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난희 (서울난곡초등학교, 수석교사)
‘왜’와 ‘어떻게’의 차이
“과정 중심 평가는 교수·학습과정안 뒤에 있던 평가 계획을 앞으로 가져오면 되는 건가요?”
“과정 중심 평가를 수업에 적용시켜 평가를 하면 언제 수업을 하나요?”
“과정 중심 평가를 나이스에 어떻게 적용시키나요?”
“피드백은 꼭 자세히 써야 하나요?”
“과정 중심 평가 너무 어려워요. 꼭 해야 하나요?”
“과정 중심 평가를 열심히 적용한다고 학교가 변할까요?”
“과정 중심 평가에서는 백워드 설계를 꼭 활용해야 하나요?”“
“진정한 과정 중심 평가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과정 중심 평가, 이것도 2-3년 지나면 없어지는 거 아닌가요?”
“결과 중심 평가와 과정 중심 평가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과정 중심 평가는 현재 학교 모습의 어떤 부분을 개선할 수 있을까요?
“과정 중심 평가를 하려면 프로젝트수업으로 바꾸어야 하나요?”
“과정 중심 평가를 쉽게 적용할 수 있게 자세한 사례를 보여주세요.”
과정 중심 평가 연수에서 선생님들의 질문을 받아봤다.
이 질문들에 나는 명확한 답을 하지 못했다. 과정 중심 평가를 한 눈에 보이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의 질문을 받으며 수업에 대해 질문했던 예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교사의 경력이 쌓이면서 훌륭하게 학급경영을 잘하는 선생님이 부러웠고, 와~ 하고 감탄사가 나게 수업을 하는 선배 선생님의 수업을 보고 따라하고 싶은 마음에 “어떻게 하면 이런 멋진 수업을 만들 수 있나요? 어떤 방법인지 알려주세요.”라고 부탁을 했다. 그 선생님은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우수 사례를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연수 받은 이후 수업 방법을 내 학급의 아이들에게 적용시켰으나 내가 봤던 그런 모습의 수업은 되지 않았다. 우수사례가 나에게 적용되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그 선생님 수업의 의도, 학급 경영의 철학 등을 살펴보지 않고 내가 눈에 보이는 방법만 따라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과정 중심 평가를 수업에 적용하기 전에 ‘어떻게’라는 질문에 앞서 ‘왜’라는 질문을 먼저 해보자. 내 수업에 ‘왜 과정 중심 평가를 적용해야 할까?’에 대한 이유를 깊이 생각한 후 방법인 ‘어떻게’로 가는 것이 과정 중심 평가의 시작일 것이다. 과정 중심 평가를 ‘어떻게’로 받아들이면 피곤함으로 다가오지만, ‘왜’에 대한 고민을 하고 나의 수업을 돌아보는 성찰이 있다면 과정 중심 평가는 나의 수업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과정 중심 평가를 왜 적용해야 하는가에 대해 교사 스스로 답을 찾았다면 방법론인 ‘어떻게’를 생각하면 된다. 방법은 학교마다, 교사마다, 아이들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적용이 가능하다.
과정 중심 평가로 수업 디자인하기
‘평가’라는 단어를 2015개정교육과정 이전의 평가와 같은 뜻으로 사용할 때가 많다. 과정 중심 평가에서 강조하는 교-수-평의 의미를 이해한다면 평가는 수업에서 매우 중요한 단어가 된다. 평가는 아이들이 가고자 하는 수업의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학생들이 평가를 인식하고 활동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이 수업이라 할 수 있다. 성취기준 중심의 교육과정 재구성을 통해 긴 호흡의 수행과제를 제시하고 차시 계획에 따라 단위 차시의 작은 수행과제를 제시하면, 수행과제를 해결하는 활동이 수업이 되고 아이들은 다양한 피드백을 통해 성취기준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과정 중심 평가의 의미와 방향성에 대해 고민한 필자는 과정 중심 평가를 적용하여 수업을 디자인했다. 4학년 2학기 수학의 사각형, 다각형 두 단원을 재구성하여 매주 소주제를 정한 뒤 9주간의 수업으로 디자인하였다. 두 단원을 아우를 수 있는 수행과제를 고민하다가 수학을 사회와 접목시켜 수행과제를 개발하였다.
먼저 도형에 대한 진단을 하고, 앞으로 이루어질 도형 수업을 친근하게 하기 위해 몸으로 도형 만들기를 하였다. 모둠별로 자신들이 알고 있는 도형을 몸으로 표현하게 하였다.
“수학 시간에 움직이니까 좋다. 지영아, 이리 와서 도형 같이 만들자. 내 팔과 다리는 어떻게 해야 되지?” 움직임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교실 바닥을 무대 삼아 다양한 도형을 표현했다. 지금까지 배운 도형은 삼각형뿐이었지만 아이들은 다양한 도형을 표현했다. 만든 도형을 다른 모둠 친구들이 맞추었다. 열심히 오각형을 만든 아이들에게 “그건 도형이 아니야, 선분이 꼭짓점에서 안 만났잖아.” 하면서 오류를 지적하기도 했다.
한참 놀이를 한 후 칠교판을 주고 어떤 도형이 있는지 찾아보게 했다. 주어진 도형이 어떤 도형인지 찾아보고 칠교놀이도 하였다. 아이들은 칠교는 시시하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여러분들은 이제 놀잇감을 만드는 사장님이 될 것이에요. 칠교보다 더 많은 도형으로 새로운 놀잇감을 만들 것이에요. 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은 사장님이 될 것이라는 말과 새로운 놀잇감을 만들 것이라는 기대감에 조금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했더니 “도형을 잘 알아야 해요”, “도형을 그릴 줄 알아야 해요” 라는 답이 돌아왔다. 수행과제에 아이들이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첫 번째 도형으로 사다리꼴을 학습하였다. 수업 도입에 수행과제를 제시하였다. 아이들에게 오늘 해야 할 것을 먼저 인지하고 사다리꼴이 무엇인지 교과서로 스스로 공부하도록 하였다. 자신이 공부한 사다리꼴의 개념을 짝에게 설명하고 전체 수업에서 확인하는 단계를 거쳐 오개념이 생기지 않도록 개념정리를 하였다. 다음 활동으로 관련된 문제를 해결한 다음 친구들과 답을 비교하고 수정의 시간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교사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는 돌아다니며 통해 개별지도를 하였다(교사 피드백). 교사의 설명이 아닌 스스로 공부하고 친구와 나누는 수업이어서 아이들의 집중도가 좋았다. 수행과제인 사다리꼴 설명하기를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하는 아이, 온몸으로 설명하는 아이, 손바닥에 쓴 설명을 슬쩍슬쩍 보면서 설명하는 아이 등 아이들은 자신의 말로 익힌 사다리꼴을 열심히 설명했다(동료평가).
평행사변형은 좀 어려운 개념이어서 두 차시 수업을 하였다. 첫 차시는 다양한 활동으로 평행사변형 개념을 익힌 후(1, 2차시 방법) 관련문제를 풀었고, 두 번째 차시는 게임을 통해 다양한 평행사변형을 그리는 활동인 땅차지게임을 하였다. 게임규칙은 주사위를 던져 나오는 수만큼의 평행사변형의 길이를 정한 후 나머지는 창의적으로 평행사변형을 그리면 된다. 한 방향의 길이만 주어졌으므로 방향이 다른 변의 길이는 마음대로 정하여 그리면 된다. 여기에서 아이들이 두되 싸움이 시작된다. 마주보는 한 변의 길이만 정해졌으므로 다른 한 변의 길이와 방향을 얼마든지 창의적으로 그릴 수 있게 된다.
처음에 평행사변형을 그리는 아이는 평소 보았던 전형적인 평행사변형의 모습을 그렸다. 다른 팀의 아이가 종이의 빈 공간에 같은 길이의 선분을 평행하게 멀리 그리고 꼭짓점들을 이어서 긴 평행사변형을 만들었다. 처음에 그렸던 아이의 입에서 “아!”하는 감탄사가 나왔고 좁은 모눈종이 위에서 평행사변형 그리기 게임이 치열해졌다.
사다리꼴, 평행사변형을 스스로 학습한 아이들은 새로운 도형인 마름모도 스스로 책을 보며 공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름모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라는 질문에 “네 변의 길이가 모두 같은 사각형” 이라고 책의 내용을 그대로 읽었다. “그럼 교실의 물건으로 마름모를 만들어 볼 수 있을까?” 라고 질문을 했더니 아이들이 책상 속, 가방 속에서 물건을 꺼내 책상에 마름모를 만들기 시작했다. 길이가 같은 색연필이나 샤프심을 이용해 마름모를 만드는 아이가 많았다. 그때 민철이는 자신의 책 4개를 모서리와 맞추면서 마름모를 만들었다. 과목은 다르지만 책의 크기가 같다는 것을 나도 그날 처음 알았다. 책의 모서리로 마름모를 만들던 민철이는 갑자기 외쳤다.
“어! 정사각형이 마름모가 되네.” 그 아이의 말을 들은 아이들은 민철이 자리로 달려가 구경을 했다. “정말이네, 신기하다.”라며 놀라는 아이에게 “나도 원래 알고 있었어.” 라고 자신이 표현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 하는 아이도 있었다. ‘모든 정사각형은 마름모가 될 수 있지만 모든 마름모는 정사각형이 될 수 없다’ 란 개념을 나 혼자 열심히 칠판에 그리며 설명했지만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떠드는 아이가 많은 것을 보고 “너희들 집중 안 하고 뭐하니?” 하고 불같이 화를 내던 예전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도입에 제시한 마름모 그리기를 평가문제로 제시하였다. 검사의 관점을 알려주었더니 그 관점에 맞게 정확히 검사를 했다. “이거 틀렸어, 다시 그려.” “왜?”, “자세히 재 봐, 변의 길이가 다 같지 않아.”(동료평가, 동료피드백)
가장 잘 알고 있는 직사각형과 정사각형을 비교하는 수업을 했다.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찾아 쓰게 하였다. 교과서를 읽어보고 문제도 풀어본 후 모둠별로 찾은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색띠나 포스트잇을 사용하여 공유하였다. 모둠활동으로 정리된 직사각형과 정사각형의 같은 점, 다른 점을 반 전체와 공유하였다. 다른 모둠이 정리한 것을 보고 보충할 것이나 수정할 것을 쓰게 하였다.
다각형의 개념을 1차시를 통해 익혔으므로 바로 다각형을 학습하였다. 앞에서 배운 사각형, 삼각형도 다각형에 포함된다는 것을 이해하자 다각형을 편하게 받아들였다. 다각형과 정다각형의 개념을 다시 한 번 책을 읽어보고, 교과서의 문제 풀이와 친구에게 설명하기 활동으로 정다각형 수업을 했다. 활동으로는 종이접기 안내도를 활용하여 정다각형을 색종이로 표현하기로 하였다. 정사각형은 색종이를 그대로 표현하면 되고, 나머지는 종이접기 안내도를 따라했다. 가장 쉽게 접을 수 있는 정팔각형을 제외하고 정삼각형, 정오각형, 정육각형을 접게 했다. 아이들은 종이접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잘하기도 했다. 종이접기가 잘 안되면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따라했다. 활동이 끝난 후 아이들에게 “정팔각형도 접을 수 있을까?” 했더니 종이 접기 안내도를 달라고 했다. “없는데…….” 란 나의 말에 아이들은 잠시 망설이더니 “우리가 생각해서 접으면 되지 않을까요?” 란 기특한 답을 하는 아이가 있었다. 아이들은 정팔각형은 8개의 변이 같으면 된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창의적인 접기로 정팔각형을 접었다.
대각선의 개념이 쉬울 것 같지만 실제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대각선의 개념을 같이 이야기한 후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분필 하나씩을 주고 “교실에서 도형을 찾고 그 도형에서 대각선을 그려볼까? 대각선을 그리고 각자 자신의 이름도 써보세요.” 라고 제안했고, 분필을 손에 든 아이들은 신이 나서 여기 저기 분필로 낙서 같은 선을 긋고 자신의 이름을 썼다. 교실바닥, 청소함, 책, 칠판……. 다양한 곳에서 도형을 발견하고 대각선을 그렸다. 대각선 긋기 활동이 끝난 후 친구들의 대각선을 보고 정확하게 그렸는지 검사(동료평가)하도록 했는데 아이들의 평가기준이 너무 엄격해서 대각선 그리기가 통과된 아이들이 많지 않았다. 틀린 이유 중 가장 많은 것은 ‘대각선은 직선이어야 하는데 선이 잘못 그려졌다’였고 책상에 대각선을 그린 것에는 책상은 모서리가 둥글게 되어 있어서 꼭짓점이 없는 것은 도형이 아니어서 대각선을 그릴 수 없다고 했다(동료피드백). 대각선 수업까지 끝나고 간단하게 지필평가를 했다. 순위를 정하기 위한 평가가 아니라 피드백의 개념으로 지필평가를 했고 아이들도 부담없이 시험을 봤다.
다양한 활동을 바탕으로 단원 첫 시간에 제시한 수행과제인 ‘도형놀잇감 12교 만들기’를 했다. 원래 계획은 모둠활동이었는데 아이들이 각자 하고 싶다고 했다. 개별 활동과 모둠활동을 각자의 선택에 맡겼다. 조건은 정사각형, 직사각형, 마름모, 평행사변형을 기본으로 다양한 다각형을 포함하여 12개의 도형을 만들도록 했다. 아이들이 열심히 했다. 주어진 A4종이에 여러 평행선을 그리고 선으로 도형을 구분하였다.
지난 시간에 고민해서 만든 12교 놀잇감의 발표를 시장놀이로 했다. 5,000원이라고 쓰여진 놀잇감 구입권에 아이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일인당 6장을 주고 가장 마음에 드는 놀잇감을 개발한 친구에게 구입권을 주도록 하였다. 시장놀이 전에 자신의 놀잇감을 홍보하는 광고를 만들어 도형 놀잇감 옆에 전시하였다. 각자 개발한 12교 놀잇감을 광고지와 같이 살펴보고 무인판매로 시장놀이가 시작되었다. 시장놀이에 너무 빠지는 게 아닌가 걱정할정도로 아이들의 참여도가 높았다. 지난 두 달간 수업한 도형에 대해 아이들의 깊은 이해가 보였다. 도형에 대한 성취기준을 거의 모든 아이가 달성하는 것이 보였다. (프로젝트 평가표 활용-교사평가, 자기평가, 동료평가)
평가는 수업이다. 과정 중심 평가로 나만의 수업을 디자인하자.
과정 중심 평가의 예를 ‘배난희’ 방식으로 간단히 살펴보았다. 이 프로그램은 아이들이 성취기준에 도달하면서도 즐겁게 수업을 하도록 과정 중심 평가로 수업을 디자인한 것이다. 교-수-평을 적용하기 위해 개발한 이 프로그램에도 오류가 있을 것이다. 발견된 수업의 오류는 수정을 거쳐 더 좋은 수업이 나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새 학년이 시작되었다. ‘평가는 곧 수업이다.’ 란 말을 강조하고 싶다. 학생들이 평가에 대한 인식을 하고 자기주도적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과정 중심 평가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선생님들 중에는 이미 학생 참여중심의 수업을 하고 있고 철저한 피드백을 통해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을 위해 노력하는 교사들이 많다. 다양한 사례를 바탕으로 나의 수업에서 장점을 찾아 아이들도 교사도 행복한 나만의 과정 중심 평가로 수업을 디자인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