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교육2022 겨울호(249호)

교과서 없는 수학 수업!
교육과정 만들고 실행하기

박정숙(양재고등학교, 수석교사)

교과서 없는 수학 수업!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2015 개정 수학과 교육과정은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과목명을 제시했고, 그중 한 과목이 바로 교과서 없는 <수학과제 탐구>이다. 과목명을 처음 들었을 때, ‘아, 교과서가 없으니 평소 수학 수업 시간에 할 수 없었던 활동들을 잘 녹여내면 어떨까?’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막상 <수학과제 탐구>의 모델 교과서를 만들라는 요청을 받았을 땐, 방법론에 불과한 성취기준으로 가득한 교육과정을 어떻게 모델 교과서로 구현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수학과제 탐구>의 영역은 단 두 개이다. ‘과제 탐구의 이해’와 ‘과제 탐구 실행 및 평가’로 되어 있고 각 영역의 내용이 적어 모델 교과서에 담길 내용이 충분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학습 방법 및 유의 사항’에 ‘적절한 탐구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라는 문장이 있어 탐구 유형에 따라 탐구 방법이 조금씩 다를 것이고, 이 부분을 탐구 유형에 따라 작성하면 분량이 어느 정도 나올 것 같았다. 따라서 탐구 유형을 문헌 연구, 사례 조사, 수학 실험, 개발 연구 등 네 가지로 구분하여 각각의 영역에 대해 ‘탐구 주제 선정하기 – 선행 연구 검토하기 – 탐구 수행·방법 선정하기 – 탐구 결과 정리 및 발표 – 반성 및 평가하기’의 절차에 따라 탐구 방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중심으로 서술하기로 했다. 그렇게 모델 교과서로 구현하고, 모델 교과서를 기반으로 핵심 교원 연수도 진행했으나 실제로 수업을 진행하려고 하니 연수한 내용만으로는 한 학기 분량의 내용 및 전체 평가 계획을 세우기가 쉽지 않았다.

<수학과제 탐구>는 기본적으로 수학을 중심에 두고 심층적인 수학 내용을 탐구하거나, 주변의 사물이나 현상을 수학적 원리로 해석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라 지필평가를 실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판단 하에 평가 계획을 세울 때 수행평가 반영비율 100%로 계획하였다. 하나의 보고서로 수행평가 100점을 주기엔 학생들에게 너무 부담될 것 같고, 실제로 고등학교 3학년이 배우는 수업이므로 수능 준비를 하는 학생에게도 도움이 되면서 대학을 수시로 진학하는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평가 계획을 만들고 싶었다.

수행평가를 기획하면서 가장 먼저 고민했던 점은 몇 가지 과제로 평가를 진행할까 하는 것이었고,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적을 양을 생각해서 4가지 또는 5가지 정도의 과제로 진행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판단했다. 여유 시간을 생각해서 포트폴리오와 총 5개의 과제를 3월부터 6월까지 진행하는 것으로 구성했다. 구체적인 과제의 내용과 평가 방법은 다음과 같다.

[<수학과제 탐구> 수행평가 내용 및 평가 방법]

문제 만들기

일반적인 수학 수업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수학자 칸토르는 “수학에서 문제를 출제하는 능력은 문제를 푸는 것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고 말한 바 있고, 2022년 필즈상을 탄 허준이 교수는 자녀의 수학교육법을 묻는 질문에 “아들이 만든 문제를 내가 풀어요.”라고 답변한 것처럼 문제를 만드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수학과제 탐구>에서 문제 만들기를 처음 과제로 시작한 이유는 학생들이 스스로 주제를 찾을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이다. ‘문제 만들기’의 5가지 과제를 차례로 진행하고 최종 과제까지 진행하고 난 후 학생들에게 배운 점과 느낀 점을 질문했더니 다음과 같이 답했다.

  • 평소에는 문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푸는 입장에서 수학을 대해 왔었는데, 문제 만들기 활동을 통해 수학 문제를 보는 시각을 새롭게 가질 수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개념을 수학 문제에 어떻게 적용해서 나타낼까?’ 와 같은 생각의 전환을 통해 수학 문제에 대해 더 다양하게 접근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 이 활동은 스스로가 문제 제작을 위한 기초 개념을 재확인하는 것과 모순되는 점은 없는지 스스로 검토하는 능력을 더욱 향상시켜준다. 때로 반신반의하여 응용했던 개념이 확실히 숙달되어야 문제를 만들 수 있음을 깨달았고 나에게 부족한 이해를 채울 수 있었다.
  • 문제 만들기를 여러 번 하면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곳에서 수학 문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수학을 실생활 곳곳에서 발견하고 그것을 문제로 만들면서 성취감을 느꼈다. 처음 할 때는 ‘이런 것들로 어떻게 수학 문제가 나오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여태 풀어왔던 문제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어서 신기했다.

‘문제 만들기’는 학생들의 창의성을 길러준다는 측면도 중요하지만, 기존에 알고 있던 수학 개념을 재확인하고, 다양한 곳에서 그 개념이 활용된다는 것을 알게 되며,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한 번 더 검토해본다는 메타인지 측면에서 더 중요해 보인다.

종이접기 속 수학 원리 탐구하기

두 번째 활동은 종이접기를 통해 수학적 원리를 탐구할 수 있도록 구성된 활동으로 ‘수학 실험’을 경험해 볼 수 있도록 기획한 활동이다. 종이접기를 하는 과정 속에서 기하 개념을 익히고 수식으로 그 결과를 증명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손으로 종이를 접는 과정 속에서 평소에 흥밋거리로 생각했던 취미 활동을 수학적 원리로 생각해 볼 수 있는 활동이다.

<종이를 접어 단 한 번 직선으로 잘라 한글 자음 만들기>

예를 들어, ‘한글 자음 만들기’는 색종이를 접어 단 한 번 직선으로 잘라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 내는 활동으로 대칭의 개념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활동이다. ‘정다각형 접기’, ‘별접기’, ‘선분의 등분’, ‘각의 등분’ 등은 종이를 접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왜 정다각형이 되는지, 선분의 각형의 일반적 원리에 대해 증명하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어 피타고라스 정리, 삼각함수, 미적분 등의 개념이 활용되었다. <수학과제 탐구> 수업이 끝나고 가장 인상적인 과제를 묻는 질문에 50%가 넘는 학생들이 ‘종이접기’를 꼽았다.

  • 수학을 종이접기에 접목했다는 것이 놀라웠던 한편 수업 내내 즐거움을 느꼈다. 후배들도 꼭 이 활동을 하면 좋겠다.
  • 종이접기 자체가 재미있었고 기하 실력을 올리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 종이접기를 해보면서 증명을 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종이접기 활동으로 삶의 활력을 얻을 수 있었고, 매일 기대가 되어 좋았다.

책 소개 카드 뉴스 만들기

세 번째 활동은 책 소개 카드 뉴스 만들기이다. 학생들에게 수학 교양 도서를 읽고 즐기는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개발된 활동으로, 문헌 연구를 대신할 만한 과제로 기획한 활동이다. 수행평가 중에 수학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게 하는 활동도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수학책을 읽고 무언가를 느낀다는 것이 쉽진 않았고, 학생들도 별로 의미 있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책을 읽고 정리할 기회를 제공하고, 친구들에게 책을 읽은 느낌을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이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수학 교양 도서를 소개해야 하고, 원하는 책을 고르는 작업이 미리 진행되어야 해서 서울형 독서기반 프로젝트 사업과 연계해서 목적사업비로 학생들에게 책을 사줄 수 있는 예산을 마련했다. 보통 5월에 이 활동을 한다고 하면 3월 말부터 4월 초에 학생들에게 읽을 책을 선정할 수 있도록 하고, 책의 목록을 정리한 후, 4월에 책을 구입한다. 구입한 책은 학생들에게 빌려주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다 읽은 책은 반납하도록 해서 남은 책은 다시 도서관에 비치하였다.

<『생명의 수학』을 소개한 카드 뉴스(2021년도 학생 작품)>

위 그림은 『생명의 수학』(저자: Ian Stewart)을 읽고 만든 카드 뉴스이다. 카드 뉴스는 컴퓨터실에서 만들도록 하고 기간은 3일 정도 주는데 매시간 학생들이 어느 정도를 완성하길 바라는 마음에 그 시간 동안 만든 카드 뉴스를 패들렛에 올려두게 했다.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은 한 과제 당 3줄에서 4줄 정도 작성했는데 어떤 책을 읽었는지 제시하고, 카드 뉴스의 특징, 학생이 만든 과제의 장점 등을 서술하였다. 카드 뉴스 과제에 대한 학생들의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예시는 다음과 같다.

  •  『생명의 수학』을 읽고 생물과 수학의 만남을 각 장마다 적절한 이미지, 글, 폰트를 활용하여 각 장을 주제에 맞게 완성도 있고 절제된 문장으로 담아 멋지고 인상깊은 카드 뉴스를 완성함. 시각적으로 가장 카드 뉴스답게 디자인되었으며, 이미지와 글의 내용이 조화를 이룸.
  • 『n분의 1의 함정』을 읽고 일상생활에서 효율적인 전략을 찾는 게임이론을 흥미롭게 설명하는 카드 뉴스를 완성함. 각 장마다 눈에 띄고 귀여운 아이콘을 잘 활용하여 친구들이 호기심을 가질 수 있도록 구성함.
  • 『수학이 불완전한 세상에 대처하는 방법』을 읽고 코딩이론을 체험하며 세상의 불완전성을 설명하는 도구도 수학임을 적절한 이미지와 잘 정리된 글을 활용해 카드 뉴스로 만듦.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문구를 서두와 마무리에제시하고, 한정된 카드 개수에 책의 핵심적인 부분을 잘 담아내며 완성도 높은 작품을 창작함.

사회현상 분석 보고서 쓰기 

마지막 과제는 <수학과제 탐구>라는 과목의 특징을 살릴 수 있는 보고서를 쓰는 활동이 포함되어야 할 것 같아 보고서 쓰기를 넣었으나, 고3이라는 제약 조건이 있어 데이터를 좀 쉽게 구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학생들이 관심 있는 어떤 현상에 대한 데이터를 직접 생성하고, 시각화된 자료를 통해 결과를 도출하여 그 과정을 보고서로 작성하는 프로젝트 활동으로 ‘사례 조사’를 대신할 만한 활동이 될 수 있도록 기획하였다. 국가통계포털, 구글 트렌드, 빅 카인즈와 같이 검색어를 입력하면 바로 원하는 기간에 해당하는 데이터를 검색할 수 있고, 관련 데이터로 그래프를 그려주는 빅데이터를 다루는 사이트를 활용하여 우리 주변에 있는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그 결과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에 대해 탐구하도록 했다.

한 학생은 ‘다양한 사회 현상을 살펴보고 선정하는 것부터 결론을 도출하기까지 수학적 관점과 안목을 발휘하여 생각함으로써 사고력을 넓힘과 동시에 수학적으로 사회 현상에 접근해보는 좋은 기회였다. 또한 알고 있었던 빅데이터를 실제로 탐구에 활용해 볼 수 있어 뜻깊은 기회였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책 소개 카드 뉴스 만들기’처럼 모든 수업은 컴퓨터실에서 과제를 진행하였고, 구글 트렌드와 빅 카인즈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자료를 검색하고 그 결과를 올리는 패들렛과 보고서를 써서 그 결과를 올리는 패들렛 두 가지를 활용하여 학생들의 작품을 수집했다.

학생들에게 <수학과제 탐구> 수업이 끝나고, ‘수학과제 탐구 과목은                       이다.
그 이유는                                      이다.’를 쓰게 했더니, 다음과 같이 소감을 적어주었다.

  • 수학과제 탐구 과목은 오아시스이다. 그 이유는 외로운 자습 속에서 쉴 수 있었던 시간이기 때문이다.
  • 수학과제 탐구 과목은 쉼터이다. 그 이유는 다른 교과 수업들과 달리 비교적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고, 빠른 시간 안에 해결해야 하는 강박에서 벗어나 조금은 여유롭게 활동하여 쉼터에서와 같이 잠깐 쉬어가며,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수학과제 탐구 과목은 진짜 수학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 이유는 수업 시간에 개념을 배우고 문제를 풀었던 것에서 더 나아가 계속해서 수학적 사고를 활용한 활동들을 했기 때문이다.
  • 수학과제 탐구 과목은 입시 생활의 쉬는 시간이다. 그 이유는 입시를 잠시 잊고 수학이라는 학문 자체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 수학과제 탐구 과목은 색안경이다. 그 이유는 일상에 보이는 사물의 색을 다르게 보여주는 색안경처럼 일상 속에 있던 수학을 새롭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수학과제 탐구>라는 과목은 과제의 유형 및 운영 방법에 따라 학생들의 경험, 그리고 만족도가 다를 수밖에 없는 과목이다. 교과서가 없는 과목은 교사에게 많은 자유를 주기도 하지만 그만큼 책임도 많이 부과되기에 교사의 많은 준비가 필요한 과목이기도 하다. <수학과제 탐구> 과목을 2021년도와 2022년도 2년 동안 운영했는데, 2022년도는 2021년도 학생들의 작품을 예시로 삼아 학생들에게 과제의 방향을 알려줄 수 있어 시행착오를 많이 줄일 수 있었다. “올해 학생들은 작년보다 못한 것 같아.”라는 말은 작년 학생들의 작품을 올해 학생들에게 피드백 자료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매년 학생들의 과제를 정리하고 분석해서 다음 해 학생들의 예시 작품으로 사용한다면 점점 더 학생들에게 적합한 과제를 개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수학과제 탐구>는 교과서가 없다. 다시 말하면 방송 대본 같은 것이 없는 과목이다. 그렇다고 교사가 구성하는 모든 과제가 다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 기준을 어떻게 잡는 것이 좋을까? 모델 교과서를 쓸 때, 과목의 필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를 언급하고 시작했었다.

첫째, 주어진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둘째, 단기간의 문제 해결이 아닌 하나의 문제에 대해 장기적으로 일련의 체계적 절차를 통하여 탐구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셋째, 친구들과 함께 탐구를 진행하며 서로 배려하고 협력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수업과 평가로 기획한 활동이 세 가지 필요성과 잘 맞았는지 돌이켜보면 가르친 학생들이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제약이 있지만 어느 정도 만족시켰다라고 평가하게 된다. 아쉬운 점은 학생의 평가 부분이다. 평가 기준으로 세운 것이 정성적 지표보다 객관적 지표가 대부분이라 전체적 완성도보다 칸을 채우면 된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다는 점이 아쉽다. 기회가 된다면 좀 더 다양하고 탐구다운 탐구를 할 수 있는 활동으로 기획하고 싶다. 앞으로 좀 더 다양한 평가 방법을 사용해서 생각하는 수학 수업이 일상적인 수업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