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솔(중앙중학교, 교사)1
학교에 존경할 만한 동료 선생님들이 많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국어과 선배로서 내가 나아가는 길의 이정표가 되어 주시는 교장 선생님, 요즘 시대의 담임교사란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는 듯 나에게 귀감이 되어 주시는 과학 선생님, 그리고 자기관리의 결정체이면서도 학생들을 온몸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체육 선생님. 이밖에도 훌륭하신 선생님들이 많이 계시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 1학년 부장 선생님이신 체육 선생님의 열렬한 팬이다.
내가 체육 선생님을 떠올릴 때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치는 모습이 있다. 매일 아침 8시마다 홀로 운동장을 돌며 땀방울을 흩날리는, 건장한 장년의 멋스런 모습. 출근 시간에 임박해서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나에게 여유 넘치는 인사를 건네고 트랙을 달려가시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사실 처음에는 ‘대단하다’ 정도의 생각이 맺혔을 뿐, 마음에 큰 파문이 일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모습이 해를 거듭하며 이어지자 생각이 달라졌다. 선생님의 꾸준함이 앞으로도 쭉 이어졌으면 하는 ‘응원’ 한 스푼에, 나도 곁에서 달려보고 싶다는 ‘열정’ 한 스푼, 그리고 학생들도 저 멋진 모습을 닮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대’ 한 스푼. 선생님과 함께 만들어 가는 수업의 주제가 ‘달리기’로 정해지는 데에는 단지 마음 세 스푼이면 충분했다.
함께 달리기를 위한 동료 모으기
중앙중학교 1학년 학생들의 2021학년도 1학기 수업 주제는 ‘달리기’였다. 어떻게 하면 코로나19 시대에 마을과 함께하는 수업의 맥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중, 매일 아침 달리기를 하시는 체육 선생님의 건강한 모습이 떠올랐다.
체육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 운동장 트랙을 돌다가, 그 길로 교문을 빠져나가 우리 동네 북촌을 자유롭게 달리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코로나19를 건강하게 이겨 낼 수 있는 융합 수업을 위해 함께 달려 나갈 동료 선생님을 모으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한 교과는 ‘국어, 체육, 사회’ 과목이었다. 국어 수업에서는 다양한 독서 활동을 통해 달리기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고, 사회 수업을 통해 지역사회를 자유롭게 달려보기 위한 코스를 짜보는 재미를 느껴보며, 체육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자신의 페이스를 찾아 직접 달리기를 체험해보는 시간을 만들어 가면 선생님과 학생 모두에게 의미 있는 기억이 남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당연히 이번 수업의 중심은 체육 선생님이었다. 학생들에게 매일 아침 꾸준히 달리기를 지속하시는 체육 선생님의 매력을 전하고 싶기도 했거니와, ‘달리기’가 주제인 만큼 체육 교과 활동을 전체의 축으로 잡으면 다른 교과들도 흔들리지 않고 공통된 목표를 향해 활동을 진행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함께 수업을 진행해 나가자는 말씀을 전하기란 쉽지 않았다. 교과 융합 수업에 대해 생각도, 기대도 하고 있지 않으셨던 학교의 대선배에게 새로운 시도를 요구한다는 것의 무게가 느껴졌다.
한 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동료 선생님들에게 나의 마음속 두근거림을 공유할 수 있는 ‘조감도’가 필요했다. 그래서 우선 세 교과의 교육과정을 재구성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체육과에서는 부담 없이 함께할 수 있는 수업을, 사회과에서는 작년에 함께한 활동을 그대로 살릴 수 있는 수업을, 국어과에서는 나 스스로가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수업을 위해!
삶을 닮은 달리기, 삶을 담은 달리기
‘달리기’는 일상에서 손쉽게 시도할 수 있는 훌륭한 운동 방법이면서도, 각자의 방향과 속도를 찾아가기 위한 삶의 철학이다.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학생들은 앞으로 수많은 시간을 달려 나가게 된다. 물론 기쁘고 즐거울 때보다 힘들 때가 더 많겠지만, 우리 학생들이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을 찾아 즐겁게 달리는 자세를 몸에 익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교과 융합 프로젝트 수업은 ‘준비 운동’부터 ‘완주’에 이르기까지, ‘달리기’의 과정과 유사한 모습으로 구성되었다.2
전체적인 수업 활동은 국어와 체육 수업을 중심으로 구조화되었다. 국어 수업에서는 달리기를 주제로 쓴 작가의 글을 읽으며 활동을 위한 동기를 유발하고, 체육 수업을 통해 직접 달리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4~5월에 집중적으로 진행되는 사회 수업에서는 우리 동네 달리기 코스 만들기를 통해 ‘달리기’와 ‘지역사회’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활동을 진행했고, 이후 진행된 체육·국어 수업 활동에서 ‘학교 밖 달리기’ 와 ‘달리기를 주제로 한 글쓰기’를 진행하며 한 학기를 완주해보는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또한 1학기에는 달리기를 완주하는 성취감을 느끼고, 2학기에는 완주 경험을 기반으로 수업 활동을 확장하는 다양한 활동들을 추가로 체험할 수 있다면 ‘삶을 닮은 달리기, 삶을 담은 달리기’라는 주제의 의미를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들, 북촌을 달리는 사이
중앙중학교에 달리기 열풍이 불어왔다. 매일 아침 8시부터 30분 동안, 1학년 학생의 절반 가까운 인원이 자발적으로 운동장을 달리며 건강한 습관을 쌓아갔다. 달리기는 지루하고 힘든 것이라는 생각이 수업활동을 거듭하게 되면서 조금씩 변화해가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함께 지역사회를 걷고 달리다 보니 학교에 가는 것이 즐겁다는 학생들, 학생들과 함께 달린 덕분에 자연스레 학생들과 소통하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선생님들, 작년 한 해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던 학생들이 건강하게 달리는 모습을 응원하는 학부모님들, 그리고 북촌을 달리며 우리 동네의 다양한 공간들을 온몸으로 느끼며 나만의 생각을 새겨볼 수 있었던 우리 모두들. 코로나19를 이겨내는 건강한 습관을 형성하며, 각자의 ‘삶’을 달려 나가는 건강한 자세를 갖추기 위해 시작한 달리기 수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코로나19 상황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지역사회를 달리는 것이 가능할지에 대한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모두가 ‘달리는 사이’가 되어 ‘함께’ 달렸기 때문에 끝까지 1학기 수업 활동을 완주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흘린 땀방울들을, 달리는 동안 머릿속에 맺힌 다양한 생각들을 오래도록 남기고 싶었다. ‘구글 사이트 도구’를 활용해서 2021년 1학기의 발자취를 남기기 위한 온라인 전시회를 진행하고, 학생들이 각자의 달리기를 하며 쓴 글들을 엮어 수필집을 출간하게 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호흡 맞추어 함께 달리기
학생들과 달리기를 하며 배운 것이 하나 있다. 꾸준히 오래 달리기 위해서는 달리기가 즐거워야 하고, 달리기가 즐겁기 위해서는 함께 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과 함께,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달렸기 때문에 1학기 동안 긴 호흡으로 이어진 수업 활동을 무사히 완주해낼 수 있었다.
‘달리기 완주’의 의미는 나 자신과의 경쟁에서 ‘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오늘의 결승선이 마지막은 아닐 것이며, 우리는 앞으로 더욱 많은 거리를 달려 나갈 것이다. 때로는 지루하고, 힘들고, 지칠 때도 있겠지만, 함께 호흡 맞추어 새겨온 의미들을 기억하며 앞으로도 ‘지지 않는’ 달리기를 지속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의 결승선은 우리 삶 속의 새로운 출발선이 되어주곤 한다. 2021학년도 1학기의 마지막을 발판 삼아, 새롭게 시작될 우리들의 달리기 인생을 응원하며 글을 마친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