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사라 명예기자
2022 개정 교육과정 전면에 학교 자율시간이 등장했다. 시수를 어떻게 나눌지, 어떤 교과가 맡을지를 먼저 결정하기보다는, 학교 자율시간을 통해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게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학교 자율시간은 학생에게 필요한 학습 주제를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정하고 탄력적으로 시간을 운영하여 학습 주제를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학년제처럼 통합하여 운영할 수도 있고, 학년별로 계열성을 가진 주제를 가지고 1학년 때부터 꾸준히 위계를 갖고 배우게 될 수도 있다. 어떤 학습 주제를 선정하든 3년 동안 학교 자율시간을 통해 자신의 삶과 관계된 넓고 깊이 있는 지식을 갖게 될 것이며, 학교 자율시간은 학생이 차근차근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든든한 밑바탕이 될 것이다. 금호여자중학교(교장 여미성, 이하 금호여중)는 2024년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로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기 위해 현재 3학년 학생만 학교에 남아 있다. 이 학생들은 3년 동안 유네스코 학교에 다니며 매년 세계시민교육의 날 및 여러 관련 활동을 해왔으니, 그야말로 학교 자율시간의 3년 축소판을 경험했다고 할 수 있겠다. 유네스코 이념과 가치를 반영한 학습지도와 창의적 체험활동을 통해 세계시민을 키우고 있는 금호여중을 통해 앞으로 새롭게 주어질 ‘학교 자율시간’을 의미 있게 꾸려갈 비전을 살펴보고, 학생들이 세계시민으로 자라고 있는 과정을 들여다보았다.
공동체가 함께하는 유네스코 학교
금호여중이 운영하는 유네스코 활동은 모두 SDG20301을 달성하기 위해 세계시민교육과 지속가능발전교육이라는 주제를 학생에게 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주제는 대부분의 교과와 연결점을 가지고 있는 범교과 학습 주제로, 학교 자율시간에 활용할 수 있다.
교사-학부모-학생의 공감대 형성
유네스코 학교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공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 학교에 유네스코 이념과 가치가 왜 필요한지, 학생들에게 어떤 점에서 좋은지를 설득하는 과정이 있어야 교사도, 학부모도, 학생도 함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호여중은 교사-학부모-학생의 공감대를 기반으로 꾸준히 유네스코 활동을 실시하고 있다.
1) 교사
신학년 집중준비기간을 활용해 교사 공동체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유네스코 학교 활동을 위해서는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따로 마련하여 세계시민교육의 날을 운영하는 등 사전에 학교교육계획에 반영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기에 신학기가 시작되기 전 유네스코 학교가 무엇인지 소개하고 협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유네스코 학교의 학습 주제인 민주시민, 인권, 다문화 등을 다루는 교과목과 연계하여 수업을 계획하기도 한다. 수업 외에도 세계시민교육의 날 등 여러 활동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뜻있는 교사들이 모여 세계시민교육 교원학습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유네스코 관련 행사를 진행할 때 작품을 심사하기도 하고 행사 준비와 진행을 함께하기도 한다. 한 명의 교사가 혼자서 모든 일을 감당하기 어렵다. 이는 학교 자율시간이 운영될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담당 교사 홀로 애쓰는 것이 아니라, 교사 공동체의 관심과 지지를 기반으로 다양한 활동을 여러 교사가 함께 실천해야 할 것이다.
2) 학부모
유네스코 학교 활동을 안내하는 가정통신문을 발송하고 학부모 총회나 학부모 연수 등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홍보하고 있다. 여러 방면의 홍보를 통해 학부모도 학교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어떤 교육활동을 하는지 알 수 있다. 학부모가 알게 된다는 것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실제 활동이 이루어질 때 학부모의 적극적인 협조를 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교사-학부모-학생이 지구촌 전등 끄기 활동에 함께 참여하고, 학생들이 주말에 자율동아리 활동을 할 때도 가정에서 이해하고 협조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또한 아나바다 나눔 행사도 학부모회가 주관하는 등 학교와 가정이 연계하는 활동을 통해 나눔의 가치가 가정으로 확산되는 효과가 있다.
3) 학생
학생들은 어떻게 유네스코 학교 활동에 참여할까? 매년 첫 학급회의에서 학급별 유네스코 실천 약속을 정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학기 중에는 수업 시간 및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유네스코 이념과 관련된 내용을 배운다. 학급에서도 학급별 전기 절약하기, 분리수거, 자원 재활용, 잔반 줄이기, 손수건 사용하기 등 환경 보호와 관련된 여러 활동을 실시하고 있다.
더불어 유네스코 이념에 더 관심을 갖게 된 학생들은 유네스코 정규동아리 및 자율동아리로 활동하게 된다. 동아리 발표회를 통해 세계 곳곳이 하나로 연결됨을 느낄 수 있도록 세계 전통 의상을 직접 입으며 체험하는 활동을 준비하기도 하고, 동아리 활동의 일환으로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자기 자신과 실천 약속을 맺기도 한다.
자율성에 기반한 유네스코 학교
유네스코 학교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1년 전에 신청서를 제출하고 승인을 기다려야 한다. 승인된 후에는 연초 교육계획서, 연말 결과보고서를 작성하게 된다. 금호여중은 2019년 세계시민교육 동아리 활동으로 첫발을 내딛고, 2020년 유네스코 학교에 가입을 신청하며 학생 자치활동, 동아리 활동, 창의적 체험활동과 연계하여 세계시민교육을 실천했다. 2021년부터 유네스코 학교로 선정되어 활동을 이어왔으며, 코로나19 기간에도 SNS 소통 창구를 마련하여 참여를 이어갔다. 학교 내부에서 세계시민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학생들을 위해 자율적으로 유네스코 학교를 신청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학교 자율시간도 마찬가지로 학교가 학생에게 필요한 것을 발견하여 학습 주제를 정하고 뜻을 모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유네스코 학교는 5가지 운영 원칙과 3가지 학습 주제를 제안한다. 이것을 바탕으로 유네스코 학교의 궁극적인 목표가 학생의 세계시민성 함양임을 기억하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내면화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유네스코 이념과 관련된 활동이 ‘가정–학교–지역사회’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교육공동체가 협력해야 한다. 아울러 학생의 세계시민성 함양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토론을 통해 찾아나가는 과정이 있다면 나눔, 협력, 참여가 실제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수업과 연결되는 세계시민교육
금호여중은 1학년 자유학기 프로그램 중 하나로 ‘세계시민교육반’을 운영했다. 2시간씩 연계하여 실시하는 수업 중 첫 번째 시간에는 이론을 배운 후 토론하는 활동을, 두 번째 시간에는 학생의 개별 활동 및 발표 시간으로 진행했다. 학생들이 배운 내용을 실천하고 참여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추후 학교 자율시간에서도 참고할 만한 주제와 학습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학생에서 시민으로 자라는 유네스코 학교
유네스코 학교로서 실천하는 수많은 활동은 학급 회의 시간, 아침 등교 시간, 동아리 시간, 학교교육계획에서 미리 세워둔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 등에 진행된다. 현재는 특별히 시간을 내어야 운영할 수 있는 활동이지만, 추후 학교 자율시간이 자리를 잡으면 정해진 시간에 꾸준히 운영하며 학생의 성장을 든든히 지원하게 될 것이다.
학생, 공동체로 함께하다.
금호여중은 새학기가 시작되면 먼저 학급별 실천 약속을 정한다. 1년 동안 함께 실천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활동에는 무엇이 있는지 학급 회의에서 토론을 통해 정하고 실천하기로 서약하는 것이다. 그리고 학급별 약속을 각 학급의 앞문 옆에 게시하여 1년 동안 아이들이 항상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이렇게 함께 지킬 약속을 민주적으로 정하고 게시하는 활동을 통해 아이들은 소통을 경험하고, 자신이 학교 공동체에 속했음을 깨닫게 되며, 잠재적으로 실천 약속이 내면화되어 삶에서 실천하게 된다. 무엇보다 유네스코의 이념과 가치를 전학교적 활동으로 확산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금호여중은 세계시민으로서 세계라는 공동체에 속한 존재임을 기억할 수 있도록 UN 기념일을 기억하는 활동을 했다. 세계 문해의 날을 맞아 모든 사람에게 교육의 기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는 글을 쓰기도 하고, 지구를 지키기 위해 모두 같은 시간 소등하는 지구촌 전등 끄기 행사(Earth hour)에 학생, 학부모, 교사가 모두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세계 생물다양성의 날, 세계인권기념일, 지구의 날 등 UN 기념일을 기억하는 활동을 진행한다. 이런 활동을 통해 아이들은 자기중심적 생각에서 한 걸음 나아가 타인을 인식하고 연대하는 세계시민으로 자라게 된다.
학생, 지속 가능한 삶을 실천하다.
기후 변화가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되는 가운데, 학생들이 살아갈 미래의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금호여중은 급식실과 연계하는 활동이 많다. 점심시간 텀블러 이벤트를 열며 학생들이 일회용품 사용을 줄일 수 있도록 돕기도 하고, 육류는 먹지 않는 대신 해산물, 달걀, 유제품은 먹는 페스코 베지테리언 식단(그린 급식)을 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잔반 줄이기 이벤트 등을 열기도 한다. 이외에도 환경 보호를 위해 지구에게 보내는 약속의 편지 쓰기 활동, 학교 주변 환경 교란 식물인 서양등골나무, 환삼덩굴 등을 제거하는 활동을 해왔다. 이처럼 학생의 삶 속에서 ‘변화’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 주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학생이 능동적으로 다회용기를 사용하도록 생활 습관을 바꾸고, 삶의 터전에 존재하지만 지나치기 쉬운 유해식물을 찾아내는 눈을 뜨게 하는 것이 학생의 삶에 맞닿은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학생,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시민이 되다.
금호여중의 9월은 세계시민교육의 달로 운영된다. 그중에서도 하루를 정해 세계시민교육의 날을 운영하며 학생들이 세계시민성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2023년에는 중구청소년센터와 연계하여 오전에는 환경교육 강의를 들은 후 천연 재료를 가지고 EM세제 및 수세미 만들기 활동을 했다. 오후에는 전교생이 참여하는 환경 골든벨 퀴즈 대회를 실시하여 전교생이 환경, 기후변화, 에너지 분야의 전문가로서 유네스코의 이념과 가치를 실천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3년 동안 유네스코 학교에서 여러 활동을 경험한 3학년 학생들은 지역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이 되었다. 중구청소년센터에서 주관하는 동화동 부스터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환경교육 커리큘럼 개발, 환경 체험활동 기획 및 운영, 중구 청소년 정책 제안 등 여러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유네스코의 이념과 가치를 자연스럽게 내면화하여 지역사회를 이끄는 시민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꾸준한 교육을 통해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이제, 학교가 꿈꿀 시간
서울미래교육 2030에서는 핵심 가치로 존엄(시민성), 포용(다양성), 공존(지속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리고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시민성 함양 교육, 생태전환교육, 디지털·AI 소양 교육’이 중점 과제로 제시하였다.2 이처럼 학생들이 시민이 되는 것, 그래서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사회에 기여하는 존재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교육의 목표 중 하나다. 마이클 샌델은 ‘우리는 시민으로서 서로에게 어떤 책임이 있느냐’를 묻는다.3 우리는 사회에 소속된 구성원이고,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서로에게 빚진 존재이므로 공동선을 추구할 것을 강조한다.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공동선을 추구하는 가치관을 갖게 되려면 학생에게 어떤 배움이 필요할까? 학생이 한 사람의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기 위해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이런 질문에 대해 교육이 나아가야 할 큰 흐름을 유네스코 학교가 제시하고 있다. 나, 너, 우리가 하나의 공동체임을 깨닫고 함께 연대하며 존중하는 것이 시급한 오늘, 학생의 삶에 맞닿은 교육을 실천하기 위해 유네스코의 이념과 가치를 되새겨보아야 한다.
OECD Education 2030에서 말하는 ‘학생 주도성(Student-agency)’은 자신의 삶의 목표를 설정하고 주체적으로 계획·실행하는 능력이다. 아울러 학생이 협력적 주도성(Co-agency)을 통해 주위에 있는 동료, 교사, 지역사회 등 더 넓은 관계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협력하며 자신의 길을 개척하도록 안내한다.4
앞으로 생겨날 학교 자율시간을 통해 학생 주도성과 협력적 주도성을 키울 수 있도록 한다면 어떻게 될까? 금호여중의 ‘동화동 부스터’ 사례처럼 학생이 지역사회에 정책을 제안하고 변화를 이끄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학교 자율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학생이 성장하여 한 사람의 시민이 되도록, 그래서 세상을 바꾸는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제, 학교가 꿈꿀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