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마당2024 여름호(255호)

[서평] 쉬운 공공의 언어는 인권이다
– 이건범 『언어는 인권이다』를 읽고

신홍규 (한양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교장)

휴일에 배가 출출해 뭘 먹을까 고민하다 집 근처 햄버거 가게로 갔다. 매장에는 키오스크 세 대만 있고, 주문받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나보다 늦게 온 학생들이 삼삼오오 기계 앞에 줄을 서면서 힐끗 나를 보면서 ‘아저씨 주문 안 하셔요?’라는 말에 당황한 나는 주춤거리면서 ‘먼저 하세요.’라고 말했다. 가끔 아들이 사다 주는 햄버거를 먹어보기만 하다가 오늘 내가 주문대 앞에 서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도 되고, ‘이게 뭐지?’ 싶다. 그래도 나는 최신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인터넷 뱅킹도 하며, 학생들과 이모티콘을 나누면서 나이에 비해 디지털화된 사람이라고 자부했는데, 동네 햄버거 가게에서 아무 주문도 못하는 바보 아닌 바보가 되었다. 용기를 내어 키오스크 앞에서 햄버거를 주문해 보려고 한참 화면을 보는데, 식은땀도 나고, 창피해서 그냥 갈까 하다가 오기로 계속 화면을 눌러봤다. 10여 분 동안 햄버거 선택 버튼만 누르고 있을 때, 뒤에 있던 학생이 보다 못해 ‘이거 누르시면 돼요.’라고 참견을 하니 민망한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사이드 메뉴는요? 음료는요?’ 하며 작정하고 도움을 주려는 학생의 질문에 등에서 땀까지 났다. 명색이 ‘내가 교사인데……’ 하면서도, 꾸벅 감사의 인사를 한 후 주문한 햄버거를 받자 마자 도망치듯 매장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요즘 커피 한 잔을 마시려 해도 키오스크를 이용해야 하는데, 원하는 메뉴를 찾을 수 없어서 그냥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문맹이 부끄러운 시대의 문맹인처럼 내가 바로 디지털 문맹인이었다. 버스표 예매, 택시 호출, 모바일뱅킹 등을 앱으로 사용하는 방법과 더불어 영화관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키오스크로 주문하기 등 많은 것이 낯설고 어렵다. 나와 같이 디지털 소외를 당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를 국가와 지방 자치 단체가 인지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이런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인식과 언어교육에 필요한 책이 이건범의 『언어는 인권이다』였다.

이건범의 『언어는 인권이다』는 현대 사회에서 언어가 갖게 된 새로운 역할과 사용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다. 이 책은 저자의 국어운동 참여와 철학적인 탐구를 바탕으로 언어가 소통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권을 실현하는 중요한 도구임을 강조하며, 국어의 역사와 미래를 명확하게 정리하고 전달한다. 표준어와 고운 말의 중요성뿐만 아니라, 언어와 인권 간의 관계를 살펴본다. 언어가 인권을 실현하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통해 올바른 언어 사용이 사회적 화합과 문화 발전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강조하며, 우리의 전통과 미래를 고려한 언어 사용의 중요성을 제시한다.

위의 글은 이 책을 학생들과 함께 읽고, 활용한 토론과 논술 수업에서 발문으로 삼은 구절이다. 학생들은 참으로 할 말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발표가 있었다.

정부 등 공적 기관이 정하여 사용하는 공공언어 가운데 어려운 말은 무엇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아주 교묘하고도 비열한 방식으로 국민의 알 권리와 평등권을 짓밟기도 한다. 누구나 경험했음 직한 그런 일들은 남이 나를 무식하다고 무시할까 봐 제대로 알리지 않을 뿐이다. 흔히들 생각하는 것보다 자주 우리는 어려운 말을 하는 사람 앞에서 절절매거나 할 말을 못 하게 된다. 심하게는 개인의 존엄을 무시당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나는 지금부터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활동에 참여했던 학생들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이건범의 『언어는 인권이다』라는 책은 참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동안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자든지, 우리 한글이 얼마나 과학적인 문자인지를 칭찬하는 식의 자료는 많이 접했다. 그런데 『언어는 인권이다』라는 책은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 ‘쉬운 우리말’을 사용하는 것이 인류 보편의 가치인 ‘인권’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는 점을 주장한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고 공감되는 부분도 많이 있었다.

‘우리말, 한국어 사랑’과 ‘우리글, 한글 사랑’ 활동을 하는 것도 가치가 있을 것이나, 보편적 가치인 ‘인권’ 측면에서 우리말과 우리글을 고민하고 우리 사회의 문제를 돌아보는 활동은 새로운 가치가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신선한 충격과 공감으로 다가왔던 언어에 대한 필자의 관점을 한번 더 새겨본다. “쉬운 공공의 언어는 인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