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현장2022 봄호(246호)

[사제동행 독서] 교학상장(敎學相長)을
꿈꾸는 독서교육 : 슬기로운 독서생활

김민정 (광남고등학교, 사서교사)

요즘 독서 풍경

점심시간을 이용해 도서관에서 진행했던 책 읽기 프로그램도, 삼삼오오 친구들과 함께 책을 읽고 나누는 독서동아리 활동도 오프라인 공간에서 진행하기에 부담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책 읽기와 신문 읽기 프로그램은 온라인 커뮤니티 중 하나인 밴드(Band)에서 진행하고 있다. 독서동아리 활동의 경우 오리엔테이션은 미리 영상으로 제작해 구글 클래스룸에 업로드하고, 각 동아리 모임은 줌(Zoom), 미트(Meet)와 같은 화상회의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도록 안내했다. 활동 보고서도 학교 누리집의 동아리별 게시판을 이용해 비대면으로 제출받았다.

이러한 방식에 대해 학생들은 활동 시간에 융통성이 생긴데다 도서관에 오고 가는 시간도 절약할 수 있어 좋다는 반응이었다. 특히 밴드는 참가자들이 활동 내용을 서로 볼 수 있기에 다른 사람의 활동에 의견을 댓글로 달도록 함으로써 학생 간의 상호작용을 이끌기도 했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교사로서는 학생들의 활동을 여유 있게 살펴보고 피드백을 줄 수 있던 점이 좋았다.

나는 무엇이 불편한가?

작년에 밴드를 활용한 독서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완주한 학생은 약 200명이다. 열심히 댓글로 피드백을 주고, 혹시라도 깜박 잊고 활동 인정 기준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까 봐 한 명, 한 명 활동을 확인하여 댓글과 채팅으로, 또 문자메시지로 개별 안내하고 지도했다. 공개 피드백을 주는 가운데 혹시 누군가 서운해하는 일이 생길까 꼼꼼하게 챙기며 한 학기를 지내다 보면 어느새 점점 지쳐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수십 개에 달하는 독서동아리도 매달 보고서가 제때 올라오는지 살피고 댓글과 문자 등으로 피드백하였는데 학생들에게 제대로 전달은 되고 있는지 답답할 때가 많았다. 많은 교사가 예측할 수 없는 비대면의 상황에서 학생들과 겪었던 소통의 어려움은 모두 비슷했으리라 생각한다.

교사는 학생과의 관계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내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교육 현장에서 교사 스스로 내면을 돌보고 채워가지 않으면 교육 활동은 그저 해치우기에 급급한 업무와 다를 바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가 되어 비대면 소통이 일상화가 되고, 학생들의 표정과 반응을 알아차리기 힘든 이 불편하고 위축된 상황에서 교육을 통해 교사와 학생이 함께 성장하는 일은 정녕 불가능한 것일까?

평생 독자가 되기를

<광남고 독서 프로그램>

사서교사로서 독서교육에 대해서 크게 두가지 목적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첫째는 학생들이 평생 독자로서의 기틀을 마련하도록 돕는 것이고, 둘째는 교과 독서나 탐구 활동이 학생들의 학습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책 읽기가 즐거웠거나 독서를 통해 특별한 위로와 도움을 받았던 경험, 효율적으로 독서 정보를 이용했던 경험 등을 가진 학생은 성인이 되어서 스스로 책을 찾아 읽는 사람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학생들이 다양한 기회를 통해 긍정적인 독서를 경험할 수 있는 독서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한다.

그러면서 또 고민한다. 다니엘 페나크는 『소설처럼』에서 ‘교육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을 때, 우리는 얼마나 훌륭한 교사였던가!’1라고 외친다. 그의 말처럼 독서를 교육이라는 틀에 밀어 넣으면서도 긍정적 독서 경험 이 되기를 기대하는 일은 비현실적인가? 고등학교에서도 그냥 서사에 몰입하여 울고 웃고 위로받는 독서가 가능할까? 대부분 프로그램이 어느 정도 강제성이 있고 정해진 방법이나 구조에 따라 활동하게 되는데, 그래도 독서에 대한 학생들의 내재적 동기 유발에 정말 도움이 되기는 할까? 어렵다.

교사의 내면도 채우면서 학생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학생뿐만 아니다. 교사가 책을 통해 학생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면서 자신의 내면도 채워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몇 년 전 교사와 학생이 일대일로 만나 독서 나눔을 하는 독서 멘토링을 진행하면서 받았던 긍정의 피드백을 상기해보았다. 교사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학생들을 통해 접하고, 그 생각의 깊이에 자극받았던 기억이 있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이기 전에 같은 책을 읽은 독자끼리의 교감이 즐거웠다. 일대일 사제동행 독서 활동을 재구조화해서 추진해보기로 했다.

슬기로운 독서생활

자연스럽게 교육 과정과 독서를 연계하고, 교사와 학생 간, 학생과 학생 간에 깊은 나눔이 있는 활동으로 구성하고 싶었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책을 정성껏 읽어가는 3주간의 과정과 마지막 주에 토론 및 나눔으로 마무리하는 과정으로 계획했다. 모둠은 교사 한 명당 4~5명의 학생으로 구성하기로 하고, 시기는 중간고사 직후로 잡았다. 매주 함께 책을 읽고 확인하는 과정을 예시로 보여주기는 했지만, 참여하는 교사와 학생이 편한 방식으로 재구성할 수 있도록 여지를 두었다. 마지막 독서토론은 되도록 직접 만나되 여의치 않으면 화상회의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다양한 교과 교사가 독서 멘토 교사로 동참해 주었고, 솔직하고 개성 있는 문구로 학생들에게 책을 함께 읽자고 권유했다. 아래는 참가 신청을 위해 제공한 ‘도서 및 활동 소개’ 중 일부이다.

  • 과학적, 인문학적, 예술적 상상력을 더한 SF 소설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주에는 정말 우리밖에 없나요? 우리는 행복한가요? 함께 읽으며 질문의 답을 찾아봅시다.
  • 선생님도 아직 읽지 못한 책이어서 같이 만들어 가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어렵지만 영어판을 읽으면서 영어 표현도 익히고 작가의 삶도 간접 체험해 보면서 하나하나 성취해 나가는 기쁨과 재미를 느끼고자 합니다.

학생들의 참가 신청은 선착순으로 받되 2지망까지 선택하도록 하고, 지원 동기를 참고하여 모둠을 배정하였다. 모둠별 책을 준비하여 멘토 교사에게 전달한 후 모둠별 활동은 전적으로 멘토 교사의 책임 하에 진행하였다.

대면 모임에서는 말로, 온라인에서는 글로 소통했는데 개인에 따라 불편하기도 하고 자유롭기도 했다. 대면으로 대화할 때는 공감이 쉬웠고, 온라인에서는 자기 생각을 긴 호흡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니 결과적으로 두 가지 방법을 쓴 것이 효과적이었다.

교학상장(敎學相長)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을 읽은 모둠은 SF 소설과 관련한 다양한 자료를 모으고 공유하는 활동부터 시작했다. 특히 멘토 교사가 ‘죽기 전 꼭 봐야 할 명작 SF 애니메이션 7선’ 자료를 공유하며 이 중에서 한 작품도 보지 못했다고 하자, 해당 애니메이션을 본 학생이 댓글로 자신의 경험과 감상을 공유한 내용이 무척 인상적이다. 교사는 모든 것을 다 알고, 다 경험해 본 존재가 아님에도 의도치 않게 학생들 앞에서는 완벽한 어른인 척하는 경우가 많다. 진솔하고 진정한 만남일 때 우리는 서로에게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사와 학생이라는 역할을 거두고 같은 분야에 관심을 가진 독자로 만나 하나의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었어요. 다른 구절에 마음이 닿고, 같은 구절에 생각이 나뉘고, 때로는 공감하고, 때로는 설득하면서 읽어나갔어요. 마지막 모임에서 책을 읽지 않은 친구들을 위한 책 소개 활동을 했는데, 책이 자신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성장했음을 서로 느낄 수 있었어요. 관계 설정, 정서 공감, 경험 공유 등 교과 수업에서는 만나기 힘든 것들을 끌어내는 귀한 경험이었어요.

– 교사 박**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모둠의 1주차 패들렛 나눔 화면>

한편 『Walden and Civil Disobedience(Henry David Thorough)』를 함께 읽은 모둠은 패들렛(Padlet)과 구글 미트(Meet)를 동시에 활용했다. 매주 각자 책임지고 정리할 부분을 정하고, 영어 표현이나 마음에 와닿는 글귀 등을 패들렛에 4~5줄 정도 공유하고, 30분간 화상으로 만나 감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화상 만남 후에는 다시 소감과 의견을 패들렛에 자유롭게 남기도록 했다.

<『Walden and Civil Disobedience』 모둠 활동 중 패들렛 기록 내용 일부>

 

 

나눔의 종류가 다양하고 깊어서 오히려 학생들에게 많이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어쩌면 한 달여 시간 동안 『월든』을 통해 쏘로우(Henry David Thorough)를 느껴보고자 했던 학생들의 도전 자체가 세상을 떠나 독립적으로 살아가며 초월주의를 몸소 실천했던 작가의 삶과 많이 닮아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학생들과 함께한 그 시간이 저에게는 분명 ‘월든’이었습니다.

– 교사 이**

 

 

 

특히 멘토 교사는 날카로운 질문과 답변을 통해 학생들과 함께 알아가는 과정에 대한 벅찬 감정을 나누기도 하고, 알고 있는 지식을 추가로 전달하며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도 했다. 가르치고 배우며 함께 성장하는 ‘교학상장’의 예가 이런 것이 아닐까 한다.

개인 독서에서 사회적 독서로

문화체육관광부의 제 3차 ‘독서문화진흥 기본계획’에 따르면 독서는 이제 개인적 여가 활동을 넘어 ‘함께 읽고 쓰고 토론하고 나누는’ 사회적 독서로의 전환기를 맞고 있다. 다양한 유형의 독서클럽이 등장하고, 블로그와 SNS, 유튜브 등 미디어를 활용한 독서 나눔 사례도 늘어가고 있다. 학교에서도 교육과정과 연계한 독서토론 또는 독서 대화 등 함께 읽고 나누는 활동에 대한 기회를 더욱 확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의 독서가 앎에서 삶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만큼이나 교사가 교육 활동 속에서 지치지 않고 내면을 채우며 함께 성장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도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1. 다니엘 페나크(2004), 『소설처럼』, 문학과지성사, 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