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현 (영등포고등학교, 교사)
2008년 9월 드디어 교사가 되었다는 안도감과 함께 영등포고등학교로 발령을 받은 후 ‘이제 무엇을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수상스키, 스노 보드 등의 레포츠에 관한 직무연수를 듣게 되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스노보드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지?’라는 질문과 그 대답이 수업에 자연스럽게 적용되는 경험을 한 이후부터 ‘교사의 모든 경험은 소중하며, 결국 그 영향은 학생들에게 향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 이 생각은 ‘교사뿐 아니라 학생 에게도 모든 경험이 소중하다.’라는 생각으로 확장 되었다.
그리고 2015년, 나의 수업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학교에 근무한 지 3년이 되어 갈 즈음 똑같은 생활 패턴의 반복으로 삶이 지루해고 있었다. 뭔가 돌파구를 마련하고 싶었고, 패턴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그 일환으로 석사 파견 시험에 도전하였다. 그리고 석사 과정 중에 ‘아두이노’라는 도구를 연구하게 되었다.
군대를 갓 제대하고 자동차 부품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 돈으로 오래된 중고차를 사서 통학을 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고휘도 LED라는 소재를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에쿠스라는 차량의 브레이크등과 깜빡이에 처음 사용되었는데 ‘뻔쩍뻔쩍’ 껌뻑이는 그 자태는 백열전구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것을 내 차에 달고 껌뻑거릴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져 ‘멀티 바이브레이터 회로’를 찾고, 필요한 재료와 도구를 대전대화공단의 전자상가에 가서 구입을 하고, 하트 모양으로 납땜을 해서 차에 이식했다. 하지만 깜빡이는 속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용량이 다른 재료를 다시 사와서 납땜을 뜯고 다시 만들었지만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LED가 깜빡거리는 속도를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학부 시절 ‘화공’이라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조차 전혀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화학공학교육과에 배정받았다. LED를 원하는 속도로 제어를 하려면 집적회로(IC, Integrated Circuit)를 다룰 수 있어야 하고, 그걸 다루는 장비인 롬라이터(Rom Writer)는 수천만 원에 달했으며, 그 장비는 전자공학교육과에 있었다. 당연하게도 LED를 마음대로 제어하고 싶었던 나에게는 롬라이터가 없었고, 그렇게 임용 장수생의 길을 걸어갔다.
당시부터 석사 파견을 가기까지 무려 8년 간 겨울잠을 잤다. 갈증은 있었지만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바로 그때 세 평 될까 싶은 골방 같은 연구실에서 그동안 미뤘던 행복한 고민을 다시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아두이노’를 알게 되었고 머릿속에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아두이노 스토리’를 비롯한 한국 아두이노 커뮤니티와 ‘산딸기 마을’이라는 라즈베리파이 커뮤니티를 알게 되었고, 그곳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롬라이터가 필요하던 상황이 이제는 그냥 USB만 꽂을 줄 알면 되는 수준으로 대중화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LED를 내 마음대로 제어하는 것은 그 순간 식은 죽먹기가 되었다.
이미 행복했지만, 더 행복해졌다.
필자는 알고 싶은 것을 배우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충실히 들였고,
그 결과 그것은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
그것을 내가 가졌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가질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가지면 가질수록 그것은 더욱 커져만 갔다
이미 필자가 상상했던 세상은 존재하고 있었고,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대신해 준 것이 아니기에 노력 여하에 따라 온전히 내것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석사과정 1년차 내내 이러한 욕구를 해소했고, 2년차에는 ‘기술적 의사소통능력 향상’이라는 목적을 가진 수업모형과 함께 아두이노를 도구로 하는 커리큘럼을 제작하여 석사논문으로 발표하였다.
복직을 하게 된 2015년, ‘기술적 의사소통능력’ 모형을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적용해 보았다. 그리고 석사 공부를 하면서 익힌 ‘아두이노를 활용한 프로젝트 수업 커리큘럼’을 2015, 2016, 2017년에 전면 적용했다. 다행히도 학생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고, 학생들의 수업과정과 결과물은 기존 기술 수업의 것과 달랐다. 필자는 도구 다루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학생들은 자기 팀만의 프로젝트 수행과정을 통해 산출물을 만들어냈다. ‘교사가 제시해주는 산출물을 누가 잘 만드는가?’가 기존의 기술 수업이었다면, 프로젝트 수업은 ‘모든 팀의 문제해결과정과 산출물이 다 다르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필자 또한 그때까지는 마치 아두이노가 그러한 결과를 만들어 낸 ‘만능 도구’라고 생각했었다. 그 후 서서히 불던 메이커 문화, 메이커 교육의 바람은 점차 거세졌다. 사람들이 새로운 메이커 교육의 방향성을 찾기 시작했고, 아두이노를 두고 ‘이게 대세야!’라고 외치기 시작할 무렵 의문이 들었다.
‘이게 사람들이 열광하며 이야기하는 <메이커 교육>이 맞나?’
우연한 기회에 이지선 교수님(숙명여대)을 만나게 되었고, 귀한 운명은 그렇게 찾아왔다. 사실 그 이전에도 커뮤니티를 통해 교수님의 ‘바느질 회로’를 이미 알고 있었지만, 당시만 해도 필자의 시선은 기술의 난이도에만 집중되어 있었고, 바느질 회로는 아이들의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수님의 철학적 배경을 이해하고 나서는 기존의 수업 방법을 통째로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2018년 수업 설계모형을 위와 같이 변경·적용하면서부터 한 학기 단위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는 필자의 정규수업에서는 도구를 직접 가르치지 않는다. 모형의 중·후반부에 있는 메이커톤 또는 메이킹 과정에서 ‘기술적 의사소통능력’ 향상을 위한 모형이 여전히 적용되기는 하지만, 기존에 ‘아두이노’ 사용법을 직접 가르치던 부분은 학생들이 협업도구를 스스로 학습하고, 주변에서 문제를 발견할 수 있도록 창의기법을 적용하며, 설문을 통해 근거를 확보하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여전히 아두이노를 자신의 프로젝트에 사용하는 학생들이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발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그것에 대한 공부는 자기 팀 또는 자신이 스스로 한다. 필자의 역할은 하고자 하는 학생이 더 잘할 수 있도록 거들 뿐이었다.
또한 그렇게 만들어진 학생들의 프로젝트 포트폴리오는 OPP(Open Portfolio Project)의 형태로 웹이라는 공간에 살아 있다. 누구나 검색할 수 있고, 누구나 자신의 아이디어를 덧붙일 수 있으며 사람들이 그것을 갖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하면 할수록 더욱 커져간다. ‘아두이노 스토리’와 ‘산딸기 마을’ 커뮤니티가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커나간다. 영등포고등학교 메이커스페이스 Camp 51.9는 학생들의 이런 모든 활동들이 잘 일어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예산을 마련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교육을 통해 이러한 메이커 문화의 속성을 이해하고 학교에 적용하기 위해 ‘메이커 교육’ 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여전히 ‘도구’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지난날 필자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도구’ 밖의 세상을 경험해 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성장은 그 방향과 크기가 다르다.
학생들에게 키워주고 싶은 역량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계속 던져보길 권한다. 그리고 ‘내 수업과 평가가 진정으로 학생들의 그 역량을 키워주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계속 갖길 바란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유가 ‘기술’ 교과가 수능과목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이제는 계속 변화를 추구하는 수업 속에서 더이상 학교생활이 지루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축척된 모든 경험들은 앞으로의 교직 생활에서 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김주현(2015), 고등학교 기술·가정과 ‘기술혁신과 설계’ 단원에서 기술적 의사소통능력 향상을 위한 설계과정 모형 개발, 한국교원대학교 석사논문.
참고자료
김주현의 메이커 교육 홈페이지 : sites.google.com/view/mtinet
김주현과 함께하는 서울기술교사연합 지주 페이지 : www.makered.cc
영등포고등학교 메이커스페이스 Camp 51.9 페이스북 : www.facebook.com/Camp51.9
영등포고등학교 메이커스페이스 Camp 51.9 인스타그램 : www.instagram.com/camp51.9/
메이커교육실천 : www.makered.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