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수 (고척중학교, 수석교사)
2020년 2월, 신학기 수업과 평가 계획을 미리 세워놓았다. 성취기준·수업·평가를 어떻게 연결할까 고민하며 학습지도를 만들어 놓았다. 새로 전근 온 학교에서 펼쳐질 신학기를 기대했다. 마치 아이들과 함께 모험의 바다를 항해하는 선장처럼. 바다는 잔잔했다.
3월의 꽃은 피기 시작하는데, 학교에는 아이들이 없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폭풍이 몰아쳤고, 학교는 불안하고 어수선했다. 수업이라는 항해의 선장이었던 나는 폭풍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항구에 정박해 아이들이 탑승하기만 기다렸다. 그러나 원격수업으로 항로를 수정해야만 했다.
첫 번째 항해 – EBS 온라인 클래스
정박하는 동안 2월에 만든 수업 및 평가 계획을 대폭 수정하였다. 미리 만든 학습지는 쓸 수 없게 되었다. 그 대신 학습 플랫폼, 동영상 제작과 편집 프로그램, 다양한 학습용 어플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새로운 기술들이 신기하고 놀라웠지만 이 폭풍이 얼른 지나가 아이들을 만날 수 있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EBS 온라인 클래스에서 수업을 열었다.
나는 과학교사다. 실험과 탐구와 토론이 중요한 활동이다. EBS 온라인 클래스에서 이것을 담아낼 수 있을까? 학습지 대신 교과서를 이용하고, 나의 음성이 담긴 강의 콘텐츠를 제작하고, 집에서 가능한 실험 안내 영상을 만들고, 아이들의 이해 정도를 확인하기 위한 구글 설문지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적응했을까? 원격으로 소통하고자 했던 나의 바람은 이루어졌을까? 아이들의 얼굴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이 항해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런데 아이들이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강의 동영상을 잘 보고 있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구글 설문지로 아이들의 학습 이해도를 확인하고 궁금한 점을 피드백 받았지만, 그것은 강의 동영상으로 들려줄 수밖에 없었다. 나 혼자 텅 빈 배 안에서 고민하고 혼잣말하는 느낌이었다. 열심히 수업을 만들지만 아이들과의 소통이 없는 단방향 수업. 그 수업이 이렇게 힘들고 답답하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의미가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 나 그리고 학교 선생님들은 새로운 길에 대한 돌파구를 찾으려고 함께 애쓰지 않았던가. 코로나라는 폭풍에 맞서 이 방법 저 방법을 배우고 시도해보고 성찰하지 않았던가. 짧은 두 달 사이에 스마트 역량을 쌓고 플랫폼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면서 더 나은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던가.
두 번째 항해 – 봄과 여름의 짧은 등교수업
5월 말, 드디어 배는 아이들을 태우고 항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학교는 바삐 움직였다. 방역 수칙을 준수하며 서로 소통하는 수업 방법들을 찾기 시작했다. 이 항해에서 배운 것을 복습하고 제대로 배웠는지 평가해야 했다. 방역 수칙을 준수하며 복습하려면 효율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누구나 고민하는 이 문제를 함께 의논하기 위해 선생님들을 수업에 초대했다. 갤럭시탭, 블루투스 기능이 있는 펜 마우스를 활용한 수업 후에 아이디어를 나누는 자리였다. 스마트 도구의 효율성에는 모두 공감했지만, 이 상황에서 아이들의 참여를 높일 방법에서는 고민이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휴대폰 어플을 활용하면 좋겠지만 교실에 와이파이가 되지 않았다. 방법을 찾다가 플리커스(Plickers) 종이카드를 활용한 수업을 시도하였다. 종이카드 한 장이면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 항해에 필요한 또 하나의 기술을 익혔다. 어려운 상황일 때도 돌파구는 있다. 감사하게 수업을 참관한 한 선생님이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동료 교사도 나도 플리커스는 도구일 뿐이고, 수업에서 중요한 것은 학생들을 존중하고 격려하고 참여시키는 것임을 공유할 수 있었다.
나를 힘 빠지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이들의 학습을 돕기 위해 시도했던 오픈북 평가 때였다. 포기하려는 아이들을 격려하며 평가 활동을 진행했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1번 문항을 못 푼 아이들이 많았다. 수업을 듣고 교과서에 필기해야만 풀 수 있는 문항이다. 수업을 듣지 않은 아이들이 많았음을, 단방향 수업의 한계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나를 힘 빠지게 했던 또 하나의 평가는 원소기호, 화학식, 화학반응 식을 쓰는 평가였다. 원격수업에서 미리 문항을 공개했고, 답도 설명해주었는데 처음부터 포기한 아이들이 많았다. 소수의 학생들만 좋은 점수를 받았다. 상호 작용과 피드백이 없는 수업에서 일어난 학습 격차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나에게 가장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세 번째 항해 – 구글 클래스룸
세 번째 항해를 준비하는 여름방학, 나는 플랫폼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항해를 시작했지만 언제 어디서 암초를 만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단방향 수업의 한계를 벗어나려면 새로운 항로를 찾아야 했다. 과제 제출과 피드백이 용이한 구글 클래스룸을 택했다. 미리 준비한 학습지도 인쇄하여 개학식날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새로운 모험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다시 길을 막았다. 개학식 다음 날부터 시작된 긴 원격수업과 학습지는 받았지만 구글 클래스룸의 활용법을 익히지 못한 아이들. 하지만 이번에는 아이들과 한 배를 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은 구글 클래스룸에 올려진 강의를 듣고 학습지를 필기한 후 사진을 찍어 제출했다. 그리고 퀴즈로 배운 내용을 정리했다. 질문은 비공개 댓글로 작성했다. 나는 과제를 확인한 후 댓글을 달아주었다. 처음 1주일 동안에는 과제 제출 방법을 몰라 원격으로 안내하느라 나도 아이들도 고생이 많았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되자 아이들 과제를 일일이 확인하고 댓글로 피드백을 해주느라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수업에서 피드백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피드백을 통해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고 더 나아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알게 된다. 하지만 내가 주고 있는 피드백을 아이들은 보고 있을까? 아이들 중에는 아래의 그림처럼 꼼꼼히 중요한 점을 따로 기록하고 궁금한 점을 물어보는 아이도 있다. 이런 아이들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과제를 제출하지 않는 아이들도 학급에 서너 명 있으며, 댓글 피드백에 대해 반응하지 않는 아이들도 많다. 아이들의 동기와 참여를 높이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다.
사실 구글 클래스룸으로 다양한 협업 수업을 시도할 수도 있다. 새로운 어플을 결합하여 재미있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아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플랫폼이며, 휴대폰의 작은 화면으로 수업을 듣는 아이들도 많은 터라 무리하게 시도한다면 역효과가 생길 수도 있다. 모험은 시작되었지만 순탄치만은 않다. 어쩌면 처음부터 순탄한 모험은 없을지도 모른다. 실패와 역경은 우리를 더 성장하게 만드는 소중한 선물이라고 생각한다면 모험을 즐겁게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네 번째 항해 – 실시간 쌍방향 화상 수업
구글 클래스룸으로 시작한 항해에서도 한계는 있었다. 원격과 등교가 병행되는 수업이 효과적이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교사의 실재감, 참여, 피드백이 그것이다. 구글 클래스룸을 사용하면서 교사와 아이들 사이에 하나의 벽이 있음을, 과제 제출은 하지만 대다수 학생이 적극적인 학습의 주체가 되지는 않음을, 그리고 피드백에 대한 반응을 확인하기 어려운 점이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아이들은 배에 타고 있지만, 배 안의 또 다른 방에 있어서 서로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무엇이 있을까? 나와 아이들 사이에는 공간의 벽뿐만 아니라 시간의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내가 하는 피드백을 바로바로 확인하지 않는다면 그 피드백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공간과 시간의 벽을 없애기 위해 필요한 것이 실시간 쌍방향 수업임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줌(zoom)으로 회의와 연수를 진행하면서 줌과 다양한 스마트 도구를 활용하면 참여와 피드백이 있는 수업이 가능함을 알고 있었다. 또한 아이들에게 실시간 쌍방향 수업은 처음이기에 무리하면 안된다는 점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멘델의 우열의 원리’를 주제로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동료 선생님들에게 공개하면서 작성한 글에는 나의 수업 고민과 의도가 담겨 있다. 아래 우측의 표는 고민 끝에 디자인한 수업의 과정이다.
얼굴이 보이지는 않지만 아이들은 즐거워했다. 수업 중간에 학생을 지목해서 질문을 하고, 답을 모를 경우에는 힌트를 주면서 격려하고, 작성한 학습지를 보여주게 하였을 때,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는 교사와 친구들의 목소리, 얼굴 표정 등을 아이들은 좋아했던 것은 아닐까? 아이들의 배움을 확인하는 퀴즈 결과를 공유된 화면을 보면서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을 질의 응답하며 피드백을 하였다. 퀴즈 항목 중에는 궁금한 점과 처음 참여하는 실시간 수업에 대한 소감을 묻는 항목이 있었다.
구글 클래스룸에서 궁금한 점은 비공개 댓글로 작성되어 피드백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실시간 수업에서는 화면 공유 기능을 통해 모두의 문제가 될 수 있고 피드백을 통해 이 질문이 다음 수업으로 연결됨을 알게 된다. 실시간 수업 소감을 공유하는 것은 어떨까? 아이들은 물리적 공간은 다르지만 같은 시간 안에 존재함으로써 서로의 느낌과 생각을 알 수 있다. 코로나는 여전하지만 항해를 방해하던 암초들을 피하면서 우리는 항해를 계속할 수 있다.
새로운 항해를 준비하며 – 항해가 우리에게 남긴 것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쉽게 허물어질 수 있고 또한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해주었다. 하지만 거대한 암초가 우리 앞을 막고 있을 때 잃어버린 일상에 대한 안타까움만으로는 일상을 되찾을 수 없다. 일상의 수업을 찾기 위한 항해를 계속하기 위해서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본다. 우리가 경험한 것은 무엇일까? 그동안의 과정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코로나 이전에 우리는 어떤 항해를 해왔던 것일까? 이 항해를 하면서 수업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었을까?
첫 번째 항해에서 나는 강의 콘텐츠를 제작하는 기술을 배웠고, 두 번째 항해에서 단방향 수업의 한계를 느꼈으며, 세 번째 항해에서 항로를 바꿔 온라인 피드백을 시도해보았고, 네 번째 항해에서 강의 콘텐츠와 피드백이 함께 하는 실시간 화상 수업을 시도했다. 새로운 상황은 새로운 기술을 요구한다. 그리고 하나의 기술만으로는 일상의 수업을 되찾기 어렵다. 코로나 이전에 우리는 이런 기술을 갖지 못했다. 만약 줌이나 구글 클래스룸 등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물론 다른 방법을 찾을 수도 있었겠지만 험난한 항해가 되었을 것이다. 이제 코로나가 끝나더라도 이 기술을 유용하게 쓸 방법을 찾을 것이다. 항해를 계속할 때 기술은 필요하지만 충분 조건은 아니다. 모험의 항해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나침반과 등대가 필요하다. 나에게 나침반은 어떤 수업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즉 수업에 대한 철학이다. 이 나침반은 새로운 상황에서도 방향을 찾게 도와주었다. 어두울 때 희망이라는 빛을 비춰 주었던 등대는 학교 안팎의 동료 교사들이었다. 코로나 항해에서 암초를 만날 때마다 동료들과 의논하고 서로의 해결 방법을 공유했다. 항해에서 실패는 자연스럽다. 길을 잃었거나 큰 암초를 만났을 때 좋았던 옛 시절을 그리워만 한다면 두렵고 괴로운 항해가 될 것이다. 나침반과 등대가 모험의 항해를 함께 할 것이기에 실패의 순간에서도 우리는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