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영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1. 디지털 시대의 문식 환경과 학생 독자
언제부턴가 ‘독서’가 더 이상 당위(當爲)가 아닌 시대가 되었다. 독서교육을 하고 자 하는 이들에게는 참으로 곤혹스러운 시대이다. 독서로 개인의 지식과 교양 수준 을 판단하고 나아가 인격까지 가늠하던 시대의 독서교육은 쉬웠다. 사람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독서의 중요성을 인지하였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원만히 삶을 영위하 려면 독서능력이 필수 요건이었다. 독서의 위력을 잘 아는 부모(성인)들은 자신들의 자녀(후속세대)가 가능한 빨리 글자를 익히고 책을 가까이 하기를 바랐다. 부족한 형 편에도 자녀에게 책을 지원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었다. 문자 해득은 교육의 시발점이었으며 책을 가까이 하고 잘 읽는다는 것은 곧 학교생활과 직무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좋은 독자가 되는 일은 이상적인 자녀나 학습자 가 갖추어야 하는 핵심적인 덕목이었고, 비독자(非讀者)임을 밝히는 것이 부끄러운 시대였다. 불과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독서교육은 이러한 개인·가정·학교·사회 적 상황을 기반으로 하였다. 2018년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과는 매우 다르다.
그러나 독서에 대한 시각을 조금만 넓히면 독서가 본래 만인에게 강조되는 보편적인 행위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독서는 수천 년 동안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허락된 특수한 행위였다. 독서는 지금으로부터 약 5,300년 전 고대 문자의 탄생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후 표음문자인 그리스 알파벳이 보급되면서 문자를 익힌 사람의 수는 늘어났지만 미미한 수준이었다.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 즉 문식성(文識性 literacy)을 갖춘 이들은 인쇄술이 발명되고 책이 대량 생산·보급되면서 크게 증가 하게 된다. 15세기 중반의 이 일을 인쇄 혁명이라고 한다. 인쇄 혁명은 종교 개혁과 과학 혁명을 가능케 하고 근대 시민층을 형성하는 등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인쇄 혁명 이후에도 대중의 삶에 독서가 들어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OECD 보고서(van Zanden 외, 2014)에 의하면, 19세기 초만 해도 전 세계 인구의 12%만이 글을 읽을 수 있었다(1820년, 15세 이상 기준). 세계 인구의 과반 수(55.6%)가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1970년의 일이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보급된 지 500년 이상이 지난 후이다. 아직도 세계 인구의 10% 이상이 문맹이지만, 20세기는 인류의 대부분이 책을 접하고 독서능력을 갖추게 된 특별한 시기이다. 그 리고 20세기는 인쇄술이 지식 전승의 가장 보편적인 도구로 확립된 인쇄 문화의 황금기이기도 하였다(이순영, 2015). 사람들은 선조들이 축적한 방대한 지식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인류가 생산하는 지식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는 지식 혁명이 일어났다.
현재의 기성세대는 인쇄 문화의 절정기인 20세기 말에 교육을 받으며 독서의 가 치를 굳게 믿고 책 속에서 인생을 찾았던 세대이다. 그런데 현재 이 세대가 후속세대 에게 독서교육을 실행하면서 많은 변화와 도전을 맞고 있다. 이들이 교육해야 하는 후속세대는 ‘디지털’이라는 상이한 문식 환경 속에서 성장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마 크 프렌스키(2001)은 처음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태어나고 성장해 온 이들을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s)라고 명명하였다. 그리고 이들과 달리 낯선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느라 고전하는 기성세대를 디지털 이민자(digital immigrants)라고 하였다. 이러한 대비는 문식 환경에 대한 인식과 적응력이 상이함을 잘 보여준다.
현재 우리 학생들은 문자를 익히기 전부터 스마트폰을 접하고, 일상에서 디지털 기기를 다루면서 성장한 디지털 원주민들이다. 많은 학생들에게 디지털과 인터넷, 스마트폰은 일상 그 자체이며 몸의 일부와 같다. 바른ICT연구소(2016)에 의하면, 중·고등학생들은 주당 평균 38.6시간(1일 평균 6.43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사용한 다. 이는 학교 수업과 수면 시간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시간에 해당된다. 미래창조 과학부·한국정보화진흥원(2016)의 조사에서도 십대들의 하루 평균 스마트폰 이용 시간은 4.8시간이었다. 앞선 연구보다는 다소 낮은 수치이지만 초등 고학년까지 포 함한 십대 전체가 대상임을 고려할 때 역시 엄청난 수치이다. 실제로 십대의 1/3 정 도가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이다(미래창조과학부·한국정보화진흥원, 2016).
이러한 조사 결과는 학생들의 일상에서 디지털 기기가 갖는 엄청난 영향력을 잘 보여준다. 그에 반해 종이책 독서의 비중은 점차 위축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7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의하면 초·중·고등학생과 성인의 연간 종이책 독 서량은 전 시기인 2015년에 비해 모두 줄어들었다(초등학생 70.3권→67.1권, 중학 생은 19.4권→18.5권, 고등학생 8.9권→8.8권). 학생들의 독서 시간은 평일 49.4분 과 주말 68.1분이고, 여가 시간 중 독서 시간의 비중은 평일 22.9%, 주말 14.4% 수준이었다. 과거에 비해 가정과 학교의 문식 환경이 비약적으로 개선되었음을 고려할 때, 인프라와 각종 지원이 곧 학생들의 종이책 독서 활동을 보장하지는 않는 현실을 확인할 수 있다.
독서 장애 요인으로는 성인과 학생 모두 ‘일·공부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성인 32.2%, 학생 29.1%)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어서 성인은 ‘휴대전화 이용, 인터 넷, 게임’과 ‘다른 여가활동’을, 학생은 ‘책 읽기가 싫고 습관이 들지 않아서’와 ‘휴대 전화 이용, 인터넷, 게임’을 들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경우, 바쁜 와중에도 매일 5시 간 정도를 스마트폰에 할애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디지털 기기의 과도한 사용과 독 서 습관 미형성의 문제를 확인할 수 있다. 스마트폰 사용의 확장에 따른 종이책 독서 의 위축 양상은 학생들이 중학교에 진학한 후에 더욱 심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대의 문식 환경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풍부하다. 가정과 학교와 사회 곳 곳에 다양한 책이 풍부하게 공급되고 있다. 독서 동기만 있으면 어떤 시간과 공간에 서도 쉽게 종이책과 전자책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다. 그러나 20세기 동안 비약적 으로 발달해 온 인쇄 문화는 이미 정점을 지났고, 이제 디지털 시대라는 새로운 국면 에 돌입하였다. 그 변화를 학생들의 독서와 학습에 대한 인식, 소통 방식, 지식 습득 의 방법, 삶의 양식 전반에 걸쳐 확인할 수 있다. 과거의 독서교육이 독서를 당위로 놓고 출발했다면, 이 학생들에게 독서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시대의 문식성 (예: 독서의 개념, 독서의 이유와 필요성, 독서 방법과 지도)에 대해 본질적인 고민 을 해야만 한다.
디지털 시대의 문식성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그 변화를 정리할 수 있다. 첫 번 째는 독서나 쓰기, 문식성의 개념 자체가 새롭게 구성되는 점이다. 이를 문식성의 재 개념화(reconceptualization)라고 한다. 일례로 과거에는 독서가 한 권의 책을 완 독하고 그 의미를 음미하는 개념이었다면, 최근에는 인쇄물은 물론 디지털 공간의 정보를 읽는 행위까지 포함한다. 또한 독서와 읽기를 대비하지 않고 읽기(reading) 로 서책 독서를 포함한 모든 읽기 행위를 지칭하고 있다. 오히려 쟁점은 읽기에서 ‘문자’가 갖는 비중이다. 어떤 이들은 문자를 읽기의 성립 요건으로 보고, 어떤 이들 은 의미를 전달하는 모든 상징·기호 체계를 읽기의 대상으로 보기도 한다. 최근에 는 문자, 그림, 음향, 영상 등 의미 전달의 다양한 양식이 포함된 복합양식 텍스트 (multimodal texts)를 읽기의 대상으로 보는 견해가 강하다. 이외에도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와 같은 언어 활동의 경계가 모호해지고(예: 인스턴트 메시지는 쓰기 활동을 전제로 하나 구어 소통의 성격이 강하다. 웹 공간의 의사소통은 대부분 읽기 와 쓰기 활동을 전제로 한다), 종래의 독서·작문이 문자 중심의 용어라는 점에서 그 한계를 극복하고자 ‘문식성’이라는 용어가 확산되고 있다.
두 번째로 문식 환경의 변화는 사람들이 활동하는 공간과 그 안에서 배우고 생산 하는 지식의 속성에 영향을 미친다. 과거에는 몇 권의 책에 담긴 지식을 암송하고 깊 이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고 공유하는 능력이 중시된다. 교실에서 교사의 설명을 들으며 교과서를 분석하고 암기하는 공부도 바 뀌고 있고, 학습의 상당 부분은 학교 밖 디지털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디지털 공간 의 문식 활동은 오락, 학습, 일간의 경계가 모호한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이 디지털 공간은 기성세대보다 신세대들의 전문성이 더욱 높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다. 이로 인해 어른-아이, 교사-학생, 전문가-비전문가의 구분이 완화되고 심지어 이들의 지식수준과 권위가 전복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를 긍정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학생들의 디지털 문식 활동에서 큰 가능성을 보는 낙관론이 있는가 하면, 이들의 활동을 경계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과는 별개로 앞으로도 디지털 문식 환경의 영향력은 더욱 확장될 것이며, 당분간 종이책 독서와 디지털 문식 활동은 긴장 관계 속에서 공존할 것이다. 독서교육가들은 이러한 변화를 인정 하고 학생 독자가 변화하는 문식 환경 속에서 종이책 독서와 디지털 문식 활동을 건 강하게 병행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2절에서는 이를 위한 독서교육 의 지향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2. 독서교육의 최근 동향과 힘쓸 점:
꼼꼼하게 깊이 읽기, 한 권 읽기, 독자 정체성과 의미 있는 독서 경험
현 시점에서 학교 독서교육의 실행자들이 주목할 사안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 번째는 ‘꼼꼼하게 읽기(close reading)’와 ‘깊이 읽기(deep reading)’이다. 디지 털 시대라 할지라도 독서교육의 기본은 독해력 증진에 있다. 꼼꼼하게 읽기는 ‘독 자가 텍스트에 주의를 집중하여 명시된 정보를 확인하고, 논리적인 추론을 전개하 여 텍스트 전체의 의미를 깊게 이해하는 정교한 읽기’이다(이순영, 2015:58). 최 근에는 변화하는 문식 환경에 맞추어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면서 다양하고 복잡 한 텍스트를 정교하게 다루는 고등 수준의 독해력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학생들의 독해력은 대체로 짧은 조각글을 빠르게 훑어 읽고 대강의 의미를 파악하는 수준에 집중되어 있다. 그 이유는 학생 스스로 글을 읽고 그 의미를 깊이 파악 해 보는 연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교사의 설명이나 인터넷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 독서능력이 증진되지는 않는다. 독서능력은 사고력이자 실제적인 수행 능력이기 때 문에 학생이 스스로 글과 씨름한 시간과 수많은 시행착오를 필요로 한다.
아래 표에는 꼼꼼하게 읽기의 지도 방법이 제시되어 있다. 이때 세 가지 점에 유 의할 필요가 있다. 우선 학생들이 반복하여 읽고 그 내용을 음미할 만큼 흥미롭고 가 치가 있는 ‘텍스트’를 선정해야 한다. 텍스트는 한 편의 글로 시작해서 점차 더 길고 복잡한 글을 엮어 읽도록 변화를 줄 수 있다. 2∼3편을 제공하여 학생이 선택하도록 하는 방법도 좋다. 두 번째는 ‘교사와 학생의 역할’이다. 이 활동은 학생의 독립적인 독해가 핵심이다. 이를 위해 교사의 과도한 사전 개입(읽기 전 활동이나 지도)을 줄이는 대신 학생이 스스로 글을 읽고 그 의미를 탐구하도록 한다. 꼭 필요한 지도는 학생의 독서 후에 진행한다. 세 번째는 ‘텍스트 기반 질문’을 활용한 반복 읽기다. 꼼 꼼하게 읽기 활동은 대체로 학생의 독립적 읽기(1차) 후 교사 지원이나 동료 협업을 병행하는 읽기가 2·3차에 걸쳐 진행된다. 이때 교사는 직접적인 설명 대신 학생의 독해를 정교화 하기 위하여 텍스트 기반 질문을 활용할 수 있다.
두 번째는 ‘한 권 읽기’ 활동이다. 한 권 읽기는 2015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에 구 현된 성취기준으로 이 교육과정의 특징 중 하나이다. 한 권 읽기는 이후 ‘한 학기 한 책 읽기’, ‘온전한 글 읽기 운동’ 등으로 실현되고 있다. 교육과정에는 이 활동이 ‘한 편의 완결된 글을 읽어내는 독서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읽기의 가치와 즐거움을 아는 능동적인 독자’를 육성하고자 하는 취지로 도입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교육과정 에는 특히 중·고등학교 성취기준으로 제시되어 있는데, 중학교 ‘읽기’ 영역의 성취 기준과 해설은 아래와 같다.
교육과정 해설을 살펴보면, 이 성취기준은 읽기 자료, 읽기 활동, 활동의 효과 측 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주요 내용을 도식화하면 아래와 같다.
우선 ‘한 권 읽기’ 관련 성취기준에 나타난 읽기는 ‘한 편의 글’로 책 단위의 독 서에 한정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신 학기당 한 편 이상, 일정한 길이 이상의 온전한 글을 읽도록 권장하고 있다. 이러한 설정은 기존의 읽기 활동에 대한 문제의식과 연계하여 이해할 수 있다. 독서학계의 논의를 종합해 보면 우리나라의 학생 독자들은 짧은 지문(조각글)을 읽고 정답을 고르는 읽기에 익숙하며, 독서능력에 비해 독자 효능감과 독서 동기가 낮은 특성이 있다. 이러한 문제는 학년이 높아질수록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런데 독서 동기·태도·흥미·독자효능감과 같은 정서적 요인들은 독서 빈도와 시간은 물론 독서의 질적인 측면(예: 독자가 체감하는 만족감, 몰입감, 동일시)에 큰 영향을 미친다. 독서능력이 증진되기 위해서는 오랜 동안 도전적인 독서 활동을 능동적으로 수행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독서 동기나 효능감과 같은 정서 적 요인들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독자의 정서적 요인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1) 독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2) 개별 독자의 정체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독서 경험을 제공하고 3) 몰입과 소통과 성공의 기 회를 제공해야 한다(이순영, 2016; 이순영 외, 2015). 그 첫 단계는 선택권이다. 학생 독자들은 권한을 보장받을 때(예: 도서 선택, 읽기 방법, 독후 활동, 평가 방법과 준거 등) 동기화 되기 때문에 한 책 읽기 수업에서는 학생들에게 일정 수준의 선택권(자율 권)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머지 조건들은 세 번째 논의에서 다루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한 권 읽기 활동이 ‘문제해결의 읽기 과정’을 강조하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한 권 읽기는 수 차시에 걸친 활동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예: 배경 지식 부족, 중도 포기, 읽은 내용에 대한 이해 부족)가 개입된다. 그러므로 학생들이 활동의 목표와 과정을 숙지하고, 적절히 부가적인 정보원을 활용하며, 동일한 텍스트를 읽는 학생들이 조를 이루어 상호소통·지원하도록 하고, 주요 단계별로는 교사의 점검과 안 내가 제공되어야만 한다. 다양한 한 권 읽기 수업의 예와 교수학습 방법은 김주환 외 (2016)를 참고할 수 있다.
세 번째는 ‘독자 정체성과 의미 있는 독서 경험’이다. 과연 무엇이 능동적인 독자를 만드는가? 이에 대한 답은 개별 독자에게 의미가 있는 독서 경험으로 압축된다. 우리 는 평생에 걸쳐 무수히 많은 독서 경험을 한다. 하지만 그 가치는 동일하지 않다. 어떤 독서는 매우 끔찍해서 트라우마가 되기도 하고, 어떤 독서는 무의미하고, 또 어떤 독 서는 인생의 가장 행복한 기억이 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책 자체가 좋은 경 우도 있고, 독서 후에 나눈 이야기나 타인의 피드백이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독서의 가치를 깊이 인지하고, 독서를 능동적으로 수행하는 열혈 독자들은 특별한 독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험들은 평생 독자를 탄 생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하고 한 인간의 삶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 학교 독서 교육은 우리 학생들에게 이러한 독서 경험을 제공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양질의 독서 경험은 개별 독자의 특성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본 질적인 요소가 있다. 바로 독자 자신이다. 인간은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재미를 느끼며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활동을 할 때 오래 집중하고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독서도 그 러하다. 개별 독자가 관심을 갖고 집중해서 읽고 깊이 사고하며 이 과정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독서 경험이 중요하다. 이러한 독서는 다시 개별 독자의 자아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이유로 최근 독서학계에서 최근 가장 주목하는 과제는 독자의 정체성 (identities as a reader)과 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양질의 독서 경험이다.
독자 정체성은 개별 독자가 세상과 텍스트를 인식하고 의미를 구성하는 일정한 방식이다(McCarthey & Moje, 2002). 독자 정체성은 독자의 전 생애에 걸쳐 형성되고 재구성 되지만 특히 청소년기에 발달한다. 청소년 독자들은 자신의 독서 경험과 그에 의한 정체성의 변화를 통해 특정한 방식으로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게 된다. 청소년 독 자의 정체성은 개인의 문식 활동은 물론 사고와 생활 방식에 지속적으로 큰 영향을 미 치기 때문에 특별히 중요하다. 이런 이유로 독서교육가들은 학생 독자들의 정체성에 관심을 갖고, 학생들이 긍정적이고 힘 있는 독자 정체성을 구성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만 한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언급한 세 주제(꼼꼼하게 읽기, 한 권 읽기, 독자 정체성과 의 미 있는 독서 경험)는 서로 연계되어 있고 함께 실현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우리 학생들이 길고 복잡한 글을 꼼꼼하게 읽고, 타인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독서 경험은 개별 독자가 자신을 통찰하고 다 시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의 원천이 될 것이다. 독서 지도는 사람을 만들고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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