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2022 봄호(246호)

교육, ‘관계’와 ‘연결’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김민성 (조선대학교, 교수)

코로나19의 수업 장면

#1

팬데믹으로 난생 처음 비대면 실시간 수업으로 학생들을 만난 나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는 것을 직감했다. 화면으로 공유한 수업 내용이 교실의 판서나 프로젝터로 투사한 슬라이드보다 훨씬 선명하였다. 채팅은 학생들의 입을 여는 데 용이했다. ‘이렇게 효율적인 방식이 있는데 굳이 대면으로 수업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즈음, 사건이 터졌다. 서로의 얼굴도 이름도 알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모둠별로 발표 준비를 하라고 한 것이다.줌(Zoom)이나 구글 미트(Google Meet) 등 비대면 소통 채널을 활용할 수 있으니 대면으로 만나지 못해도 발표 준비가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성인이 아닌가. 학생들은 예정대로 발표 영상을 올렸고 서로의 영상을 평가했다. 모든 과정이 수월하게 진행된 것 같았다. 며칠 후, 학생들의 항의가 학생회를 통해 전달되었다. ‘얼굴도 모르는 학생들과 어떻게 발표 준비를 하느냐. 이것은 대면으로 만나라고 조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라는 내용이었다.

#2

초등학교 5학년을 가르치는 배 교사는 동영상 강의에서 아무리 자세히 수업 내용을 설명해 줘도, 교실에서 학생들의 이해 정도를 짚어 보면 학생들은 ‘단 1도’ 알지 못하는 것이 의아하기만 하다. 대면 수업에서 원격 수업 때 했던 설명을 동일하게 반복했는데, 학생들은 그제야 “선생님을 직접 만나서 들으니 이제 이해가 돼요.”라고 말한다. 교실 수업에서는 학생들을 살펴보며 속도도 조절하고 필요하면 여러 번 반복해서 설명하였고,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이 보이면 “○○야, 오늘은 이것만은 꼭 알고 가자.”라고 개별적으로 알아야 할 내용을 짚어 주었다. 그에 비해 개별 학생과의 상호작용을 하기 어려운 원격 수업 내용은 마치 ‘공기’와 같이 아이들의 머리나 마음에 담기지 못하고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다. 비대면으로 하는 예체능 활동도 김이 빠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집에서 자신이 완성한 그림이나 운동한 영상을 게시판에 업로드하는 것으로 활동이 마무리되다 보니 교실에서 아이들이 서로의 작품이나 수행을 보며 아이디어를 얻고 “친구들보다 잘해야지.” 하며 열심을 부리는 광경이 사라져 버렸다.

#3

고등학교 3학년 유빈이는 1, 2학년 때부터 수업을 들었던 선생님들의 동영상과 3학년 때 처음 만난 선생님들의 동영상에서 뚜렷한 차이를 확인하였다. 전자의 선생님들은 학생들과 이미 수업에서 만난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의 특성에 맞게 대화하듯 동영상 수업을 구성했지만 후자의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잘 알지 못하니 ‘진도’를 너무 빨리 나갔다. 시험에 임하는 친구들의 모습도 이전과 달랐다. 시험 범위나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코로나19 이전, 교실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을 때는 시험 범위의 내용에 대해 서로 물어보면서 주워듣는 기회가 많았다. 자연스럽게 주고받던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 중요하고 어려운 내용, 다시 짚어 봐야 할 내용들을 점검하던 기회들이 사라지면서 학업에 대한 동기도 꺾이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4

중학교 1학년 태현이는 2020년 5월에 중학교에 첫 등교를 했고, 7, 8월이 되어서 같은 반 친구들과 선생님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렇게 기다렸던 등교 수업이었지만, 잘 모르는 친구들과 모둠활동을 하려니 어색했고, 서로 불편하다 보니 활동에 대충 임하게 되었다. 마스크에 가로막혀 서로의 말과 표정을 확인하기 힘들고 불편해지자 수업 활동에서 슬쩍 빠지는 친구들도 많아졌다.

2020년부터 코로나19로 인한 장기간의 비대면수업을 경험하며 삐걱거렸던 수업의 여러 장면들을 모아 보았다. 직접 겪은 것과 다른 연구에서 수행한 면담에서 교사, 학생들의 말을 빌린 것이다. 각각의 수업 장면은 공통적으로 교사, 수업 내용, 학생들이 서로 연결되지 못하여 어긋나고 단절되는 지점들을 보여준다. 교사와 학생들이 힘들어 하는 것의 이면에는 예전의 수업이나 학교생활과 대비되는 이러한 단절의 경험이 존재하였다. 교사-학생, 내용-학생,학생-학생이 만나고 부딪치고 연결됨으로써 이루어지는 배움의 장면, 성장의 기회들이 이전에 비해 부족해진 것이다.

코로나19 이전의 대면 수업이라고 해서 모든 수업에서 교사-수업 내용-학생 간의 충분한 교류와 연결을 통한 배움과 성장의 기회가 항상 주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전면적인 비대면 교육에서 임계치 밑으로 떨어져 전면에 부각된, ‘단절’이라는 결핍을 경험하면서 학교 교육과 수업이 갖추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팬데믹은 우리에게 교육의 본질, 수업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체험하도록 이끌었다.

교육, ‘관계’의 토대가 필요하다

가르침과 배움, 즉 교육을 바라보는 시각은 오랜기간 가르치고 배우는 주체의 신체 안에 갇혀 있었다. 가르침, 혹 교수(teaching)는 주로 교사가 소유한 교과 내용이나 수업 방법적 지식이나 기법, 행동으로 묘사되어 왔다. 배움이나 학습(learning) 역시, 학습자의 두뇌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간주되었다.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인 ‘공부’의 의미(사토 마나부, 2003)는 배움,학습을 바라보는 대표적인 시각이었다.

그러나 앞서 3번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 학생들을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빨리 진도를 나가는 원격수업에서 [#3] 고등학교 3학년인 유빈이가 느낀 것은 교사와 학생이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 확보되지 않을 때, 교사의 수업이 학생들에게 와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사 역시,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이 어떤 학생들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카메라 앞에서 어떤 태도로 어떻게 수업을 구성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원격 수업이기 때문에 수업 내용만 잘 설명하면 될 것 같지만, 교사와 학생 간 관계의 토대 없이는 비대면에서의 가르침과 배움도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동영상에서 이미 들었던 내용이지만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눈을 마주치며 수업 내용을 짚어주는 선생님의 모습에 아이들은 “이제야 이해가 돼요.”라고 말을 한다. 자신들의 상태에 따라 선생님이 적절히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설명 방식이나 속도를 조절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교육과 수업의 핵심은 교사가 전달한 수업 내용을 학생이 받아들이는, 정보 전달의 흐름이아니다. 그것은 교사의 가르침만으로도 학생의 학습만으로도 완결될 수 없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상호보완적 관계로 이루어진다. 즉, 교사와 학생과의 만남, 교류, 관계를 전제로 일어나는 현상인 것이다(Lampert, 2010).

교육이 교사와 학생 간 관계의 토대 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은 ‘사회적 존재’라는 인간의 본질과도 연결된다. 다른 동물과는 달리, 출생 이후 오랜 기간 돌봄을 받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인간의 존재적 조건은 진화의 오랜 역사를 통해 타인과의 연결된 상태를 추구하는 강렬한 욕구와 그에 필요한 사고방식을 만들어 냈다. 타인과 분리된 상태에서 정서적 고통을 느끼게 만듦으로써 그것에 대처할 수 있는 사회적 사고와 행동 방식을 활용하도록 이끈 것이다(Dewall et al., 2011).

학생 역시 학습자이기 이전에 하나의 인간이다.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연결된 상태’를 추구하고 단절된 상태에 대처하는 사회적 존재인 것이다. 수업에서 일어나는 학생의 학습은 인지적으로 수업 내용을 이해하고 처리하는 ‘학습의 경로’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업 환경 속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어떤 존재로 받아들여지는지, 타인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가늠하는 ‘안녕감(well-being)의 경로’(Boaekarts, 1993)를 우선 작동시킨다. 교사나 또래 친구들이 자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고 느낄 때, 안녕감의 경로 작동은 잦아들고 학습의 경로가 안정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수업에서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이 보장될 때 학생들은 자신을 표현하고, 도전하게 되는 ‘배움’의 과정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교사에게도 학생과의 ‘단절’은 교사로서의 자신을 위협하는 가장 큰 고통이다. 수업에서 심드렁한 표정으로 영혼 없이 앉아 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게 된다면 교육에 대한 교사 내면의 에너지와 열정은 조금씩 잠식당한다. 교사는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고 모둠 활동에 열중하며 대화하는모습, 과제수행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 등을 확인하면서 자신에게 보내주는 학생들의 신뢰를 느끼고 더 나은 교사가 되고자 하는 용기를 얻게 된다. 교사 역시 학생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교사로서 성장하는 동력을 얻게 되는 ‘사회적 존재’인 것이다.

‘교육’과 ‘수업’을 관계적 관점에서 본다는 것은 교사가 수업과 학습을 전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아무리 수업 준비가 잘 되어 있고, 명료하게 수업 내용을 전달했을지라도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적 토대가 탄탄하지 않다면 학생이 교사의 열정에 발맞추어 공진하기 힘들다.교사가 의도한 가르침은 학생에게 가닿지 않는 메아리가 될 공산이 크다. 자신의 수업이 학생의 반응과 참여에 의존하고 있음을 깊이 자각한다는 것은 학생 하나하나의 필요와 상태에 귀 기울이고 학생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왜냐하면 학생들은 교사의 가르침을 완결하는 수업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연계(連繫)의 전문가’로서의 교사

코로나19 시기 수업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아쉬워하고 그리워했던 것들을 살펴보면, 교실에서 가능했던 ‘교사-수업 내용-학생 간의 연결’이 원활하지 않았던 것과 맞닿아 있다. 얼굴을 알지도 못하는 학생들과 비대면으로 발표 준비를 하는 것에 항의했던 [#1] 대학생들은 서로 ‘단절’된 상태에서 배움과 성장을 위한 협력이 쉽지 않음을 항변한 것이다. [#4] 중학생인 태현이에게도 ‘단절’은 유사한 모습으로 찾아왔다. 7월이면 반 친구들이 이미 서로 ‘녹아들었을’ 시기였지만, 어색하기도 하고 마스크로 인해 소통이 잘 되지 않으면서 수업 활동을 함께 하기는 하지만 활발히 얘기를 주고받지도 못하고 끝까지 과업을 완수해 내지 못하는 경험을 한다. 서로가 그린 그림이나 몸짓을 보며 자신의 것과 비교도 하며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했던 아이들이 비대면에서는 심드렁하다. 서로의 아이디어나 표현들이 만나고 부딪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수업이라는 배움의 공간에서는 이처럼 다양한 것들이 만나고 부딪치는 교류가 일어난다. 사토 마나부(2006)는 이러한 교류를 세 가지 유형의 ‘대화’로 표현한다. 수업 내용을 학생의 경험, 지식과 연결시키는 대화, 타자(교사, 또래)의 생각과 느낌을 연결시키는 대화, 스스로와 나누는 대화가 그것이다. 이러한 대화가 풍성하게 일어나고 각각의 대화가 연결되면서 학생들은 수업 내용에 대한 의미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구성해 나가고 타인과 자신에 대해 보다 깊이 이해하게 된다. 수업에서 교사는 이러한 다양한 대화적 실천이 일어나도록 수업의 여러 요소들 간의 다층적인 연결을 가능하게 하고 그 속에서 학생들이 주제, 타인, 자신에 대한 이해를 높이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교사를 가르치는 교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파커 팔머(Parker Palmer, 1993)는 교사와 수업에 대해 아래와 같이 표현한다.

이런 점에서 교사의 수업 전문성은 ‘연계’의 전문성이라고 할 수 있다(김민성, 2012).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 교사 전문성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이 ‘연계’의 특성에 있다. 법률가나 의사는 고객이나 환자와 거리를 두는 것으로 자신의 전문성을 확보한다. 영어나 한자가 섞인 어려운 용어, 범접할 수 없는 기술과 시스템으로 고객이나 환자를 온전히 자신에게 의탁하도록 이끈다. 그러나 교사는 학생들의 배움과 성장을 위해 자신이 가진 지식, 열정, 가치를 학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식으로, 그들의 삶에 의미 있는 형태로 변형시킨다. 이 과정에서 학생을 수업의 능동적인 주체로 참여하도록 이끈다. 학생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환영하고,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공유하며 더 넓은 세계와 타인, 자신을 알아가도록 돕는다. 이처럼 교사의 전문성은 고객과의 거리를 전제하는 전문성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자산을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수준의 변형과 연결을 만들어가는 ‘연계의 전문성’인 것이다(김민성, 2012).

이러한 ‘연계의 전문성’은 우수한 교사를 묘사하는 특성이기도 하다. 수업 역량이 뛰어난 교사와 부족한 교사를 비교했던 연구들은(Havita, 2000; McAlpine et al., 1999; Sato et al., 1993; Wester-man, 1991) 수업 상황에 따라 수업을 유연하게 변화해 나가고 수업의 여러 요소들을 연결 지어 수업을 이해하는 역량에서 두 부류의 교사가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것을 관찰하였다. 우수하다고 평가되는 교사들은 수업 이전에 세운 계획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수업에서 관찰할 수 있는 여러 단서를 민감하게 포착하면서 자신이 가진 자원, 수업 내용 및 수업 방법에 대한 지식을 동원하여 수업 내용과 학생, 학생과 학생 간의 다양한 교류가 일어날 수 있도록 수업을 조정하였다. 그리고 수업에 대한 분석 및 성찰 과정에서도 수업 내용, 학생의 사고, 수업 상황을 연결시켜 교사와 학생의 행동을 해석하였고, 보다 나은 수업이 이루어지기 위한 조치들을 생각해 내었다.이에 비해 신규 교사나 수업 역량이 부족한 교사들은 수업 방법이나 기법과 관련된 지식이 부족하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도 교사와 학생을 분리하여 교육이나 수업을 바라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학생이 수업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책임은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학생에게 있다고 생각하거나 학생의 눈높이에 따라 쉽게 설명하는 것이 수업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바라보았다. 수업에 대한 성찰 과정에서도 수업 내용이 전달되는 방식과 학생의 상태, 수업 상황을 서로 연결 지어 이해하지 못하고 표면적인 부분에 집착하는 모습이 드러났다.

‘사이’에서 형성되는 자기주도학습

자기주도학습과 같이 학생의 능동적이고 자율적인 학습 태도는 오래 전부터 학습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역량으로 간주되어 왔다. 자기주도학습의 ‘자기’라는 용어는 자기주도학습 태도를 계발하는 것이 마치 학습자 스스로의 몫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 과연 자기주도학습, 집중력, 자기 관리와 같은 태도는 학습자가 소유한 개인적 특성인 것인가? 코로나19 시기의 학교교육을 이해하고자 면담했던 학생들은 대면 수업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던 시기, 자신의 학습 태도와 코로나19 시기의 학습 태도는무척 달랐다고 입을 모았다.

초등학교 5학년 가희는 e-학습터에 올려진 동영상만으로 학교 수업이 이루어질 때, 동영상에 집중하기 보다는 침대에 누워있는 경우가 많았다. 교실 수업에서는 주의 집중이 떨어질 즈음 선생님이 울리는 종소리, 친구들이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며 수업 태도를 다잡았는데, 동영상 수업에서는 집중하는 것이 무척 힘들게 느껴졌다.

[#3] 고3 유빈이는 평소에 스스로 공부 계획을 잡고 자기주도학습을 하는 것에 자신이 있는 학생이었다. 자신의 방에서 하루종일 이루어지는 원격 수업을 놓치지 않으려고 수업 시간표대로 수업을 듣고, 쉬는 시간을 가지는 등 학교생활의 리듬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교실에서는 선생님과 친구들의 존재로 인해 자신을 추스를 수 있었는데, 집에서는 하염없이 늘어질 때가 많았다. 그래서 익명의 고3 학생들과 공부시간을 공개하는 ‘열품타’라는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서 시간관리의 동력을 얻었다고 한다.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학습자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스스로가 설정한 목표를 염두에 두면서 자신의 학습이나 생활을 관리하고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러한 학습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태도를 스스로 함양하고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러한 태도를 개별 학습자가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일까? [#3] 고3 유빈이가 관찰한 것처럼 시험 기간이 코 앞인데도 코로나19 이전과 달리 시험 범위의 내용에 대해 하나도 알지 못하고 시험에 임하는 친구들의 모습,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이 없으니 나태해지는 유빈이 자신의 모습에서 선생님의 조언, 친구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학습 분위기가 학생들의 학습 태도 형성에 일조한다는 것이 드러난다.

학생들은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수업 내용을 이해하는 단서와 다양한 관점을 접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배움에 대한 이유와 동력을 얻기도 한다. 친구들의 모습을 통해 자신이 본받고 싶은 공부 방법, 학습 태도를 터득해 가기도 한다. 비대면 수업으로 인해 생겨난 학력격차의 주된 원인이 가정의 사회·경제적 배경에서비롯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지만, 학력 격차 현상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가정의 사회· 경제적 배경의 이면에는 부모의 정서적 지원이나 타인과의 만남의 부재, 그로 인한 자극의 부재라는 더 근원적인 이유가 놓여 있다(김용 외, 2021).

자기주도학습, 집중력, 학습 동기가 학습자 개인에게 전적으로 속한 특성이라기보다는 상당 부분은 선생님, 친구들 사이에서 만들어 가는 것으로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자신의 배움과 성장을 위해 타인의 도움을 구하고 공동체 속에서 학습에 대한 인지· 정서적 자원을 얻는 학습자가 오히려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더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학습자의 모습이 아닐까? 자신의 부족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히 인정하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그러한 모습들을 공유하고 위로받으며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얻는 학습자의 모습, 어쩌면 이러한 모습이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평생학습자의 모습일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교육과 수업은 서로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배움과 성장의 다양한 기회들을 학생들이 누릴 수 있도록 ‘배움의 공동체’로서의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공동체 속에서 학습자는 지식을 재구성할 뿐 아니라 자신에 대한 지식과 타인(교사,또래)과의 관계를 더욱 발전적인 방향으로 재구성할 수 있게 된다(Brown, 1994).

‘교육 공공재’로서의 관계와 연결

교육과 수업을 관계와 연결의 관점에서 살펴본 이상의 논의는 우리가 축적해야 할 교육적 자원이 무엇인지를 드러낸다. 교사와 학생 간의 상호작용과 신뢰의 두께는 학생들이 ‘안전함’을 느끼며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마중물의 역할을 하였다. 심지어 동영상 수업이나 비대면 화상 수업의 효과도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의 축적된 소통과 교류에 기인한 바가 컸다.

이러한 관계의 토대 위에서 교사는 수업 내용이 학생들의 삶에 의미 있는 방식으로 연결되도록 자신이 가진 지식과 역량을 동원한다. 이 과정에서 세계와 타인, 학생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도록 학생들의 다양한 관점과 생각, 느낌들을 잇는 연결 고리들을 만들어 가는 역할을 수행한다. 교사의 ‘연계적 전문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서로의 성장과 배움을 독려하는, 다층적이고 풍부한 ‘관계’와 ‘연결’로 대표되는 교육의 모습은 모든 학생들이 경험해야 할 공공재로서의 ‘교육’의 모습이다. 성적이 우수하거나 가정환경이 좋은 학생들만 맛볼 수 있는 특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학생들은 자신에게 귀 기울이고 자신의 성장 가능성을 신뢰하는 교사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뛰어난 학생이 아닐지라도 수업에서 자신의 역할을 가지고 참석하고 그 속에서 타인과 만나고 그로부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권리가 있다. 무시당하거나 소외되지 않고 안전한 수업 환경에서 더 나은 자신의 모습을 향해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비대면과 대면의 조합으로 이루어질 미래교육에서는 대면에서의 교사-학생 간 만남과 교류가 비대면 수업의 질을 좌우할 것이다. 역으로 테크놀로지로 매개되는 비대면에서의 다양한 상호작용은 대면에서의 만남과 교류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누구나 공평하게 ‘관계’, ‘연결’로 대표되는 배움과 성장의 자원을 누릴 수 있는지의 여부는 미래교육의 성패를 가를 결정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앞으로는 교육이 이루어지는 장면이 점점 다양해지고 학생들마다 선호하는 수업과 학습 방식의 차이가 중요하게 다루어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자인 우리는 “매 학생, 매 학급, 매 순간의 학습”이 ‘관계’와 ‘연결’이라는 교육적 자원을 투자해야 하는 소중한 교육의 대상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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