중이 강조하는 영역이 다르게 나타났다. 이러한 차이는 세계시민교육을 지역의 사회적 이슈나 교육 현안 등과 무관하게 외부에서 주어진 정책과제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지역의 맥락에서 해석하고 연계하여 교육정책 내에서 주류화하려는 시도들이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학교 교육현장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시민교육을 실천하려는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결과라는 측면에서 우리가 체감할 만한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 이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우선 현 시점에서 청소년의 세계시민성 수준을 살펴보고자 한다. 2015년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에서 세계시민교육이 국제사회 공동의 목표로 설정된 이후에, 국제사회는 세계시민교육의 성과를 측정하고자 노력하였다. 대표적으로 OECD에서는 기존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연구(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PISA)에 더하여, 66개국 학생의 글로벌 역량(Global Competency) 수준을 인지적 평가와 자기보고식 설문조사를 통해 조사하였다(OECD, 2020).
OECD는 글로벌 역량을 ‘지역적·세계적·상호문화적 문제를 점검하고, 타인의 관점 및 세계관을 이해하고 인식하며, 서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개방 적이고 적절하며 효과적인 상호작용에 참여하고 집단적 웰빙과 지속가능발전을 위해 행동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한다(OECD, 2018a). 해당 조사 결과에 따르면(OECD, 2020), 우리나라 학생들은 글로벌 이슈(성평등, 이민자, 기후위기, 빈곤, 기아, 국제분쟁, 국제보건)에 대한 인식과 다른 문화 학습에 대한 흥미 수준이 OECD 평균에 비해 낮았고, 특히 빈곤, 이민자, 기아 등에 대한 이해가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집단적 웰빙과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행동에 관해서는 개인 차원의 관심과 활동은 높게 나타났지만, 직접적인 불매운동이나 서명운동 참여 등의 적극적인 행동은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반면에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는 능력, 다른 문화권 사람에 대한 존중, 이민자에 대한 태도, 상호문화적 의사소통에 대한 인식, 글로벌 이슈에 대한 주체성 등의 태도 측면에서는 OECD 평균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OECD의 글로벌 역량을 세계시민성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OECD의 조사결과는 왜 세계시민교육을 실천하려는 노력이 확대되었음에도 청소년의 세계시민성 수준은 낮은지, 그리고 앞으로 세계시민교육을 어떻게 실천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데 있어 몇 가지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첫째, 우리나라 학생들은 글로벌 역량과 관련해서 효능감이나 태도 수준은 상대적으로 높지만, 적극적인 참여 행동은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이다. 청소년의 세계시민성을 분석한 다른 연구에서도 한국 초· 중등학생의 세계시민성은 인지적·정의적 측면에서는 높은 수준에 있지만, 행동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을 보고한다(김태준 외, 2016; 박환보 외, 2021). 이러한 결과는 우리나라 학생들의 글로벌 이슈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가 자신의 삶과는 무관한 교과 지식 차원으로 간주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세계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지식과 소양이 무엇인지는 배워서 알고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지만, 그것이 내 삶의 문제로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아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이 글로벌 이슈에 대해 알고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적극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학생들이 시민으로서 실천 활동에 참여하는 데에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외에도 다양한 영향 요인들이 작용한다(박경희 외, 2018). 따라서 교과지식으로서의 세계시민교육을 넘어 실질적인 변화와 행동 참여로 이어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학교 현장에서 글로벌 이슈에 대한 교육이 진행되고 있지만, 주제별로 편차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는 교육과정 반영 정도뿐 아니라, 교사의 실천에서도 나타난다. 글로벌 이슈에 대한 7가지 주제 영역 중에서 빈곤, 이민자, 국제분쟁 등의 주제는 교육과정 내에서 상대적으로 적게 다루고 있으며, 교사들도 실천을 어려워하고 있다. 최근 초·중등교사의 세계시민교육 실천을 조사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박환보, 2021), 설문에 참여한 교사들의 82%는 ‘기후변화와 지구 온난화’를 수업에서 다루고 있으며, ‘국제 보건 문제’, ‘인권’ 등도 70% 이상의 교사들이 수업에서 다루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이민(이주)’, ‘국제 분쟁’, ‘빈곤 발생 원인’ 등은 전혀 다루지 않는다는 교사의 비율이 20%에 달했다. 또한 ‘이민(이주)’, ‘세계 각지에서의 기아와 영양 결핍’, ‘빈곤 발생 원인’ 등은 수업에서 다루기도 하지만, 수업 이외 활동으로 다룬다는 응답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학교교육에서 특정한 주제가 교육과정에 반영될 경우 정해진 교과 내에서는 교육이 보장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교과나 교사들이 해당 주제와 관련한 교육활동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정성경 외, 2021). 특히 초등학교에 비해 교과가 명확하게 구분된 중등학교에서는 이러한 한계가 보다 뚜렷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세계시민교육이 특정 교과에 국한된 교과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시민성 함양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실천하는 종합적인 교육활동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셋째, 교사들이 세계시민교육 실천을 어려워한다는 점이다. OECD에서는 청소년의 글로벌 역량과 함께 교사들의 글로벌 역량 교육 필요성과 효능감도 조사했는데, 우리나라 교사들은 교육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교수효능감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OECD, 2020: 219). 청소년의 세계시민성 함양에 있어 교사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행위자이다. 특히 교사는 세계시민교육과 관련한 교과지식의 전달자로서 뿐만 아니라, 학교 내에서 학생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시민성 교육을 실천하기도 한다. 따라서 국내의 세계시민교육 정책도 교사의 세계시민교육에 대한 이해도 제고와 전문성 함양을 강조한다. 그러나 정책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교사들의 세계시민교육 교수효능감은 낮은 실정이며, 이는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특정 주제의 교육 활동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교사들이 세계시민교육의 실천에 대한 효능감이 낮은 이유는 교과지식 수준, 교원교육 참여 경험, 개인 차원의 특성 등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다. 따라서 이러한 점을 고려해서 교사의 세계시민교육 교수효능감을 높이고 교사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교육 실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넷째, 학교의 교육환경이 세계시민교육 실천을 어렵게 한다는 점이다. OECD 조사에서는 세계시민교육 실천 환경을 이해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교사의타문화 배경 집단에 대한 차별적 태도를 4개 문항으로 물어보고, 응답의 평균값을 토대로 학교의 차별적 풍토를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OECD, 2020: 217), 우리나라 학생들은 조사에 참여한 국가 중에서 학교가 차별적이라고 인식하는 비율이 가장 낮았다. 그러나 학교의 세계시민교육 실천 환경은 교사의 타문화 학생에 대한 차별만으로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국가별 상대적 차이보다 우리나라의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한국 학교의 인권 환경을 조사한 아동청소년인권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김영지·김희진, 2019), 학생들이 인식한 학교의 학생참여존중 풍토는 4점 척도 상의 2.78, 배려문화는 4점 척도 상의 3.26으로 나타났다. 척도 점수 상의 수치를 갖고 학교풍토를 설명하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학교풍토, 긍정적인 교사-학생 및 학생 간의 관계, 적극적인 학교 활동 참여 등이 학생들의 세계시민의식에 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박환보 외, 2016; 박경희 외, 2018). 또한 교사들도 학교 내에서 동료교사들이 세계시민교육 실천에 공감하고 지지해 준다고 인식할 때, 세계시민교육을 실천하기 위한 효능감도 높고 실제로도 실천에 참여할 수 있다(정성경 외, 2021; 신혜숙·박주형, 2020; 정성경 외, 2022). 세계시민교육은 가치 지향의 교육이자 동시에 실천에 초점을 맞춘 교육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학교풍토 변화는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마지막으로 부모 세대에 대한 교육과 함께 사회 전반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OECD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많은 국가에서 학생들의 글로벌 이슈에 대한 인식 수준에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우리나라는 부모의 영향력이 가장 강한 국가 중 하나였다(OECD, 2020: 76). 부모의 학력이나 사회·경제적 지위는 그 자체로 청소년의 세계시민의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부모와의 대화나 관계 등도 시민의식 함양에 중요한 요인으로 밝혀졌다(이자형·김경근, 2013; 채수은·강구섭, 2015; 박환보 외, 2016).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최근 난민·이민자에 대한 태도를 중심으로 세대별 성인의 세계시민의식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정성경·박환보, 2021), 우리나라 성인의 난민 수용 태도는 4점 척도 상의 2.15점으로 나타났다. 동일 자료는 아니지만, 청소년의 이민자에 대한 태도가 4점 척도 상의 약 3점 정도(박경희 외, 2018)임을 고려할 때, 성인의 수용적 태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 성인들은 이주민에 대해 나의 생활 영역을 침범한 외부인으로 인식하기도 하고, 경제적 위협 세력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또한 나를 중심으로 한 층위가 형성된 다중정체성 속에서,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글로벌 문제와 내 곁에서 발생하는 글로벌 문제를 구분 짓고 가치관을 달리하기도 한다(김이선 외, 2018; 정성경 외, 2021). 이러한 결과들은 세계시민성 함양을 위해 학교가 아무리 변화하고 다양한 교육을 실천하더라도, 부모 세대의 인식 변화를 포함한 사회 전반의 변화 없이는 기대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따라서 세계시민교육을 위한 학교 현장의 변화는 학교라는 울타리를 넘어 사회와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실천될 필요가 있다.
나가며
최근 미래교육에 관한 다양한 담론들은 공통적으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지구의 공존과 상생을 이야기한다(OECD, 2018b; UNESCO, 2021). 공존과 상생은 어려운 말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문제이다. 급변하고 불확실한 미래 사회를 예측하고 이에 대응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며, 인간과 자연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것을 주문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해진 미래를 준비하고 자신을 맞춰가는 교육이 아니라, 나와 내가 속한 공동체의 미래를 스스로가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주체성과 공동체성을 함양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서로에 대해 알고 공감하며, 문제해결을 위해 연대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개인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 이러한 교육이 곧 세계시민교육을 의미한다.
세계시민교육은 한 개인이 어느 날 갑자기 전 세계 어디에 던져져도 아무런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교육이다. 많은 SF 영화 속에서 묘사하는 미지의 세계는 항상 두려움이 가득한 세상이다. 어떠한 생명체가 언제 어디서 갑자기 나타날지도 모르고, 자신에게 위협을 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 치 앞을 나아가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어쩌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여전히 두려움이 가득한 미지의 세계일지도 모른다. 기후위기, 전쟁의 위협, 코로나19 바이러스, 이주민이라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남성과 여성, 그리고 제3의 성까지, 우리가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나에게 신체적, 물리적, 정신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위협을 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두려움이 반대로 누군가에게 위협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가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에 등 우리는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반대로 무언가에 위협을 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공존과 상생을 위해서는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두려움이 가득한 미지의 세계가 아니라 안전한 세계로 만드는 일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먹고 살 걱정이나 안전에 대한 걱정 없이, 누구와도 즐겁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의 모습이 아마도 세계시민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일 것이다. 교육 받은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든 누구와 함께라도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인류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며 공존과 상생을 위해 함께 행동할 수 있는 개인들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왜 문제가 되는지, 문제 해결을 위해 나는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대화할 수 있는 개인, 전혀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더라도 서로 존중하고 공존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개인,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위해 실천할 수 있는 개인, 이러한 개인들은 저절로 탄생하지 않는다. 바로 이 지점이 가치 지향적이며 실천적인 세계시민교육이 필요한 이유이다.
언제 어디서든 살아갈 수 있는 힘은 비단 한 개인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개인의 안전한 삶을 보장하고 인류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변화를 요구한다. 세계시민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많아진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집합체로서 사회의세계시민성 향상을 담보할 수는 없다. 개인 차원에서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추구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기 위해 책임의식을 갖고 실천하더라도, 집단으로서의 실천 양상은 다를 수도 있다. 따라서 개인의 세계시민성이 발휘될 수 있도록 사회적 변화가 필요하다. 사회적으로 누구나 세계시민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하거나, 혹은 세계시민으로서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인 제약을 함께 해결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보다 평화롭고, 공정하며, 지속가능한 미래는 이러한 공동의 노력을 통해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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