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진(서울치현초등학교, 교사)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의 몇 번째 제자들이에요?”
올해 우리 반 아이돌이 종종 묻는 말에, 나는 능청스러운 척 말하고는 했다.
‘‘선생님은 백 살이니까 … . 어디 보자, 일흔 번째 정도?”
김이 샌 듯 에이~하며 돌아가는 아이들은, 사실 내가 담임교사로서 맞이한 첫 학생들이다.
나는 올해 우리 반 아이들을 만나기 전까지, ‘담임교사가 되면 해 보고 싶었던 것들’을 메모장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었다. 독서, 환경, 예술, 경제, AI 등… . 학급 아이들과 1년 동안 다뤄볼 수 있는 주제와 활동들은 정말 많아 보였고, 나 역시도 기회가 된다면 하나씩 적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걱정이 생기기도 했다.
‘내가 이걸 아이들과 재밌게 할 수 있을까?’
‘욕심 많게 이것저것 건드려 보기만 하고 끝나는 건 아닐까?’
‘하고 싶은 활동들을 일관되게 엮어 보면 더 좋을것 같은데, 어떻게 엮어야 할까?’
그러던 중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실시한 교사 교육과정 연수를 듣게 되었고, 고민에 대한 답을 교사 교육과정을 실천하며 찾아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가 추구하는 교육의 가치를 바탕으로 교육과정 실행의 통일성을 갖추고, 동시에 학생들과 함께 학급을 운영해 나간다면 학습에 대한 열정과 흥미는 자연스레 따라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해, 운 좋게도 소속교 선배 선생님들과 교사 교육과정을 직접 실천해 볼 기회를 얻었다.
교사 교육과정이란?
교사 교육과정은 ‘국가·지역·학교 교육과정과의 공동체성과 교사의 철학을 기반으로 학생과 함께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이다(서울특별시교육청, 2022). 교사는 교사 교육과정의 설계를 위해 국가·지역 교육과정을 품고, 학교·학년 교육과정과 함께 가는 방향을 고려하되 자신이 추구하는 교육적 가치 역시 구현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학생 개개인의 배움을 목표로 삼아 교육과정을 실행해야 한다.
서울특별시교육청(2022)은 교사 교육과정의 구체적 실천 과정을 ‘교사 교육과정 찾기’, 교사 교육과정 엮어내기’, ‘교사 교육과정 풀어내기’, ‘교사 교육과정 성찰하기’의 네 단계로 제시한다. 네 단계는 계획-실행-성찰의 전반적인 흐름을 담고 있으며, 한번의 실행에 그치지 않고 다음 해의 교사 교육과정까지 나아갈 준비를 한다는 데 있어 순환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
교사 교육과정의 실천 단계에 따라, 우리 반 학생들과 교사 교육과정을 실현한 모습을 차례대로 소개하고자 한다.
교사 교육과정 찾기
교사 교육과정을 찾아가는 첫걸음은 교사가 스스로 삶의 가치를 찾는 것이다. 나는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 가고, 어떤 활동과 모습을 좋아하는지. 또 나에게 행복이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관심을 두고 있는 영역에 대해 고민하며 삶의 가치를 탐구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러나 어려운 과정인 만큼, 진정한 교사 교육과정을 시직하기 위한 튼튼한 디딤돌을 마련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래는 교사 교육과정을 시작하며 내 삶의 가치를 찾기 위해 작성한 내용이다.
꿈(진로)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는 말을 좋아한다. 어떠한 직업을 갖는 것,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라는 목표와 목적을 위해 노력하며 다가가는 과정 그 자체가 나에게는 바라는 삶으로, 꿈꾸는 바이기도 하다.
몇 년 전 우연한 자리에서 이 말을 직접적으로 드러내 주는 ‘그릿’이라는 개념을 접하게 되었다.(중략) 그릿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가진 목적의 경향성을 살펴봤을 때, 타인 존중적이며 사회 기여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느꼈다. 개인적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자기 삶의 목적을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설정하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을 보며,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가며 행복을 느끼는 데 타인과 사회와의 공존이 배제될 수 없음을 상기하였다.
그릿을 가진 사람들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나 또한 비슷한 삶을 추구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행복과 존중의 가치를 삶의 우선에 두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스스로 동력을 찾아 몰입하며 행복감을 느끼고, 몰입의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깊은 존중을 바탕으로 타인과 함께하며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일 때 행복감을 더 가치있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삶에서 추구하는 가치를 고찰한 후, 이를 나의 교육철학으로 연결 짓고자 했다. 지향하는 삶의 방향이 내가 실현하고자 하는 교육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 나의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를 자세히 그려 보았다.
교사 교육과정 엮어내기
나의 교육철학을 수립한 후, 학생들과 맞춰가기 위한 진단·분석을 진행하였다. 학생들과 만나기 전 신학년 집중 준비기간에는 담당하게 될 학년의 일반적 특성을 먼저 살펴보았다. 지적 · 신체적 · 정서적 · 사회적 발달의 특징을 파악한 후, 교육 활동에 적용하면 좋은 학급 운영 방법이나 고려사항 등을 확인하였다. 3월에는 학급 학생들을 만나 정성적 관찰을 실시하여 개개인의 종합적 발달 상황을 파악하였으며, 진단평가, 진로발달검사를 통해 학업적, 자아적 발달을 객관적 수치로 이해하였다. 또한 학부모 총회 및 상담을 통한 의견수렴으로 학부모의 특성을 알아보고, 지역사회 특성 및 활용 가능한 자원을 탐색하며 1년의 교육활동에 반영할 수 있는 부분들을 찾아보았다. 마지막으로, 학급에서 사용 가능한 1년간의 예산을 정리하여 학생과 만들어 가는 학급 운영에 적극적으로 사용하고자 하였다.
이후 다양한 수준의 교육과정을 돌아보았다. 교사 교육과정이 국가 · 지역 · 학교 · 학년 교육과정과의 공동체성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각 교육과정에서 나의 교사 교육과정에 중점적으로 반영할 사항을 추출하여 정리하였다. ‘교사 교육과정 찾기’ 단계에서 교육철학을 세울 때 나의 교사 교육과정에는 진로교육을 중점적인 부분으로 설정하고자 하였으므로, 초등학교 수준의 진로 교육과정을 추가적으로 분석하였다. 다음은 각 교육과정을 참고하여 나의 교사 교육과정 핵심 요소를 설정한 내용을 제시한 표이다.
이후 학년의 교과 및 진로 성취기준을 분석하며 교사 교육철학을 교육활동으로 실현하기 위한 큰 틀을 설정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아래는 ‘나 이해하기’, ‘너를 존중하며 함께하기’, ‘우리 함께 꿈꾸기’ 세 가지의 교사 교육과정 추진 방향 중 ‘나 이해하기’와 관련한 성취기준을 추린 예시이다.
교사 교육과정 풀어내기
교육철학 위에 학생·학부모·지역사회의 실태를 반영하고, 다양한 수준의 교육과정을 분석한 후 교사 교육과정을 교실에서 폴어내는 과정을 이어갔다. 내가 교사로서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가 잘 담긴 그림책을 선정하여 함께 읽고, 우리 반 학생들이 가치를 스스로 느껴볼 수 있는 활동을 진행하였다. 이는 ‘실 한 가닥으로 연결된 협동 미술 작품 만들기’ , ‘하나의 주제로 우리 반 협동시 짓기’ , ‘1학년과 함께하는 어울림 프로그램 참여하기’ 등의 활동으로 구체화되었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교사가 제안한 ‘존중’ 가치를 충분히 느껴보고, 이후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너, 나, 우리를 위한 가치를 직접 탐색하였다. 이후 다양한 가치들에 대한 충분한 협의를 통해 학생들이 학급가치 네 가지를 설정하고, 가치를 스스로 지키기 위한 규칙을 만들었다.
학생들이 설정한 ‘행복’, ‘존중’, ‘양보’, ‘안전’의 가치를 교과와 연계한 진로교육 안에서 배울 수 있도록, ‘자기이해 및 진로탐색 프로젝트를 통해 사회 속 자신의 진로를 설정한다.’라는 중점 교육 목표를 수립하였다. 이에 따른 1년 동안의 중점 활동은 아래와 같다.
교사 교육과정을 풀어내는 과정 중, 중점 활동들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구성 하였던 [I&U 진로 프로젝트]의 34차시 활동 진행 구성은 다음과 같다.
교사 교육과정 성찰하기
교사 교육과정을 실천하는 중에, 그리고 1년 동안의 과정을 마무리한 후에 돌아보며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계획한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나의 성찰과 학생들의 소감을 정리했다. 성찰 내용을 바탕으로 다음에 진행할 프로젝트 계획을 보완하였다. 다음은 앞서 제시한 I&U 진로 프로젝트를 마친 후 교사의 성찰과 학생들의 소감 내용이다.
또한 스스로 일 년을 돌아보며 나의 철학과 교육과정과의 연계성, 학급 특색 반영, 교육과정 재구성의 적절성, 과정중심평가 실행 여부 등을 수시로 확인하였다. 교사 자율성이 큰 교사 교육과정의 운영에 있어,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교육과정을 계획하고 운영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더욱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성찰을 진행하였다.
성찰은 1년 간의 과정을 마무리하며 돌아보는 일이 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다음 해 나의 교사 교육과정을 다시 어떻게 꾸려 나갈 것인지에 대한 길잡이로서 역할이 더욱 크다. 학생들과 함께 만들어 나가는 배움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교육관을 가지고 아이들과 교실에서 만날 것인지, 학생들이 ‘행복한 학습자’가 되기 위해 같이 할 수 있는 학급 운영은 어떤 것일지…. 막연한 생각으로 주저하던 때와 다르게, 성찰 내용을 돌아보며 내년에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을 짚고 채워가며 다음 해의 교사 교육과정을 다시 재설계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해를 맞이하면 또 다른 학생들과 만난다는 설렘과 함께, 앞에 있는 아이들과 함께 또 어떤 모습의 교육과정을 구성해 갈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감도 생길 것이다. 물론 같이 걷는 과정이 때로는 버겁게 느껴지겠지만, 교사 교육과정의 실천은 나와 학생들에게 그보다 더 큰 즐거움과 깨달음을 안겨주기도 할 것이다. 나는 교실에서 아이들과 또 무엇을, 어떻게 배우게 될까? 분주함과 설렘이 섞여 있는 신규교사의 3월, 교사 교육과정의 시작이 새로움의 기쁨을 더 크게 만들기를 바란다.