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2024 여름호(255호)

[석관고] 더 큰 세상으로의
도전 정신과 세계시민의식을 배운다
-석관고등학교 국제교류프로그램-

이세주 명예기자

차규빈 : 2023학년도에 국제교류 프로그램에 참가해 덴마크에 다녀왔던 학생이다.

미래 역량을 기르기 위해

교육은 ‘지금’ 이뤄지는 활동이다. 배움은 교사와 학생이 발 딛고 선 교실에서 ‘현재’ 벌어지는 현상이다. 심지어 그 내용은 먼 과거에서부터 가르치고 배우는 그 순간까지 일어난 일을 다룬다. 하지만 교육의 궁극적 지향은 언제나 미래를 향해야 한다. 지금 이곳에서 배우는 학생들이 살아갈 미래, 교실에서 배우며 성장하는 학생들의 미래, 그 미래를 살아갈 학생들의 역량을 길러주는 일이 교육의 목표 가운데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지구촌을 무대로 살아갈 학생들의 ‘미래 역량’을 길러주기 위해 몇 년 전부터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알차게 운영하고 있는 석관고등학교(교장 김선관, 이하 석관고)를 찾은 이유다. 석관고는 “세계시민으로서 미래에 대한 더 큰 꿈과 더 큰 세상으로의 도약을 위한 진취적인 도전 정신을 함양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지구촌 학생들과 공감과 교류를 통해 다양성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평화와 공존의 글로벌 미래사회를 선도하는 세계시민의식”1을 고취한다는 목적으로 몇 년 전부터 국제교류 세계시민교육을 활발하게 실시하고 있다.

돌을 뚫는 물처럼

입시라는 어려운 과제가 높은 벽처럼 가로막힌 상황, 다양하게 구성된 학생들 사이에 엄연하게 존재하는 크고 작은 격차, 여백 없이 빡빡하게 돌아가는 학사 일정 등 일반계 고등학교의 상황과 현실을 감안하면,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도 방학이 아닌 학기가 진행되는 와중에 학생들을 인솔해서 외국으로 나가고, 우리 학생들이 외국 학교의 정규 수업에 참여하는 것은 언뜻 공상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석관고 학생들은 벌써 두 차례나 이러한 일을 경험했다. 드라마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들이 어떻게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가능했는가.

학교 이름 ‘석관(石串)’에는 “돌을 뚫는 물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끝내 해내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가 담겨 있다. 초지일관(初志一貫)의 다른 표현인 셈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나서 그 뜻을 처음으로 세우는 일이 중요할 터, 현재 석관고 연구부장을 맡고 있는 노재강 선생님께서 국제교류의 물꼬를 트는 일에 앞장섰다. 이 어려운 일을 왜 시작하셨는지, 국제교류 프로그램의 시초를 열어 놓으신 노재강 선생님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 보자.

한 방울 한 방울 떨어뜨려서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려면 목표를 명확히 세우고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취지가 아무리 좋고 구호가 타당하더라도 지향점이 명확하지 않으면 의도와 달리 길을 잃기 쉬운 까닭이다. 석관고는 ‘국제교류 세계시민교육’이라는 다소 포괄적인 개념을 명확히 규정하고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설정했다. 그것은 학생들이 세계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과 교류하고 여러 언어권의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에티켓을 기르고 의사소통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교육을 말한다. 학생들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동료와 이야기할 때보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외국 학생과 소통할 때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정갈하게 다듬어서 표현한다는 기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자기 생각을 타자의 언어로 번역하여 발화할 때 학생의 주체성과 적극성, 자율성과 응용력이 길러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 학생들은 우리 언어와 문화에 대해 깊이 이해해야 함은 물론이다.

국제교류 프로그램은 운영 방향과 실행 규모를 고려할 때 학교의 단일 부서(가령 연구부나 창의적 체험활동부)가 단독으로 주관하고 추진해서는 진행되기 어려운 사업이다. 석관고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 뜻을 같이하는 교사들뿐만 아니라 행정실 직원 등 학교의 모든 인력과 물적 자원을 총동원했다. 그 과정을 간략히 살펴보면, 우선 2022년 3월에 국제교류 프로그램 업무 담당 교사를 선임하고 관련 공문을 처리하는 창구를 단일화했다. 6월에는 국제교류 동아리와 국제과학기술 동아리가 연합해 리더십 캠프를 진행했다. 국제교류의 발판을 다져놓은 것이다. 같은 해 2학기에는 국제교류에 참가할 학생을 선발하고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했다. 2023년 1월, 드디어 덴마크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그곳에 도착해 주덴마크한국대사관을 방문하여 국제교류 프로그램의 의도를 설명하고 대사관의 도움을 받아 덴마크 현지 고등학교 세 곳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3월에는 덴마크의 Ranum Efterskole College, Ordrup Gymnasium 학생들이 석관고를 먼저 방문해 일일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 북쪽에 위치한 감멜 헬레루프 고등학교(Gammel Hellerup Gymnasium, 이하 GHG)와 2023년 5월에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9월에 석관고 학생이 덴마크를 방문해 GHG에서 국제공동수업에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선생님이 기울인 노력 덕분에 국제교류를 위한 발판이 마련되었다. 본격적인 시작은 지금부터였다. 프로그램에 참가할 학생을 선발하고 일정을 수립하며 선발된 학생을 대상으로 사전 교육을 실시하고 출국하기까지, 길고 지난한 과정이 남아 있었다.

석관고는 학생을 선발할 때 지원서와 자기소개서를 자필로 작성하게 하여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는 학생의 성실성과 진정성을 파악했다. 학생선발위원회가 숙고한 끝에 결정한 선발 기준에도 학생의 내신 성적은 포함되지 않았다. 현지에서 대화하기 위한 영어 실력도 중요한 고려 대상은 아니었다. 학생의 의지만 있으면 현지에서의 소통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학생이 제출한 서류와 인성 면접을 통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의 목표 의식과 활동 계획을 평가했다. 모두 35명이 지원했으며 가능한 많은 인원을 선발하려고 했으나 프로그램 예산과 활동 규모의 제약으로 10명을 선발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단계로는 선발된 학생을 대상으로 사전 교육을 실시했다. 단순한 관광이나 자유로운 여행이 아니라 학사 일정의 일환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것이기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여권 발급 방법을 안내하는것에서 시작했다. 학생들이 호텔에서 숙박하는 게 아니라 덴마크 가정에 머물기로 했기에 홈스테이 지원서를 작성하는 일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이후 선발된 학생 열 명을 네 그룹으로 편성하고 리더 정하기, 조별로 일정을 계획하여 패들렛에 공유하기, 일상 회화를 위한 덴마크어 공부하기, 덴마크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관련 도서와 영화 감상하기, 우리 역사와 문화를 덴마크에 알리기 위해 준비하고 국제교류 공동수업 구상하기, 현지 활동 계획 수립하기 등 비행기에 오르기 전까지 준비할 사항이 무척 많았다. 최종 인원 선발을 마친 6월에 첫 모임을 시작해 출국 전인 8월 31일까지 무려 3개월의 준비 기간이 필요했다.

바위에 부딪히며

2023년 9월 1일, 오랜 기간 철저하게 준비해 덴마크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무려 열네 시간 가까이 이동하는 장거리 비행 끝에 지구 반대편 덴마크에 도착했다. 하나하나 꼼꼼하게 챙겼으나 이국땅에 도착한 순간부터 난항을 겪었다. 짐을 잔뜩 실은 캐리어 바퀴가 부서져, 그 친구의 짐을 여럿이 나누고 함께 도와서 들어야 했다. 구글맵에는 공항에서 숙소까지 이동 시간이 30분이라고 나왔는데 실제로는 1시간 30분 이상 걸렸다. 덴마크 지하철은 우리와 달라서 ‘열림’ 버튼을 눌러야만 문이 열리는 시스템이었다. 이러한 시스템에 익숙하지 못해 하차 역에서 내리지 못할 뻔한 순간도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겪은 이러한 일들이 마치 7박 9일 동안 겪을 혼돈의 전조처럼 느껴졌다. 국제교류 학생 참가단과 인솔 교사 일행은 긴장의 고삐를 바짝 조이고 일정을 챙겨야 했다.

우려와 달리 국제교류 공동수업은 계획대로 진행됐다. 등교 첫날, 학생들은 GHG 교장 선생님과 국제교류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학교에 대해 친절하게 안내받았다. 또한 GHG의 학사제도와 교육과정, 우리 학생들이 국제교류 기간 동안 배울 과목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소개받았다. 출국 전에 네 개 그룹으로 편성된 학생들은 소규모로 이뤄지는 수업에 참여해 현지 학생들과 같은 입장에서 배우고 활동했다. 학생들은 GHG 선생님에게 수업을 듣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전통문화를 GHG 학생들에게 알리는 국제교류 공동수업도 직접 진행했다. 선발된 학생들이 출국하기 전부터 오랫동안 준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덴마크 교실에서 한국 학생과 덴마크 선생님이 어떻게 소통하며 수업이 이뤄졌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90분 단위로 진행되는 덴마크 수업은 교사가 주도하지 않고 대부분 학생이 참여하는 형식이었다. 교사의 역할은 도입부에 수업 주제를 안내하고 과제를 제시하는 정도였다. 나머지는 학생의 토의와 토론, 글쓰기와 발표로 채워졌다. 덴마크 학생들은 우리 학생들을 배려해 영어를 사용하려고 애썼으며 우리 학생들도 번역기를 활용해 소통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어학 능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상대와 대화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소통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 학생들은 몸소 경험했다.

세계시민으로 살아갈 미래 역량 기르기

이렇게 진행된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배우고 느낀 점이 참 많은데, 학생들의 소감을 기록한 자료집 내용은 지금도 우리 교육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점을 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라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이와 같은 학생의 소감은 국제교류 프로그램 업무 담당 교사인 백현진 선생님의 깨달음과도 맞물려 있었다. 백현진 선생님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실무 준비, 7박 9일 동안 현지에서의 학생 인솔, 국제교류 이후 진행한 공개 보고회까지 담당하시며 모든 과정을 열정과 헌신으로 총괄하셨다.

이와 같이 진행된 석관고의 국제교류 프로그램은 세계시민교육의 일환이다. ‘지구촌’을 무대로 살아가는 게 불가피한 시대에 ‘세계시민’이란 민족과 지역의 경계를 뛰어넘고 종교와 신념의 차이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지닌 사람,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토대로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삶의 태도를 지닌 사람이다. 따라서 세계시민교육은 학생들이 차이를 존중하며 포용적이고 정의로우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지식, 기능, 가치, 태도를 길러주는 교육이다.2이런점에서 덴마크의 GHG와 국제공동수업을 진행한 석관고의 노력은 소중한 주춧돌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023년 가을, 덴마크 현지에서 국제교류 프로그램 책임자로 학생들을 인솔하신 김경미 교감 선생님의 소회는 세계시민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운다.

어느 언론사 대표가 덴마크 사회와 학교 현장을 탐방하고 그곳의 문화를 기록한 책이 출간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미래 역량을 길러주는 석관고의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두루 살펴보며 나는 10년 전에 읽었던 그 책을 다시 펼쳐 보았다. 동경과 놀라움에 밑줄 긋고 메모해 둔 부분이 여럿이었는데 유독 이 문장 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학교는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를 학생 스스로 찾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이다.”3 이를 다른 말로 바꾸면, 학교는 학생 스스로 미래 역량을 기르도록 돕는 공간일 터, 석관고의 국제교류 프로그램은 안전지대 바깥에서 세계시민으로 살아갈 미래 역량을 기르는 과정이었다.

 

  1. 김경미 외, 『더 멀리 드넓은 세상으로-석관고등학교 2023학년도 국제교류 세계시민교육 활동 자료집』(2023), 5쪽. 이하 각주는 생략하고 본문에 『자료집』, 쪽수를 병기함.
  2. 서울특별시교육청, 「2024 세계시민교육 기본 계획」, 2024, 12쪽.
  3. 오연호 ,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오마이북, 2014, 1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