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예진 명예기자
서울특별시교육청과 한국교원대학교가 공동주최하고, 서울특별시교육청교육연구정보원(이하 교육연구정보원) 교육정책연구소에서 주관하는 2022 서울국제교육포럼이 ‘권리로서의 배움: 기초학력과 학습부진에 대한 새로운 이해’라는 주제로 열렸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됨에 따라 3년만에 온·오프라인 블렌디드 방식으로 교육연구정보원 대강당에서 대면 포럼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교육연구정보원 유튜브 채널을 통해 실시간 중계되었다. 이번 포럼의 세션별 세부 주제로는 기초학력 지원 정책의 세계적 동향, 기초학력 지원의 실제 사례를 논의했고, 총 11명의 국내·외 교육전문가들이 기조 강연, 주제 발표, 사례 발표, 토론으로 청중들을 만났다. 일본, 싱가포르, 캐나다, 미국 등 세계 주요국가의 기초학력 지원 정책과 사례가 소개되었고, 국내 사례로 박수경 교사(서울사근초등학교), 유미란 교사(종암중학교)의 기초학력 지원 사례 발표가 이어졌다. 이대식 교수(경인교육대학교), 주정흔 선임연구위원(교육연구정보원 교육정책연구소)이 좌장을 맡아 발표자들과 함께 국내·외 담론과 쟁점을 종합적으로 조망하며, 한 사람, 한 사람의 권리로서의 배움과 성장을 돕는 기초학력 지원을 위해 토론하는 뜻깊은 자리가 되었다.
새로운 기초학력 증진을 위한 기회와 도전
발표자: 기타무라 유토 교수(일본 도쿄대학교)
‘새로운 기초학력 증진을 위한 기회와 도전’이라는 제목으로 포럼의 첫 발제를 맡은 기타무라 유토 교수는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교육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일본을 비롯한 대부분의 OECD 국가에서 학생의 사회·경제적 배경은 학습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부모의 학력이 높을수록, 부유한 지역에 위치한 학교일수록 학생의 학업성취도가 높습니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학습이 시작되면서 가정의 경제 상황에 따른 교육격차는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그는 학생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의해 발생하는 교육 불평등 문제를 지적하며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고 학생 개개인의 학습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스마트기기를 활용한 학교 교육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스마트기기를 활용한 협동학습과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분석한 개인별 맞춤형 학습이 학생의 배움에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이제는 국어, 영어, 수학 등의 과목에 기반한 기초학력의 개념을 넘어 디지털기기 활용 능력 역시 기초학력의 범위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였다.
이어서 기타무라 유토 교수는 지속가능발전교육(Education for Sustainable Development, ESD)을 이야기하며 현대 사회의 세계적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문제해결 방법을 생각하여 삶에서 행동으로 실천하는 배움을 강조하였다. 지속가능발전교육은 학생들이 기후변화와 환경문제, 생태계 파괴, 빈곤과 불평등과 같이 세계가 서로 연결되어있는 과제를 해결하는 지식과 기술, 가치, 태도를 갖추도록 돕는 교육이다. 그는 지속가능발전교육이 현재 일본 교육 정책의 핵심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지구 환경과 국제 사회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한 교육계의 노력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세계의 문제가 곧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시대인 만큼 교사 역시 국경을 넘어 초국가적 학습 공동체를 구축하고 협력적 연구를 위해 노력할 것을 제안하며, 이것이 다음 세대 학생들의 배울 권리를 보장하는 책임감 있는 행동임을 피력하였다.
모든 학생을 위한 교육의 여정
발표자: 테오 탱 위 교수(싱가포르 NIE)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교육 역시 사회, 문화, 정치, 경제 등 여러 분야와 밀접하게 관련되면서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이같이 급변하는 미래사회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교육과정이 아닌, 그들의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연한 교육과정이 필요합니다.”
테오 탱 위 교수는 모든 학생을 한 가지 방법으로 교육하는 것이 효율적인 것으로 보이나 꼭 그만큼 효과적이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교육제도는 개개인의 차별화된 학습 요구와 성취도를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학생들에게 학습 과정에서 선택지를 줄 것을 제안했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싱가포르 교육계에서는 학생들이 교육제도 안에서 더 많은 교육활동과 교육과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경로들이 부상하였다고 한다.
“싱가포르에서는 6년간의 초등교육을 마치면 국가시험인 초등 졸업시험을 치르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중등학교에 진학합니다. 학생들은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고려하여 일반적으로 진학하는 주류 학교와 현장 및 실무 학습, 스포츠, 예술, 과학, 수학 등에 특화된 특성화 학교 중에서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어서 학생들의 다양한 특성을 맞출 수 있도록 세분화된 교육기관을 소개하였다. 노스라이트 스쿨(Northlight School)과 어섬션 패스웨이 스쿨(Assumption Pathway School)에서는 배움이 느린 학생들을 위하여 더 체계적이고 짜임새 있는 교육과정과 실험과 실습을 통한 학습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특히 난독증,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 장애(ADHD), 자폐 스펙트럼 장애, 신체 및 감각 장애 등으로 인해 특별한 교육이 필요한 학생들을 위해서는 교육전문가, 학부모, 기타 이해관계자가 협력하여 개별화교육계획(Individualized Education Plan, IEP)을 수립하고 학생이 스스로 학습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한편, 수학·과학 영재 고등학교, 예술학교, 체육학교 등 특정 분야에 강점을 보이는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한 특성화 학교도 있다.
이렇게 학생마다 다른 교육의 여정은 한 학교 내에서도 여러 학습 경로를 제공하며 이어지고 있다. 특히 2024년부터 시작되는 전 교과목을 수준별로 수업하는 제도(Subject-Based Banding, SBB)는 싱가포르 교육제도에서 예상되는 큰 변화로 주목받고 있다. 이 제도의 목표는 학생들의 과목별 능력과 흥미에 따라 학급을 나누어 가르침으로써 학생의 다양한 학습 수요를 최대한 충족시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심화 수학, 미술, 설계·기술 등 여러 가지 선택과목을 제공하여 학생의 적성과 흥미를 바탕으로 자기주도적인 학습이 가능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모든 학생의 인생의 출발점이 다르지만 자신의 고유한 능력을 개발하여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테오 탱 위 교수의 강연은 교육의 진정한 역할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또한, 다양한 능력과 흥미를 가진 학생들을 위해 통일된 교육 경로가 아닌 다방면의 교육 경로를 고안하고 학생에게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이 학생의 배울 권리를 보장하는 하나의 방법임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모든 학생의 학습 의지와 능력
발표자: 사리나지트 카우르 수석교사(싱가포르 교육부 교육 아카데미)
테오 탱 위 교수에 이어서 사리나지트 카우르 수석교사는 싱가포르의 기초학력 지원 사례를 소개하였다.
“수석교사로서 오랜 시간 다양한 교육자들과 교류하며 깨달은 것은 ‘모든 아이는 배우고 싶고 배울 수 있다.’는 믿음을 교육자가 갖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신념은 싱가포르에서 포용적 교육을 실현하는 비전의 토대이자 원동력이 되고 있으며 모든 교사들이 이 공통된 신념에 기초하여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는 싱가포르 교육부는 학습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을 포함한 모든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말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세 가지 목표를 소개하였다. 첫째, 모든 아이는 배울 수 있다. 학생이 배움의 주인공이라는 믿음은 모든 교육 관계자들이 가져야 한다. 따라서 전 교육과정에서 학생을 중점에 두고 어떤 부분에 집중해야 할지 교육의 방향과 목표를 정해야 한다. 둘째, 모든 교사는 유능하다. 교사는 학생의 성장과 배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교사가 스스로의 능력과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셋째, 모든 학교는 포용적인 문화를 가진다. 이에 따라 학습지원이 필요한 학생에게는 다층지원시스템(Tiered System Support, TSS)을 통해 적절한 교육이 제공된다. 다층지원시스템의 1단계에서는 보편적인 학습전략을 통해 학습지원대상 학생을 지원하고, 2단계에서는 학생의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교정을 통해 학습을 보충한다. 3단계에서는 학생에게 필요한 교육전문가의 일대일 지원을 통해 집중적인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사리나지트 카우르 교사는 다양한 특성의 학생을 품을 수 있는 포용적 수업을 특히 강조하면서 교실 내 모든 학생들에게는 동등한 학습 권리가 있기 때문에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반드시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아이는 배우고 싶고 배울 수 있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한 싱가포르 학교의 기초학력 지원 제도는 교사로서 학생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 모든 학생의 존엄성에 무게중심을 두고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학습지원대상 학생의 학업성취도 향상 지원
발표자: 피터 시몬스 장학관(캐나다 오타와-칼튼 교육청)
캐나다 역시 싱가포르와 유사하게 ‘모든 학생은 성공적으로 학습할 수 있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모두를 위한 교육(Learning for All)’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피터 시몬스 장학관은 모두를 위한 교육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각 학생의 고유한 학습패턴과 특성을 고려하는 ‘단계별 개입 모델(The Tiered Approach)’을 소개하였다. 이 모델은 학생의 학습 과정과 결과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하여 학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을 조기에 식별하고, 그들의 학습을 지원하는 세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일반 학급에서 교사가 수업 중 학생을 관찰하며 학생의 강점과 필요사항을 파악하는 단계로서 협동학습, 프로젝트 학습, 문제 기반 학습 등 여러 가지 교수법을 적용한다. 이 단계에서는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돕기 위해 시각적 보조 자료와 감각 도구, 흔들 쿠션과 흔들 의자 등 자기 조절을 위한 도구들을 활용한다.
첫 단계에서 학생이 학업성취도에 도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충분한 증거가 존재한다면, 다음 단계의 개입을 받을 수 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학급 내에서 학습 지원팀의 도움을 받아 학습할 수 있으며 개별화교육계획의 필요성을 논의한다. 또한 학생이 학습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학생만의 개별 학습 공간을 마련하고 학습 과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과제 박스를 활용한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조기교육팀, 자폐·발달 장애 지원팀 등과 협력하여 더 전문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개별화교육계획 역시 학생의 필요에 따라 지속적으로 수정 및 보완하며 학생의 교육 요구를 촘촘히 반영한다. 이처럼 단계적 개입 모델은 점진적으로 교육의 개입을 확대해나가며 학생의 개별적 성장을 지원하는 것이다.
피터 시몬스 장학관은 “교육은 단지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한 학생의 성공적인 배움을 위해서는 여러 교육 주체가 힘을 모아야 합니다. 정부는 필요한 전문가와 보조 인력을 마련하고 교사는 전문성을 키우며 학교는 행정절차를 지원하는 노력 등을 통해 한 학생의 배움이 온전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적극적 협업을 당부하며 끝을 맺었다.
데이터 베이스에 기반한 초기 작문 학습 지원
발표자: 에리카 렘케 교수(미국 미주리대학교)
에리카 렘케 교수는 쓰기 능력은 학습한 내용의 통합 및 전달에 영향을 미치고 학교생활과 고등교육, 나아가 취업에서도 성공의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쓰기 학습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쓰기에 어려움을 가진 학생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조기 식별과 적절한 중재, 지속적인 진단 평가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며 데이터 기반 교수법(Data-Based Instruction, DBI)을 활용한 초기 작문 학습과 관련한 연구를 소개하였다. 데이터 기반 교수법은 교사들이 학생의 학습 자료, 즉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업성취도를 체계적으로 모니터링하고 학습 과정에 대한 학생의 반응을 분석하여 학업성취도가 향상되지 않는 경우 개별화 교수법을 도입하는 방법이다. 데이터 기반 교수법에는 교사가 학생 개개인의 데이터를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적기에 올바른 개입을 할 수 있도록 돕는 학습 과정 모니터링 도구, 의사결정 도구, 교수 도구를 포함하고 있다.
그는 “학습 과정 모니터링 도구는 학습 목표와 학생의 현재 학습 상태를 비교하여 그래프로 나타내어 보여줍니다. 학생의 학습 과정을 보여주는 진전도의 기울기가 목표선보다 가파르면 학생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의미이므로 목표를 더 높이 설정하고, 기울기가 완만하면 다른 교수법을 적용합니다.”라고 설명하며 이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의사결정 도구를 소개하였다. “의사결정 도구에는 교사가 언제, 어떻게 교수법을 조정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규칙과 질문들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교사는 이를 바탕으로 학생 개개인의 필요에 맞는 수업을 효율적으로 개발할 수 있습니다.”
뒤이어 그는 교수 도구에는 여러 가지 수업 활동들이 개발되어 있어서 교사가 이 활동들을 조합하여 최적의 수업을 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말소리를 문자로 옮겨 적는 전사 수업에는 바른 글자 쓰기, 두음과 각운을 사용해 단어 만들기, 정확한 단어 철자 쓰기 등의 활동이 준비되어 있다. 또한, 문장 생성 수업에는 문장을 구성하기, 문장을 하나로 합치기 등의 활동이 포함되어 있다. 각 활동은 10분에서 20분 정도 소요되므로 교사가 수업 시간에 맞추어 학습 활동과 분량을 결정할 수 있다.
‘이 학생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를 고민할 때, 그 해답을 데이터를 분석한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생을 위한 더욱 정확하고 개별화된 학습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면 이는 학생의 성장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포럼의 마지막 순서로는 이대식 교수(경인교육대학교)가 좌장을 맡고 발표자들이 패널로 참여하여 조희연 교육감과 함께 토론하는 소통의 자리가 마련되었다. 토론에서는 각 국가의 기초학력 지원 정책 및 실제 수업과 관련한 각자의 경험담과 함께 앞으로 기초학력 지원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초학력 지원의 세계적 동향을 논하며 우리 학생들이 배울 수 있는 권리를 어떻게 더 보장할 수 있을지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이번 포럼이 기초학력과 학습부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배움의 권리와 그 가치를 되새기는 뜻깊은 기회가 되었기를 바라며, 학생 개개인의 고유한 성장과 배움의 과정을 온전히 지원하는 정책과 학교 현장 속 사례들이 샘솟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