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현장2019 가을호 (236호)

교사, 학교에서 안전한 공간을 경험하다

정동혁 (유한공업고등학교, 교사)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하지만 만일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들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 마더 테레사 –


학교의 일상은 아주 평범하다. 출근해서 수업을 하거나 학교업무로 바쁘다. 잠시 틈을 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만 깊이 들을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하니 필요한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 일상이 되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 대화는 주고받는 정보의 양과 질, 관심도의 차이에 따라 마음으로 이어지기보다는 피상적으로 흐르기 쉽다.
또한 학교에서 동료 교사와의 대화는 한 명과 나누건, 여러 명과 나누건 이야기를 독점하거나 혹은 상대방의 말을 끊고 내 이야기를 먼저 하기 쉬운 구조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구조가 주는 어려움을 넘어서서 서로를 의미 있는 존재로 바라보며 교사의 마음으로 연결될 수는 없는 것인지 안타까웠다. 또한 같은 교실이지만 조금씩은 결이 다르게 다가오는 공간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어떻게 하면 수업을 함께 나눌 수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되었다.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안전함을 누리다

서클 방식의 대화에서 활용되는 센터피스

학교의 상황이 그러하니 동료 교사들과 수업나눔을 주제로 교사공감서클을 시작하게 된 과정을 돌이켜 보면 그저 고맙고 신기할 뿐이다. 학생들 앞에서 늘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교사가 만약 같은 교사들 사이에서도 자신을 필터링하면서 말을 해야 한다면 얼마나 피곤할지 짐작할 수 있다. 서로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떠오르는 대로 편안하게 말할 수 있고, 개인의 사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교사의 본질인 수업과 생활교육에 대해서도 서로의 생각을 툭툭 던지듯이 편안하게 말할 수는 없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렇게 하더라도 우리가 던진 말들이 돌고 돌아서 다시 꽂히지 않고 서로의 진심으로 연결되는 관계를 만들어 보고 싶었고, 그런 학교와 교사 문화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기대감이 생겼다.
회복적 서클이 주는 힘은 단순하다. 회복적 서클은 대화할 때 관심을 내게 두지 않고 이야기하는 상대방에게 두게 함으로써 말하는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대화에서 그런 작은 배려와 인내는 둘 사이에 안전한 공간을 마련한다. 말한 사람의 관점에서 끝까지 들어주고, 비록 대화의 내용에는 동의가 되지 않더라도 서로가 내용을 판단하지 않고 존중하는 방식의 대화는, 둘 만의 안전한 공간을 형성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제공한다. 이와 같이 안전한 공간에서 서로의 마음이 연결되기 시작하면 ‘어떻게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이야기를 듣나’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 서로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진정성에 마음을 기울이고 상대방의 취약한 부분에 그저 머무르며 온전히 집중하여 들을 뿐이다. 그러다 보면 대화의 주제가 학교생활의 주변 이야기에서 아이들과의 수업으로 자연스럽게 전이되면서 써클에 참여한 교사는 모두 자연스럽게 하나의 대화 공동체로 연결된다.

학교에서 만난 어떤 교사의 대화는 늘 필자를 회복적 서클 프로세스로 이끄는 시간이었다. 평소라면 대화 중에 이야기를 독점하거나 혹은 상대방의 말을 끊고 이야기를 할 텐데, 그런 순간에 말하고 싶은 욕구를 내려놓고 상대 교사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내면에서 작동되는 회복적 서클 프로세스의 힘이었다. 결국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말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방식에 있다. 바로 이런 인식의 전환이 회복적 서클을 내면에서 작동하게 하는 힘이다.

안전한 공간에 대한 경험이 확산되다

처음에는 특정 교사와의 관계 속에서만 그랬었는데 회복적 서클 프로세스에 익숙해지면서 그러한 관계를 나누는 교사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무렵 학교 문화를 바꾸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학교가 교사를 중심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서로의 말이 돌고 돌뿐 들리지 않는 답답한 교사 문화로 정체되어 있던 때였다. 이런 교사 문화에 변화를 일으키고자 전체 교직원 연수를 사람책(living library) 방식으로 진행하기도 하고, 교사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탁월한 외부 강사를 초청하여 연수를 실시하고, 희망하는 교사들에게 회복적 생활지도를 주제로 워크숍도 실시하였다. 하지만 한계에 부딪혀 있는 학교 문화의 중심부를 변화(혁신)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학교 문화는 여전히 상명하달식이었고 학생들을 대할 때에도 위에서 내려오는 교사 중심의 지도가 일반화되어 있었다. 모든 구성원의 마음을 듣고 함께 일을 해나가는 방식은 우리 학교에서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그런데 아무 성과가 없는 것처럼 보였던 작은 시도-서로 답을 주고받는 정보교환의 방식이 아니라 온전한 관심으로 상대방에게 머무르는 과정이 있는 대화-를 통해 교사들은 안전한 공간에서의 대화를 경험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서클 프로세스 방식의 대화를 통해 관계를 맺고 있었던 교사들이 개인적인 대화뿐 아니라 좀 더 큰 공동체 안에서도 안전한 공간을 갖는 것이 가능하다고 느끼는 점이 유의미했다. 공동체 안에서 안전한 공간을 경험한 교사들은 그러한 교사공동체에 대하여 갈구하게 되었고, 결국 우리는 교사로서 영원한 과제일 수밖에 없는 수업을 주제로 모여 ‘수업나눔연구회’라는 교사학습공동체를 만들게 되었다.

‘수업나눔연구회’를 만들다

서로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부담스럽거나 낯설지 않고,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도 그것이 부끄러움과 자책감으로 다가오는 않는 공동체를 갖는다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서클 방식의 대화는 교사들 사이에 단순하게 물리적인 편안함만이 아니라 심리적으로나 관계적으로 공감하고 내면의 진심을 서로 연결하는 힘을 준다. 마치 마른 땅에 물이 스며들 듯 몸과 마음이 서클 대화 방식에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게 된다. 듣는 것이 익숙해진 교사들은 서로 공감하고 연결하는 대화 과정에서 공동의 지혜를 탐색해 가면서 공동체성을 경험한다.
수업나눔연구회를 시작했던 첫 해의 일이 생각난다. 연구회원 중 한 명인 역사교사 A가 수업을 공개하고 워크숍을 하기로 했다. A 교사는 조선시대 후기에 대한 수업을 하였고, 관련 수업 내용을 촬영해서 회원들이 사전에 본 뒤 나눔의 시간을 가졌다. 기존의 강평회와 같이 부족한 점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수업에서 교사가 학생들과 나누고 싶었던 가치와 그것을 나누는 방법을 공감하고 공유하는 자리였다. 그러다 회원 중 한 명이 “수업을 하던 중에 피지배층의 어려움에 대해서 많이 강조하는 것 같았어요. 그 부분을 설명할 때는 목소리도 커지고 여러 번 되풀이해서 말씀해 주셨어요. 특별히 그 부분을 강조하신 이유가 있나요?”라는 질문을 했다. 특별한 의도 없이 한 평범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A 교사는 그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질문은 교사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내면의 상처를 건드리는 것이었다. A 교사의 내면 깊은 곳에는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지 못한 미안함’ 이라는 상처가 있었다. A 교사는 대답 대신 오랫동안 눈물을 보였다. 그리고 대학 시절 친구들이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높일 때 함께하지 못했던 것에서부터, 지금도 고통받는 사람들 곁에 머물지 못하는 미안함에 관하여 언급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학생들과 자녀들에게 받았던 상처에 대한 내용까지 이어졌다. 그러는 동안 A 교사는 지금까지 몰랐던 자신의 내면을 깨닫게 되었고, 자신이 왜 수업 시간에 그토록 어렵고 힘든 이들의 삶을 공감하도록 가르치고 싶었는지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 자체로 A 교사에게 놀라운 경험이자 사건이었다. A 교사가 눈물을 보이며 이야기하는 동안 연구회원들은 침묵으로 공감하고 가끔은 함께 울기도 했다. 아무도 충고하거나 조언하지 않았지만 A 교사는 자신의 수업을 이해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연구회원들에게도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 공간이 안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업나눔연구회 공동체 안에서 안전한 공간을 경험했던 A 교사는 최근 수업 시간에 교실을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서툴지만 서클 방식으로 학생들의 말을 듣고, 서클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지 않더라도 학생들이 안전한 공간을 경험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한 교육청에서 강조하는 ‘질문이 있는 교실’이 어떤 특별한 수업 방법이나 구조 개선이 아닌, 교실을 안전한 공간으로 만듦으로써 완성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함께 수업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다

교사가 자발적으로 교실을 공개하는 것이 쉬운 선택은 아니다. 왜냐하면 배우고 성장하고 싶은 선한 의도로 수업을 공개했음에도 공격을 받거나 조언을 듣는 부담스런 자리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고 수업나눔 워크숍을 통해 교사의 아픈 부분을 자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자신을 새롭게 알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자신의 아픈 부분을 공유함으로써 다른 회원들과 서로 가까워지고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공동체 안에서 교사가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는 용기는 공동체의 지지와 공감이라는 안전함이 공동체 안에서 경험되어야 한다.

수업나눔연구회의 수업 공개

최근에는 수업나눔연구회 안에서 A 교사와 사서교사가 만나 연계 수업을 하고, 음악교사 및 건축교사와 함께 공동의 수업을 기획하는 경험이 계속되고 있다. 또 자신의 수업을 매년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타 교과 교사들과 공동 수업지도안을 함께 만들어 보면서 손발이 꼭 맞지는 않지만 올바른 방향이고 해볼만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도전하고 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공동체 안에서 서로가 존중과 돌봄이라는 회복적 서클 방식의 가치를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사서교사와 상담교사, 디자인 담당교사가 서로 연합하여 ‘유한 잡화점의 기적’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했었다. 힘들고 지친 학생들의 고민을 듣고 사서교사는 그 고민에 맞는 책을 소개하고, 디자인 교사는 엽서에 그림을 그리고, 상담교사는 위로와 지지의 글을 써서 학생에게 주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수업에 대한 공동의 도전과 실천은 신규 교사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고 그들이 공동체 안의 연대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고 있다. 올해 연구회에 새로 가입한 음악교사는 오페라의 아리아를 가르치는 수업에서 선배 건축교사와 함께 오페라의 배경이 되는 시대의 건축양식을 주제로 통합 수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렇듯 수업나눔연구회는 공동체 안에서 존중과 돌봄의 경험이 없는 교사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안전한 공간을 향한 소망을 주고 있다.

교사공감서클의 미래를 발견하다

몇 년간 교육청에서 추진하는 교육혁신의 핵심 정책인 교사학습공동체(교사공감서클)는 교사들이 서로의 삶과 마음을 나누는 것이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고 교사로서 학생과 수업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싶어질 때 시작된다. 교사가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알 수 있는 방식의 정책이어야 척박한 학교 문화도 서서히 혁신의 바람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토양에 씨앗이 뿌려지면 그 씨앗이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듯이, 교사에게 내면의 심리적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먼저 확보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안에서 교사의 마음도, 학급의 공간도, 대화의 꽃을 피우고 존중과 돌봄의 공간으로 회복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학교의 변화, 학교시스템의 혁신이라는 큰 주제가 평범한 동료 교사와 만나는 일상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나누는 대화에서 내면의 연결이 일어나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준다. 일상의 관계에서 시작된 작은 대화가 헛되지 않고 공동체의 협력이라는 열매로 나타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스스로를 필터링하지 않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관계의 온전함이 있다. 이러한 진정한 대화의 과정에는 이전에 아팠던 경험에 치유가 일어나고 미처 말하지 못한 내밀한 감정과 내면의 취약성에도 서로 공감이 일어난다.
실제적으로 몸과 마음으로 온전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관계의 변화는 일어나며, 이는 회복적 서클의 인식과 일치한다. 관계는 단지 논리적인 설득이나 감성적인 호소로만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대의 말을 먼저 들으려 할 때 관계가 시작되고, 내가 들은 것을 반영할 때 관계는 깊어진다. 들은 말에 묻어 있는 상대의 감정과 마음을 돌려주는 대화를 통해 존중과 돌봄은 연결된다. 평소 행했던 작은 실천이 큰 물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더욱이 교사들의 공감서클은 교육청의 교사학습공동체 정책과 시기적으로 맞닿아 시너지 효과를 내며 학교에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을 이유를 갖게 되다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지하는 신뢰의 공간을 경험한 교사들이 자연스럽게 공동체를 구성하고 교육과 수업을 그 공동체 안에서 풀어내는 이 이야기는 아직 미완성이다. 중심이 되었던 교사가 공동체를 나오더라도 서로가 어떻게 마음을 연결해 갈지, 안전함을 어떻게 이어갈지, 사람이 비는 자리에 대한 고민이 있다. 서로를 연결할 수 있는 공동의 리더십에 대한 성찰은 오늘도 서클 안에서 실험되어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가 동등하게 존중받고, 모두의 참여로 리더십이 운영되는 새로운 길은 이미 열려있다. 무엇을 선택할지는 우리의 몫이다.
학교의 문화를 바꾸려는 노력이 아무 성과도 없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노력이 성공과 실패를 떠나 교사들에게 안전한 공간을 경험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공동체 안에서 안전한 공간을 경험한 것은 우리 삶을 살만하게 하며, 그 경험은 그냥 사라질 만큼 작지 않다. 그러므로 학교 문화를 바꾸어 가려는 우리의 노력은 어쩌면 마더 테레사가 말했던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을 지도 모르겠다. 그 작은 노력이 우리 학교를 풍요롭게 할 텐데, 그것이 없으면 우리 학교는 그만큼 척박하게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