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민(순천향대학교, 교수)
Ⅰ. 들어가며
우리나라에서 프랑스 사례의 소개는 드문 편이다. 무엇보다 언어 장벽이 만만치 않고, 서로의 역사와 문화, 가치관과 의식의 차이가 작지 않아서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나라와 비교해 프랑스 사례는 여러 부문에서 상대적으로 널리 소개되지 못한 편이다. 설사 있다 해도 일부에 제한돼 소개에 머물거나 기껏해야 한국과의 단순 비교에 그치기 일쑤였다. 교육과 복지 분야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교육정책과 복지정책 일반에 대한 소개는 있지만 대부분 단편적인 소개에 머물렀다. 2000년대 들어와 교육출발점 불평등 해소를 위해 학교 중심 네트워크를 구축해 성장세대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인식과 실천이 확산되면서 영국과 함께 프랑스 사례가 모델로 제시됐지만(한만길, 2000; 이혜영·류방란·윤종혁·천세영, 2002), 구체적인 소개와 시사점 제공은 조발그니(2005)에 의해 이루어졌다. 1990년대 말 IMF 관리체제 이후 빈부격차가 심화되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해 당시 우리나라는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지원사업(지금은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으로 명칭을 변경)을 추진하면서 계획수립 단계부터 영국의 EAZ(Education Action Zone, 이하 EAZ)와 프랑스의 ZEP(Zone d’Education Prioritaire; 이하 ZEP)를 선진모델로 삼았지만, 심층 소개는 2005년에 비로소 이루어진 셈이다. 이후 ZEP에 대한 연구는 정부출연 연구기관과 시·도교육청 등 사업 운영주체와 일부 학자들에 의해 간간히 소개되어 왔다(이혜영, 박재윤, 황준성, 류방란, 장명림, 이봉주, 2006; 이영란, 2010; 2013; 김민, 2015a; 2015b; 박용주, 2016). 구체적인 지역네트워크 관련 사례는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소개됐는데, 프랑스의 우선교육정책과 도시개발정책(La Politique de la ville)과의 협업장면이라 할 수 있는 ‘학교중심 지역 내 다자간 교육협력 네트워크’ 분석에 논의가 모아졌다(이영란, 2016a; 2016b; 2016c; 이영란, 김민, 2017).
프랑스의 교육정책은 원칙과 기본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양육 특성과 사회 분위기, 그리고 프랑스의 공화주의 철학과 밀접하다. 기본적으로 프랑스의 청소년 교육은 가정에서 시작해 학교에서 본격화되며, 지역 내 다양한 자원은 가정과 학교의 보완재 역할을 하는 것으로 자리매김 된다. 이 과정에서 교육은 공공재로서의 성격을 명확히 하고 있고, 학교와 지역 내 자원들은 이를 지원하기 위한 교육협력의 당사자로서 그 역할과 책임을 다하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교육협력의 주체들을 지지하는 책무를 담당한다. 이렇게 각자의 역할을 효율적으로 분담하는 프랑스 사례에 대한 연구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강조되는 마을교육공동체 담론 형성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김민, 2017; 이영란, 2018). 특히 포스트 코로나19 상황에서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프랑스 사례가 함의하는 시사점은 결코 작다고 볼 수 없다.
Ⅱ. 프랑스의 교육정책: ‘학업성공’과 ‘교육성공’
프랑스 교육정책은 국가이념과 맞닿아 있다. 이 말은 사실 중요하다. 이는 정부(정권)의 부침과는 상관없이 교육의 기본이념과 기능이 절대 가치를 갖고 있다는 의미이며, 동시에 국가 구성원 곧 시민이 합의하고있다는 뜻이고, 교육장면에서 이러한 이념의 실현은 국가가 응당 해야 할 책무임을 뜻하기 때문이다(김민, 2017). 주지하듯 프랑스의 국가이념은 공화주의 국가철학이다. 이는 오늘까지 프랑스 교육정책을 이루는근간이자 핵심으로 프랑스의 교육정책은 곧 공화주의 시민정책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공화주의 시민정책을 구현하는 학교는 공화주의 국가철학의 핵심인 자유와 평등을 실천하는 인권현장이자, 시민사회의 발전을 이끄는 교육현장이며, 사회적 권리와 의무를 일상에 적용시킬 수 있는 삶의 현장이다.
프랑스의 교육 목표는 공화주의의 가치, 즉 모든 이의 인권과 평등권을 실현하는 데 있기에 프랑스 교육정책에는 시민권과 기회평등의 가치를 우선하고, 교육정책과 사업의 핵심은 결국 모두의 학업성공(R′eussite scolaire)을 기초로 한 교육성공(R′eussite ′educative)을 지향한다.1 따라서 프랑스 교육정책의 목표는 교육을 받는 모든 이들이 프랑스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하고 또 합류할 수 있도록 교육출발점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데 있다(Dubreuil, 2001).
1. 우선교육정책(REP)의 교육네트워크
프랑스의 교육정책은 시민권과 기회평등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소외계층을 위한 교육지원만이 아닌, 도시개발정책과 연계해 지역사회의 개발에도 목표를 두고 있다. 이는 지속가능한 교육성공을 위한 것으로, 학교에서의 성공(학업성공)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학교와 지역사회가 협업을 통해 성장세대가 건강한 시민으로 프랑스 사회에 안착하도록 지원하는 데(교육성공) 있기 때문이다. 즉, 학생 개인의 변화만이 아닌, 학생과 가정, 그리고 지역사회의 변화까지 견인함으로써 빈곤과 불평등의 악순환, 그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랑스의 교육정책은 ‘교육부’는 물론 ‘보건·청소년·체육·일상연합부’, ‘도시 정책·주거부’, ‘노동·사회관계·가족·사회연대부’ 등 부처 간 상호협력하는 정책의 성격을 띤다. 이런 성격을 띠고 있는 대표적인 프랑스 교육정책은 크게 우선교육정책, 대도시취약지역정책, 교육지원 프로그램 정책 등이 있다(김민·이영란, 2020: 120). 이 중, 교육부가 주축이 되어 네트워크를 구축해 학교와 다양한 지역사회기관들이 교육협업을 하는 정책이 우선교육정책(Politique des R′eseaux d’Education Prioritaire, 이하 REP)이다. REP는 프랑스 교육정책 중 “네트워크(R′eseaux, 레조)를 구축하여 ‘우선적이고 부가적인 지원’(accompagnements prioritaires et suppl′ementaires)을 통해 부족한 곳에 더 많은 것을 제공한다(Donner plus ′a ce qui ont moins).”는 모토로 추진되는 대표적인 정책이다. REP는 정부가 선정한 특정지역의 유치원과 초·중등 교육기관을 연계시켜 낙후된 환경으로 인해 교육기회와 여건이 열악한 학교들을 기본 네트워크 단위로 구축하고(1차 교육연계망), 이런 학교단위 집합체와 지역 자원들을 2차로 구축하여(2차 교육연계망), 지역 내 청소년들이 학업성공과 궁극적으로는 교육성공에 이르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대상학교 간 네트워킹 체제인 1차 교육연계망은 <그림 1>과 같이 거점 중학교를 중심으로 4~5개의 초등학교가, 또 그 안에 다수의 유치원이 초등학교 연계망에 포함되는 형태로 되어 있다. 학교집합체로 구축되어 기능하는 우선교육네트워크는 교육지원의 우선성에 따라 좀 더 심각한 지역을 REP+(R′eseaux d’Education Prioritaire+), 심각성은 낮지만 우선적인 교육지원이 요구되는 지역인 REP로 구분된다. 2015년 우선교육정책 재설립 법안 시행 후 2019~2020년 학기 현재 363개의 REP+와 730개의 REP 등 총 1,093개의 우선교육네트워크가 운영되고 있으며, 여기에는 프랑스 전체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의 18%, 중학생의 20.5%가 참여하고 있다.
1차 교육연계망은 학교급 간 네트워킹을 통해 상호 교육지원을 극대화하고 이를 통해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로의 상급학교 진학을 도우며, 나아가 중학교 이후 기술 및 실업교육을 위한 특성화고 혹은 인문계고 진학을 지원하는 등 학업성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 2차 교육연계망2은 <그림 2>와 같이 학교(1차 교육연계망)를 중심으로 지자체, 공공서비스기관, 민간기관 등과 2차 교육네트워크를 구축하여 다자적인 교육협업을 추진하여 교육성공을 목표로 삼고 있다. 따라서 REP는 학교를 중심으로 1차 교육네트워크를 구축하여 학업성공을 목표로 삼되, 2차 교육네트워크 역시 구축함으로써 교육취약지역에 교육 인프라를 확대하여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이를 통해 지역 간 교육 불평등 해소와 교육효과를 극대화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교육성공의 달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2. 우선교육정책의 특징
1) 학생의 ‘교육성공’을 강조하고 협력하는 국가
프랑스에서 교육은, 시민이라면 모두가 평등하게 누려야 할 권리이자 국가가 시민에게 당연히 제공해야 하는 공적 서비스이다. 교육을 주무하는 부처는 교육부지만, 교육이란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결국 ‘정부’, 곧 국가이다. 학업성공은 학교와 교육부의 책무이지만, 교육성공은 결국 지역과 사회를 아우르는 즉, 국가의 몫이란 의미이다.
REP를 비롯해 대표적인 교육복지정책에는 대도시 취약지역정책(Zones Urbaines Sensibles, 이하 ZUS)과 교육성공 프로그램(Programme de R′eussite Educative, 이하 PRE), 위기학생 특별지원 네트워크(R′eseaux d’Aides Sp′ecialis′ees aux El′eves en Difficult′e, 이하 RASED) 등이 꼽힌다. ZUS는 대도시 주변도시 중 사회환경이 낙후된 곳에 우선 인프라를 구축하고 청소년 진로개발, 청년고용 및 취업 촉진을 추진하는 사업이다. 교육부가 아닌 도시정책부·주거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해 추진한다. PRE와 RASED는 REP와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정책이자 사업이다. PRE는 노동·사회관계·가족·사회연대부와 지자체가 하는 교육성공 정책으로, 모든 학생이 학습인지와 학업능력의 기회를 균형 있게 갖춰야 한다는 취지로 시작되었다(프랑스 노동, 사회관계, 가족, 사회연대부, 2006). RASED는 1989년 교육오리엔테이션법(La loi d’orientation sur l’′education)에 근거해(프랑스 의회, 1989), 신체장애 등의 어려움에 처한 학생이 상담 및 특수교사 등에 의해 보편적인 돌봄과 지원을 받도록 해 중도탈락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학업과정을 마치도록 하기 위한 사업이다(프랑스 고용-사회연대, 주거부, 1990).
REP는 물론이고 ZUS, PRE, RASED 등의 사업 추진에서 교육부와 다른 부처 간에는 긴밀한 상호 연계와 협력이 이루어진다. 부처들은 사업별로 실무수준의 협력을 통해 네트워크를 추진한다. 특별히 법령에 근거한 기구가 없이 중앙부처는 국장급에서, 현장은 1, 2차 교육연계망 내 추진기구인 우선교육조정위원회와 같은 기구(우리로 보면, 시·도교육청 단위에 이를 설치한다.)에서 실질적 책임을 갖는 인적자원들이 연결되어 사업을 추진한다. 특히 우선교육정책이 다루고자 하는 대상은, 단순히 청소년 개인의 문제 혹은 학교교육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사람과 사회의 문제란 점에서 관-관 간의 네트워크가 작동한다. 이는 우선교육정책을 바라보는 프랑스 정부의 관점과 밀접하다. 즉, 학생의 학업성공이 교육성공까지 견인해야 비로소 정책이 성공한 것으로 보는 시각, 그리고 교육성공에 이르는 제반과정에서 요구되는 각종 공적 서비스들이 서로 네트워킹해 그 역할을 제대로 또 효율적으로 기능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청소년 시민(Civic Youth)에 대한 부처들의 고유한 책무라는 관점과 연결된다. 예컨대 REP+나 ZUS의 경우, 학생들의 직업교육 및 취업을 지원하기 위해 노동·사회관계·가족·사회연대부가 주무하거나 연계하고 있고, 도시주거환경 정비 및 지원을 위해 도시정책·주거부와 데파트멍(시도), 혹은 코뮌(가장 작은 기초행정단위/읍면동)이 협력하며, 청소년의 건강과 문화적 결손예방을 위해 보건·청소년·체육· 일상연합부와 문화·커뮤니케이션부가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2) 학교교육을 정상화시키는 정책이 교육복지라 믿는 교육주체들
프랑스에서 교육복지란 말은 생소하다. 한국에선 교육복지란 말 자체가 함의하는 뜻이 다양하지만, 프랑스에서 교육복지는 교육 본연의 의미 혹은 기능을 말한다. 즉, 한국의 교육복지란 용어가 상징하는 개념과 의미,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과 시도로 학교와 학교, 학교와 지역사회 간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네트워킹하는 행위와 전략들이 프랑스에선 교육이란 범주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기본 행위로 간주된다. 프랑스에서는 우선교육정책 자체가 학교교육을 정상화시키는 정책으로 보고 있고, 이 점에서 교사들은 물론이고 학교 밖 관계자들도 적극 공감하고 있다. 즉 소외계층 및 사회적 배제 경험을 갖는 아이들 – 예를 들면 프랑스어를 가정에서 사용하지 않는 이주민 아이들, 학력이 매우 낮은 아이들, 가정형편으로 인해 정상적인 학교교육을 따라가기 어려운 아이들 – 에 대한 책임은 기본적으로 가정과 학교에 있다고 본다. 가족의 일차적 지원이 취약한 아이들과 문화적응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학교는 특별히 더 집중해야 하며, 이들에 대한 교육적 책무는 학교 구성원들 모두에게 있다고 믿는다.
불리한 여건을 갖고 있는 학생들에게 좀 더 좋은 교육환경과 조건을 마련해 이들이 갖고 있는 어려움을 교사와 학교가 함께 해결하는 행위 역시 교육의 기본행위로 보고 있기 때문에, 우선교육의 핵심 인력은 교사 자신이다. 따라서 우선교육정책은 대상학교 교사들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데 집중하고 학생의 성장에 따라 학교급 간 교사 연계에도 초점을 맞춘다. 아울러 이런 학생들이 학교만의 힘으로 학업성공과 교육성공을 취하기 어렵다고 생각될 때에는 지역사회 유관기관들의 다자간 협력이 이루어진다. 이른바 2차 교육연계망의 작동이다. 한편, 우선교육정책의 경우 프랑스 교육부가 지역교육청에 예산을 배정하지만 유치원과 초등학교는 별도의 예산이 없다. 우선교육네트워크의 중심축, 허브라 할 수 있는 중학교에만 예산이 배정되고교사에게 직접적으로 지급되는 보상성 경비는 약간의 수당(월 200유로 정도)만 있다.
3) 효과적이고 유연한 학교급 간 교육협력
우선교육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학교교육과정에 녹아 있다. 우리도 교육복지사업 대상학교에서 교육과정과 연계하자고 강조하지만, 이를 별개 사업으로 간주하거나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프랑스 REP 프로그램 대부분은 교육과정과 연계되어 있다. 이유는 명쾌하고 단순하다. “학교교육과정도 어려워하는 아이에게 따로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것은 비효과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대신 이들에게는 특별한 수업전략과 방법을 택한다. 모국어인 프랑스어를 가정에서 사용하지 않는 아이들 대부분은 학교에서 비로소 프랑스어를 배운다. 이들에게는 특별한 교육과정이 요구되는데, 유치원에서는 놀이를 통해서, 초등학교에서는 그런 학생들을 모아 교과에 따라 합반과 분반의 형태로 수업이 이루어진다. 우선교육정책 대상학교는 한 클래스 당 25명 이내가 기준이며 통합수업의 규모는 더 작다. 중학교의 경우, 융합수업은 반 정원의 절반 인원(11명~12명)으로 개별지도가 가능한 밀착수업으로 진행하도록 권고한다. 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애써 가르쳐도 하교 후 집에 가면 프랑스가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주민 가정의 경우에는 보호자 대상 프랑스어 교육을 학교나 지역사회 기관에서 실시한다.
학교급별 교사 협력이 긴밀한 것도 큰 특징이다. 유치원 원아들은 인근 초등학교로 진학하기에 유치원부터 초등학교와 연계해 공동사업을 기획·운영한다. 특히 매 학기말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사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토론한다. 유치원 교사들은 매 학기 초등학교 교육과정을 소개받고, 변화된 교육과정이 있거나 유치원과정에서 필요한 교육과정이 있다고 판단하면 초등학교 교사들과 협력해 필요한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초등학교 교사들 역시 가족과의 긴밀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유치원 교육 특성상 다음 학기에 진학하는 신입생의 가족환경 등, 소개받아야 할 원아들에 대해 유치원 교사들로부터 전달받고 지금까지 가정과의 소통과 협력을 어떻게 해 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논의한다. REP+의 경우 프랑스어, 수학, 과학 세 과목의 경우에는 중학교 교사가 정기적으로 초등학교에 파견되어 직접 수업을 진행한다. 이때 초등학교 교사는 보조교사가 되어 함께 수업에 참여한다. 이와 같은 학교급 간 교사 연계협력은 2006년부터 시작했고, 대부분의 REP+ 지역에서는 중학교 프랑스어 교사 2명과 수학 교사 1명이 한 초등학교에 와서 일주일에 1시간 반씩 수업하는 등 초등학교에는 일주일에 9시간, 중학교에서도 9시간, 평균 총 18시간 수업을 진행한다. 중학교 교사가 초등학교 수업에 참여하는 이유는 중등 교과담당 교사로서의 전문성을 이들 취약집단 학생들에게 효과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이같은 수업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교사들과 학교급 간의 팀워크와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교사들의 교수역량은 수업을 성공적으로 진행시키는 핵심 요인이 된다. 교사들 간의 협력에는 지역 교육네트워크 조정자(시·도교육청 소속)의 역할이 중요하다. 모든 학교급/교사들 간의 회의에는 네트워크 조정자가 의무적으로 참여한다.
한편, 유치원부터 시작하는 교육 출발점 평등을 강조하는 것도 염두에 둘 만하다. 우리나라는 초·중등학교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상대적으로 유치원에는 그만큼의 비중이 실리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프랑스는 교육 출발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유치원 역시 초·중등교육만큼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 우선교육 대상 유치원의 경우, 만 3세 원아를 저녁 6시 반까지 돌보는 –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종일반 – 을 반드시 두어야 한다. 물론 이곳에서도 유치원 수업은 4시 전에 종료한다. 종료시간은 요일마다 다른데, 만 3세 원아를 둔 맞벌이 가정을 위해 수업종료 후에도 부모가 올 때까지는 유치원에서 종일반을 운영하도록 되어 있다.
4) 교육지원인력의 배치와 네트워크 조정자의 역할
REP 대상 학교에는 교사 외 교육지원 인력들이 많다. A중학교의 경우 전체 학생 500명 남짓한 가운데 교사는 45명이다. 교사 외에 15명의 보조교사와 보조 인력들이 상주한다. 여기에는 보조교사 3명을 포함해 상담사, 간호사, 학교사회복지사 등이 포함된다. 교사 중에는 교과를 담당하지 않고 대상 학생들만 전담하는 교사3가 있다. 학생 및 학교의 특성에 따라 시의 공무원이 학교에 상주하면서 시와 학교 간 연계와 협력을 지원하기도 한다.
REP+의 특징 중 하나는 1차 교육연계망이 활성화된 곳이 2차 교육연계망도 활성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우선교육정책의 네트워킹에 있어 학교 간 연계가 우선하며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학교 간 연계는 물론이고 학교와 지역 간 네트워크의 관계에서 각 기관의 이해가 상충하고 사각지대의 발생 및 중복지원의 우려를 조정하기 위해 REP는 네트워크 조정자(우선교육 코디네이터, networker)를 활용한다. 이 네트워크 조정자는 교사경력과 교원 신분을 갖춘 교직경험이 상당한 교사가 담당한다. 네트워크 조정자는 교사이지만 교과를 담당하지 않으며 전적으로 대상학교 혹은 학교와 지역사회를 연계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아울러 시청은 도시 및 지역개발관련 공무원을 네트워크 조정자와 함께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REP의 핵심기능 중 하나인 지역사회 네트워킹의 활성화가 이루어지도록 지원한다.
흥미롭게도 네트워크 조정자들은 비슷한 경력을 갖고 있다. 평범한 현직 교사경력으로 시작했다가 어떤 특별한 계기로 우리 식의 대안학교나 학교폭력 전문 대처학교 등에 교사로 근무했고, 다시 REP 네트워크 조정자로 이동한 경우가 많다. 이들은 네트워크 조정자로서 갖추어야 할 역량으로 아이들과 소통을 잘 해야 하고, 교사·학교와도 소통은 물론 설득 기술도 필요하며, 무엇보다 지역 내 다양한 기관과의 네트워크 역량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네트워크의 힘은 REP의 원동력이다. 공적 기관 간의 연계는 물론이고, 민간기관과의 연계와 협력을 통해유관기관들은 학생을 향해 힘을 모으고 또 각자의 역할을 배분하는 형태로 네트워크를 구축·운용한다. 프랑스의 네트워크의 방향과 목표는 뚜렷하다. 그것은 아이들의 교육성공이다. 교육성공을 위해 지역이 학교와 힘을 합치는 것이다.
Ⅲ. 프랑스 사례가 주는 시사점
이상의 프랑스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정부 간 연계와 협력이 유기적이고 긴밀하다는 점이다. 특히 지역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의 효율적인 추진과 관련해 민-관 간의 거버넌스도 중요하지만, 정부 부처 간, 그리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이른바, 관-관의 협력이 긴밀히 작동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자못 크다. 이들 공공기관은 사회적으로 불리한 여건에 있는 아동과 청소년은 물론, 이들의 부모와 가정의 소득 증대, 지역사회의 교육 및 사회여건 개선에 이르기까지 학생의 성장지원 환경을 총체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협력한다. 이는 민-관 간의 거버넌스 기반이 곧 관-관 사이의 협력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교육부가 주도하는 미래형 교육자치 협력지구(교육부, 2019), 학생맞춤 통합지원체제 구축사업, 여성가족부가 주도하는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활용한 청소년 성장지원정책 추진체계 등에 주는 시사점을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둘째, 프랑스 교육정책의 구심점은 학교다. 학교라는 일차적 교육 공공기관의 역할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지역사회 네트워크가 정상적으로 구축되고 상호 협력과 네트워킹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과 합의도 적잖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마을이 학교다’라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학교가 학교다움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학교다운 마을’이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우선교육네트워크를 일러 ‘학교교육을 정상화시키는 것’으로 믿는 교육주체와, 아이들의 교육성공도 기본적으로 학업성공이 이루어진 다음에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마음의 밑바탕에는 학교부터 제기능을 발휘해야 한다는 기대가 자리잡고 있었다. 특히 청소년들의 성공적인 지점을 학업성공과 교육성공을 나누어, 학교에서는 일차적으로 학업성공에 초점을 맞춰 학교급간 연계에 주력하고, 학업성공에 더해 아이들의 교육성공을 목표로 삼는 다양한 지역사회 내 교육주체들 간의 네트워킹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고는 매우 인상적이었고 체계적이었다.
셋째, 지역사회 내 중층적인 연계망을 실질적으로 조정하고 연계하는 실무인력의 역량은 네트워크의 성장과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학교 간 연계는 물론이고 학교와 지역 간 네트워크 관계에서 각 기관의 이해가 상충하고 이를 조정하기 위해 네트워크 조정자를 활용한다. 유능한 네트워크 조정자는 어렵게 구축한 우선교육 네트워크의 기능을 활성화시키고 그 효과를 증진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반면 우리는 이런 네트워크 조정자의 역할을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의 경우에는 민간 전문인력을 투입하여 대신해 왔다. 학교 현장과의 긴밀한 연계 조정사무도 이들에 맡겼지만 이들의 신분과 역할은 모호했고 확실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실효성 있는 네트워크 조정자의 배치와 양성을 향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Ⅳ. 나가며
프랑스의 REP는 성장세대를 위한 학교 안 교육지원에 한정하지 않고 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도와 시민으로 성장케 하여, 결국은 교육이 사회 불평등의 악순환을 끊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는다. 학교 학생의 학업성공, 즉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REP의 핵심 목표 중 하나이며 동시에 1차 교육연계망의 목표이다. 그리고 이 목표는 REP의 가장 기본이 되는 목표이기도 하다. 특히 학업성공은 출발점 평등과 밀접하여 생애 초기부터 개입하여 성장세대의 문제를 해결하고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아울러 교사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은 학생의 학업성공을 이끌기 위해 학생을 중심에 두고 서로 협력하고 지원한다. 하지만 프랑스의 REP는 근원적인 문제에도 천착하고 있다. REP는 학생의 학업성공만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지 않고 학생 성장여건의 불리함을 해결하고자 그 목표를 연장하고 있다. 바로 교육성공이다. 따라서 REP는 열악한 교육여건과 학습여건의 개선은 물론이고, 학교가 중심이 되어 지역사회와 연계하여 다양한 교육협력을 꾀함으로써 불리한 여건에 처한 성장세대와 그 가족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모색하려는 성격을 가진다. 이것이 2차 교육연계망의 핵심 목표이다.
최근 우리나라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교육과 사회 양극화가 심화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이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공교육 정상화와 미래교육의 대안으로 교육공동체에 대한 관심도 실천적인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다양한 교육협력 기관들과 함께 성장세대를 위한 교육공동체를 구축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프랑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프랑스 사례와 비교해 살펴보면 지향점도, 운영방식도 다르다. 무엇보다 정권의 부침에 따라 교육의 이념과 실천이 좌우되지는 않는지, 현재가 아닌 미래를 지향하면서 큰 그림과 계획을 수립하고 그에 따라 차근차근 실천하고 있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REP가 극복하고자 하는 대상은 단순히 학생의 낮은 학업성취수준이나 열악한 학교환경개선이 아니다. 제공하는 것도 기대하는 것도 단순히 빈곤가정 학생들을 위한 시혜적 차원의 서비스나 사업도 아니다. 그것은 빈곤의 악순환, 마치 풀기가 쉽지 않은 고르디안 매듭(Gordian Knot)과 같은 그 고리를 교육을 통해 끊고 단절하고자 하려는 교육적 의지이다.
- 학업성공과 교육성공은 프랑스 교육정책을 이해하는 핵심어이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갖는다. 먼저 ‘학업성공’이 학업을 성공적으로 종료하여 국가가 수여하는 학위(졸업장)를 받는 것이라면, ‘교육성공’은 학업성공을 포함해 학생 개인에게 학교와 지역사회가 적극 개입해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둔 개념이다. 교육성공은 균등한 교육기회의 조건 하에 모든 청소년에게 평등한 교육여건을 제공하여 학업성공에 이르게 하고, 프랑스 사회에 건강한 시민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 CAF는 ‘가족수당기금’(Caisse d’Allocation Familiale)으로 1945년 프랑스 건강보험공단(La Se′ curite′ Sociale francaise, SECU)과 함께 설립 된 사회기관이며 시민들의 건강한 가족생활(출산, 육아, 교육 및 주거 등)을 지원한다. CMPP는 ‘보건심리교육센터’(Centre Medico-Psycho-Pedagogique)를 말하는데, 이 센터는 청소년의 정서·심리치료 및 정신의학적 서비스까지 포괄하는 의료기관이자 교육기관이다. 1963년에 시작된 CMPP는 1965년~1980년 사이에 프랑스 전역에 걸쳐 집중적으로 설립되었다. CMPP는 ‘특별돌봄과 가정방문서비스’(Service d’Education Spe′ ciale et de Soins a′ Domicile, SESSAD)와 연계해 운영된다. 이른바 ‘맞춤형 돌봄지원 방문서비스’로 불리는 이 네트워크는 사회연대·보건·여성신장부가 주관하며, 다양한 원인에 기인하는 문제로 인해 공공기관을 활용할 수 없는 청소년과 가족을 위해 전문가들이 대상자를 찾아가는 방문서비스를 수행한다.
- 프랑스 교육부는 2003년 학교폭력예방 및 학교생활지도를 담당하는 독립교원(Conseillere Pedagogique et Educatif. CPE)의 배치 계획을 수립해 현재 실시하고 있다. CPE는 2003년 4월 30일자 법령으로 통과되어 모든 초중등학교에는 의무적으로 상주해 근무하고 있다(프랑스 교육부, 2003). 이들은 교원의 지위를 갖고 있으며 교과전담교원이 아닌 학생의 생활지도를 전담하는 교원이다. 모든 교과전담교사는 CPE로 전환할 수 있으며, CPE에서 다시 교과전담교사로 전환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