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나경(윤중중학교, 전문상담교사)
아무도 모르는! 아이의 마음이라는 세상!
부모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자녀의 마음 때문에 답답해한다.
“우리 애는 다 모른대요!”
“힘든 이유를 물어보면 ‘그냥’이라고 말해요!”
“걔가 이러는 거 저를 골탕 먹이려는 것 같아요!”
“모른다고 하면서 나를 이겨 먹으려고 해요!”
“자기 마음을 자기가 알지 누가 아나요! 그런데 화만 내요!”
부모가 자녀의 어려움을 함께 해결하고자 무엇이 힘든지 자녀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아이는 “그냥”, “몰라”, “짜증나”로 답변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한다. 이러면 부모는 정말 화가 나고 답답하다. 앵무새처럼 “그냥”, “몰라”, “짜증나”로 말하는 자녀 때문에 울화가 치밀고, 때로는 골탕먹는 기분이 들어 괘씸하다. 같이 살고 있는 부모도 아이 때문에 답답한데, 아이가 싫어하는 공부를 가르치고,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지도하는 교사는 더 답답하다.
내 마음이지만 알 수 없는 아이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공부를 못하고 싶은 학생은 없다. 그리고 부모와 싸우고 싶은 자녀도 없다. 정말 아이들은 자기가 왜 힘든지 모르기 때문에 “몰라”라고 이야기한 것이고, 짜증이 그냥 나기 때문에 “그냥!” 이라고 말한다.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힘든지, 어떻게 해야 방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아이도 답답하고 괴로워한다. 내 마음인데 자신도 도대체 알 수 없는 아이의 답답함을 이해하는 것에서 상담은 시작한다.
“요즘 학교생활은 어떠니?”
“몰라요. 짜증나.”
“뭔가 안 풀리는데 그게 뭔지 모르니까, 짜증나고 답답하구나.”
“너무 답답하고 힘들어요.”
답답한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어야 그때부터 대화가 가능하다. 이건 부모도, 교사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마음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이들
SNS로 자신의 입장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은 편하다. 이모티콘을 이용하여 뉘앙스를 전달하고, 시간과 장소에 제약없이 용건을 바로 상대방에게 보내면 된다. 내 용건을 전달했기 때문에, 상대방의 답변만 기다리면 된다. 너무나도 편리한 세상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자신의 용건을 SNS로 전달하는 게 편하다. 그런데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 한다. 요즘 아이들은 사소한 일도 깐깐하게 따지면서, 막상 중요 한 순간에는 모른다고 한다. 그러니 부모와 선생님들은 답답할 따름이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도 사정은 있다.
부모와 선생님들은 대체로 책과 신문으로 정보를 습득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는 직접 보고 이야기하거나 최소한 통화라도 했던 세대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독자와 필자와의 관계, 글의 성격, 필자가 글을 쓰는 이유를 명확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필자의 의도를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어휘를 골라, 적절한 문법으로 표현해야 한다. 직접 만나 소통하는 것은 더 어렵다. 상대와 약속을 정해야 하고, 상황과 목적에 맞는 차림새를 갖추어야 하며, 용건을 정리해서, 적절한 목소리 크기와 톤을 사용하여 상대방에게 전달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상대방의 기색을 살피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하는 고도의 복합적 능력을 요구한다. 기성 세대는 표현과 소통을 위해 많은 것을 고려하도록 훈련받았다.
그러나, 지금의 학생들은 ‘나’의 상태에 초점을 맞추어, 태도는 이모티콘으로, SNS라는 매체로, 상대방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손가락만 누르면 모든 것이 전달되는 환경에서 자랐다. 상대의 욕구를 파악하는 것, 상대와 나와의 관계, 상황에 대한 고려, 전달을 위한 어휘 선택, 문법 고려, 비언어적 메시지의 활용을 배울 기회 자체가 없었다.
욕구를 알기 위해서는 다양한 상황에서 욕구를 파악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나의 욕구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욕구도 관찰하고 알아차리기 위해 연습을 해야 한다. 낯선 상황에서 내가 경험하지 못한 욕구가 생겼을 때, 훈련받지 못한 아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지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다. 무엇을 바라는지 모르기 때문에, 바라는 욕구를 해소할 수 없으며, 그래서 괴롭고 답답함을 느낀다. 그러니 아이들이 짜증을 내고 화내고, 모른다는 말만 반복하는 것이다.
모르는 세상으로 함께 나아가기
교사가 학생을 상담하는 순간은 학생에게 중요한 변화가 있을 때이다. 학년이 바뀔 때, 또래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낄 때, 진로와 진학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 즉, 아이들이 살면서 처음 경험하는 낯선 순간에 교사가 학생과 함께 하는 것이다. 한 개인으로서 아이는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학생이라는 지위로 성인이 되어가는 연습을 한다.
아기였을 때, 아이가 울음으로 표현하면, 보호자들이 “배고파?”, “졸려?”, “심심해?”라고 물어보면서 이리저리 살펴주듯, 아이가 학생에서 성인으로 되어가는 과정에 교사는 “친구들과는 어떠니?”, “누구랑은 어때?”, “수업시간에는 어떠니?”, “흥미로운 과목은 뭐야?” 등 다양한 질문으로 아이의 세상을 함께 알아간다. 그 과정을 통해 아이는 학생으로 변화하고, 성인으로 커간다. 애정을 가지고, 적절한 질문을 하면서 인내심 있게 아무도 모르는 아이의 세상을 함께 하나씩 알아가는 것! 그것이 교사가 학생과 나누는 최고의 상담이다.
코로나19 이후, 교사와 학생의 보물찾기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불안하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을 견디고, 용기를 내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3년간 지속되다가 아이들은 정말 오랜만에 학교에 왔다. 학교에서 친구들을 만나 반갑고 재미있기도 하지만, 40~50분 동안 집중해서 수업에 참여해야 하고, 낯선 아이들과 생활하는 것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학생들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비대면 수업을 하였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배워야 하는 문제해결, 갈등관리, 인간관계 등을 배우지 못한 상태로 진급한 것이다. 힘들게 적응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낯선 환경의 낯선 욕구들이 생겨난다. 이럴 때, 사람은 불안해진다.
불안은 사람을 방어적으로 만든다. 그래서 더 예민해지게 하고, 불편을 크게 호소하게 된다. 학생 중 학교, 친구, 선생님, 교육제도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공격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날이 서 있는 불안한 상대에게 다가갈 때는 시간을 들여 천천히 다가가야 한다. 놀라게 하지 않고, 차근차근 확인하면서 다가가는 것이 필요하다. 마치 오랫동안 묻혀 있던 유적을 찾아내듯이 차근차근 물어보아야 한다. 학교가 힘들다고 학생이 말하면, 등교가 힘든 것인지, 친구가 힘든 것인지, 배우는 것이 힘든 것인지, 아니면 진로와 맞지 않아 어려운 것인지 꼼꼼히 물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몸은 컸지만, 마음은 2~3년 전, 배우지 못한 교육의 어느 단계에 머물러 있는 학생과 만나기 위하여 학생이 활용하는 어휘와 행동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학생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선생님이 00이의 입장을 잘 알고 싶어서 그래. 선생님도 00이가 생각하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줄래?”라고 말하며, 꼼꼼히 물어보자.
교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상담은 애정 어린 질문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그리고 훈련이 덜 된 아이일수록 순간의 상황을 사진처럼 기억한다. 어른들이 맥락으로 사건을 기억하는 것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인상적인 순간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래서 학생 중, 앞뒤 상황을 설명하지 않고, 자신에게 인상적인 순간만을 교사에게 이야기하며 힘듦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있다. 인상적인 기억은 대부분 격렬한 감정과 함께 연결되어 있다. 감정을 기반으로 한 인상적 기억은 대부분 논리나 맥락과 관련이 없다. 학생이 감정에 휩쓸려 한 이야기를 찰떡같이 알아듣는 교사는 없다. 이런 상황에 교사들은 학생이 매우 감정적으로 격양되어 있다는 것과 어른인 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이럴 때, 교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상담은 감정의 타당화와 구체화된 질문이다.
감정은 옳고 그름이 없다. 학생이 지금-여기에서 경험하는 감정을 교사가 인정해주는 것이 상담의 시작이다. 감정을 인정해 주었다고 해서 학생의 생각과 판단까지 인정해 주는 것은 아니다. 현재 학생이 느끼는 감정을 인정해 주고,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시간을 들여 함께한 후, 앞뒤 사정을 들어보자. 그리고 교사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씩 물어보자. 학생이 특정 사람과의 관계를 이야기 한다면, 그 사람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일은 언제,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 주변에는 누가 있었는지, 특정 사람과 이전에는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꼼꼼히 살펴보자. 선생님들 중에 학생에게 물어보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경우가 있다. 교사가 학생에게 물어본 질문으로 인해 트라우마가 떠오르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학생과 안전하고 윤리적인 대화를 하기 위해 대화의 목적과 학생의 권리를 미리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선생님이 00이의 상황을 잘 알고 싶고, 도와주고 싶어. 그래서 몇 가지 물어보려고 해.
혹시 선생님과 이야기하다가 힘들거나,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면 이야기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리고 힘들어서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면,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해 줘.”
미리 대화의 목적과 학생의 권리를 이야기해 주면, 학생은 자신이 보호받고 안전하다고 느끼며, 인간관계에서 자율성과 안전한 거리를 배우게 된다. 그리고 교사의 꼼꼼한 질문에 답하면서 사건을 재구성하고 조망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인상적 기억’에서 ‘맥락적 기억’으로 논리적 사고가 가능한 어른으로 성장해 나간다.
학생이 말하는 ‘인상적 기억’을 자기 유리한 쪽으로 말하는 ‘약삭빠른 거짓말’로 치부하지 말자. 아이들은 인지적·정서적·도덕적 발달 수준에 따라 이야기하는 것뿐이다. 아이가 학생으로서 역할을 하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언제나 훈련이 필요하다. 팬데믹 기간을 지나며 맥락으로 상황을 기억하고 논리적으로 전달하는 훈련이 되지 않은 아이들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지지고 볶으면서 기다리고 묻고 함께 아이의 마음을 찾아야 한다. 여기저기 다양한 각도에서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을 들여 자세히 보아야 아이의 마음 속에 있는 보석같은 바람(want)을 발견할 수 있다.
보물찾기에 마법은 없다!
지지고 볶으면서 함께 있는 것이 최고의 교육상담이다.
단 한 번의 솔루션으로 마법처럼 변하는 상담은 없다. 아이의 말과 행동을 살펴보고, 아이의 환경을 둘러싼 모든 것을 확인하면서 아이와 주변의 욕구들을 확인해야 한다. 아이의 성장과 발전 그리고 서로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면서 인내심 있게 아이를 관찰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교사가 하는 상담은 결국, 아이가 학생으로,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그 과정을 함께하는 여정이다.
애정 어린 호기심을 가지고, 과정을 통해 아이가 성장할 것이라는 희망찬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그리고, 아이의 진정한 소망(want)을 발견하여 그 소망을 이룰 수 있는 친사회적 방법을 하나씩 해보고 습관으로 만드는 지난한 과정을 함께하는 것이 교사가 하는 최고의 교육상담이다.
학교는 치료기관이 아니다. 교사는 정신과 의사나 심리전문가가 아니다. 교사는 학교에서 학생에게 인지적・사회적・신체적 성장과 발달을 위해 교육하는 전문가이다. 즉, 학교에서 교사가 하는 교육상담의 영역은 학생이 학교에 적응하고, 학생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학생이 학교 교육을 통해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것을 돕는 것, 그 과정에서 학생의 세상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태도를 가지고 애정 어린 다양한 질문을 하는 것, 여러 시행착오들을 겪으면서 학생이 지치고 좌절하지 않게 돕는 것이 교사가 학생과 나누는 교육상담이다.
편리한 시대에 마음이 답답한 아이의 마음을 알아가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배우지 못한 경험을 학생에게 제공하고, 자세히 그리고 계속 바라보며 애정을 가지고 함께하자. 아이들은 아름다운 꽃처럼 피어나 건강한 어른으로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하는 모든 것이 교사가 하는 최고의 교육상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